* 콜롬비아 산 페드로 알레한드리노 농장 기념관
볼리바르가 사망한 집에서 조금 쩔어진 곳에 기념관이 있다. 하얀 건물의 문 위 외벽에 'COLOMBIA AL LIBERTADOR' 라는 문구게 새겨져 있다. 즉 해석하면 '콜롬비아의 해방자'란 뜻이다. 스페인어인 리베르타도레스Libertadores는 남아메리카 독립 전쟁의 영웅들을 가리키는 말로, '해방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리베르타도레스로 꼽히는 인물로 남미에서 칠레, 브라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등 국가에 7명이 있는데 그 중에서 시몬 볼리바르는 콜롬비아, 파나마,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6개국을 해방시킨 해방자로 기록되어 있다. 대부분 계층적으로부르주아이며 크리오요 즉 남미 식민지 태생 유럽계 백인들이었다. 또한 자유주의에 동화된 이들로, 대부분이 유럽 등지에서 전문적 군사 훈련을 받은 이들이었다. 이들을 기리기 위해 남미 축구 연맹CONMEBOL은 남미 각국 프로축구 리그 상위팀이 참가하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대회를 열고 있다.
이곳 산 페드로 알레한드리노 농장은시몬 볼리바르가 최후의 나날을 보낸 저택이다. 아름다운 초기 18세기 저택 산 페드로 알레한드리노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 전에 세워진 도시, 산타 마르타에 있다. 풍요로운 역사를 지닌 곳으로, 시몬 볼리바르와 남아메리카가 낳은 가장 위대한 영웅 중 한 사람인 볼리바르가 사망한 곳으로 특히 잘 알려져 있다. 볼리바르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얻어내기 위해 투쟁한 위대한 장군이었다.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페루, 에콰도르, 파나마, 볼리비아를 스페인 통치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킨 영웅적인 전투로 인해, 그는 '엘 리베르타도르' 즉 '해방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1826년 볼리비아 공화국이 탄생했고, 볼리바르는 한 나라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매우 드문 이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의 군사 리더십에 전혀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그가 해방시킨 국가들이 너무나 광대했으며, 서로 간에 정치적·문화적 유산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다지 신망을 얻지 못한 행동이었으나, 그는 지역을 통합하기 위하여 자신을 절대 권력자로 선포했다. 널리 퍼지기 시작한 불안은 정점에 올라 마침내 그를 노린 암살 시도가 발생했다. 1830년 그는 권력에서 물러났으며 남아메리카를 떠나 유럽으로 갈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출발하기 전 결핵이 발병했고, 돈 호아킨 데 미에의 초청을 받아 그의 집인 산 페드로 알레한드리노 저택에서 요양하게 되었다. 볼리바르는 이 평온한 저택에서 말년을 보냈으나 마침내 병마에 굴복하여 1830년 12월 17일 사망했다. 이후 그의 유해는 베네수엘라의 수도인 카르카스로 옮겨져 그곳에 매장되었다.
산 페드로 알레한드리노 농장은 사탕수수, 코코넛, 벌꿀, 다양한 과일 등을 생산하고 증류주가 자랑거리인 부유한 농업 중심지였다. 볼리바르의 사망 이후 이곳은 점차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1891년 마그달레나 주에서 이를 사들여 복원했다. 오늘날 이곳은 볼리바르와 연관된 기념품이 가득한 박물관이며, 그가 해방시킨 여섯 나라의 예술과 문화에 헌정된 장소가 되었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 하얀 색상의 동상군이 있다. 중앙에 볼리바르가 우뚝 솟아 있고 그 주변에 콜롬비아의 해방자 볼리바르를 받쳐주는 역사적 전설을 상징하는 동상들이 층층으로 볼리바르를 에워싸고 있다. 특이한 것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볼리바르가 다르게 보인다는 점이다. 좌측에서 보면 청념년 모습이고, 중앙에서 보면 장년 모습이고, 우측에서 보면 노년 모습이다. 내가 좌, 중앙, 우측에 서서 보니 실제로 그렇게 보였다. 독특한 제작법으로 형성된 동상이다. 기념관 앞에는 세계 각국의 국기들이 게양되어 휘날린다. 야자수와 함께 매우 잘 조성되어 근엄한 풍경이다. 그가 얼마나 남미에서 추앙받는 인물인지 알게하는 대목이다. 먼 나라에 와서 위대한 한 인물 시몬 볼리바르에 대하여 잘 몰랐던 역사적 지식을 배우고 감에 참으로 기쁘고, 뜻깊은 보람된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