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차 문학기행반 문학기행 후기]
이병주 소설가를 만나러 하동엘 가다
오늘도 우리 가슴에 날아와 박힌, 화살은 있으리.
아프고, 서럽다! 화살을 빼어, 날아온 곳으로 쏘지 말자.
그대로 가슴 밭에 내버려 두자.
봄 오면 거꾸로 박은 지게막대에도 싹은 나느니
그 화살에도 분명 꽃이 피지 않겠는가.
상처가 꽃밭을 만들지 않겠는가.
우리가 사랑한다고 아무리 우겨도
이웃인 미움과 질투와 시기와 분노가
사랑을 시위 삼아 늘 화살로 날아와 박히나니.
-권창순 시 [내 가슴에 박힌 화살]

나 이 소풍 잊지 못하리
혼자일 때 우리가 되게 하고
슬픔 나누어 희망 꽃을 피운,
나 이 소풍 잊지 못하리
밤새워 문학 술 나누며
문학밭서 놀다가 울다 잠도 들었던,
나 이 소풍 잊지 못하리
아름다운 문 기반 소풍 끝내는 날,
나도, 천상병시인처럼 말하리라 …….

‘문학기행반과 나’의 만남은 축복이다. 내가 이 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나라에가 ‘귀천’ 주막에서 선배 시인들을 뵙는다면 문학기행반의 문학소풍, 문학여행은 참 아름답고 소중했다고 말하리라. 팍팍한 세상살이! 외롭고 슬플 때 문학기행반 문학여행은 내 가슴을 그리움으로 즐거움으로 채워 주었다.

아들과 함께 문학이 있는 곳에서 선·후배와 함께 밤새워한 우리들의 이야기는 언제고 돌아보면 나의 행복사전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이명골길 14-28.
이병주문학관은 소설가 나림 이병주의 창작저작물과 유품을 상설 전시하는 문학기념관으로서, 한국의 근대와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80여 권의 방대한 작품을 남긴 작가의 균형성 있고 총체적인 시각을 느낄 수 있는 문학현장입니다.
*반갑게 맞아주시고 강의도 해주신 최증수 관장님께 관부연락선의 기적소리와 함께 감사드립니다. 사무국장으로 계신 유홍준 시인님을 만난 건 큰 기쁨이었습니다.

고인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 고인의 슬하에는
고인이 있나 저녁이 있나
저녁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
저 외로운
지붕의 슬하에는
말더듬이가 있나 절름발이가 있나
저 어미새의 슬하에는
수컷이 있나 암컷이 있나
가만히
돌을 두드리며 묻는 밤이여
가만히 차가운 쇠붙이에 살을 대며 묻는 밤이여
이 차가운 쇠붙이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
이 차가운 이슬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
이 어긋난
뼈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
이 물렁한 살의 슬하에는 구더기, 구더기, 구더기가 살고 있나
-유홍준 시 [슬하] 전문
-유홍준 시인은 1962년 산청 생초 출생. 계간 <시와 반시>를 통해 정식 등단. 지난해 부쩍 문제작가로 문단 안팎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민중문학의 벽을 허물지 못해 무척 고생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제대로 된 시집을 한 권 낸다면 문학에서 손을 접어도 좋다고 여기면서, ‘모던’으로 빛나는 ‘리얼’을 날마다 꿈꾼다.

이병주 (1921-1992) 작가는 경남 하동에서 출생하여 일본 메이지대학 전문부 문예과를 졸업했다. 1944년 학병으로 동원되었다. 진주농과대학과 해인대학 교수를 엮임하고 부산 <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국장 등으로 활발한 언론활동을 하였으며, 1965년 마흔 네 살의 늦깎이로 작가의 길에 들어선 이병주는 타계할 때까지 27년 동안 한 달 평균 1천여 매를 써내는 초인적인 집필활동으로 80여 권의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나는 이 나라에서 문학이 가능하자면, 역사의 그물로써 파악하지 못한 민족의 슬픔을 의미로 모색하는 방향으로 슬퍼해 보는데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병주 [지리산]에서
기록이 문학으로서 가능하자면 시심(詩心) 또는 시정(詩情)이 기록의 밑바닥에 지하수처럼 스며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문학이론이었다.
-이병주 [겨울밤]에서
정치란, 그리고 혁명이란 슬픔을 감소시키기 위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의 가슴에 원한을 맺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이병주 [그해 5월]에서
우리에겐 청춘은 없었다. 청춘엔 광택이 있어야 하는 거다. 진리에 대한 정열로써, 포부를 가진 사람의 자부로써, 뭐든 하면 된다는 자신으로써 빛나야 하는 건데, 우리에겐,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겐 그런 것이 없었어.
-이병주 [산하]에서
나는 저항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인생에 있다고 믿는 소설가가 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고 친구에 대한 우정일 수도 있습니다. 처자를 버리고 용감하게 대의를 위해 죽는 영웅적인 행동을 존중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자기를 쳐다보는 처자식의 굶주린 눈동자가 안타까워 스스로 종으로 팔려가는 사나이의 심리도 무시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입장입니다.
-이병주 [행복어사전]에서
어떤 주의를 가지는 것도 좋고, 어떤 사상을 가지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 주의 그 사상이 남을 강요하고 남의 행복을 짓밟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을 보다 인간답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라야 한다.
-이병주 [삐에로와 국화]에서

이병주 작가는, 진실을 추구하는 기개와 용기를 지닌 사관(史官)이자, 언관(言官)이고자했던 언론인으로서의 오랜 경험은 그의 문학정신에 튼튼한 자양분을 이루며 한 시대의 ‘기록자로서의 소설가’, ‘증언자로서의 소설가’라는 탁원한 평가를 받았다.
이병주 작가는,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공간, 남북의 이데올로기 대립, 정부수립, 6·25 동란 등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작가의 개인적 체험을 한 지식인으로서 누구보다 우리 역사와 민족의 비극에 고뇌하게 했고 이를 문학작품으로 잘 승화시켰다.
이병주 작가는, 1965년 [소설 · 알렉산드리아]를 ‘세대’에 발표하며 등단한 이후, 이어진 [관부연락선], [지리산], [산하], [소설 남로당], [그해 5월] 등의 대하장편들은 작가의 문학적 지향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병주 작가는, 탄탄한 이야기의 전개와 구성으로 소설문학 본연의 서사성을 이상적으로 구현하고 역사에 대한 희망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시선으로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 그의 문학은 역사의식 부재와 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오늘날 더욱 빛난다.
*이병주 작가와 그의 문학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여 발표해준 후배들께 감사드리고, 열심히 칭찬하며 살고, 열심히 편지글 쓰며 사는 옹점숙 선배께도 감사드립니다.
*뒷풀이에도, 다음날 봉명산 다솔사 둘레길에도 함께 해주신 관장님과 사무국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들의 만남이 오래오래 즐겁게 이어지길 소망해 봅니다.

이병주 작가님, 작가님의 몽블랑 만년필을 보며 그리운 이름을 적어봅니다. 하동 북천마을에
함께 했던 아이들의 이름, 지환과 면희, 점숙, 창순, 미옥, 정숙, 영용, 태신 등 이런 동문들의 이름과 영숙, 용순 등 문학을 좋아하는 이웃들과 정은아, 이영희, 김상부, 이우윤, 이정화, 이효재, 김영애, 이수옥, 김미숙, 손순자 등 그리움이 햇살처럼 묻은 이름과 이수원, 김애자, 이서연, 양태권, 정혜정, 임권정, 김희종, 정명인, 김연순, 조병진, 오영진, 정성조, 하동, 북천, 덕천강, 다솔사, 산천제, 목화, 지리산 천황봉, 남평 조식, 한용운과 김동리, 그 붉은 감, 최증수, 유홍준, 덕천마을 이장님의 이름도 적어봅니다.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나뭇잎처럼 이제 우리도 어렵다 느끼던, 멀다고 느껴만 지던 문학이 어느새 우리들 마음에 곱게 물들어 붉은 단풍잎처럼 문학으로 붉게 물들어 가는 문학을 꿈꾸던 문학소년, 소녀의 그 옛날로 돌아가는 듯합니다.
-정성조 문학기행반 회장, 기행보 권두언 [감사한 마음으로]

*성공적인 중국 윤동주 문학기행 등 문학기행반의 르네상스시대를 연 회장님과 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동문들이 준비한 천상병 문학소풍에 오시기 바랍니다.

*떠나자! - <제127차 천상병 문학소풍>
2013년 11월 24일 (일요일) 충남 태안군 안면읍 중장5리 대야도(시인의 섬) -천상병 생가 관람(태안군 안면읍 중장리 1433-2)
귀천(歸天)
-천 상 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시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면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歸天)'을 흥얼거리리라.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과 옥고로 정신적 피해를 입어 어려운 생애를 살아온 고 천상병(千祥柄: 1930-1993) 시인의 의정부 생가가 충남 태안군 안면도로 옮겨 왔다.충남 태안군 고남면 중장5리 대야도에 거주하는 모종인(50)씨는 대학 시절 미술을 전공하였으나 평소 시를 좋아해 천상병 시인과도 가깝게 지냈다. 단일 작물로 국내에서 보리 농사를 가장 많이 짓는 모종인씨는 의정부시 수락산 밑에 있던 천상병 시인의 생가가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 생가를 원형 그대로 안면도로 옮겨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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