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큰 물에서 일하는 자
시 편 107 : 23 – 31
시편 107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고통 중에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인도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것을 감사해서 예배 시간에 불렀던 찬송입니다.
예배 인도하는 자가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고 선포하면 성도들은 다 함께 일어나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라고 화답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배드렸습니다.
8, 15, 21, 31절은 후렴입니다. 첫 절(4-9) 가사는 갈 길을 몰라 방황할 때 부르짖음을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을 안전한 성으로 인도하시는 구원의 은혜를 하나님께 감사하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 절(10-16)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흑암 중에 처한 자들이 부르짖었을 때 그들을 회복시키시는 여호와의 구원을 감사하는 말씀이며, 세 번째 절(17-22)은 죄로 인해 고통받는 자가 부르짖었을 때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위로하시는 여호와의 구원을 감사하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절(23-32)은 극심한 위험에 처한 자들이 부르짖었을 때 보호와 평안을 베푸시는 여호와의 구원을 감사하는 말씀으로 찬송입니다.
오늘은 마지막 절(23-32) 말씀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고 자기들 생각대로 살다가 살 소망도 없는 위기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도움을 받고 구원받았다는 말씀을 중심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먼저 그들이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23)이라고 한 곳이 어디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철 하얀 눈으로 덮인 헬몬산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요단강물이 모인 갈릴리 호수가 크고 넓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다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이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고 살았던 갈릴리 바다와 비교해서 ‘배를 띄우며 큰 물’, ‘깊은 바다’(24)는 시적인 표현으로 지중해입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욥바(델아비브)에서 배를 타고 다시스(스페인)로 가다가 큰 폭풍을 만났을 때 사람들이 그를 물에 던진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지냈던 곳이 지중해입니다(욘1장).
사도 바울이 죄수로 로마로 이송되어 갈 때 무역하는 상선을 타고 가다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난 곳이 지중해입니다(행27:14).
성경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타국을 가고 올 때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넜다는 말씀은 있지만, 그들이 지중해에서 고기를 잡거나 일을 했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도 지중해를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셨다는 말씀도 없습니다.
지중해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 맺어 주신 땅 가나안의 땅의 서쪽 국경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블레셋과 가나안 사람들이 지중해를 가로막고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지중해를 가까이 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역사적으로 팔레스틴은 가나를 중심으로 지중해변을 가로 막고 있으면서 지금도 이스라엘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삭과 이스마엘부터 시작된 싸움으로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란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입니다(2).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 맺어 주신 선택받은 백성들입니다.
여호와께서 일직 아브라함에게 언약 맺고 가나안 땅을 주셨으며, 대대로 그 땅에서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창12:6,13:14-18). 여호와 께서 모세를 보내어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 시켜 홍해를 건너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사람들을 쳐서 멸하고 열두지파에게 땅을 분배해서 살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들을 섬김으로 바벨론에 의해 망하고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포로가 되었습니다. 나라를 잃고 포로 된 그들이 당했던 고통을 시적으로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로 표현해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했다’는 말씀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서 종처럼 살았던 그들의 고통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들이 포로에서 해방되어 귀환해서 예루살렘에서 여호와께 예배드릴 때마다 지난날 바벨론 포로로 고통당했던 때를 기억하며 그들을 구원해 주신 여호와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24)라는 말씀은 그들의 포로 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던 가를 알 수 있습니다(25-30).
그들이 당하는 그 모든 고통을 여호와께서 명령하시고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았다고 말한 것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그들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잘못해서 징벌을 받고 매를 맞을 때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라고 깨닫고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셔서 우리가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다고 안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믿음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예배 때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시는도다”라고 고백하고 찬송을 불렀다는 것은 그들이 지난날에 행했던 잘못을 잊지 않고 오랫동안 회개하는 믿음을 증명해 줍니다.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다”(26)라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살아날 가망성이라고는 전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도우셔서 살아날 수 있게 되었다는 신앙적인 고백입니다.
우리가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갔을 때 작은 섬도 보이지 않은 광활한 넓은 바다 가운데서 집채같은 파도가 일어나고 깨어지는 것을 보면, 큰 배 안에서 안전하게 있으면서도 두려워 떨고 무서운 합니다.
그때 멀리 고기 잡던 작은 어선 한 척이 솟구치는 파도에 따라 하늘로 솟구치다가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아무도 도와줄 수 없어서 그 배에 탄 사람은 살 수 없다는 안타까운 생각을 합니다.
“그들은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27)라는 말씀은 문자적으로 그들은 빙빙 돌며 계속 맴돌다가 지각이 혼돈 속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도 그들을 도와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들 스스로 자신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혼이 녹는다’고 말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살 용기도 잃을 뿐 아니라 영혼까지도 저주를 받아 구원의 가망조차도 없는 최악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때 사람들은 그들이 섬기는 신들에게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섬기는 신들은 그들을 도와주지 못하는 거짓 신들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여호와께서 부르짖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무한한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그들은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28,29)라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여호와께 속량을 받은 자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즉시 그들을 도와주셨습니다. 여호와는 창조주이며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고 명령하시고 다스리십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셔서 광풍을 고요하게 하셔서 물결도 잔잔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24)라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깊은 바다’란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여호와께서 행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았다’고 찬송했습니다.
‘깊은 바다’는 죄악 세상을 의미합니다.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은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도 스스로 구원받을 수도 없는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매여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도 이 모든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셨다는 고백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30)
‘그들이 바라는 항구’는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이 고난 중에 가장 사모하는 곳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고난 중에 있는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머잖아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가 바라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 모두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