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1987
Joseph Brodsky
Joseph Brodsky – Facts - NobelPrize.org
수상연설:
Nobel Lecture December 8, 1987
Joseph Brodsky – Nobel Lecture - NobelPrize.org
이오시프 브로드스키(Iosif Brodsky·1940~1996)Ио́сиф Алекса́ндрович Бро́дский) . 시인
https://iosif-brodskiy.ru/
(영어: Joseph Brodsky(조지프 브로드스키), 1940년 5월 24일 ~ 1996년 1월 28일)
러시아계 미국인 시인, 에세이 작가 : 러시아어, 영어로 글써
- 198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46세
브로드스키 시 낭송
A Song by Joseph Brodsky
"I wish you were here, dear...."
A Song by Joseph Brodsky - "I wish you were here, dear...."
I wish you were here, dear,
I wish you were here.
I wish you sat on the sofa
and I sat near.
The handkerchief could be yours,
the tear could be mine, chin bound.
Though it could be, of course,
the other way around.
I wish you were here, dear,
I wish you were here.
I wish we were in my car,
and you'd shift the gear.
We'd find ourselves elsewhere,
on an unknown shore.
Or else we'd repair
to where we've been before.
I wish you were here, dear,
I wish you were here.
I wish I knew no astronomy
when stars appear,
when the moon skims the water
that sighs and shifts in its slumber.
I wish it were still a quarter
to dial your number.
I wish you were here, dear,
in this hemisphere,
as I sit on the porch
sipping a beer.
It's evening; the sun is setting,
boys shout and gulls are crying.
What's the point of forgetting
if it's followed by d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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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숲] '2년 후, 우리 결혼하자'
중학교 자퇴 후 공장 등 전전한 러 시인 브로드스키의 서정시 후렴구
세상이 아무리 나빠져도 사랑은 굴복하지 않는다는 고집스러운 다짐
소련 체제서 '사회의 기생충' 죄명으로 추방된 후 1987년 노벨문학상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입력 2022.07.05. 03:00업데이트 2022.07.05. 10:12
이오시프 브로드스키(Iosif Brodsky·1940~1996). 198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이 시인 이야기를 꼭 한번 하고 싶었다.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중학교 자퇴 후 공장, 시체 보관소, 선박 보일러실, 지질 탐사 현장을 전전하며 시를 썼다. 대학 문턱에도 못 가봤지만, 혁명 작가 막심 고리키 표현대로라면, 그에겐 길 위의 삶이 곧 ‘대학’이었다.
아니, 길 아래 삶이 곧 대학이었다고 봐야 옳다. 스탈린에 이어 흐루쇼프가 집권하면서 소련에 ‘해빙기’가 도래했다. 비공식으로나마 비틀스 음악이 들어오고, 서구 문학이 유통되고, 폭넓은 청바지와 장발이 유행한 시기다. 그러나 브로드스키가 속했던 언더그라운드 문화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원칙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져 언제건 체포와 유형의 빌미가 되었다. 당국이 표방한 ‘해빙’의 자유란 체제를 선전하고 합리화하는 장치였을 뿐, 억압과 탄압은 여전했으며, 누구도 내일의 안위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사람이 많았다.
청년 브로드스키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사람이다. 세 번의 체포와 정신병원 감금, 북극 강제 노동형을 거쳐 영구 추방되었다.
시민권을 박탈당한 채 적절한 이별 의식도 없이 무작정 빈으로 가는 비행기에 실려진 시인의 여행 가방에는 타이프라이터와 보드카 두 병, 그리고 17세기 영국 시인 존 던(John Donne) 시집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돌아오지 못할 유배길을 함께했던 그 가방과 모자가 지금은 페테르부르크 아흐마토바 기념관에서 전시 중이다.(='내일 떠나라' 명령에 짐꾸린 가방)
한 용감한 유대계 여인 덕분에 1964년의 브로드스키 재판 전모는 현장에서 기록되어 전 세계에 전파됐다. 죄명은 ‘사회의 기생충’. 요즘 우리 사회에서야 ‘기생충’도 함부로 대하면 안 될 듯한 분위기지만, 당시 소련에서 그 단어는 반(反)소비에트 ‘인민의 적’을 의미했다. 심문은 정해진 프레임에 따른 것이었다.
판사: 하는 일은?
피고: 시 쓰고 번역한다고 생각한다.
판사: 당신 생각은 중요치 않다. 직업이 무엇인가?
피고: 시인. 시인-번역가.
판사: 누가 당신을 시인이라고 인정했나? 누가 당신을 시인으로 분류하던가?
피고: 아무도. 누가 나를 인간으로 분류했을까?
시인이 되고자 무슨 교육을 받았냐는 질문에는 ‘그것은 교육 문제가 아니다. 신에게서 오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의 재판 노트를 읽는 것은 부조리극을 관람하는 일과도 같다. 삶 자체가 한 편의 연극일진대, 브로드스키는 패배 앞에서 승리를, 모멸 앞에서 존엄을 일관되게 연기해낸 뛰어난 배우였다. 어떤 순간에도 짓밟혀 쓰러짐 없이 솟아오르던 그의 힘은 다름 아닌 서정의 원동력, 즉 아름다움의 날갯짓이었다.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시인이 말하기를, 예술은 사회적 동물(인간)을 자율적 자아로 격상하며, 개인의 미적 경험은 그의 윤리적 선택을 방향 짓는다. 아름다움을 체험할수록, 그리하여 확고한 취향을 지니게 될수록, 도덕적으로 더 민감하고 사적으로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거다.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은 쉽게 오염되지 않고, 아름다움을 ‘추앙’하는 사람은 추함의 진흙탕에서 어떻게든 헤어 나오려 한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도스토옙스키 명제의 진의가 그것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 논증 경로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자신의 위엄을 잃지 않는 것, 사회적 동물의 집단 본능과는 거리를 두는 것, 지금 여기 너머를 볼 줄 아는 것, 실존의 도구들(언어, 행동거지, 눈초리 같은)을 순화하여 존재의 순간순간을 덜 더럽히는 것, 뭐 그런 것이다.
소비에트 언더그라운드 시절 브로드스키는 ‘서정시’란 제목의 연애시를 썼다.(1959년)
‘2년 후/ 아카시아는 말라 죽고,/ 주가는 떨어지겠지,/ 세금도 올라 있겠지./ 2년 후/ 방사능은 더 늘어날 거야./ […] / 2년 후/ 내 목은 부러지고,/ 팔도 부러지고,/ 얼굴도 박살 나 있겠지./ 2년 후/ 우리 결혼하자./ 2년 후./ 2년 후.’
왜 하필 2년 후인지는 나도 모른다. ‘2년 후, 우리 결혼하자.’ 당장 내일의 과제도, 그렇다고 먼 훗날의 막연한 꿈도 아닌 이 언약은 연인을 향한 프러포즈 이상의 자기 다짐이다. 외적 현실에 역행하는 내적 현실의 고집스러운 후렴구라 할 수 있다. 세상이 아무리 나빠져도(나빠질수록) 사랑은 굴복하지 않으며, 결국은 해피 엔딩의 대단원에 이를 것이다. 출구 없는 소련 사회 틈바귀에서 열아홉 살 젊은 시인이 그토록 아름다운 오기를 부리고 있었다. 오직 하나뿐인 사적 삶의 각본을 쓰며 어느새 세상 모든 험악한 각본을 밀어내고 있었다.
[자작나무 숲] ‘2년 후, 우리 결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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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대의 종말
브로드스키 저자(글) · 최혁순 번역
세종출판공사 · 1987년 11월 01일
‘87 노벨문학상 수상
(브로드스키/세종출판공사/1987년 11월 초판)
아름다운 시대의 종말 | 브로드스키 - 교보문고
알라딘: [중고] 아름다운 시대의 종말 - ‘87 노벨문학상 수상(브로드스키/세종출판공사/1987년 11월 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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Иосиф Бродский - Возвращение" 귀환 "다큐
(211) Иосиф Бродский - Возвращение - YouTube
물의도시 베니스에 17년간 매해 겨울 그는 갔다.
-또 하나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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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산책] 이오시프 브로드스키의 '존 던에게 헌정하는 大 비가'
'존 던이 잠들자, 주변 사물이 모두 잠들었다.
사방의 벽이, 마루가, 침대가, 그림들이 잠들었고
탁자, 양탄자, 빗장, 걸쇠,
옷걸이, 찬장, 양초, 커튼이 잠들었다.'
208행에 달하는 이 대(大) 비가에서 단어 나열은 무려 91행에 걸쳐 계속되며 브로드스키의 시선은 존 던의 침실로부터 시작해 집 안 구석구석으로, 창문 너머의 도시로, 자연의 세계로, 다시 신도 악마도 모두 잠들어 있는 천상의 세계로 계속 이동한다. 시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한 인간의 죽음을 애도하는 비가에 통상적인 슬픔을 자극하는 정서적 단어들은 일절 등장하지 않고 단지 건조하고 사실적인 시어만이 사용되며 철저히 감정의 과잉이 억제된다. 이는 브로드스키가 시간의 본질과 현상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모색하면서도 삶, 죽음, 수난, 운명, 공간 등을 시간의 변주가 낳은 하위 테마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브로드스키는 어떤 시인보다도 철학자적 면모를 보이는 형이상학 시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브로드스키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에 자신의 오랜 굴레였던 유죄판결에서 25년 만에 완전히 복권되고 페테르부크그 명예시민으로 위촉되면서 러시아 시민의 권리를 회복했다. 그러나 그는 부모가 이미 사망한 러시아를 방문하지 않았고 미국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그는 미국에서 문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정되기도 하고 여러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인으로 또 에세이 작가로 최고의 영예를 누리던 1996년 브로드스키는 56세의 나이로 갑자기 사망했다. 1964년 투옥 당시 처음 발병하기 시작한 심장병이 다시 재발한 것이다.
소비에트 체제가 붕괴하자 해외 망명문학이 러시아 문학에 공식적으로 편입되는데 이때 브로드스키에 대한 재평가도 함께 이루어졌다. 한때 조국에서 수모를 겪고 추방당했던 브로드스키는 오늘날 러시아 문단에서 20세기 후반 러시아 최고 서정시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