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대부분의 많은 기억을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기억력을 갖고 있읍니다.
클리프 리챠드는 아마 영국의 아이돌가수 이었을 거예요... 클리프 리챠드의 내한공연이 있었을 때, 젊은 여성들이 속옷을 벗어던지고 난리가 났었지요. 클리프 리챠드는 영원히 지지 않을 상록수를 노래했었지요...
그리고 결이 조끔 다른 심훈의 상록수도 있읍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심훈의 상록수는 동학 농민운동이후 이광수의 '흙'과는 달리 실제 농촌 현실에 필요한 농민 운동을 얘기하였지요. 이러한 농민 운동들은 러시아 청년,학생들의 브나로드 운동과 비슷한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읍니다.
그와 나는 역사와 전통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비슷한 수준의 고등학교를 나왔고, 마지막 학교이었던 귀농학교 開設 전부터 이미 아는 사이로 그의 성격은 벌써부터 전형적인 대중 농민운동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요.
나는 농민운동을 리드하고 앞서가는 지도자 스타일보다는 군중속의 한 사람인 이 東學친구를 가장 많이 좋아하고 있읍니다. 내가 귀농학교에서 배운 서툰 학습대로 유기농 운동을 실천하겠다고 내가 배설한 똥을 자원화하기위해, 먼저 똥장군을 구할려고 백방으로 물색하던 중 이 동학 친구로부터 똥장군을 2개나 획득하였지요. 온 동네에 똥냄새를 살포한 후에 동네사람들로부터 욕을 한사발이나 실컷 얻어 먹고나서야 나의 이 農생태학운동은 결말이 났었지요. 똥장군까지 연결된 인연은 그후 내가 있었던 가농과 그 친구의 전농이 서울의 광화문에서 우연히 만난 적도 있어요. 서로의 닮은 모습이 20년 세월에도 변하지 않고 계속 이어져 내려와 서로 끈끈한 관계가 지금까지 연결되어 있지요.
지금은 하동으로 이사하고나서 대부분의 소농 농민들처럼 적은 농업 수입을 보충하기위해 공공 근로사업等으로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읍니다.
모든 농민들이 이익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요. 소농의 농민도 문화를 접해야하고 끼리끼리가 같은 대화도 필요한 법이지요. 상황이 그러하지만 또한 우리들 수준에 적당한 대화 창구가 별로 없다는 게 공통된 얘기였고 다음에 더욱 심도 있는 서로의 생각들을 모아보기로 하였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