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사랑
옛 러시아의 전설은 다른 세 왕( 아기 예수님을 경배했던 동방박사)과 함께 길 떠났던 넷째 왕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 넷째 왕은 아기 예수님께 드릴 선물로 빛나는 보석 세 개를 가지고 갔다. 그는 네왕 가운데 가장 젊었고, 그래서 누구보다 더 깊은 그리움이 가슴속에 불타고 있었다. 도중에 그는 한 아이의 흐느낌 소리를 들었다. "발가벗은 아이가 다섯 상처에서 피 흘리며 대책 없이 먼지구덩이에 누워 있는 것이었다. 기이하게 낯선 모습의 그 아이는 너무도 연약하고 의지할 곳 없어 보여 그 젊은 왕의 마음은 뜨거운 연민으로 가득찼다." 그는 아이를 안고 방금 떠나왔던 마을로 말머리를 돌렸다.그러고는 양어머니를 구해 귀한 보석들 중 한개를 건네며 그 아이의 생명을 지켜달라고 부탁한 다음, 길을 재촉했다. 별이 갈 길을 일러주었다. 그 가엾은 아이 때문에 그는 세상 고난이 다 자기 것인 듯 느껴졌다.
한 고을을 지나는데, 이번에는 장례 행렬과 마주치게 되었다. 어느집의 아비가 죽어 남은 식솔들이 노예로 팔려가야 할 형편이었다. 그는 두번째 보석을 그들에게 주었다. 말을 몰아 가려는데, 별이 보이지 않았다. 행여 소명에 불성실했던 것은 아닌가 싶어 괴로워하는데, 홀연히 그 별이 다시 나타나 비추었다.
별의 인도를 받아 전쟁이 한창인 낯선 마을에 다다르니, 병사들이 고을 남자들을 죽이려고 한데 모으고 있었다. 그는 세번째 보석을 몸값으로 주고 그들을 구한다. 이 순간 별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거지꼴로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핍박받는 사람들을 도왔다.
어느 항구에서는 빚을 갚기 위해 식구들 앞에서 갈레선(18세기까지 지중해에서 주로 노예나 죄수가 노를 저었던 전함--벤허가 탓던 군함)의 노예로 끌려가는 어느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그 아버지 대신 오랜 세월을 노예로 일 한다.
이제 그의 영혼에 사라졌던 별이 뜬다. "그 내면의 빛은 이내 그를 넘치게 채웠고,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잔잔한 확신이 마음 가득 밀려 왔다." 동료 노예들과 선원들은 이 사람에게 어리는 신비한 빛을 감지했다.
자유의 몸이 된 그는 꿈속에서 다시 그 별을 보았고 음성을 들었다. "서둘러라! 서둘러!"
한밤 중에 일어나니 빛나는 별 하나가 그를 큰 도시의 성문으로 인도했다. 군중에 휩쓸려 도달한 곳은 세 개의 십자가가 서 있는 언덕이었다. 그의 별이 가운데 십자가 위에 빛나고 있었다.
그때 십자가에 달린 사람의 시선이 그와 마주쳤다. 이 사람은 지상의 모든 슬픔과 고통을 다 체험했음에 틀림없다. 눈길이 그러하지 않은가. 그러나 무한한 자비와 사랑도 함께! 못에 뚫린 손은 고통스럽게 구부러져 있었다. 그런데 고문당한 그 손에서 돌연 한줄기 빛이 번쩍거렸다. 순간, 깨달음이 번개처럼 왕을 전율케 했다. "여기가 내 평생 순례해 온 그 목적지였구나. 이 사람이 바로 나를 그리움에 병들게 했던, 인간들의 왕, 세상의 구세주이시구나. 이분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통해 나를 만나셨구나." 왕은 십자가 아래 무릎을 꿇는다. 그때 그의 손바닥에는 보석보다 빛나는 핏방울 세 개가 떨어졌다. 예수께서 부르짖으며 돌아가실 때 왕도 따라 죽었다. "죽으면서도 그의 얼굴은 주님을 향해 있었고, 별빛 같은 한줄기 빛이 그 얼굴에 서려있었다."
이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감동스럽다. 아마 그대에게도 성탄의 신비에 대해 뭔가를 말해줄 것이다. 자주 그대는 빛나는 별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 그대 안이 어두운 까닭이다.
그대가 가는 길이 과연 올바른 길인지 의심스러운가? 그러나 그대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으로 삶에 임하고 그대 도상에 둘러선 사람들을 그렇게 대한다면, 또 그대에게 자비가 흘러넘친다면, 언젠가는 그대 안에도 별이 빛날 것이다. 그대가 사랑하고 그들의 그리움에 그대가 응답하는 모든 이들의 얼굴에서 하늘 아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안셀름 그린 수사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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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세요? 전 이 글을 읽고 묵상하면서 대림절을 기다렸고, 성탄을 참 뜻깊게 보냈답니다. 새해에 들면 곧 주님공현 대축일이 다가오지요.
어렸을 때, 곧잘 성극의 훌륭한 소재가 되었던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님을 찾아뵙는 장면을 가지고 연극을 했던 추억을 소개할까 해요. 성탄이 다가오자 우리 마을 자그마한 교회에서 성극을 올려야하는 데, 조금 덜 똑똑(?)한 아이한테도 무언가 역활을 주어야하는 데.... 고심끝에 여관 주인역을 시켰지요.(그래 잘난 넌 무슨 역을 했니? 대답하기 곤란한데요. 오냐 너 잘났다 하실까봐.) -나중에 들킬라 미리 실토하지요. 무대 커텐을 열고 닫고하는 일을 했지요. 그때 전 교회에 다니지 않았거든요. 평소에 다녔더라면 분명 요셉성인이나 동방박사정도는 했을건데.
성모님을 모시고 베들레헴 여관에 와서 방 찾는 요셉에게 "우리 여관에는 방이 없어요" 고작 한 소절뿐인 대사를 하는 여관주인 역이었답니다. 정말이지 그 아이는 단 한소절뿐인 대사를 열심히 연습하더라구요. 드디어, 온 동네 어른들과 아이들로 꽉찬 교회에서 동방박사 성극의 막은 올라가고, 선생님과 우린 그 아이 차례가 오자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는데...
"주인장, 우리가 묵어갈 방 하나 있소?' 하고 요셉이 묻자 "....." 여관주인장으로 분한 그 아이의 얼굴은 붉어지다 못해 땀까지 비오듯 떨어지는데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지켜보는 우리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뿐이었는데... 얼굴을 울그락푸르락하던 여관주인장이 드디어 "..예, 여어기 방이 이있..느은데요오.." 이게 왠 날벼락이랍니까. 잠시동안 교회의 모든 시선이 아연 놀라 어쩔줄을 모르는데. "..난 몰라 이렇게 추운 날 성모님 어떡허라고 방이 없다 그래, 난~ 못해,.. 내방을 내 드림 될 거 아냐" 하고서는 무대 위에서 그만 엉~엉 울어버리는 게 아니겠어요. 사실 연극은 쫑친거지요.
그런데, 왠 일입니까? 교회가 떠나갈 듯이 손뼉소리가 나더니 구경왔던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서 손뼉을 치면서 환성도 지르는데 저마다 얼굴에는 환한 미소까지 짓고서 말입니다.
우리가 조금은 모자란다고 애처러워하고 무시했던 그 아이의 아름답고 순수한 마음이 모두를 감동 시켜버린 거지요. 차마 성모님과 아기예수님께 뻔뻔스레 거절할 수 없었던 그 애틋한 마음이 성탄축제를 지내는 이맘 때 즈음이면 더욱 그리워지고 가슴이 뭉클해져오는 추억으로 남아 있답니다.
그리고 평소에 좀은 못난 녀석하고 애처러워하던 동네어른들이 대사를 무시하고 연극마저 쫑치게 만들었던 그 아이를 너그럽게 감싸고 받아들여준 그해의 성탄 밤은 눈도 푸짐하게 쏟아내리더이다.
어찌어찌 성극을 끝내고 나서는 교회마당과 건너 마을까지 하얗게 쌓인 눈길을 걸어가면서 " 어째 내년에는 풍년 들 거 같애.." 마을 농부들의 덕담이 새삼스럽네요. 교회 바닥이래봤자, 진흙바닥 위에 가마니를 깐 초라한 무대였지만 세월이 가도 잊혀지지않는 추억이랍니다.
몹시도 추웠던 그 시절, 그해 성탄은 참으로 푸근했지요. 제 어렸을 때 이야기 재미없나요? 다들 마음 한켠에 담아둔 싸~아하지만 달콤한 추억거리가 왜 없겠어요.
새해에는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생각하며 똘망똘망한 눈을 가지기 보다는 인자하고 지혜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리라.
깊은 사색의 시간을 보내며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 애를 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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