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25. 큐티
창세기 30:1 ~ 13
야곱 집안의 막장 드라마
관찰 :
1) 라헬의 시기로 빌하를 아내로 맞이하는 야곱
- 1절.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 라헬은 처녀 때도 시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친 들에서 양을 친 당찬 여인이었습니다. 한데 아버지 라반에 의해서 언니가 남편 야곱의 남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자신이 야곱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억울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남편이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자신은 아이를 낳지 못하고 언니는 네 명의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라헬은 너무 화가 나서 도를 넘고 있습니다. 자식을 낳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겠다고까지 혈기를 부렸습니다. 라헬의 성격과 기질을 알게 되는 부분입니다.
- 2절.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 야곱은 사람의 생사화복이 사람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라헬이 임신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라헬을 위로하기 위해 되지 않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이제 콩깍지가 벗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3절.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 라헬은 남편의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화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시녀인 빌하를 통해서 자식을 얻고자 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이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히 알려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라헬은 시기심으로 인해서, 남편을 독차지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무리수를 두고 있습니다.
- 4절. “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 야곱은 세 번째 아내를 얻게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좋은 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고백하는 배경에는 이렇게 원하지 않는 상황으로 인해서 아내를 네 명이나 얻게 된 것이 컸을 것입니다.
- 5절.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 빌하는 야곱과 동침하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라헬의 몸 종이었기에 야곱이 그녀를 향해서 성적인 갈망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야곱은 라헬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살았을 사람이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한데 레아와 라헬 뿐만이 아니라 빌하마저도 아내가 되었습니다. 야곱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 6절.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 “단”은 “정당성을 입증하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이름입니다. 단의 이름이 불리울 때마다 하나님이 자신의 정당함을 입증해 주셨다는 것을 되새기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라헬은 어거지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며 자신의 원통함을 풀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레아도 자신이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함으로 인해서 원통하게 여겼고, 라헬은 남편을 빼앗긴 것에 대한 원통함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시녀가 아내가 되어 라헬을 대신해서 아들을 낳게 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 집안이 어떤 상황으로 흘러가는지가 눈에 그려집니다.
- 7절.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 라헬의 욕망이 더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야곱은 원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라헬이 고집해서 야곱이 빌하에게 들어갔고, 빌하에게서 둘째를 낳게 되었습니다.
- 8절.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 “납달리”는 “격투하다”, “뒤틀리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단어입니다. 라헬이 얼마나 뒤틀려서 심하게 싸우고자 하는 심정으로 빌하를 통해서 자녀를 생산하고자 했는지를 보게 됩니다.
2) 레아의 시기로 실바를 아내로 맞이하는 야곱
- 9절. “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더니” => 레아는 자신이 더 이상 임신을 하지 못하게 되자 자신의 시녀 실바를 통해서 야곱에게 자녀를 얻고자 합니다. 라헬의 지나친 경쟁심과 더불어 레아 역시 그에 휘말려 똑같이 행동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야곱은 가장으로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정리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더 이상 질서를 잡는 것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라헬과 레아가 얼마나 지독하게 경쟁을 했는지를 짐작하게 됩니다.
- 10절. “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으매” => 레아의 경쟁심으로 인해서 실바 역시 아들을 낳았습니다. 시녀들이 자녀를 낳는 것에 대한 기록은 지극히 짧고 간단합니다. 출산 경쟁이 심각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 11절. “레아가 이르되 복되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 “갓”은 “행운”, “복됨”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동생 라헬과의 출산 경쟁에서 훨씬 앞서가게 되었다는 것을 과시하는 이름이었습니다.
- 12절. “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 레아는 야곱에게 종용해서 실바를 통해서 또 한 명의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레아는 라헬과의 경쟁에서 비교되지 않게 앞서가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 13절. “레아가 이르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가 하리로다 하 고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 => “아셀“은 ”기쁨“, ”행복”, “즐거움”의 뜻이 있는 이름입니다. 레아는 라헬 앞에서 자신의 기쁨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레아와 라헬이 얼마나 심각할 정도로 시기하고 경쟁하고 있었던가를 보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가 야곱의 집안에 상존했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결국은 요셉을 죽이고자 하고, 결국은 노예로 팔아버리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가르침 :
1) 라헬은 자신이 자녀를 낳지 못함에 대해서 너무나 속이 상했습니다. 분명히 남편 야곱은 자신을 더 사랑하고, 더 많이 노력했는데, 언니는 4명의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자녀를 낳게 해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까지 말했습니다. 이러한 말을 하는 라헬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보지 않고 있고, 하나님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에 라헬이 나중에 라반의 우상 드라빔을 훔쳐나오게 되는 배경이 된다는 것을 짐작하게 됩니다.
2) 라헬은 억지로 남편 야곱을 빌하에게 들어가게 해서 두 명의 아들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경쟁적으로 언니 레아에게 과시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거론하며 자신의 억울함이 풀렸다고 선언합니다.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용하는 비신앙적 행위를 한 것입니다. 야곱은 이 부분에 대해서 교통정리를 해 주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아내들의 시기 질투로 인해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냥 되는대로 시녀들을 아내로 삼는 일이 이어지게 됩니다.
3) 빌하와 실바의 입장에서도 자신들이 주인 레아와 라헬의 남편과 동침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다른 목동 중에서 마음에 들었던 남성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의견은 완전 무시되고 원하지 않는 남편을 두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주인의 남편이기에 정상적인 부부관계, 정상적인 부부간의 대화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관계가 깨어진 상황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우애하며 지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4) 레아는 라헬이 빌하를 통해서 자녀를 낳고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해서 라헬의 억울함이 풀렸다고 하는 상황에서 그런 라헬의 마음을 짓밟고자 합니다. 실바를 통해서 또 자녀를 얻고자 한 것입니다. 그 의도가 참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자라고 있나 했더니 여전히 시기와 질투로 인해서 동생 라헬과 지나친 경쟁으로 가정을 깨고 있는 상황으로 갔습니다.
5) 하나님은 이러한 엉망진창인 상황도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야곱, 레아, 라헬, 빌하, 실바 모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것은 되돌릴 수 없는 일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정말 위대하시고 놀라우십니다. 하나님은 정말 대단하시고,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적용 :
1) 야곱에게 네 명의 아내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 모든 과정을 보시고 알고 있었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 되신 상황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인생이 꼬이고 흔들리고 복잡하게 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모든 사정마져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과 함께 하는 인생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입니다.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까지 야곱의 얼굴을 보고자 했던 그 야곱의 인생이 이렇게 꼬이고 험하게 풀리는 것 같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의 인생에게 복을 주시고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의도하지 않았던, 생각도 하지 못했던 어려움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서 수 년간 복잡하고 힘든 시간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것이 얼마나 놀랍고 제게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는지 시간이 갈수록 그 의미가 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위로가 되고 큰 힘이 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2) 야곱의 인생에 대해서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실패가 아닌 성공의 인생이었습니다. 이렇게 복잡하게 꼬이는 인생 속에서도 다른 이들을 축복하는 존재로 성장해 가는 성장통을 극복하는 야곱을 인해서 위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