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요한복음 1장은 믿음을 영접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따라서 노티치아와 아센스의 조건을 채우더라도 휘드시아가 없다면 구원의 믿음이 될 수 없다. 이 말은 바울이 전한 복음에 관하여 아센스가 되었어도 실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와 왕으로 영접하지 않았으면 그는 구원 받은 자가 아니란 말씀이다. 오직 구세주를 영접하여 진심으로 그 분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려는 인격적인 교제의 삶이 있을 때에만 구원 받는 믿음을 소유한 것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야고보서 2장을 보면, 귀신들도 노티치아, 아센수 까지는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휘두시아를 하지 못한다. 곧, 예수님을 기꺼운 마음으로 영접하여 감사하고 사랑하며 순종하는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약 2:17-20)
그러나 구원하는 믿음은 세 가지 요소를 반드시 취한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