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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용묵-별을 헨다
-분야: 어문 > 소설 > 중·단편소설
-저작자: 계용묵
-창작년도: 1946
-원문 제공: 한국저작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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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도 상상봉 맨 꼭대기에까지 추어올라 발뒤축을 돋워 들고 있는 목을 다 내빼어도 가로놓인 앞산의 그 높은 봉은 눈 아래 정복하는 수가 없다.
하늘과 맞닿은 듯이 일망무제로 끝도 없이 마안히 터진 바다, 산 너머 그 바다, 푸른 바다, 고향의 앞바다, 아아 그 바다, 그리운 바다.
다시 한 번 발가락에 힘을 주어 지긋 뒤축을 들어 본다. 금시 키가 자랐을 리 없다. 역시 눈앞에 우뚝 마주 서는 그놈의 산봉우리.
"으아 -."
소리나 넘겨 보내도 가슴이 시원할 것 같다. 목이 찢어져라 불러 본다.
"으아 -."
그러나, 소리 또한 그 봉우리를 헤어넘지 못하고 중턱에 맞고는 저르릉 골 안을 쓸 데도 없이 울리며 되돌아와 맞는 산울림이 켠 아래서 낙엽 긁기에 배바쁜 어머니의 가슴만을 놀래 놓는다.
별안간의 지랄 소리에 어머니는 흠칠 놀라고 갈퀴를 꽁무니 뒤로 감추며 주위를 둘러 살핀다. 소리의 주인공을 찾는 모양이다. 어머니의 귀에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큰 소리가 총소리보다도 더 무섭게 들린다.
집이라고 가마니 한 겹으로 겨우 둘러싼 산경의 단칸 초막, 날은 추워 온다. 겨울 준비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산등성이에 자연히 자라난 풀도 금단의 영역에 속한다. 풀이 없으면, 눈비의 사태질이 산 밑의 집들을 위협하는 줄을 모르느냐는 핏줄 서린 눈알이 엄한 호령과 같이 군다. 가슴이 뜨끔거리는 낙엽 긁기다. 위로와 도움은 못 드릴망정 부질없는 고함 소리로 어머니를 놀래이었다. 자기인 줄을 알려야 할 텐데 어서 알리고 싶어 몸짓을 하며 몸을 내빼어 보나 어머니가 그 형용을 알아줄 리가 없다. 눈을 둘러 주다가 자기의 그림자를 산상에서 찾고는 긁어 모은 낙엽도 모르는 체 그대로 버리고 슬며시 돌아선다. 필시 자기를 아침마다 호령하는 그 눈 붉은 사나이로 아는 모양이다.
"소나무 위에서 까치가 푸득 하고 날아만 나두 가슴이 막 내려앉는 것 같구나! 글쎄."
어제 아침에도 낙엽을 한 아름 긁어 안고 들어오며 한숨과 같이 허리를 펴는 어머니의 말을 무어라 받아얄지 몰랐다.
귀국한 지가 일 년, 지난 겨울이 곱돌아 오도록 집 한 칸을 마련 못하고 초막에다 어머니를 그대로 모신 채 이처럼 마음의 주름을 못 펴 드리는 자기는 구관을 제대로 가진 옹근 사람 같지가 못하다. 가세는 옛날부터 가난했던 모양으로 아버지도 나와 한가지로 만주에서 시달리다가 돌아가셨다지만 제 나라에 돌아와서도 이런 가난을 대로 물려 누려야 하는 것이 자기에게 짊어지워진 용납 못할 운명일까. 만주에서의 생활이 차라리 행복이었다. 노력만 하면 먹고 살기는 걱정이 없었고 산도 물도 정을 붙이니 이국 같지 않았다. 노력도 및지 않는 고국 - 무슨 일이나 인젠 하는 일이 내 일이다. 힘껏 하자, 정성껏 하자, 마음을 아끼지 않아 오건만 한 칸의 집, 한 자리의 일터에조차도 이렇게 정에 등졌다.
일본이 물러가고 독립이 되었다. 자기도 반가웠거니와 제 땅에 뼈를 묻게 된다고 기꺼워하시던 어머니, 아버지도 고토에 뼈 못 묻힘을 못내 한하셨다. 자기만 고토에 묻힐 욕심이 있으랴, 아버지의 유골도 같이 모시고 나가야 한다. 밤잠을 못 자고 무덤을 파서 뼈마디를 추려 가지고 나온 것이 산 사람의 잠자리도 정치 못하였다. 나올 때에 보자기에 싸 가지고 나온 그대로 어머니의 곁에서 초막살이다. 묻기야 어딘들 못 묻으련만 고국도 고향이 그렇게 그립다.
고향은 찻길이 직로라 차로 오자던 고향이 뱃길이 안전하다고 뱃길로 돌아왔다. 어디는 제 땅이 아니냐 아무 데나 내려서 가자, 인천에 와 닿고 보니 뜻도 않았던 삼팔선이 그어져 제 나라가 아닌 것처럼 남과 북이 제멋대로 굳었다. 그래도 내 땅이라 못 갈 리 없다고 삼팔의 경계선을 넘다가 빵 하고 산상에서 터져 나오는 총소리에 기겁들을 하고 서성이다 보니 동행자 중 한 사람이 거꾸러졌다. 삼팔의 국경 아닌 국경을 넘기란 이렇게도 모험인 것을 체험하고, 고향이라야 일가친척도 한 사람 없는 그리 푸진 고향도 아니다. 어디를 가도 제 손으로 터를 닦아야 할 차비다. 서울도 내 땅이라 보퉁이를 풀어 놓고 터를 닦자니 날로 어려워만지는 생활, 겨울까지 눈앞에 떨어졌다.
초막의 추위는 지금도 고작이다. 밤새도록 담요 한 겹에 싸여 신음하는 어머니, 가슴이 답답하다. 시원한 바람이 그립다. 눈이 짝해지자 산을 탔다. 산을 타니 산바람이나 시원할까, 고향이 그립다. 배꼽줄이 떨어져서부터 놀던 바다, 고향의 앞바다, 푸른 바다, 시원한 바다, 그 바다나 마음껏 바라보았으면 바다 끝같이 가슴이 뚫릴 것 같다. 부질없이 봉우리를 추어올라 지랄을 부려 보니 마음이 후련할까, 아침이 늦었다고 시장기만이 구미를 돋군다.
[2]
마음이 배바빠 아침도 덤비어 치이기는 하였으나 쓸 데도 없는 호의에 걸음만이 더디다. 백 번 생각해도 그것은 실행할 일이 아닌 것을…….
진고개 너머 어떤 일본집에 수속 없이 제 집처럼 들어 있는 사람이 있는데, 정식 수속을 밟아 내쫓고 들어가게 해 준다고 부디 오늘 오정 안으로 만나자는 친구가 있다. 집이 없어 한지에서 겨울을 날 생각을 하면 마음이 으쓸하다가도 그러니 있는 사람을 내쫓고 들자니 생각을 하면 내쫓긴 사람이 역시 자기와 같은 운명에 놓여질 것이 아니 근심 일 수 없다.
자기도 처음 서울에 짐을 푼 것은 한지가 아니었다. 푸진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일본집 다다미방 한 칸이 베풀어지는 호의를 힘입어 겨울을 나게 되었음은 다행이었다 할까. 해춘도 채 못 미처 수속이 없다 나가라고 하여 쫓겨난 이후로 이래 아홉 달을 한지에서 산다. 남을 한지로 몰아내고 그 집으로 들어가겠다고 눈을 감을 염치가 없다. 이런 기회는 몇 번이고 있었다. 비로소 듣는 이야기가 아니요 받아 보는 호의가 아니다. 일언에 거절을 하였더니,
"이 사람아, 고양이 쥐 생각두 푼수가 있지 그런 맘 쓰다가는 이 세상에선 못 사네."
친구는 어리석은 생각임을 비웃는다.
"그런 얌전만 피다가는 자넨 금년 겨울에 동사하네 동사."
아닌 게 아니라 듣고 보니 그것이 말만이 될 것 같지도 않다.
"글쎄, 그 사람이 쫓겨나왔어두 집을 잡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흥, 아, 그럼 자네처럼 제 집 없으면 한디에서 겨울 날 줄 아나. 그저 별 생각 말구 눈 딱 감구 내 말만 듣게. 집이 생길 게니."
친구는 승낙도 없는 상대방의 의견을 임의로 무시하며 혼자 약속을 하고 갔다.
해를 두고 마음을 바꾸며 사귄 친구도 아니다. 만주에서 나올 때 우연히 같은 배를 타게 되어 뱃간에서 사귄 것밖에 없는 교분이다. 복덕방을 뒤타 돌아가다가 어제 저녁 뜻밖에도 거리에서 만나 된 이야기다. 염려하여 주는 호의는 열 번 감사하다.
그러나 호의에만 맡겨지는 호의가 반드시 바른 길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욕심껏 마음을 제대로 누르고 살아오지는 못했을망정 제 뜻을 버리지 않고도 삼십을 넘어 살았다. 호의가 무시되는 나무람에 자재하여서는 안 된다. 복덕방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 오늘도 의연히 자기에게 던져진 떳떳한 길이다. 그러나 친구는 혼자 약속이라도 기다리기는 기다릴 눈치였다. 그를 거쳐가는 것이 걸음의 순서는 된다. 결론을 짓고 나선다.
남대문 시장의 남미창정 어귀라고만 하여 놓은 것이 하도 사람이 안고 뒤여 좀해서는 찾을 수가 없다. 어른, 아이, 늙은이, 색시까지 뒤섞여 물건들을 안고 지고 밀치며 제치며 비비 튼다. 같이 비비고 끼어들어 보니 안쪽 구석으로 낯익은 그림자가 시야에 들어온다. 잠바 흥정이 붙었다. 친구는 양복 위에다 잠바를 입었다. 물건 주인은 값이 맞지 않는 모양으로 어서 벗으라고 잠바 앞섶을 한 손으로 붙들고 당긴다. 조금도 다라진 맛이 없는 것 같은 스물다섯이 채 되었을까 한 청년이다.
"안 팔다니! 팔백 원이면 제 시센데 시세를 다 줘두 안 팔아? 이건 누굴 히야까시루 가지구 나와서?"
친구는 눈을 매섭게 부릅뜨고 팔을 뿌리친다.
"글쎄, 그르켄 못 팔아요. 이천 원 다 줘야 돼요."
청년의 손은 다시 잠바로 건너간다. 친구의 눈은 좀더 매섭게 모로 빗기더니,
"받아요."
지전 묶음을 청년의 호주머니 속에 억지로 넣어 주고 돌아선다.
넣어 준 돈을 청년은 다시 꺼내 부르쥐고 뒤를 쫓는다.
"여보!"
친구의 옷자락을 붙든다
"누구야! 왜 붙들어? 바쁜 사람을……."
"인줘요."
"주다니, 뭘 줘?"
"잠바 말이에요."
"당신 정신 있소? 물건을 팔구 돈까지 지갑에 넣구 다니다가 딴 생각을 허구선…… 이건 누굴 바지저고리만 다니는 줄 알아? 맘대루 물건을 팔았다 물렀다……."
몸부림을 쳐 청년의 붙든 손을 떨구고 떨어진 손을 와락 붙들어 이마빼기가 맞닿을이만치 정면으로 딱 당겨세우고 눈을 흘기며 가슴을 밀어젖힌다.
"이러단 좋지 못해, 괜히."
밀어젖힌 대로 물러난 청년은 더 맞잡이를 할 용기를 잃는다. 멍하니 친구를 바라보고만 섰더니 어처구니없는 듯이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그래도 쥐고 있던 돈을 세어 보고 집어 넣는다.
무서운 판이었다. 총소리 없는 전쟁 마당이다. 친구는 이 마당의 이러한 용사 이었던가 만나기조차 무서워진다. 여기 모여 웅성이는 이 많은 사람들은 다 그러한 소리 없는 총들을 마음속에 깊이들 지니고 있는 것일까. 빗맞을까 봐 곁이 바르다.
"아, 여 여보!"
어서 이 자리를 떠나고 싶어 자기를 찾는 듯이 살피는 친구를 꾹 찔러 부른다.
"지금 왔소?"
"나 좀 바뻐 먼저 좀 가얄까봐. 기다리겠기에 들렀지."
"바쁘긴 내 다 아는 걸…… 글쎄 그래 가지군 백만 날 돌아다녀야 집 못 얻는달 밖에. 난 아직 아침도 못 먹구…… 우리 점심 같이 허구 잠깐 집에 들려 옷 좀 갈아입고 나가세."
"아니, 정말 난……."
"글쎄. 이리 와요."
손목을 잡아끌어 앞세운다. 강박히 부딪칠 수가 없다.
점심이라보다 술이었다. 실로 얼마 만에 쇠고기 찜을 실컷 하고 확확 다는 얼굴을 느끼며 남산 밑을 돌아 후암동(厚岩洞)으로 따라간다. 어느 커다란 회사의 중역이 살던 숙사인 듯 반 양식의 빨간 기와집이다.
"이 집도 그렇게 얻었거든."
친구는 전령의 단추를 누른다.
꼭같은 알몸으로 보퉁이 한 개씩을 등에 걸머진 채 인천(仁川)에 내려서 헤어진 지 일 년, 친구의 살림은 벌써 틀이 잡혔다. 가구의 준비까지도 완비가 된 듯 장롱이니 의걸이니 놓아야 할 건 제대로 다 들여 놓았는데 놀랐다.
"팔백 원, 참 싸구나! 이건."
들고 온 잠바를 친구는 다다미 위에 내던진다.
"거긴 하루 한 때만 들러두 밥벌인 되거든. 일자린 없겄다. 쌀값은 비싸겄다. 그대로 댕그라니들 앉아서 배겨날 장사가 있나. 전재민이 가지구 나오는 물건이 여간 많은 게 아니야. 능지에서 자라난 풀대 모양으루 희멀쑥한 얼굴이 물건을 제대루 내놓지두 못허구 옆에다 끼구선 비실비실 주변으로만 도는 걸 붙들기만 하면 그건 그저 얻는 폭이지. 잠바도 만주 건가 봐. 가죽이니 좀 좋아? 작자가 어리숭해 가지구 그래두 첫마디엔 안 놓아 주구 제법 쫓아오던데? 글쎄 외투루부터 저구리, 바지 차례루 다들 팔아자시군 쪽 발가벗고들 눈이 멀뚱멀뚱하여 누워서 천장에 파리똥만 세구 있는 사람두 있대나? 하하 - 자네도 이런 데 눈 뜨지 않으면 파리똥 세게 되네, 괘니 -."
"파리똥두 집이 있어야 헤지, 난 별만 헤네."
농으로 받기는 하였으나 친구의 상식과는 대재비가 되지 않는다. 기만 막히는 소리뿐이다.
"난 가겠네."
"아, 이 사람아! 같이 나가? 내 정말 한 놈 내쫓구 집 들게 해 준달 밖에."
"우리 단 두 식구 살 집 그리 커선 뭘 하나, 난 방이나 한 칸 얻을 까봐."
"방은 그래 얻을 듯싶어? 보증금이 만 원두 넘는다네."
"방두 못 얻으면 이북(以北)으로 가지."
"저런! 이북선 누가 거저 집 주나? 다 저 헐 나름이라구. 여기서 못 살면 거기 가두 못 살아, 괘니 고집 부리지 말구 앉게."
"그래두 가는 사람이 많던데?"
"아, 가는 사람만 봤나? 오는 사람이 더 많은 건 못 보구. 이 좋은 시세에 서울서 못 살면 어디서 산다는 게여."
"아니, 정말 이러단 오늘두 참 내가……."
일어서는 옷자락을 친구는 붙든다.
"글쎄 앉아."
"놓아."
"앉으라니깐."
그래도 뿌리치고 기어코 돌아선다.
"저럼 반편이…… 태만 길러서!"
쫓아나와 중얼거리는 소리를 층층대를 내려서며 듣는다.
[3]
낮의 거리는 여전히 사람들의 발부리에 닦인다. 거리가 비좁게 발부리를 닦는 무리들, 허구한 날을 이렇게도 많을까. 겨레도 모르고 양심에 눈 감은 무리들은 골목마다에 차고, 땀으로 시간을 삭이는 무리들은 일터마다에 찼다. 차고 남아 거리로 범람하는 무리들이 이들의 존재라면, ‘반편이야 태만 길러서’의 축에 틀림없다.
이 반편의 축들은 다들 밤이면 별을 세다가 오라는 데도 없는 걸음이 이렇게도 싱겁게 배바쁜 것일까. 언제까지나 싸늘한 별을 가슴에다 부등켜 안고 세어야 태 속에서 벗어나 거리에의 정리에 도움이 될까. 피난민 구제회의 알선으로 어떤 문화사에 이력서에 이력서를 내고 총무부장과의 인사 끝에 집이 있느냐고 묻기에 솔직히 대답한 한마디가 다 된 죽에 떨어진 코 격이었다. 기별이 있겠으니 그리 알라고 돌리어온 채 이래 반 년을 감감소식임이 문득 생각키우며 집이란 것이 사람으로서 존재의 인정을 받는 데 그렇게도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임을 새삼스럽게 느끼다가 펄럭이는 복덕방(福德房)의 휘장을 본다. 골목을 접어들다가 깜짝 놀란다. 별안간 총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것이다.
"타앙."
건설이냐 파괴냐.
"타앙."
연거푸 또 한 방.
아로새겨지는 역사의 페이지에 단 한 점 콤마점이라도 찍혀지는 역할일까.
분주히 눈을 둘러 살핀다. 시야에 들어오는 짐작이 없다. 어디서 날아났는지 기겁을 하고 공중에 뜬 까치 두 마리가 걸음아 날 살려라 몸이 무거움을 느끼는 듯이 깃부츰만이 바쁘게 북악으로 날아 달릴 뿐, 언제나같이 평온한 골목이다. 거리에도 이상이 없다. 전차도 오고 간다. 자동차도 달린다. 사람들도 여전하다.
어디서 난 총소릴까. 듣고만 있을 총소릴까.
이윽고 밤도 아닌데 이마빼기에 쌍불을 달고 아앙 소리를 냅다 지르며 서대문 쪽을 향하여 종로 한복판을 질풍같이 달리는 한 대의 하얀 미군 구급차가 풍진이 일었다.
무슨 일인지 단단히 난 모양이다.
총소리와 관련된 차일까 생각을 더듬다가 또 골목으로 들어선다. 복덕방의 깃발이 헤기는 것이다.
"방 있습니까?"
"방 얻을 생각은 말아요."
안경 너머로 눈알이 삐죽하다 말고 맞붙은 장기판 위에 도로 떨어진다.
"그렇게도 없습니까?"
쓸데도 없는 소리를 되묻는다는 듯이 거들떠 보려고도 않고, 장훈이 소리만을 기세 있게 허연 수염 속으로 내뿜으며 무릎을 조인다. 다시 더 두 말이 긴치 않을 눈치다. 골목을 되돌아 나온다. 어디나 매일 반인 대답, 가을내나 다름이 없다. 싹도 찾을 수 없는 방, 날마다 종일을 품만 놓는 방이다. 마음도 지쳤거니와 다리도 지쳤다. 다시 뒤탈 생념에 정열이 빠진다. 찌뿌둥 흐린 날씨는 눈까지 빗는 것인가. 젊은 놈이야 한지에선들 마뜩해 얼어야 죽으련만 어머니는 환갑이 넘었다. 정말 이북으로 가 보나 생각을 하니 생각마다 간절한 이북이다.
[4]
아들이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가 그렇게도 기둘키었을까. 말라 까부러진 낙엽이 발밑에 바서지는 싸각 소리가 벌써 어머니의 귀에 스치었나 보다. 산곡을 접어들기가 바쁘게 반짝 초막에 불이 켜진다.
"진지 잡수셨어요?"
"오늘도 저물었구나. 집은 얻었네?"
앉기도 전에 어머니는 냄비를 밀어 내놓는다. 저녁이었다. 밀가루 떡이 네 개 소복이 담기었다.
"어머니 더 잡수시지요. 오늘두 집 못 얻었습니다."
"아이구 집이 그렇게 힘들어 어떻거간. 큰일났구나. 오늘은 너 들어오길 어떻게 기다렸는데."
전에 없던 한숨이 힘없이 길다.
"왜, 늘 벅작 고는 눈 붉은 사람 있디 않네? 그 사람이 곽쟁이(갈퀴)를 빼뜨러 갔구나!"
"네?"
"아까 저녁때 새를 또 좀 해 볼라구 나섰다가 그 사람헌테 붙들려서 욕을 보았구나. 방공호두 하두 많은데 하필 이 산 속에 들어백여 남꺼지 못살게 할라구 그러느냐구 눈을 부르대이누나."
"그러세요?"
"우리가 여기서 겨울을 난다면 산이 새빨개지구 말 터이니 봄에 나가면 산 아래 집들은 하나없이 사태에 묻히겠다구 어디서 거지 같은 것들이 성화냐구 막 욕을 퍼붓디 않갔네?"
"욕을 퍼버요! 그래서요?"
"그래서 집을 얻는 중이라구 그랬더니 거지 쌈지 보구 누구레 집을 빌리리라구 하멘서 피난민 소굴루 가래누나. 당춘단이 소굴이라나……."
"네에, 그래요."
"이것 좀 보람 글쎄. 가두 당장 가라구 눈을 훌근댕이며 곽쟁이루 이 가마니짝들을 그러 댕겨서 다 떨어 놓지 않안? 그래서 내레 저넉 한곁을 돌아가멘서 데르케 잡아매 놨구나."
"네 알겠습니다. 아무래두 이북이 인심이 날까 봐요. 이북으루 떠나 가십시다. 어머니!"
"야. 봐라! 그 끔찍헌 삼팔선을 어드케 또 넘갔네."
"남들이라구 다 오구 가구 허겠어요?"
"그래 가는 사람두 있던? 머-."
"아, 있구 말구요."
"고롬 가자꾼 우리두. 위선 네 아버지 뻬다굴 처티허야디 그걸 어드케 늘 안구 있갔네. 그래 거긴 인심이 살기 도태던?"
"여기같이야 허겠습니까."
"야 그롬 가자."
두 개 남았던 초를 밤이 깊도록 다 태우고 이튿날 아침 담요를 팔아 여비를 마련한 다음 밤차를 대어 어머니와 아들은 청단(靑丹)까지의 차표를 한 장씩 들고 서울역에 나타났다.
간단한 짐이었다. 아들은 하나 남은 담요에다 아버지의 유골을 덧말아 등에 지고 냄비 두 개에 바가지 하나는 어머니가 꿰어 들었다.
사람은 확실히 거리로 범람한다. 가는 곳마다 이렇게도 많을까. 정거장 안도 촌보의 여지가 없이 들어찼다. 비비고 들어가 겨우 벤치의 한 자리를 뚫어 어머니를 앉히었다.
"아아니! 이게 공경골 아즈마니 아니요?"
옆에 앉았던 여인의 눈이 둥그레서 어머니의 손목을 붙든다.
"너 박촌짓 딸 아니가?"
어머니도 알아본다.
아래윗 동네에서 살다가 만주로 들어가게 되어 서로 떨어졌던 고향 사람끼리 우연히도 여기서 만난다. 아들과 여인의 남편도 서로 알아본다.
"아. 이게 십 년 만이구나!"
감격한 악수가 손안에 다정하다.
"아니 그런데 아즈마니, 어드케 여기서 맞내요? 되따에선 원제 나오섰기……?"
"참, 넌 어드케 여기서 맞내네?"
"우린 지금 이북서 넘어와요. 살기가 너머 어려워서 듣는 말이 이남이 도타구 그래 강원도루 가는 길이에요."
"머이! 살기가 어려워? 우린 이북으로 가는 길인데 -."
"이북으루요? 아이구, 갈렴 마르우, 잘사는 사람은 잘살아두 못사는 사람은 거기 가두 못살아요. 돈 있는 사람 덴답과 집들을 다 떼슴 멀 허갔소. 없던 사람들이 당사들을 해서 그만침은 또 다 잡아놨는데 - 우리두 그른 당살 했음 돈 잡았디요. 우리 옥순이 아바진 그른 당사엔 눈두 안 뜨구 피익 픽 웃기만 허디요. 그르니 살기는 어려워만 가구 좀 허믄 그르케 힘든 국껑(국경)을 넘어오갔소?"
"아이구 우리 아와 신통히두 같구나. 만주서 같이 나온 사람들은 야미 당사들을 해서 돈 모은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 아가 그런 건 피익 픽 웃디 밥을 굶으맨서두. 거기두 고롬 그르쿠나 거저. 살기가 같을 바에야 멀 허레 그 끔즉헌 국껑을 넘어가간."
"그러믄요. 아이, 여기두 고롬 살기가 그르케 말째우다레 잉이? 머 광다부〔廣木[광목]〕한 자에 삼십 원 헌다, 사십 원 헌다 허더니."
"우리 가제 와선 그르케두 했단다. 어즈께레 옛날인데 멀 그르네. 거기 집은 어드르니 그른데. 얻긴 쉬우니?"
"쉽다니요! 발라요. 거저 집이라구 우명헌 건 내만 놓문 훌떡훌떡 허디요. 그르기 어디 빈 간이 있게 그르우? 만주서 나와 집 찾는 사람두 있디요? 제 집 쬐께 나서 어디 빈 간이나 있을까 허구 돌아가는 사람두 있디요? 머 촌이나 골이나 딱 같습두다. 난이에요, 난."
"여기두 그르탄다. 우린 집을 얻구 한디에서 내내 살았단다. 밥이라군 밀가루 떡만 먹구."
"여기두 고롬 그르케 집이 없어요! 것두 같수다레, 고롬?"
"글쎄 네 말을 들으니께니 집 없는 것꺼지 신통두 허게 같구나 참."
"아이, 괘니 넘어왔나
"우린 괘니 넘어갈라구 허구."
두 여인만이 서로 한심해하는 게 아니다. 사내들도 같은 말을 바꾸고는 난처해 마주섰다.
앉았던 사람들이 별안간 일어서며 웅성인다. 개찰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어머니!"
"와 그르네."
"고향 가두 시언헌 건 없을까 봐요."
"글쎄 박촌짓 딸 네기(이야기) 들으니께니 그르태누나."
한심해서 서성기는 동안 승객들은 다 빠져나가고 개찰구는 닫긴다.
물 쎈 바다같이 갑자기 휑해진 대합실 안에 한기만이 쨍하게 휘이 떠돈다.
(1946. 12. 8.)
〔발표지〕《동아일보》(1946. 12.)
〔수록단행본〕*『별을 헨다』(처희문사, 1954)
『현대한국단편문학전집』제8권(문원각, 1974)
<재편집: 오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