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것이 바로 거진항 명태로구나!
대한민국 최 북단 항구인 대진항 바로 아래에 위치한 거진항은 전체 1만7000 명의 마을 주민이 살고 있는 작은 어촌이다. 얼핏 보면 여느 항구와 비슷해 보이지만 전국에서 ‘진짜 명태’를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수천 마리의 명태들이 곳곳에 널려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명태는 밖에 걸었을 때 바로 얼 정도로 기온이 떨어져야 말리기 시작한다.
운이 좋았던 걸까? 여행 길에 올랐을 때 때마침 기온이 뚝 떨어진 거진항 주변은 명태 손질로 분주해졌다. 그 중에서도 유독 빠른 손놀림을 지닌 아주머니 앞에는 벌써 배를 가른 명태가 산처럼 쌓여 있다.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명태만큼 이름이 많은 생선도 없을 걸. 바다에서 바로 잡으면 생태, 바닷바람에 바짝 마르면 북어, 저 안쪽 지방에서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 황태, 자잘한 명태 새끼를 말리면 노가리, 꼬들꼬들하도록 반만 말리면 코다리라고 불러. 이름은 달라도 다 한 가족이라니까. 명태는 널고 나서 3일이 중요해. 찬바람이 세게 불어 꽝꽝 얼어야 제 맛이 나거든. 그러니까 지금이 딱이야!”
명태가 마치 자식인 양 진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아주머니의 말에 춥다고 투덜대던 입도 쏙 들어가버린다. 예전에는 거진항을 비롯한 동해안에서 잡히는 지방태가 많았지만 1980년대부터 그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지구 온난화로 수온이 상승해 명태 보기가 힘들어졌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마구잡이로 거둬들여 씨가 말라버렸다고 한다. 최근에는 러시아, 베링해, 일본에서 잡히는 원양태가 대부분이다.
값싸고 맛있는 명태는 서민들로부터 사랑 받는 존재였다. 다른 생선에 비해 비린 맛이 적고 단백질, 칼슘 등의 영양소가 풍부하기 때문에 한끼 식사로도 손색없다. 89kcal의 영양을 지닌 명태는 지방이 적은 대신 단백질 20.3g, 칼슘 100mg, 철분 4.2mg을 가지고 있다. 간을 보호해주는 메티오닌, 리신 등의 필수 아미노산도 다량 함유되어 있어 숙취 해소는 물론 혈압 조절과 피로 해소에도 탁월하다.
또한 지방 함량이 적은 살에 비해 명태 간에는 많은 지방이 축적되어 있다. 그래서 명태 간유는 약용으로 이름이 나 있다. 명태 간유 1g 중에는 비타민A가 3000∼3만IU가 들어 있다. 같은 명태라도 생태와 북어의 영양수치는 다르다. 마르는 과정에서 수분이 날아가기 때문에 단백질의 수치가 16.6%에서 56%로 상승한다. 달걀이나 우유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는 단백질의 보고다.
고성명태축제위원회의 김을용 간사는 “명태는 똑같은 곳에서 잡았더라도 어디서 말리느냐가 중요해요. 거진항의 바닷바람과 기온, 햇살이 구수한 향과 맛의 깊이를 더합니다. 이 곳에서 말린 것은 망치로 치지 않으면 꺾이지 않아요. 그만큼 속이 잘 여물었다는 거죠. 하지만 다른 곳에서 말린 것은 조금만 힘을 줘도 쉽게 끊어져버려요”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이곳 북어는 12월에 말리기 시작해 출하가 시작되는 1월을 지나 2월초가 넘어가면 재고가 없을 정도로 인기다.
현재 거진항의 북어는 한 두름에 5만원 이상으로 고가에 거래된다. 국물 내기에 그만인 북어 머리만도 1kg에 1만7000원 선으로 똑같은 무게의 삼겹살보다 더 비싼 귀한 생선이다. 김 간사는 거진항에 왔으면 제대로 된 맛을 봐야 한다며 북어 한 마리를 망치로 내리쳐서 야무진 손놀림으로 좍좍 찢어 내민다.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다. 그는 연이어 명태 자랑을 늘어놓는다.
“한번 먹을 때보다, 두 번 먹을 때가 더 맛있는 게 명태죠. 이곳 명태를 한번 먹어본 사람은 다른 건 못 먹어요. 그래서 단골이 많죠.”
#2. 맑은 생태탕에 몸도 마음도 녹다
명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벌써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다. 김을용 간사에게 이끌려 생태탕으로 유명하다는 한 식당에 갔다. 솔직히 지금까지 먹어본 생태탕은 양념 맛이 강해 생태 맛이 무엇인지 느끼기 힘들었다. 납작한 냄비에 담겨 나온 생태탕 역시 별다를 바 없어 보였다. 바닥까지 보이는 하얀 국물 안에 큼직한 무, 두부 몇 조각, 대파가 전부다. 별 기대감이 없어 보이는지 김 간 사가 한마디 건넨다. “생태는 대진항이나 거진항 외에는 거의 유통이 안 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생태탕을 먹었더라도 아마 동태였거나 동태를 녹인 게 대부분이었을 거예요. 양념을 많이 넣어 생선 맛을 못 느끼게 할 정도죠.
하지만 이곳에서는 대부분 생태지리로 내놓습니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거죠. 드셔 보시면 아마 그 차이점을 금방 아실 거예요.” 성진식당의 김창길 사장도 “그게 진짜배기 생태탕이여. 이 구불구불한 이리는 수컷에만 있어. 생태탕에는 이게 들어가야 진국이지”라며 한마디 거든다. 한 숟가락 떠 먹으니 ‘이 맛이다!’ 싶다. 시원하면서 감칠 맛나는 국물, 고소한 생태살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을 듯했다. 이곳에서는 대부분 지리로 먹지만 이날은 서울에서 온 손님들의 입맛에 맞춘다며 특별 양념을 더한 탕을 내놓았다. 맑은 지리 맛을 보고 싶었지만 주방 아주머니의 배려가 더해진 탕도 일품이었다. 반찬으로 나온 깍두기에도 눈이 간다. 한입 베어 무니 새콤하면서 시원한, 독특한 맛이다. 명태의 아가미를 넣어 만든 ‘서거리 김치’로 생태탕과 찰떡궁합이다.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거진항 주변을 산책했다. 어선들의 길잡이 노릇을 하는 하얀 등대가 푸른 하늘과 맞닿아 있다. 뺨을 때리는 차가운 바람과 파도가 거셌지만 올해도 잘 말려질 북어를 생각하며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남기며 한참을 걸었다.
Travel Tip
고성 명태 & 겨울바다 축제_매년 거진항을 중심으로 주변 마을 모두가 참여한다. 겨울바다에서의 명태 낚시를 체험할 수 있는 어선 무료시승 기회를 비롯해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행사와 축하행사들이 펼쳐진다. 특히 이때 거진항을 방문하면 고성8미라 부르는 가진 자연산 물회, 털게 찜, 고성막국수, 도치두루치기, 토종 흑돼지, 도로묵 찌개, 명태지리 등을 한번에 맛볼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이기도 하다. 기간 2010년 2월 25일~28일 홈페이지www.myeongtae.com 문의 033-682-8008
거진항 성진식당_거진항에서 잡은 물고기로 40여 년 동안 음식을 만들어온 유서 깊은 곳으로 전국에 소문난 맛 집이다. 이곳의 생태맑은 탕(지리)은 신선한 생태로 만들기 때문에 냄새가 나지 않고 시원하며 감칠 맛 난다. 그 외에도 겨울에만 먹을 수 있는 도루묵찌개, 도치알탕 역시 별미다. 위치 거진우체국 맞은편 문의 033-682-1040
고성건어물할인마트_이곳의 이름은 ‘경상도할매건어물’. <식객> 중 ‘생태맑은탕’ 메뉴로 등장해 유명세를 탔던 ‘경북횟집’은 경상도 할매의 큰 아들이 운영하던 곳으로, 더 이상 자연태가 잡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을 닫고 작은 아들과 운영하는 건어물 가게는 남아 있다. 직접 말린 질 좋은 북어와 다양한 건어물을 만날 수 있다. 전국 택배주문도 가능. 위치 거진항 고성수협 맞은편 문의 033-682-4477
취재협조 거진항명태축제준비위원회, 인제군 용대3리 황태마을주민회, 영랑호리조트
출처 강수민 헬스조선 기자
사진 조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