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자신을 보호하고 생명까지도 보호할 수 있다는 사실은 법정에 가 보면 뚜렷하게 나타난다. 웬만한 실수를 하더라도 벌금으로 그 죄나 실수를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돈이 가지고 있는 위력은 자신을 편리하게 하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데에, 필수적인 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안간 힘을 쓴다. 그런데 지혜는 어떠한가? 이처럼 돈 만큼 자신과 자신의 생명을 보호해 주는가? 오늘 성경 본문에서는 지혜를 얻게 하는 지식이 돈보다 더 탁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돈은 자신을 보호하는 일부일 수 있지만 지혜는 전체 도시를 구한다. 가령, 몇 년 동안 유행했던 팬데믹을 생각해 보자. 돈이 있는 사람은 좋은 마스크, 좋은 의료 시설을 통해 사망률을 낮출 수 있었다. 그러나 돈 자체가, 많은 사람의 사망율을 낮추게 할 수는 없었다. 펜데믹을 정지시켜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게 하는 것은 바로 의료적 지식이다. 그래서 잠언에서는 지혜가 도시 전체를 멸망에서 구할 수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지식을 얻기 위해 빠르게 움직인다. 이러한 지식이 없어서 도시 전체, 아니 한 인종이 전멸한 사례가 있다. 그것은 인디언의 멸종이다. 당시 유럽에서 건너온 스페인 병사들은 우두라는 백신 접종으로 천연두를 막아 전혀 생명의 위협이 없었으나 인디언은 천연두가 급속히 퍼져 거의 멸종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가진 돈이 생명을 구하는데 아무런 역활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의료 지식은 그들의 생명을, 그것도 집단적으로 생명을 구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누가 12:16-21의 비유에서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번영을 우리의 죽음과 연계 시키지 못할 때, 어리석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에는, 돈은 인생을 누리기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종류의 사람들을 현대 철학자인 하이데거는 '다스만'으로 분류한다. 그들은 죽음 후에는 돈이 전혀 쓸모 없기 때문에 먹고 마시며 남에게 과시하는 데 사용하지만, 참된 부자는 돈이 적든 많든 관계없이 죽음 후의 영원한 미래를 연관시켜 생각한다. 이 종류의 사람들을 하이데거는 '다자인'으로 분류하였다. 다자인은 돈이 어떻게 사용되어야 사람들에게 진정한 자유와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지 생각하며, 그 목표를 위해 수단으로써의 돈을 벌려고 애쓴다. 다자인에게 돈은 '영적인 목표'를 위해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돈을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한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사람들의 영원한 복지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예수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내일 '현재의 목숨'을 잃더라도 자기의 '영혼'은 구제할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