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수업이 끝나고, 당번을 제외한 아이들은 짐을 싸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중 오희연 일행들이 은희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있었다. 은희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들은 유유히 사라졌다.
“은희야, 너 당번 아니잖아.”
빗자루를 들고 쓸기 시작하는 그녀를 보고, 화장실에 갔다 온 지은이가 말했다.
은희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괜찮다며 다시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은희, 당번 아니었어?”
“응, 오늘 당번 촉새인데”
오희연 일행들이 왜 은희에게 다가갔는지 알게 되었다. 난 은희에게 다가가 오희연이 무슨 말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은희는 귤이가 없으니 대신 청소 좀 해달라고 부탁을 받았다고 했다.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오희연 일당이 부탁 같은 걸 할 리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희가 그렇게 까지 말하니 뭐라고 할 수 도 없었다.
“알았어. 그럼 나도 도와줄게, 내가 때렸으니까.”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 친구끼리 뭐, 도와주고 그런 거지.”
결국엔 지은이도 , 말없이 지켜보던 조은도 같이 도와주기로 했다.
같이 도와서 그런지 청소는 생각과는 달리 빨리 끝낼 수 있었다. 가뿐한 마음으로 같이 교실을 나섰다. 친해진지도 얼마 되지 않고 워낙에 상처들이 있어서 말을 별로 하지 않는 애들이라 우리들의 대화는 짤막짤막했다.
건물 입구에 도착하니, 그냥 집에 간 줄 알았던 수현이가 누구를 기다리는지 책을 읽으며 서 있었다.
“집에 일찍 안갈 거였으면 청소라도 도와주지 그랬냐.”
이런 내 말을 듣는지 안 듣는지 계속 책만 읽고 있었다. 부끄러워서 도와준다는 말 못하고 이렇게 기다린 것 같았다. 부끄럼쟁이 같으니라구.
“같이 갈래?”
약 올리듯 수현에게 시비를 걸었다. 이 놈 걸려라, 걸려라 주문을 외웠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우리를 기다린 것이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우리 무리에 합류해 같이 하교를 하게 되었다.
이 녀석 또한 시비 거는 것 외에는 별 말이 없어서 하굣길은 조용했다.
“교장선생님 좀 뵙게 해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본관을 지날 때였다. 왠 아주머니가 우리학교 선생님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에게 재지를 당하고 있었다. 우셨는지 눈은 충혈 되어있었고, 반 정도 넋이 나간 채 선생님들을 부여잡고 있었다.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그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 우리 호연이...호연이... 절대 자살 같은 거 할 애 아니에요...그러니까....제발...”
잘 걸어가던 애들의 발걸음이 일제히 멈춰 섰다.
“집에들 안가고 뭐하고 있어. 여기 신경 쓰지 말고 어서가.”
그 아주머니를 말리시던 한 선생님이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를 알아채고 그 자리에서 내쫓듯 내보냈다. 교문을 나서면서 그 아주머니가 우리 담임선생님의 어머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임선생님의 성함이 정호연이였고, 같은 이름을 가진 선생님이 교내에는 없을뿐더러, 자살 얘기라면 최근에 우리 담임의 일이기 때문이다.
왠지 뒤가 찜찜한 우리는 교문 밖에서 그 아주머니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이 애들 역시 나처럼 선생님의 죽음에 대한 학교의 대처가 수상쩍게 여겼던 것이다.
“저기, 나온다.”
혹시 다른 선생님의 눈에 띌까, 교문에 좀 떨어져 숨어있듯 있던 우리들은 교장선생님을 못 만나셨는지, 풀이 죽어있는 담임선생님의 어머니로 보이는 아주머니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교문에서 나와 버스정류장이 있는 길로 가시는 그 아주머니의 뒤를 밟았다.
학교 근처에서 얘기를 하다 걸리면, 분명 어떠한 재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학교와는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얘기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버스에 타시는 아주머니의 뒤를 밟아, 결국 자택으로 보이는 곳까지 따라 갈 수 있었다.
“저기요... 아주머니...”
우리가 따라오는 걸 전혀 눈치 못 채셨는지, 돌아본 아줌마는 놀란 눈으로 우리들을 바라보셨다. 곧, 교복을 보고 알아보시곤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무원고등학교 학생?”
“..네, 저기... 호연선생님 어머님 맞으시죠?”
“우리 애, 학생들인가?”
“네, 선생님 반 학생이에요, 저기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데 시간 괜찮으시겠어요?”
생각과는 달리 흔쾌히 우리들의 얘기를 들어주셨고, 선생님의 어머니께서 집에서 얘기하자는 말씀에 선생님 댁에서 궁금했던 얘기를 하기로 했다.
#8 사건의 의문 - 2
“저... 선생님의 장례는 치르셨는지...”
“그게... 아직”
“아직이라뇨?”
“난 우리 애가 자살 같은 건 하지 않았을 거라 믿어, 그래서 시신은 아직 병원에 있어...”
참았던 눈물을 흘리시는 선생님의 어머니를 보면서, 은희와 조은은 죄송스러움에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차마 들지 못했다. 선생님의 어머니는 은희와 조은을 알아보셨지만 원망 같은 건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미안해 할 것 없다면서 다독거려 주셨다.
“솔직히, 저희도 이상하게 생각한 게 학교에선 너무 조용하거든요.”
“호연이 일이 있고 난 후, 그 학교 선생 중 한명도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
“...”
“그저 호연이 자살시도를 하여 병원에 실려 갔으니, 가보란 얘기밖엔...”
학교는 선생님의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것이다. 학교이미지가 중요한 시대이다 보니, 떠벌리고 싶지 않았었나보다, 어느 경찰에도 알리지 않았고, 구급차도 부르지 않았고, 학교에서 직접 병원까지 데려간 것이었다. 선생님이 계셨던 현장은 누군가에 의해 말끔히 치워졌고, 학교는 더 이상 그 일을 입에 담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애가 학생들 걱정 때문에 힘들어했어도, 그런 일을 할, 애는 아니야”
“맞아요,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바르셨고, 강하셨고, 또 반 학생들을 위하셨어요.”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은희가 입을 열었다. 분명 선생님의 마음이 은희에게도 통했을 것이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몇 분 전인 사건 당일 날에도 은희에게 전화를 걸어 메시지를 남기셨다는 것이다. 언제라도 좋으니, 꼭 학교에 나와 달라고,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힘이 되어 주겠다고... 솔직히 이 얘기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물어본 적도 없었지만, 사건에 의문을 품기엔 충분한 이유였다.
선생님의 어머니께서도 사건에 의문을 품고, 학교에 수사를 해달라는 요청을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자살로 끝난 사건을 조사해서 뭐햐나며 괜히 학생들을 들쑤셔 놓기만 할뿐이라고 딱 잘라 거절했단다.
결국 자신이 경찰에 의뢰하셨고, 검토 후 연락드리겠다고 긍정적으로 사건을 받아 들였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렇게 열의를 보이며 말하던 형사 분들이 다음 날에 완전히 변해 완강히 거절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어머니께서는 결국 학교에 찾아오신 것이다.
“어쩌면, 이번 일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큰일인 것 같아요.”
“이 학교, 옛날부터 뭔가 이상했어, 좀 뒤가 구린 거 같아.”
혼자서 계속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수현이가 입을 열었다. 수현이는 입학 전부터 이 학교에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 생각해봐도, 이 학교... 뭔가가 있어.”
수현이의 진지한 모습에 다들 뭔가를 하나씩 알고 있는 얼굴빛을 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서로가 알고 있는 의문점에 대해 어머님과 얘기를 나누면서 좀 더 자세히 사건을 파헤쳐가기 시작했다. 가장 큰 초점을 둔 것은 선생님의 일기장이 사라진 것에 대한 것이다. 선생님은 보통 노트 크기의 반 정도 되는 일기장을 갖고 다녔다고 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그런 이유가 그 날 그 날 느끼거나 일어난 일에 대해 적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건 후로 그 일기장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집에도 없었고, 가방에도 없었으며, 교무실 선생님의 자리에서도 없었다고 했다.
사건에 단서가 될 만한 일기장이 사라진 것이다. 도대체 거기에 무엇이 적혀 있기에 사라진 것일까. 그것을 가져간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들은 선생님의 어머니와 좀 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후, 시간도 늦었고 해서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학생들, 우리 호연이 일 너무 신경 쓰지마, 괜히 뭐라도 잘못될라.”
“네, 조심할게요, 단지 궁금해서 그러는 거니깐,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 댁을 나온 우리들은 말이 없었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와 집이 같은 방향인 수현이를 제외한, 애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여전히 말이 없는 수현이와 나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도록 한마디도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되도록, 이 일에 대한 얘기는 하지말자.”
긴 침묵을 깨고 수현이가 말을 했다.
“위험하니까...?”
“응, 어쩌면 우리가 나설 일이 아닐지도 몰라.”
사뭇 진지한 수현의 모습에 이번일이 선생님의 일을 은폐한 것만이 아님을 느꼈다.
어떤 이유에서 그러는지 좀 더 묻고 싶었지만, ‘나중에’ 라는 수현의 말에 더는 물어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수현과 나는 같은 버스를 탔고, 서로의 집이 도착할 때까지, 그 일에 대해선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밖은 어느 새 어두워져 거리엔 불빛들이 가득했다.
불빛이 있어 밝은 밤이지만 태양이 없기에 밤은 어둠 그 자체였다.
첫댓글 ~~~ 잘 봤어요~~ ㅋㅋㅋ 음 이거 막 사건 조사하고 막 그런내용이에요?? 우와우 ㅋㅋㅋ
ㅋㅋ 과연 스릴있게 잘 쓰게 될지 걱정이예요 ㅠ ㅅ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