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누군가를 연민하기보다 오직 자신을 근심하기에 바쁜 남자들의 초상
한 사내가 거침없는 걸음으로 식료품점에 들어선다. 꼬마 콜린에게 이것저것 사주며 용돈 벌고 싶으면 찾아오라 말하는 사내는 프랭크 코스텔로(잭 니콜슨), 아일랜드계 갱단 영토의 지배자다. 그를 아버지처럼 여기며 자라난 콜린 설리번(맷 데이먼)은 매사추세츠주 경찰청의 사복형사가 되어 경찰 내부 정보를 코스텔로에게 전해준다. 콜린과 비슷한 시기에 경찰이 된 빌리 코스티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그와 대척점에 서게 된다. 아버지를 제외한 친가쪽 핏줄 거의 전부가 범죄자였던 빌리는 그런 배경을 이용해 코스텔로 조직에 잠입해 신임을 받는 조직원이 된다. 빌리와 콜린을 통해 정보가 흘러나가기 시작하자 경찰과 코스텔로 조직은 첩자의 존재를 감지하고, 두 남자에게 서로의 정체를 폭로하도록 종용한다.
<무간도> 시리즈를 리메이크한 <디파티드>는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옛말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우위를 논하고자 함이 아니라, 산수(山水)가 달라지면 그 열매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는 뜻에서 그러하다. 뉴욕을 떠나 보스턴으로 간 마틴 스코시즈는 자신만만한 속도로 너무도 친숙한 범죄의 세계에 뛰어든다. 군왕과도 같은 범죄조직의 보스, 혈연을 강조하지만 사실은 냉혹하기 그지없는 범죄자들의 인연,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며 머뭇거리는 빈민가의 젊은이. <디파티드>는 자신을 위장하고자 공허한 수다를 쏟아놓으며 비열한 거리의 풍속화를 그려낸다. 코스텔로와 콜린의 고장이고, 빌리 또한 반쪽의 핏줄을 기대고 있는 보스턴 남부 지역은, 훠궈 냄비가 끓어오르는 <무간도>의 홍콩 빈민가만큼이나 생생하다. 그러나 빌리와 콜린이 서로의 뒤를 쫓는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디파티드>는 초반의 생기와 자신감을 잃고 지루한 반복을 되풀이하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어느 정도 <무간도>의 스토리가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디파티드>가 준비한 추격전과 위기, 반전은 이미 그 다음 행선지를 짐작하고 있는 이들에게 긴장도 놀라움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수없이 리메이크되었던 이야기들과 고집스럽게 컨벤션 내에 머무는 장르영화들이라고 하여 모두 이런 결과를 얻지는 않을 것이다. <디파티드>에는 콜린과 빌리가 무사하기를 빌어주고 싶은 감정의 여지와 두 남자가 함께 주인공이어야만 하는 운명의 엇갈림이 들어 있지 않다. 연민이 없는 것이다. 얄밉고 이기적인 콜린과 분노를 오직 외부로 폭발시키는 빌리는 무간지옥에 빠져 허우적대는, 운명에 의해 농락당하는 가엾은 동반자라기보다 거칠고 무서워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타인이다. 한편의 영화를 함께 끌어나가기에 그들 사이의 거리는 너무도 멀다. 글 김현정 2006-11-22
엇갈린 운명 지옥같은 두 남자가 격돌한다
갱이 된 경찰, 경찰이 된 갱
엇갈린 운명의 길을 걷는 두 남자의 대결
남부 보스턴 매사츄세츠 주 경찰청은 프랭크 코스텔로(잭 니콜슨)가 이끄는 막강한 세력을 지닌 보스턴 최대 범죄조직망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신참 경찰 빌리 코스티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을 조직에 침투시킨다. 빌리가 경찰 뱃지를 반납하고 보스턴 길거리를 떠돌다 코스텔로의 신임을 얻기 위해 애쓰는 동안 또 다른 신참 콜린 설리반(맷 데이먼)은 경찰청 내에서 승승장구하여 특별 수사반에 배치된다.
거짓된 충성, 목숨을 건 도박
의리도 정의도 없는 냉혹한 세계
특별 수사반의 임무 역시 코스텔러를 제거하는 것. 그러나 사실 콜린은 경찰청에 투입된 코스텔로의 첩자. 경찰청의 동태를 사전에 코스텔로에게 알리는 게 그의 진짜 임무였던 것이다. 결국 갱단과 경찰이 서로 상대방의 조직에 위장 침투한 것이다.
빌리와 콜린이 서로의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양쪽 조직 모두 첩자의 존재를 눈치챈다. 언제 정체가 탄로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은 상대방의 정체를 캐내기 위해 혈안이 된다.
상대보다 한발 늦으면 자신이 죽는 상황,
두 남자는 서로의 운명에 비극의 총구를 겨눈다.
이런저런 이야기와 제작 노트
About Movie
같은 원작, 다른 느낌
리메이크 아닌 리메이크
“<디파티드>는 엄밀히 말해 <무간도>의 리메이크작이 아니다. 기본 스토리는 <무간도>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디파티드>의 세계는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각각의 액션 장면을 상상하면서 캐릭터와 스토리에 몰입했기 때문에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제일 인상 깊었던 건 캐릭터들의 성격과 세상을 대하는 그들의 상반된 자세였다. 그 점 때문에 이 영화를 찍는 작업이 더욱 재미있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
<디파티드>는 홍콩영화 <무간도>를 토대로 만든 작품이다. 2004년 미국에서 개봉된 후 미국판 시나리오로 각색됐다. 그러나 각색 작업을 맡은 윌리엄 모나한은 영화를 보지 않고 영어로 번역된 원작 시나리오를 참고로 작업했다. 기본적인 골격은 같지만 이야기의 전개방식과 결말 등은 모두 다르다. 특히 원작이 캐릭터들이 지닌 이중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디파티드>는 자신의 자리에서 이탈된 사람들이 겪는 비극에 포커스를 맞췄다.
서로 반대의 길을 택했지만 결국 장난으로 서로 뒤엉키게 되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인물들. 상반된 목적을 갖고 서로의 조직에 들어가 언젠간 충돌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게 된 두 젊은이의 삶이 조직의 힘에 의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디파티드>는 오히려 감독의 전작 <좋은 친구들>과 <비열한 거리>를 떠올리게 만든다. 분명 스콜세지 감독은 이런 장르의 작품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이번 영화가 전작들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는다. 암흑세계와 경찰세계의 부패상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는 점, 뉴욕이 아닌 보스턴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 등은 전작들과의 확연한 차별점이 된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한발 더 나아간 새로움을 보여준다. 경찰과 범죄 조직 사이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배신을 그린 <디파티드>는 보스턴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나 있을 수 있는 사람들과 상황으로 다가온다.
그것이 스콜세지 감독의 모든 작품들이 언제나 새로울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감독에 대한 존경, 작품에 대한 신뢰
한 자리에 모인 할리우드 최강 연기파 배우들
<디파티드>의 출연진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영화에 대해 열광할 수밖에 없는 것은 세대를 대표하는 할리우드의 남자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는 것이다.
세기의 연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갱단에 침투한 경찰의 첩자로, 지성파 연기자의 대표주자인 맷 데이먼이 갱단이 경찰에 심은 첩자로 각각 열연한다. 또한 개성파 연기자의 대명사 잭 니콜슨이 막강한 세력을 지닌 보스턴 갱단의 대부로 등장해 생애 최고의 캐릭터를 선보인다. 여기에 마크 월버그, 알렉 볼드윈, 마틴 쉰 등 최상의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 불꽃 튀는 연기격돌을 연출한다.
특히 스콜세지를 자신의 멘토(스승)라고 표현하는 디카프리오는 <갱스 오브 뉴욕><에비에이터>에 이어 감독과 세 번째로 함께 한 <디파티드>를 통해 진정한 연기자로 거듭났다는 극찬을 받고 있다. 또한 새로운 사실은 <디파티드>가 전설적인 연기파 배우 잭 니콜슨과 스콜세지 감독이 함께 작업한 첫 번째 영화라는 사실이다. 30년 지기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함께 작업을 할 기회가 없었다고.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려 함께 한 그들인 만큼 <디파티드>를 통한 둘의 조우는 최고를 완성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퀴낸 서장 역의 마틴 쉰 역시 스콜세지 감독과 이 영화로 처음 함께 했다. 같이 작업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충분하다는 이유로 대본을 보기도 전에 캐스팅 제의에 응했다고.
역사적인 사실성과 실존 인물, 실제 출신들의 교집합
범죄로 얼룩진 도시 보스턴에서 펼쳐지는 액션
<디파티드>의 배경이 되는 보스턴은 명문 학교로도 유명한 곳이지만 악명 높은 우범 지대도 많다. ‘보스턴에서는 범죄자가 되거나 경찰이 되거나 노동자가 되는 것 밖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처럼 언제나 범죄와 폭력으로 얼룩진 도시로 묘사되곤 한다.
영화 속 보스턴 경찰청과 아일랜드계 보스턴 조폭의 대립은 리얼리티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70년대 초반부터 최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부 보스턴은 아일랜드계 마피아가 장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무간도>의 기본적인 스토리 윤곽을 바탕으로 잔인한 보스턴의 뒷골목을 리얼하게 담아낸 새로운 작품으로 재 탄생한다. 특히 잭 니콜슨이 연기한 갱단 보스 프랭크 코스텔로는 1995년 실종됐으나 아직 18건의 살인혐의로 FBI에 의해 수배 중인 실존 인물 와이티 벌거(Whitey Bulger)를 모델로 하고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에서 90년대, ‘와이티 시대’라 불리던 이 시대는 벌거의 잔인한 갱단이 기승을 부렸던 시기였던 것이다.
또한 보스턴시가 속한 매사추세츠주 경찰부서 내 엘리트 특수수사대를 소재로 실제 경찰의 도움도 받았다고. 이외에도 맷 데이먼을 비롯해 마크 월버그 등 디카프리오를 제외한 모든 출연 배우가 보스턴 출신인 것. 또한 작가 윌리엄 모나한 역시 보스턴 출신으로 자신의 고향을 영화 속에 묘사했다.
이처럼 역사적인 사실성과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보스턴 지역의 작가와 배우들이 모여 만든 <디파티드>는 기존 할리우드 리메이크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색함을 전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Production Note
경찰 마약수사에 동참한 맷 데이먼
보스턴 출신으로 동화된 디카프리오
주요 촬영이 시작되기 전 연기자들은 각자의 역할을 소화하기 위한 트레이닝에 들어갔다. 매사츄세츠 경찰청에서 30년 간 특수 수사반과 아일랜드계 마피아 수사를 전담한 베테랑 경찰 톰 머피가 자문을 맡아 경찰 용어와 복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촬영을 철저한 사전 검증과 자문을 거쳐 준비됐다.
보스턴 출신으로 지역의 특성은 잘 알고 있지만 경찰 문화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던 맷 데이먼은 특수공격대(SWAT)와 함께 마약 판매지를 기습하는 작전에도 동행했다. 실제 <디파티드>에서도 등장하는 기습작전 장면에 나오는 대원들은 모두 실제 스왓팀 멤버이다. 역시 경찰로 등장하는 마틴 쉰과 알렉 볼드윈, 마크 월버그 역시 경찰청 간부들의 행동거지를 익혔다.
빌리 역의 디카프리오는 극중에서 경찰보단 범죄자 연기를 하는 장면이 훨씬 많았지만 위장근무를 하기 위해 항상 도사리고 있는 위험에 대비하는 강한 정신력과 또한 언제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진 경찰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톰 머피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캐릭터를 잡아 갔다. 또한 연기자 중 유일하게 보스턴 출신이 아닌 디카프리오는 보스턴의 문화를 익히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보스턴 거리를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스턴 억양을 익혔고 ‘와이티 시대’를 겪었던 당시의 인물들 ‘사우디’(Southie: 보스턴 남쪽지역 출신)들을 직접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누가 무엇을 하는지 모두 알 수 있는 보스턴만의 특이한 ‘소우주’와 같은 세계가 인상적이었다”고.
뉴욕에서 보스턴을 표현하라
보스턴과 뉴욕 로케이션
영화의 배경은 보스턴이지만 주요 촬영은 보스턴과 뉴욕 등지에서 이루어졌다. 실외 장면 촬영은 보스턴 항구, 차이나타운, SOUTHIE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남부 보스턴 등과 보스턴 외곽에 있는 브레인트리, 퀸시, 도체스터 등 대부분 보스턴에서 촬영되었고 뉴욕에서는 브루클린과 맨해튼에서 진행됐다.
다른 두 도시에서 나누어 촬영을 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번 경우는 다른 영화 촬영과 차이점이 있었다. 보스턴은 건물들이 대부분 낮아서 하늘이 많이 보이는 반면 뉴욕은 고층 건물이 꽉 들어차있다. 그래서 뉴욕에서의 외부 촬영은 맨해튼이 아닌 브루클린에서 주로 진행했다. 보스턴에는 3층짜리 목조 건물과 같은 뉴잉글랜드풍 건축물이 많지만 뉴욕에는 그런 건물이 없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보스턴의 풍광을 최대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보스턴 건축물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투박하고 거칠다는 것이다. 일명 시멘트 룩으로 보스턴 시청과 헐리 빌딩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경찰청 청사 건물 외곽으로 사용된 건물은 잿빛 시멘트 톤의 헐리 빌딩인데 청사 내부는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스튜디오에 세트를 만들어서 촬영했지만 기존 건물의 회색과 브라운 톤을 세트에도 그대로 사용했다.
튀는 의상, 강렬한 빨간색, 알파벳 X
영화 속 상징들
보통 경찰 청사엔 형광등을 쓰지만 영화 속에는 화면의 긴장감을 위해 직접 조명과 그림자를 활용, 다양하고 질감 있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또한 누아르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흑백톤의 분위기를 살리도록 색조의 사용을 거의 자제했다. 배우들의 의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극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검은색, 브라운색, 회색, 베이지색 등 가라앉은 의상을 입고 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잭 니콜슨이 연기한 프랭크 코스텔로만은 강렬한 색상의 의상을 입는다. 오히려 캐릭터를 옷 색깔로 표현하는 것. 처음에는 다른 등장인물과 같이 무채색으로 준비 했으나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인물인 만큼 자기가 원하는 대로 옷을 입을 것이고 따라서 의상의 색과 디자인이 아주 튀어야 한다는 잭 니콜슨의 의견에 따라 컨셉을 수정했다.
거의 무채색톤인 이 영화의 화면 속에 잭 니콜슨의 의상만큼이나 튀는 것은 바로 강렬한 빨간색이다. 어떤 형태로든 가끔씩 등장하는 빨간색은 어떤 위험한 일이 생길 것이라는 암묵적인 경고나 매번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전략으로 등장한다. 빨간색과 마찬가지로 X라는 철자도 하나의 상징으로 영화 속에 계속해서 등장한다. 철자 X자가 중요한 의미로 등장했던 하워드 호크스 감독의 1932년 작 <스카페이스>에 대한 감독의 헌사이자 죽음의 상징으로 감독은 그 상징을 때론 명시적으로, 때론 묵시적으로 삽입했다. 등장할 수 있는 가능한 장면에는 모두 나오기 때문에 창문, 벽, 마룻바닥에 수시로 X자가 등장한다. 몇몇 장면에서는 조명을 이용해 X자를 연출하기도 했다.
자료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