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벌어진 싸움이었다.
싸움의 발단이야 어찌되었든 만취되어 해파리같은 몸뚱아리는 워커발에 된통 걷어채여
가슴에 늑골이 골절된듯 격렬한 통증이 왔고 입으로는 "울컥울컥" 거픔섞인 선홍빛 피를 토해냈다.
'제기럴, 부서진 갈비뼈가 폐를 찌른 모양이군. '
나는 열일곱부터 거리에 뒹굴며 싸움질에 이골이 난 소년 주정뱅이 -그러나 한방이있는- 였고
상대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문벌높은 대학생에 <카츄샤>였고 둘은 고등학교 동창생이었다.
우여곡절끝에 나는 열일곱에 부모 모두를 잃고 거리에 내팽겨쳐진 천덕꾸러기였다 -
그러나 조선인 최초의< 마라토너>( 1932년 LA올림픽 9위 입상자)이며 손기정, 남승룡, 서윤복,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등을 길러낸 대한육상연맹회장과 마라톤 부흥협회 회장을 역임하신
아버님과 평양 서문고녀 출신으로 오랫동안 교사생활을 한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그리고
씩씩한 아들이었다.
나도...... 말하자면 귀공자였고.
비참해질대로 비참해진 현실을 잊기위해 몇가지 생존기술을 익힌 주거부정의 부랑자이자
인생수업중인 문학도였다 .
그 몇가지 자살방지책을 소개하자면
첫째, 폭음 (정신놓을때까지)
둘째, 영화보가(입장권 살 돈이 있는 한 횟수에 상관없음)
셋째가< 비타민> 요법이었다.
내< 비타민>은 고교 시절부터 사귀였던 O양이었고 그 사실은 쌍방 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내 독단적인 처방이었다.
생각해 보라!
인생이 아무리 삭막해도< 오아시스> 한군데는 있어야 하며
밥상이 아무리 험해도 푸성귀 몇뿌리는 올라와야 하는법이 아닌가?
그런데 "재수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이 없더라"고 O양은 청순가련하고 지고지순한
풋내기가 아니었더라 이거야.
양다리 걸치고 그것도 모자라면 <런던 브릿지>라도 뽑아와 자기가 헤쳐 나갈 강위에" 덜컥 "
다리놓을 여자였다는 사실은 "약은 고양이 밤눈 어둡다" 고 나만 까맣게 몰랐던거야
그날의 주인공 K군는 고교시절부터 내 연애 편지 심부름을 하면서 길고 깊게 O양에게
인상을 남겼고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블루 킹 캐딜락>을 탔다.-< 다이아 >반지에
눈이 먼것은 심순애 뿐이 아니었더라 이거야.
상대의 가슴에 사시미칼을 꽂던 날, 눈이 왔고. 나가던 노동판은 대마찌(속어: 일없음)가 났고
가불들을 해서 들뜬 따라지 인생들은 기계(화투)를 돌렸고 끝판을 장땡으로 장식한 나는
그날의 <위너>였다.
아! 초라한 인생판의 찌그러진 승리여! 그날 난 ,
역시 경음[傾飮 ;술에 기울어짐 알콜중독을 뜻함 ]했고 영화 <스팅>을 봤고
마지막으로 나의 <비타민>을 취하러 그녀의 아파트를찾았다.
<로만 폴라스키>.감독의 <십계>중 (간음하지말라}를기억하시는가?
혼인의 언약은 커녕 약혼의 언질조차 없던 그녀와나는 자유로운 행동이 보장된 청춘남녀가 분명했다.
그런데 인생의 모오든것에서 가난해진 나는,생명을 이어가는 약을 빼앗긴것에 억울해했고
스물하나의 젊음은 그 억울함을 맹렬한 적개심으로 변화시켜 손찌검이라는 저질 폭력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헌데 웬걸?
솜털이 보송보송 하던시절 내 가방 모찌 (속어: 가방을 들어주는 비서)였던 K군은 군사훈련을
마치고 용산에 있는 미 8군에 배치된지 수개월이 지난 군인 아저씨였고
난, 술처먹은 개이자 물먹은 해면처럼 흐느적거리는 꼴불견이었다.
옛날 생각하고 주먹을 날린 난 몸의 균형을 잃고 그자리에서 "빙그르르" 돌다가 자빠졌고
약이 잔뜩 오른 K군은 엎어져 제힘으로는 일어나지도 못하는 나를 워커발로 걷어찼다.
가슴을, 배를, 등판을 그리고 수치스럽게도 입을 밟아댔다.
"이러다 죽지?" 생존의 다급한 조건반사는 패배를 자인하며 무자비한 구타의 중지를 호소했다.
그래도 왕년의 자존심은 있어서 "됐다! 이제그만! 오늘은 너한테 안되겠다 자!항거불능의 놈을
조져봤자 너도 뒤끝이 개운치는 않을꺼다 오늘 그만하자!"
"울컥울컥" 피를 토해내는 모습에서 그가 느꼈던 것은 짜릿한 승리의 쾌감이었을까? 아니면
경험부족의 황당함이었을까?
아무튼 소나기처럼 내리꽃히던 매에서 놓여나자
술먹어 그랬을까 ?
엉뚱한 생각을 했다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일을 실행하자는 결기는 나 또한 죽음을 불사하겠다는 양구쌍패
{ 羊狗雙敗; 양이 개를 들이받고 절벽에서 같이 떨어져 죽겠다고 덤빔)의 발악이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사과와 화해를 하겠다고 상대를 꼬드겨서 화해술를 마시러 들어간 곳은 횟집이었다
카운터 겸 도마로 쓰는 두꺼운 나무위에 날이 시퍼런 칼이 있었고 등을 보이며 먼저 들어가는
K군의 등뒤에서 피가 범벅이 된 <바바리> 외투속으로 재빠르게 칼을 숨겼다.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빠른 솜씨로......
주먹세계에선 금기{禁忌}로 치는 후이후찌{暗襲:상대를 안심 시킨 후 갑자기 들이 침}로 끝장을
낼 요량이었다
고백컨데 거친 세상을 살아가며 익힌 솜씨란 다름아닌 급소를 노린 한박자 빠른 강한 타격과
세 불리 때 써먹는 무자비한 칼질 그리고 일단 싸움이 붙으면 <해머>로 맞아 두개골이 함몰 돠어도
정신을 놓기전까지는 물러서는 법이 없는 오도꼬(男;소위 말하는 깡다구}였다
"너 죽어!"
벼락같이 소리치며 좌정하는 K군의 왼쪽가슴을 향해 칼을 내리꽃았다
그런데 웬걸?
칼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듯이 꽃아버린 날시퍼런 사시미 칼이 그의 불룩한 왼쪽가슴에
있는 < 패스포드>에 꽂힌 듯 더이상 깊게 들어가지를 않는거야
환장하겠더군ㅡㅡㅡ
"아" 소리를 들었던가?
칼을 뽑아 망설임없이 그의 목을 후려쳤다
경동맥의 혈압은 체내 혈압보다 몇배 아니 몇십배나 높다
목의 경동맥은 지혈이 어려워 급소중의 급소로 친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K군은 목을 움켜쥐고 그자리에서 허물어져 갔다.
붉은 피보라를 보았던가?
그리고 나도 허물어져갔다.
인사불성의 음주와 과다출혈과 극도의 흥분상태가 쇼크를 일으킨 모양이었다
인간의 기억은 얼마만큼 신용할 수 가 있는것일까
나의 기억으로는 그날밤, 아니 다음날 새벽 난 동부 시립 병원 응급실에서 팬티 한장
걸치지 않은 알몸인채 깨어났고_<터미네이터>처럼_ 날 얼음과 알코올로 마사지하던 간호사들로부터
눈덮힌 청계천가에 칼을 품고 쓰러져있어 <앰뷸런스>가 출동하여 싣고 왔다는 사실을 전해들으며
쓸쓸히 병원문을 나섰다.
온통 상처투성이 젊음이 취할수 있는 최선의 길은 무엇이었을까?
"그래 이만죽자! 충분히 처참해졌자나?
이렇게 빨리 빨래 걷듯이 인생을 걷어서 때려치울 줄은 정말 몰랐어......
미안해 엄마 아빠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나도 색시 얻고 새끼낳아 엄마 아빠 산소에도 데려가고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아빠 엄마 이야기도 해주고 싶었는데.......
미안해 그리고 부디 용서해줘
저승에 계신 것이 확실하다면 매맞을 준비 단단히 할께
그러나 이건 알아줬으면 해 나도 할만큼은 했다고 생각해
부서져버린 둥지에 어찌 성한알이 남겠어? 끝까지 품어주지 못한 알은 결국 곯아서
뱀이나 새앙쥐 목구멍으로 넘어가는것 맞지?
난 한시절 천하를 호령했던 아버지처럼 살고싶었어
그런데 현실속에선 귀공자가 천덕꾸러기로 되었다가 돌아온 부모 덕분에 다시 귀공자가 되는
스토리의 [소공자] [ 소공녀]는 결국 비탄사(슬퍼죽는죽음)를 늦춰보려는 아동문학가들의
상상력의 날개짓에 불과해.
여하튼 미안해
그렇지만 나도 이제 어쩔수 없어
살인자로 체포되어 빨간 명찰{살인죄를 표시함}달고 은필찌(수갑)차고 포승줄 묶여 호송차 타고 출정 다니며 K군 부모님
얼굴 보기도 무섭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난 살아갈 힘도 용기도 희망도 없어
그래서 죽어야 하나봐! "
이런 생각을 하며 고층아파트 옥상을 향해 걸어 올라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휙"신문지 한장이 바람에 실려와 얼굴을 덮는것 같았다
"척" 뜯어서 구겨버리려다가 뭔가 끌리는게 있어 계단에 주저앉아 곰곰히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1975년 한국일보사 제정 제1회 아동기독 문학상 수상작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이 실려있었다.
강아지똥이 세상에 나와 자신의 쓸모 없음을 한탄하며 뒹굴다가 마지막에 민들레 홀씨를
받아들여 자신의 쓸모있음을 확인하는 불후의 명작이......
"그래 나도 살아보자 개떡같은 내 인생도 혹시 민들레 홀씨하나가 날아들지 모르잖아?"
그래서 나는 살아남기로 했고 -K군은 경동맥이 끊어진채 병원으로 급하게 실려가 몇차례
수혈을 동반한 봉합수술끝에 목숨을 건졌고 고맙고도 죄스럽게도 K군의 부모남은 나를
고소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셨다 그때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선하다
"우리 애만 싸고 돌 셍각 없다 네 부모남이 살아계셨다면 지금 네가 이렇게 되었겠니?
너희가 가야할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데 .계집 하나 때문에 인생을 그르치게 할 수는 없다
너는 선이 굵은 사내다 산넘어 산, 물건너 물이니. 자중자애 하여 부디 대성하거라!!"
그로부터 정확히 20년후 내가 키운 토종벌의 꿀을 따서 안동 조탑동에 안착하신
권정생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큰절을 올리고 "선생님이 제 목숨의 은인입니다.
저도 선생님처럼 훌륭한 문장가는 못되더라도 내 글을 읽고 단 한사람이라도 20년전
내가 그랬듯이 글속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할수 있다면 내 목숨이 헛되지 않았다고
줒어서라도 말하겠습니다." 말씀올렸다
그날 내 운동화 끈을 물어뜯은 강아지들을 뒤로하고 권선생님집 옆 과수원길을 걸어나올때
권선생님이 뒤쫓아 나오시며 뭔가 한움큼 건네주시는 것이었다.
10원짜리와 100원짜리, 500원짜리 동전들, 그리고 1000원짜리 지폐몇장......
아마 선생님은 나에게 차비라도 줘서 보내려고 책상위 돼지 저금통의 배를 따신 모양이었다.
외출이 적으신 선생님께서 내게 해줄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고 최고의 선물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권선생님과 나는 만났고 또 헤어졌다.
또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혹시 알어? 이 글이 그 누구에게 날아들 민들레홀씨 하나가 될지?
선생님 안녕하신지요?
건강하세요!
불초 근배 드림 2006년 7월 15일
후기: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다.
글속에 회자된 K군과 O양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 조차도 소중한 내 삶의 일부인 것을......
주여! 나를,용서하소서!
어리석고 무지하여 저지른 나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합니다.
나는 너무 편협했었고 너무 독선적이였으며 이기적이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너무 너무 잔인했습니다.
주님의 깊으신 사랑으로 나를 용서 하소서
온통 상처투성이인 젊은날의 내 영혼을 치유하소서
당신이 몸소 십자가에 달려 온몸으로 호소하신 그 사랑과 자비를 배울 수 있는
은총을 베푸소서! 주여!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권정생 선셍님과 나
무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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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0.13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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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님께서 무애원님을 구해 내셨군요. 감동적인 글이였습니다. 사랑과 기적과 희망의 홀씨를 많이많이 날려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