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용한 역술가에게 올해 운수를 물었더라면 병원 출입이 잦을 테니 몸 관리 잘 하라는 말을 들었을 게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옛날 같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 이상할 게 없다만, 동시에 몸뚱아리 이곳저곳에서 신호를 보낸다거나 탈이 났을 때 쉬이 회복이 되지 않는 것을 올해만큼 통감한 적이 없다. 하기야 뭐, 예순쯤 되어 그때만 해도 괜찮았다고 요즘 시절을 옛이야기 삼을 수도 있겠지만.
목 근육을 삐끗하여 한의원, 정형외과, 스포츠 마사지센터에다 시각장애인 안마시술소까지 들락거린 것은 오프닝 세리머니 정도였다. 고혈압이 드디어 여생의 벗이 되어 달포에 한번씩 내과에 가서 체크하고 처방 받고 혈압약을 매일 한 알씩 복용하게 된 것도 외가의 유전인자 탓이려니 했다. 찬물을 머금으면 어금니 하나가 시리던 것이 좀 지나니 아릿하게 작열하는 통증으로 발전되어, 치과의사 친구의 말로 ‘여기에 비하면 임플란트 시술은 장난’이라는 신경치료를 시작했고, 예상보다 치료기간을 훌쩍 넘기며 만만찮은 고생을 했지만, 제까짓 게 언젠가는 끝나겠거니 하며 견디니 마침내 끝나기도 했다.
마치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달관한 도인처럼 읊고 있다만, 아닌게아니라 목 근육이 잘못되니 모든 움직임이 불편했고, 고혈압은 불치이며 만병의 원인이라는 점에서 은근한 스트레스를 주었고, 어금니의 통증은 자다가 깨어나서 하소연도 못하고 이불 속에서 눈물을 뚝뚝 흘릴 정도였다. 신경치료? 듣기만 해도 몸이 저린다.
으아아, 그런데 나를 정말로 좌절, 열패, 낙담시킨 것은 해묵은 햄스트링 부상이었다. 과거시제를 쓰니 이미 흘러간 것으로 보일 수 있겠는데, 불행하게도 아직도 진행 중이다. 계속 나빠지는지 오래 앉는 것도 불편한데 딱딱한 바닥일 경우에 더욱 그렇다. 등산용 스티로폼 깔개를 가방에 넣고 다니며 딱딱한 의자에 앉아야 할 때(이것도 업보인지 하필 즐겨 찾는 술집들의 의자가 대체로 이렇다), 옘병할, 볼품 사납지만 꺼내서 깔고 앉는다. 요즘 같아서는 더도 말고 10km만 세게 뛰고 땀 흘릴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 뛰다가 호흡이 터지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아, 옛날이여.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작년 여름 이후 바라는 대로 잘 흘러갔다면 지난 봄에 제주200km울트라에 도전했을 게다. 제주일주 달리기는 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목록에 몇 년 전부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나이 더 들기 전에 해야 할 것이었다. 완주가능성은 절반 정도로 보았지만, 99년 첫 풀코스를 결심할 때의 의욕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것들 때문에 조급한 마음이 들었나 보다. 작년 달리기 일지의 일부이다.
7월 하순 어느 날.
일년 반을 놀았구나. 마라톤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시종 달리기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내가 뛰질 않으니 대화가 되지 않음을 통감하고 미루던 연습을 시작하다…
10/4 (일).
남산 5회. 30km. 5회째 오르막에 양쪽 햄스트링에 기별이 온다…
일년 반을 놀다가 새로 시작하는 주제에 어렵긴 하지만 갈 길은 정했으니 거리 늘이기에 중점을 두었다. 햄스트링이야 늘 세게 뛰면 시큰거리고 쉬면 회복이 되는 부위였으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쉬다 괜찮으면 뛰고, 거북하면 쉬기를 반복했는데, 빈도가 잦아지고 회복기간이 늘어나게 되더니 결국 문제가 심상치 않은 것이 느껴졌다. 작년 중앙마라톤도 아쉽지만 포기하고 아예 두어달 달리기를 접자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이것이 잠시 휴식이 아닌 긴 좌절의 시작이었다. 구구절절 사연을 옮길 필요 있으랴. 다녔던 병원과 처방, 소감으로 줄여 갈무리하자.
- S정형외과 : 집 근처에 있어서 처음 찾아간 곳이고 지금도 이따금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나이 지긋한 의사. 운동은 삼가하고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으란다. 문제는, 차도가 없는데 대책도 대안도 없다. 너무 막연하니 답답하다.
- 상계 백병원 : 큰 곳에서 진찰을 받아보자 싶어서 갔다. 진료한 의사가 마침 스포츠의학을 전공한 전문의. S정형외과에서 받는 물리치료의 효과 대해서는 회의적인 눈치. 근육강화훈련을 하란다. 강화훈련으로 그가 추천한 데드 스쿼트나 런지 등 몇 가지는 내게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더 전문적인 치료를 원하면 가보라고 Y사랑정형외과를 소개받았다.
- Y사랑 정형외과 : 되바라진 젊은 의사. 된통 바가지 쓴 기분. 바로 MRI를 찍잔다. 체외충격파 치료를 받았는데 훗날 김학윤정형외과에서도 S정형외과에서도 그 효과에 대해 부정적. 게다가 체외충격파치료로도 안되면 PRP를 해보자고 너무 쉽게 말하고 있다. 비싼 치료만 권하는데다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환자를 봉으로 아는지.
- 김학윤 정형외과 : 결국 찾아갔고 듣던대로 운동을 해야 낫는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보폭을 짧게 뛰어야 한다고. 스트레칭 시범도 보여준다. 권하는 대로 뛰었고 거리를 늘이라고 해서 늘였더니 무리가 왔다. 의사본인이 마라톤을 한다지만 개개인의 차이도 생각해야지. 어쨌거나 미덥고 의지할 만한데, 병원의 위치가 멀어서 가는 것이 쉽지 않다.
대부분 의사들이 술은 별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단지 백병원의 의사는 많이 마시면 혈행에 지장을 주기에 좋지 않다고 했다. 내 경험으로는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든지 운동을 쉬면 나아지는데 한번씩 통음을 하면 도지는 것을 느꼈다. 오랜 혼란과 시행착오를 겪고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당분간 술 횟수와 양을 줄이고, 달리기를 쉬고, 근육강화운동 중 내게 맞는 두세 가지를 꾸준히 하자는 것.
사실 이 헛짓거리 같은 ‘병원순례’가 시작되기 전에 머슬가이에게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고 도움을 구했다. 그의 조언은, 내가 시간과 비용을 소비하고 내린 결론과 거의 같았다. 달리기는 자제, 근육강화훈련은 계속하라는 것. (이 말을 듣고서도 병원을 찾아 다녔다. 특별한 처방이 없고 뻔한 소리를 들으리라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혹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허우적거리는 상황이었으니.)
그런데 머슬가이가 농담처럼 했던 마지막 충고가 귀에 쟁쟁했다. 특유의 느릿한 충청도 말씨로,
“…어이 티물. 이제 우리 나이면 연식이 상당히 많이 된 겨. 고장 나면 회복이 잘 안 되여. 그러니 조금씩 아끼면서 써야 하는 겨. 이젠 죽자사자 뛰지 말어어…”
잠언이었다. 더 맞는 말이 있을까. 당하고 나서야 통감을 하니 바보일 뿐이지.
미국민들에게 꽤 잘 먹혔던, 빌 클린턴의 선거구호였지. “It’s the economy, stupid.”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머슬가이가 미국인이었으면 내게 “It’s the aging, stupid.”라고 했으려나.
첫댓글 그러게 나이는 속일수 없나벼? 그래도 울친구들중에는 썹-3를 밥먹듯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대리 만족을 하곤있지만 내겐 넘 어려운 일이기에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고져 시간에 구애받지않고 5시간내에만 완주할수 있게 해달라고 빌고있지. 빠른 회복을 기원하는 바이다.
티무르, 참 오랜만에 네 글 읽는다. 한마디로 글 잘 쓴다. 주제를 뒷받침하는 소재, 소재들끼리 서로 어울리는 얼개짜기,
마침내 문장으로 드러나는 생각의 속살을 표현하기란 참 막막하던데..그건 그렇고 몸은 제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일상의
바퀴가 굴러가야 마땅하지. 제발 잠잠해지라고 읍소해줘야겠다. ㅎㅎ
어이쿠, 또 과찬의 말씀을.
만성 아킬레스건염 진단받고 김00정형외과에서 서너번 물리치료 받은 후 시간 나는대로 잔디밭에서 가볍게 걷고 달리고 했더니 많이 좋아지더라. 지난 번 춘천에서 천천히 완주했고 이번 주말에 32키로 페메해보면 결론을 낼 수 있겠지. 어이 띠물~~연식이는 내 군대 동기야ㅎㅎ
연식도 연식 나름이라카이. 넌 첫풀이 언제냐. 난 구구년식이거덩. 지난 세기에 출고한 거니까 슬슬 큰 고장이 나타나는 거겠지.
맞다카이....자동차도 10년이 지나고 30만키로가 가까워지니 시동소리도 시원찮더라. 이젠 살살 달래면서 달리자~~!!
댓글 안달고 티물 글 씹을 수도 없고, 부상 치료에 대해 아는 것은 없고, 술이 웬수라는데 위로주 한잔 쏜다고 할 수도 없고..... 그냥, 이 말은 참고로 혀.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를 잘 피해야 한다. 개, 자동차, 그리고 의사' <조지 쉬언>, '달리기 부상 통증은 달리기로 고쳐야 한다' <????> 둘 다 의사 선생님여~
달리기도 못하는 데 개띠 클럽 쥔장 자리라도 노려봐라. 선거운동 해줄까?ㅋ
아서라. 티무르 고정표 이탈할라. ㅎㅎ
달리기를 못 해서 쥔장자격 없을거 같어 추천하지 말어ㅎㅎ
나드 반복인데 연식이 문젠가
나도 부상에 많이 시달리다보니 정형외과 한의원 대체의학을 많이 다녀봤다.
한의원은 박지성과 마라도나를 치료했다는 곳에 가서 찍소리 못하고 거금들여서 약을 지어다가 그대로 남아있고..ㅎㅎ
목에 이상이 있으면 손도 저릴텐데..?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라면 개인적으로 통화를 하자..
안달리더라도 아프진 말아야겠지..
고친후 달리면 금상첨화겠지?
면회도 않오고,도가니탕 사준다는 소리도 없고... 밉다!!
나에경우 김 학윤 정형외과 진단은 퇴행성 관절염이 진행중이라고 하더군 그리고 물리치료 받고 몇개월 후 무릎 변형이 되는 것 같아 찿아가니 점차 제자리 찿을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ㅎㅎ 그냥 천천히 뛰라고 해서 1년 넘게 뛰어도 마찬가지
아니다 싶어 영동 세브란스 다리만 보는 전문의 찿아가 진료 엑스레이 사진만 보고도 연골이 찢어졌다고 하더군 변형된 무릎은 수술 하기전에는 원 상태가 않된다고...MRI 찍어 보니 확실한 연골 손상 그래서 수술 했다우 ~~ 이제는 뛰지 말고 근력 운동위주로 하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 , 나도 못 뛰니 답답혀 ~ 잠수함 같이 타자 ㅎ
야임마,그 잠수함이 문제야~~!!
마라톤한 뒤로 혈색도 달라지고 생기있고 발랄(?)해졌다는 동료들의 말외에, 체중유지며 체감 건강지수도 높아진거 같아서 겁없이 춘마에 이어 중앙서 연속 풀을 달렸는데... 어제 강쥐와 흰들개 상태를 본 후 많이 고민되네. 부상과 건강악화로 고생하는 친구들 빠른 회복바랄께. 힘내~~
깜비야, 사람마다 몸 상태가 조금씩 달라서 그러니 넘 걱정하지 말고 즐겁게 운동해 ~ 잘 먹고 운동은 필수 넘 무리하지 말고... 나 같이 무리하지 않아도 그럴수도 있고... 들개야 ! ㅎㅎ 온,오프에서 균형있게 활동해야한다고 생각해 ~~
그래 연식이 문제인겨~넘들은 울트라도 밥먹듯 풀도 밥먹듯 부상없이 잘 뛰던데 난 병원에선 문제없다는 무릅이 조심스러워 요즘 소심하게 뛰고~티물이 맘 고생이 보인다~
고민할 거 없어. 다칠까 안뛰면 소심한 넘이고, 알면서도 뛰다가 다치면 멍청한 넘이지 뭐. 그냥 멍청한 넘 되야부러. 아참, 넘이 아니구 뇬이지. 히히.
연식이 문제라면....? 아~겁난다.내 주위에 전용구 박사님이 풀을 매주 뛰시는데,올해안에 300회가 된다는데 그런 말씀 없던데....노화가 문제라면 어쩔수 없지만 마라톤이 문제라면 생각해 봐야겠지?
누구라도 조금씩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으니 누구누구 다아 똑같진 않을껴~~
우리 업계의 초일류가 겸양의 말씀을. 넌 나랑은 급이 달라. 부상 피해가는 내공 엄청 쌓았잖여.
그래 건강이 첫째라는걸 건강할땐 모르지만 건강 잃고 나면 그때 후회되고 그러더군 .나 역시 허리에 문제가..ㅠㅠ.연식에 문제가 있나보다
58강아지들아!! 건강은 건강할때 가꾸고 지키자,.,
입사동기~수레야~ 올마이다` 여전히 수영은 잘 하고 있겠지~?
주위에 말톤하면 폐가 튼튼이 되어 겨울내내 감기도 안걸리고 좋은것 뿐이라고 적극 권유하는데..젊은애들이나 대부분 무릅 관절 걱정이데. 만 2년 넘게 뛰댕기다 보니 서서히 중독되 가는것 같혀 안뛰면 무릅이 뻐근해 그래서 뛰면 그냥 풀어지고 그래서 내 결론은 아프면 쉬고 괜찮다 싶으면 뛰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글쎄 답이 뭘까 과유불급이 맞겠지.
...이런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그렇게 심했는데...희망을 잃지말아 그래도 시간 좀 지나면 낫는다.생각해보면 냐 경우도 재발 까지 포함하면 10달은 간 것 같아. 그 때 이후로 속도는 포기하고 그냥 천천히 뛰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