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장. 계율 존중하기를 부처님 모시듯
若不持戒이면
尙不得疥癩野干之身인데
況淸淨菩提果 可冀乎리오.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온 몸에 옴이 번진 여우만도 못할 것인데
하물며 맑고 깨끗한 부처님 세상을 바라보겠느냐?
《註解》
重戒如佛 佛常在焉이니
須草繫鵝珠 以爲先導하라.
≪주해≫
계율 존중하기를 부처님 모시듯 하면
부처님은 언제나 곁에 계시니
초계(草繫)와 아주(鵝珠) 스님처럼 계율을 스승으로 삼을지어다.
주
1. 초계(草繫)
어떤 비구가 길에서 도적을 만나 얼마 되지 않는 옷가지와 갖고 있던 물건들을 다 빼앗겼다. 도적들은 관청에 가서 바로 고발하지 못하도록 풀줄기로 비구를 묶어 놓고는 멀리 도망가버렸다. 발가벗긴 채로 숲속에서 풀줄기에 묶여 있던 비구는,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행여나 풀줄기들이 끊어져 풀들이 상할까봐 염려하여 되도록 가만히 있었다. 누군가가 구해주지 않는다면 고스란히 그대로 굶주려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마침 사냥을 나왔던 임금이 벌거숭이로 약한 풀줄기에 묶여 고통스럽게 꼼짝않는 이상한 비구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비구를 풀어준 뒤 불살생의 계율을 지키기 위하여 온갖 고통을 참아내고 있던 비구의 사연을 알게 된 왕은 크게 감명을 받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게 되었다. 이 비구를 이때부터 ‘풀에 묶인 비구’라고 하여 초계비구라고 불렀다.
2. 아주(鵝珠)
옛날 어떤 비구가 구슬을 줄에 꿰어 목걸이를 만드는 집으로 탁발하러 간 일이 있었다. 집 주인은 임금님의 값비싼 마니주 구슬을 줄에 꿰고 있다가 스님이 오자 공양 올릴 음식을 가지러 부엌에 들어갔다. 그때 갑자기 거위 한 마리가 나타나서는 그 구슬을 고기살점 인 줄 알고 먹어버렸다. 주인은 음식을 가지고 나왔다가 구슬이 없어진 것을 보고는 비구를 의심하였다. 다짜고짜 탁발하려고 서 있는 비구한테 없어진 구슬을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비구는 모진 수모와 곤욕을 달게 받으면서도 거위의 생명을 지켜주려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화가 많이 난 주인이 휘두르는 몽둥이에 비구의 온몸은 상처투성이가 되고 붉은 피가 흥건하게 흘러나왔다. 그때 구슬을 삼켰던 거위가 흘린 피를 먹으려고 기웃거리다가 그만 홧김에 주인이 마구 휘두르는 몽둥이에 맞아 죽어버렸다. 그때서야 비구가 사실대로 말하니 주인은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고 진심으로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이때부터 이 비구를 거위와 구슬의 이야기를 엮어 아주비구라고 불렀다.
출처: 선가귀감, 서산대사 지음, 원순 역해, 도서출판 법공양
첫댓글 https://www.youtube.com/watch?v=HifKcKade2Q&list=PLwWQdPwuhgTxzQoXdjEnWEfya59GIWWW7&index=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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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심으로 가득찬 두 비구 스님의 계를 지키는 이야기를 보면서 식습관을 다시 돌아봅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잘 먹고 있으니 한심하기도 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실천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초계비구... 이 이야기를 저는 청정도론에서 보고 얼마나 한심했던지...
계란 그렇게 지키라는 게 아닌데 말이지요.
여기 해설에는 초계비구가 나중에 구조를 받은 걸로 돼 있는데,
청정도론의 제 기억은 계를 지키다가 끝내 열반에 드신 걸로 압니다.
계는 정말 중요하지요.
앞에서도 나왔지만,
계를 지키지 않으면 공부를 해야 헛 일입니다.
도무지 힘이 모아지지가 않아요.
그래서 공부인은 반드시 계를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사실 계는 지키려고 지키는 게 아닙니다.
내 본성이, 내 맑은 자리가 파계 같은 짓거리를 하지 못하게 하는 거에요.
지키려고 지키는 계는 초입자나 하수들이 하는 단계요,
공부가 깊고 정말 공부가 되어지면 계를 깨뜰리려고 해도 못 깨뜨립니다.
깨뜨릴 수가 없어요!
그게 진짜 지계인 거지요.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_()()()_
불법주차를 예를 들면, 올바른 시민들은 횡단보도 앞 사거리 모퉁이 학교 앞 이런 곳에 주차할 엄두를 못 냅니다.
왜냐? 거기 주차하면 나는 편하더라도 과태료 여부를 떠나 다른 차들, 보행자들이 너무나 불편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하라고 해도 잘 못합니다. 몇 번이나 주저주저하고, 설사 괜챦다고 해서 주차하더라도 스스로 불안, 불편해지고 그래서 어떻게든 남에게 피해 안 주는 그런 곳에 주차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시민의식 없는 사람, 도덕 불감증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래서 나라에서는 불법주차 과태료라는 걸 만들어 페널티를 주는 거지요.
말 안해도 그런 곳에 주차않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과태료 그런 거 없어도 아무 문제 없고요.
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안해도 거짓말 살생 못하는 그런 밝은 이들에게는 사실 계를 운운할 필요가 없지요.
부처님이 언제 지계 지지킨다고 끙끙(?)대시는 거, 보셨어요?
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합니다.
도덕을 지키며 살겠습니다.
댓글 가르침 감사드립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