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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F-86 세이버-2화- 우리공군의 전투기들
베스 추천 0 조회 251 13.09.10 12: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날개는 꺾였을지언정 이상마저 꺾이진 않을지어다.


소제목을 저렇게 쓰긴 하였으나, 물론 XP-86의 날개가 말 그대로 분질러지듯 꺾이진 않았다.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하고 우리는 광복을 맞이하던 때 즈음이던 1945년 8월 노스 아메리칸의 XP-86 개발 담당자는 자신들이 개발하던 물건에 후퇴날개를 채용하기로 했다. 이전 화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방법 이외에는 XP-86의 부족한 고속비행능력을 채울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후퇴날개와 관련된 기술은 독일에서 온 기술이므로 기분 나쁘다는 소리를 하던 목소리도 있었지만(누가 가야금은 망한 가야의 것이므로 쓰지 말란 소리했다는 것처럼), 이미 전쟁이 끝난 마당에 이런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듣고 후퇴날개의 장점을 포기할 개발자는 없었다(게다가 미국도 후퇴날개 항공기라면 이미 만들고 있었다. 단지 고속 비행을 위한 후퇴날개 항공기가 없었을 뿐이지).



 

 

대형 풍동안에 P-86의 1:1 모형이 들어가 있다. P-86 개발자들은 풍동실험 결과 자신들이 개발중인 전투기의 최대속도가 군의 요구를 만족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노스 아메리칸의 개발진은 날개를 후퇴날개로 바꾼 XP-86의 모형을 가지고 풍동 실험을 해 본 결과, 이 전투기가 실제 제작된다면 종전의 직선날개 형상에 비해 최대속도가 크게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다. 이 결과는 같은 해인 1945년에 바로 미 육군 항공대에도 전달되었고, 11월에는 미 육군 항공대도 XP-86에 후퇴날개를 사용하는데 동의했다.



 

 

 

노스 아메리칸 개발진은 실험결과를 토대로 XP-86의 날개를 35도 뒤로 젖히기로 했으나 이것만으로 날개의 문제가 전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이제 개발진은 XP-86 날개의 가로세로비도 새로 다시 정해야 했다. 가로세로비 값은 일반적으로 크면 클수록 (즉 날개가 앞뒤 폭이 좁고 좌우로 폭이 넓어지면) 항공기의 비행거리가 늘어나고 효율이 좋아진다. 또한 가로세로비가 커져서 날개의 앞뒤 폭이 좁아지면 항공기의 안정성에도 좋다고 여겨졌다(단, 이러면 날개가 매우 가늘고 긴 모양이 되므로 구조적으로 약해진다. 일장일단이 있단 이야기).


이에 따라 노스 아메리칸의 개발자들은 XP-86의 날개 가로세로비를 6으로 결정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큰 가로세로비를 가진 날개는 후퇴날개의 경우에는 도리아 안정성이 좋지 않았다. 후퇴날개의 경우 가로세로비가 커져서 날개가 좌우로 길어지면, 필연적으로 저속에서 항공기의 기수가 자꾸 올라가려는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이는 날개 끝 실속이란 문제 때문으로, 후퇴날개는 저속인 이착륙시나 급기동을 할 경우에 날개 끝에서 먼저 실속 현상이 생기며, 날개 끝에서 양력을 만들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후퇴날개는 날개 끝쪽이 날개 뿌리에 비해 더 뒤에 위치하게 된다. 그래서 날개 끝에서 양력이 줄어들면 항공기를 전체적으로 놓고 보았을 때 항공기 뒤쪽에서 뜨는 힘을 더 못 만들게 된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기수가 더 올라가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기수가 들리면 날개 끝 실속 문제는 더 커지며, 잘못하면 다시 기수를 내리지 못한 채 계속 기수가 들린 상태로 비행불능 상태에 빠져 회복하지 못하고 날개 전체가 실속에 빠져서(=양력이 없어져서) 고도를 잃고 추락할 수도 있다.


사실 이 문제는 1940년대 초반에 미 육군 항공대가 차세대 전투기를 실험하기 위해 커티스 항공사를 통하여 만들었던 XP-55에서도 등장했다. XP-55역시 후퇴날개를 가지고 있었으며(다만 고속 비행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노스 아메리칸의 개발자들도 커티스의 XP-55가 이런 문제를 겪었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심했다.



 

 

커티스-라이트 항공사가 개발하던 XP-55 어센더 전투기. 1943년에 첫 비행한 항공기로 미 육군 항공대가 프로펠러가 뒤에 달린 항공기의 특성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개발한 항공기다(같은 이유로 XP-54와 XP-56도 개발됨). 원래 탑재하기로 한 엔진 개발이 중단되고, 항공기 자체도 불안정하여서 결국 3대의 시험기만 제작된 채로 개발계획이 취소되었다(XP-54와 XP-56도 비슷한 운명을 맞이함). XP-55는 속도가 아니라 안정성 등의 이유로 후퇴날개를 사용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형상으로 독일은 P.75(실제 제작되지 않음)라는 항공기를, 일본은 J7W 신덴(종전 직전인 1945년 8월 7일 첫 비행)이란 전투기를 개발하였다.

 



결국 새로운 F-86 날개의 가로세로비는 6보다 더 작은 4.79로 조정되었다. 즉 날개 폭이 더 좁아졌다는 이야기. 또한 날개에는 슬랫(Slat)이라는 장치가 추가되었다. 슬랫은 날개 앞쪽에 위치한 장치로 평소에는 날개에 붙어 있으나 날개에서 실속이 생기려하면 날개 주변의 압력차이로 인하여 스프링의 힘으로 자동으로 앞쪽으로 튀어나왔다. 그러면 이 슬랫과 본래 날개 사이의 틈으로 공기가 흘러들어서 날개 위쪽으로 흐르는 공기를 더 가속시켜주었다. 그 결과 날개 위쪽의 공기흐름은 더 수월하게 뒤로 흘러 날개 끝 실속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이 슬랫이란 장치는 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이전에 영국의 대형항공기 전문 개발사인 핸들리 페이지가 처음 썼던 것이었으나 정작 이것을 전투기에 더 많이 써먹은 것은 독일이었다(반면 영국이나 미국 같은 다른 나라 항공기에서는 슬랫을 보기 어려웠다). 결국 미국은 이 슬랫에 대한 연구를 위하여 노획한 독일의 제트 전투기, Me262를 가지고 연구를 해야 했다.

 

 

 


슬랫(Slat). F-86은 아니고 다른 항공기의 것이지만.. 저렇게 날개 앞부분 일부에 ‘틈(slot)’이 있는 한편, 필요에 따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장치를 슬랫이라 한다. 영국이 처음 개발한 이후 2차대전중 독일의 Me109, Me262나 소련의 초창기 전투기들에도 적용되었다(정작 이시기의 영국 전투기엔 적용 안됨). 이들 초창기 프롭 전투기의 슬랫은 스프링으로 작동되는 것인데, 빠른 속도로로 순항 비행중일 때는 맞바람의 힘에 의하여 슬랫이 접혀들어가있으나 속도가 느려지거나 받음각이 커지면(급기동 상황 등) 맞바람이 슬랫을 누르는 힘이 약해져서 스프링의 힘으로 슬래싱 튀어나와 자연스레 날개에 틈이 생긴다. 다만 이후에는 사진속의 항공기도 그렇고, F-86도 그렇고 더 상황에 따라 조종사가 마음대로 슬랫을 조작할 수 있도록 유압식 슬랫이 대세가 된다.



F-86의 날개는 외형뿐만 아니라 내부의 구조물도 변경되었다. F-86의 날개 뿌리부분에는 연료탱크가 들어가 있는데, 날개 외피 내부에 통 모양의 구조물이 하나 더 들어간 형태였다. 이 통 모양의 구조물은 내부에 연료탱크를 담아주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날개의 하중을 담당하는 구조물 역할을 겸하여 F-86의 날개를 더 튼튼하게 해 주었다. 후퇴날개는 일반적으로 직선날개에 비하여 구조적으로 더 약해지기 마련이므로 이런 보강된 설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 외에도 본래 날개에 부착되기로 했던 스피드 브레이크 (공중에서 항공기의 속도를 급 감속하기 위한 판떼기)는 동체 후방으로 옮겨졌으며, 좌우와 하방, 이렇게 3개가 설치되었다.


 

 

비행중인 XP-86. 주날개가 35도 가량 젖혀져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수평꼬리날개 역시 후퇴날개 형상이다). 좌우 날개 앞으로 길게 뻗어 나온 것은 속도측정용 기구인 피토튜브로, 보통 시험용 항공기들은 정밀한 속도측정을 위하여 이렇게 긴 피토튜브를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양산형 모델은 더 짧지만 더 부정확한 피토튜브를 사용하며, 대신 긴 피토튜브를 사용하여 측정한 자료들을 토대로 보정하여 사용한다.

 



누구나 처음이 힘든 법


XP-86의 날개 형상이 후퇴날개로 결정된 것으로부터 2년 뒤인 1947년 1월, 드디어 XP-86이 첫 비행을 시도했다. XP-86이 첫 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랜딩기어를 내리는 순간 XP-86을 몰던 시험 비행조종사는 당황했다. 공중에서 뒷바퀴는 내려왔는데 어째서인지 앞바퀴가 절반 쯤 내려온 채로 더 이상 내려오지 않는 것이었다. 몇 십분 동안 재시도 했으나 끝까지 앞바퀴가 내려오지 않자 시험 비행조종사는 하는 수 없이 앞바퀴가 접힌 채로 착륙하기로 했다. 다행히 뒷바퀴가 땅에 닿는 순간, 그 충격에 의해 앞바퀴가 완전히 내려와서 고정되었으며 XP-86은 결국 무사히 활주하여 멈추어 설수 있었다.


이 문제는 XP-86의 전방 랜딩기어의 접히는 방식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보통 항공기들은 전방 랜딩기어가 앞으로 접혀 들어갔다가, 뒤로 펼쳐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만에 하나 랜딩기어를 움직이는 유압장치가 망가져도 공기저항의 힘으로 랜딩기어가 뒤로 펼쳐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XP-86의 전방 랜딩기어는 이와는 반대로 뒤에서 앞쪽으로 펼쳐지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 때문에 공기 저항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랜딩기어가 제대로 펼쳐지지를 않았던 것이다. 개발자들은 곧 유압장치를 더욱 강력한 것을 사용하여 XP-86이 정상적으로 전방 착륙장치를 펼칠 수 있도록 수정했다.


 

 

첫 비행을 하였던 XP-86 1호기. 착륙장치가 앞쪽으로 펼쳐지는 형태인데다가, 착륙장치를 덮는 평판 형태의 커버까지 붙어 있다보니 이것을 펼칠 때는 공기저항을 이기고도 남을 만큼 강력한 유압장치가 필요 했다. 그러나 이 점을 간과한 탓에 첫 시험비행 도중 하마터면 사고가 날 뻔했다. 사진속의 XP-86은 기수 부분에 기관총이 없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시험용으로만 제작된 기체이기 때문이다(다만 XP-86의 3호기는 기총사격 시험을 위하여 기총이 탑재되었다).

 


여러 번의 시험비행을 거치면서 XP-86는 수평비행 중 최대 1050km/h의 속도까지 냈었다. 이는 당초 군이 요구했던 것 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으며, 당시 운용되던 전투기나 폭격기들에 비해서도 120km/h 이상 빠른 속도였다. 그러나 XP-86의 상승률은 분당 120m로 군 입장에서는 불만족스러웠다.  이는 XP-86에 탑재된 엔진의 추력 문제로, 이후 더 추력이 강력한 J47 엔진으로 바뀌면서 해결된다.


 

 

비행중인 XP-86의 1호기. XP-86들은 총 3대가 생산되었으며, 이미 양산형이 실전배치된 1950년대까지도 각종 테스트를 위하여 계속 비행하였다.

 



명검 탄생


XP-86은 어디까지나 P-86의 개발에 앞서 만든 시제기였으며, 이제 노스 아메리칸은 양산형 기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3대의 XP-86이 제작되어 각종 시험을 거쳤으며, P-86의 첫 양산 모델인 P-86A는 3번째로 제작된 XP-86과 큰 차이가 없었다.


XP-86A 1번 기체와 달리 P-86A는 스피드 브레이크가 앞쪽으로 열리지 않고 뒤쪽으로 열렸다. 이 스피드 브레이크는 동체 하방에 있던 것은 없어지고 동체 좌우, 두 군대만 남게 되었다. P-86A는 2차대전 당시 대부분의 미군 전투기들과 마찬가지로 6정의 12.7mm(0.50인치) 기관총을 주 무장으로 삼았다. 다만 기관총이 기수에 집중 배치되었으므로 조종사 입장에서는 조준이 더 쉬워졌다. P-86A의 날개 밑에는 450kg(1000파운드) 폭탄 두 발을 탑재해거나, 외부 보조 연료탱크를 탑재할 수 있었으며, 혹은 지상공격을 위하여 총 8발의 5인치 HVAR(고속 공중발사 로켓)을 발사 할 수 있었다.


 

 

 

 



 

 

날개 하면에 500파운드 폭탄을 탑재한 F-86A. 파란색인 것으로 보아 실탄이 아니라 실제 폭탄과 같은 무게로 제작된 훈련탄인 듯하다(훈련탄은 폭약 대신 콘크리트 등을 채워서 무게를 맞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XP-86은 상승률이 좀 모자랐는데, 이 문제는 엔진을 J47으로 교체하면서 해결되었다. J47은 본래 XP-86이 사용하던 J35과 거의 비슷한 크기로, 압축기 형태만 좀 바뀌었으나 그 힘은 J35에 비하여 20%가량 더 강력했다.


 

 

F-86이 지상에서 로켓을 발사하는 시험을 하고 있다. (잘 보면 크레인으로 항공기 공중에 매달아 놓고 쏘고 있다....) F-86A가 지상공격시 주로 쓰던 로켓은 5인치 HAVR로 2차 대전 당시 전투기들이 쓰던 것과 비교해서 큰 차이는 없다.

 


P-86A는 1948년 5월에 첫 비행을 시작하였으며, 이들은 곧 군으로부터 적합판정을 받았다. 이렇게 P-86이 개발되어가는 사이 군 내부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47년에 미 육군 항공대는 미 공군으로 독립하였으며, 1948년에는 항공기의 명명법이 바뀌어서 전투기는 P 대신 F라는 약자를 쓰게 되었다. 이에 따라 P-86A도 F-86A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F-86A는 더 강력한 J47엔진 덕에 최대 속도는 종전 보다 120km/h 더 빨라져 1080km/h 의 속도로 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상승률 역시 기존 XP-86보다 두 배 가량 높아졌다.

 


 

 

F-86과 함께 이 전투기가 탑재할 수 있는 무장들이 지상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 제일 왼쪽에 있느 납작하게 생긴 물건은 폭탄이 아니라 보조 연료탱크다.

 


 

 

 

미 공군은 33대의 F-86A를 먼저 구매하기로 했었는데, 이 처음 생산된 33대의 F-86A는 F-86A-1이라 불리었으며 주로 시험용으로 많이 쓰였다. 그리고 막 F-86A-1이 첫 비행을 하던 때인 1948년 5월, 미 공군은 2번째로 노스 아메리칸과 F-86A 구매 계약을 맺었는데, 이는 333대에 달하는 상당한 물량이었다.


이 두 번째 계약에 따라 만들어진 F-86A는 F-86A-5라고 불리었는데, F-86A-1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먼저 엔진은 본래의 J47-GE-1에서 몇 가지 문제가 수정된 J47-GE-7으로 교체되었다. 또한 F-86A-5는 방풍창(즉 전면 유리창) 아래턱이 아랫부분이 V자 모양으로 파인 형태로 개량되었다.


F-86A-5에는 겉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혁신적인 변화도 있었다. 기존 F-86A-1는 2차 세계 대전때 쓰던 조준기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조준장치가 탑재되어있었으나, 이 F-86A-5는 레이더를 이용한 조준시스템(A-1B GPR 조준기와 AN/APG-5C 거리측정 레이더)이 탑재되었다. F-86A-5의 기수에는 작은 레이더가 탑재되었는데, 이 레이더는 전방에 위치한 적기와의 거리를 측정해 주었다. 이 거리 정보는 아날로그식 컴퓨터의 계산 자료로 활용되었으며, 컴퓨터는 어느 지점을 조준해야 적기를 정확히 맞출 수 있는지 알려주었다. 이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다이얼을 조종사가 돌려가며 적기와의 거리를 파악하던 시스템에 비하면 훨씬 큰 발전이었다(이에 대해서는 P-51D 5화 참조).


 

 

F-86A-5의 레이더 구성도. 공기흡입구 바로 위쪽의 내부에 작은 레이더가 탑재되어 있다. 이 레이더는 전방에 나타난 물체의 거리를 측정해준다. 현대의 레이더처럼 특정 목표물을 조종사가 지정해주거나 하는 기능은 없었으며, 기총의 조준용으로만 쓰였으므로 현대의 전투기용 레이더와 비교하면 탐색 가능한 거리나 폭이 넓지는 않았다.

 


 

 

F-86A-5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생산된 24대는 더 신형 조준장치(A-1CM 조준장치와 AN/APG-30 레이더)가 탑재되었는데, 이 덕에 조준 가능한 거리가 더 늘어났다. 새로운 레이더를 위하여 레이더가 탑재된 부분 공기흡입구 윗부분은 조그맣게 검은색으로 칠해졌다. 이 신형 조준시스템을 탑재한 F-86A는 F-86A-7으로 불리었다. 한편 기존 생산된 F-86A-5도 군에 납품된 이후에 같은 신형 조준 시스템으로 교체되었는데, 이들은 F-86A-6로 불리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F-86A의 정면 사진. 기수 부분에 있는 3개의 작은 구멍이 바로 기총이 들어가 있는 자리다. 반대편에도 마찬가지로 기총이 들어가 있다. 사진에서 검은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바로 AN/APG-30 레이더가 들어가 있는 부분이다. 한편 공기흡입구 아랫입술 부분에 아주 작은 검은색 네모칸이 보이는데, 여기에는 전과확인을 위한 차량용 블랙박스 건카메라가 들어가 있다.

 


항공기의 속도를 측정하는 피토튜브의 경우 F-86A는 본래 공기흡입구 안쪽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위치에 있으면 제대로 된 속도를 측정하지 못한다는 점이 발견되었으며, 대부분의 F-86A 모델들은 이후 날개로 피토튜브의 위치가 변경되었다.


한편 F-86A는 비상탈출을 위하여 T-4E-1 사출좌석이 탑재되었다. 조종사는 먼저 캐노피를 사출시킨 뒤, 사출좌석을 작동시켜서 비상탈출을 했다(현대의 전투기는 탈출 레버를 당기면 자동으로 캐노피가 날아간 다음 사출좌석이 작동한다).


1949년, 미 공군은 F-86의 이름을 공모하였다. 여러 이름이 올라왔으나 최종적으로 당선된 이름은 세이버(Saber : 기병도)였다. 이듬해 발발하게 되는 한국 전쟁에서 활약할 명검, 세이버는 이렇게 탄생하였다.

 

 

 

 

 

F-86A의 조종석에 막 조종사가 오르려 하고 있다. 조종사는 이렇게 F-86A의 동체 하부 점검창을 딛고, 동체 옆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조종석으로 올라간다. 사진에서 조종석 옆쪽에 세로로 그어져 있는 검은선을 따라 아래로 내려와 보면 작은 네모난 칸이 있는데, 이곳도 조종사가 발을 딛는 곳이다(평소에는 스프링으로 문이 닫혀있으나 발을 집어 넣으면 문이 안으로 접혀 들어간다). 지금 조종사가 딛고 있는 점검창은 무장 정비사들이 F-86의 탄약을 보급하는 곳이기도 하다. 사진속의 주인공은 해리슨 팅(Harrison Thyng) 대령으로, 2차대전 중 스핏파이어(본래 영국 전투기였으나 미군도 소수 사용) 전투기를 몰고 5대의 적기를 격추시켰으며 한국전쟁중에는 F-86을 몰고 5대의 적기를 격추시켜 두 전쟁에서 모두 에이스가 되었다(단, 팅이 격추기록을 세운 F-86은 사진속의 F-86A가 아니라 이후 등장하는 F-86E였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이야기 1. 기병도, 세이버


세이버(Saber)는 영국에서는 세이버(Sabre), 프랑스에서는 사브르, 네덜란드는 샤벌, 독일은 재블 등으로 부르는 칼이다. 이렇게 유럽 각지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 이 칼은 그 만큼 유럽 각지에서 널리 사용된 칼이기도 하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종횡 무진하던 19세기 무렵의 병사들은 근대식 총을 들고 나란히 줄을 선 다음, 장교의 명령에 따라 전방을 향해 총을 쐈다. 지금처럼 엎드려 쏘거나 숨어서 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열병식을 하듯 이렇게 줄을 맞춰 다니며 전방에 대해 신호에 따라 동시에 쏘는 것은 당시의 총 때문이었다. 당시의 총은 명중률이 형편없어서 혼자서 제각각 쏘면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에 여러 명이 동시에 일정지역에 쏴서 일종의 화망을 구성했던 것이다. 또한 총알을 총구 앞으로 장전해야 했기 때문에 엎드려서 총을 쏘고 나면 장전하기가 어려웠다.


이미 구시대의 말위에 올라 앉아 갑옷을 입고 창과 철퇴를 휘두르는 기사들은 사라진지 오래였지만, 19세기에도 여전히 말을 탄 기병대는 중요했다. 당시의 총은 장전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에 일단 총을 쏘고 난 다음 재장전을 하는 틈을 노려 기병대가 돌격 하면, 소총병들 코 앞가지 다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총처럼 연발 사격도 불가능하고, 재장전도 오래 걸리던 당시의 총으로는 코앞까지 다다른 기병대를 막을 길이 없었다. 기병대는 칼을 빼들어 소총병들을 유린하였고, 일단 대열이 무너진 소총병들은 기병대에게 속수무책이었다.


바로 이 당시 기병들이 사용하던 칼이 세이버다.


 


 

기병대가 사용하던 칼, 세이버. 사진의 것은 실제 옛날 칼은 아니고 수집가들을 위하여 당시 칼을 재현하여 현대에 새로 제작한 물건이다(참고로 알만한 분들은 알겠지만, 필자는 세이버를 좋아한다. 뭐 이 세이버는 아니지만...).

 

본래 유럽은 주로 곧은 모양의 칼을 사용하였으나 이후 몽골 기병이 사용하던 휜 모양의 칼이 동유럽을 통해 전파되기 시작하고, 이후 유럽에서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세이버 같이 칼날 폭이 좁고 휜 모양의 군도는 15~17세기경 독일과 스위스 지방에서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유럽 각지에서 기병도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단 모든 세이버가 반드시 칼날이 휜 것은 또 아니다).


이러한 세이버는 칼을 들일이 없는 현대의 군대에서도 행사를 위한 예도로 종종 쓰인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이야기 2. 음속 돌파 세이버


F-86은 초음속 전투기가 아니다. 그러나 F-86도 초음속 돌파를 한 적이 있다. XP-86으로 급강하 시험하던 노스 아메리칸의 시험 비행 조종사는 비행계기판이 일순간 이상해진 것을 느겼다. 시험 비행조종사와 개발진은 데이터들을 분석해본 결과, XP-86이 아무래도 마하 1.0을 넘어 음속의 벽을 깼던 것 같았다. 그러나 XP-86의 속도측정 장치는 마하 1.0 이상의 속도를 측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마침 얼마 안가 NACA의 로켓 추진 시험기, X-1이 마하 1.0을 깼다. 노스 아메리칸은 이 X-1이 비행한 것으로부터 5일 뒤, NACA로부터 마하 1.0 이상의 속도를 잴수 있는 장비를 빌려 XP-86에 탑재한 뒤 이전과 동일하게 급강하를 시도 했다. 그 결과 XP-86이 급강하중 낼 수 있는 최대속도는 마하 1.02라는 수치가 나왔다. 아마도 X-1이 시험하기 이전에 XP-86이 경험했던 최대속도도 마하 1.02 정도였겠지만, 당시에는 기록을 정확히 하지 않았으므로 증명할 길은 없다. XP-86이 세계 최초로 음속의 벽을 넘어본 항공기라는 사실이, 정황상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는 셈이다(물론 급강하중 내는 최대속도와 수평비행에서 내는 최대속도는 다른 이야기지만).

 

 

 

 

벨 항공사가 제작한 X-1 시험기. 이 항공기의 동체형상은 12.7mm 총알과 흡사하며 거기에 날개만 붙여놓은 꼴이었다. X-1은 폭격기에 실려서 공중에 올라간 다음, 분리된 뒤에 로켓엔진으로 가속하여 속도를 냈다. 마하 0.7에서 마하 1.3 정도의 속도 영역에 대한 실험용 항공기였으며, 공식적으로 세계 최초로 마하 1.0을 넘은 항공기이기도 하다. 다만 고속항공기 답지 않게 날개는 직선날개다. 날개꼴만 보자면 음속 돌파에 부적합해 보이기도 하지만, 대신 당시 다른 항공기들에 비해 날개가 더 얇다(8%, 참고로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F-86은 10~11%). 뾰족하게 생긴 동체는 그래도 F-86 같은 항공기들 보다 음속 비행하기에 더 나은 편...뭐 무엇보다도 X-1이 초음속 비행을 하는데 유용했던 것은 큰 추력을 낼 수 있던 로켓엔진 덕분이었지만..(엔진의 힘이 F-86의 것보다 50%정도 더 강력하다). 최대 속도는 마하 1.3 정도이며 약 5분간 엔진 작동이 가능하다(착륙시에는 엔진을 끄고 활공하여 착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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