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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이후 환경과학의 태동과 환경연구 5-90년대 대표적 환경분야 연구는 선도기술개발사업( G-7연구)
난지도 쓰레기장 분리재활용 처리는 실패
서울시와 현대건설이 책임문제로 공방만
주택용 간이정화시설 정화조 국내 최초 개발
분리재활용 주장한 폐기물 전문가 소각으로 돌변
병아리 페사는 산성비 때문이다 민원 폭발
수돗물 중금속오염사건으로 생수,정수기 사업 확산

1980년대 성장기의 환경연구 ‘난지도’
1980년에 국가적으로 환경관리를 총괄하는 환경청이 탄생되면서 환경오염에 대한 심각성이 조금씩 부각되기 시작했다.
KIST에서의 환경관련 연구도 대기, 수질, 폐기물 전반에 걸쳐 비교적 활발한 연구가 수행되었지만 1980년대 초의 연구방향은 여전히 조사연구 방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대기의 경우 서울, 부산을 포함한 전국적인 대기오염도 조사 및 대기질 관리에 관한 연구가 수행되었고 울산공단에 이어 온산공단의 환경관리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여천공단 역시 농작물 피해보상문제를 다룬 여천공업단지 대기오염 영향연구가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수행되었다. 수질관련 연구는 분뇨의 처리 및 비료화 관련연구와 수질모델링 연구 등이 부분적으로 수행되었고 환경영향평가제도가 도입되면서 광양제철소, 울산회야댐 등의 영향평가를 수행하였다.(사진/울산대한석유공사)
우리나라에서 발생되는 폐기물의 대부분을 매립에 의존하고 있었다. 1980년대 초 서울시는 1986년 서울에서 개최되는 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이전에 대형 쓰레기처리공장을 난지도에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그 기본계획을 KIST 환경공학연구실에 의뢰하였다.
난지도에 세워질 쓰레기처리공장의 공정은 분리재활용공정으로 하겠다는 것이 서울시의 기본방침이었다. KIST의 연구는 우리 실정에 맞는 최선의 분리재활용공정을 선정하고 이 공정을 이용한 기본설계를 하는 것으로 수행될 수 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설치된 하루 처리량 1500톤 규모의 난지도 쓰레기처리공장은 쓰레기 성상이 독특하고 완벽한 분리수거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당시의 서울시 발생쓰레기를 처리하는데에는 무리였다. 결국 서울시와 건설사인 현대건설과의 장기간의 책임문제의 공방만 남긴채 이 처리공장은 폐기되었다.
계획단계에서 개최했던 자문회의에서 도시쓰레기의 처리는 분리재활용공정을 선정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폐기물 전문가들이 뒤이은 대책회의에서는 비용이 많이 들긴 하지만 역시 쓰레기의 처리는 소각이 최선이라는 의견으로 돌변했다.

환경에 대한 전 국민의 관심이 증대되면서 환경관련 연구결과가 시사성을 가질 수도 있어 결과발표를 놓고 고심하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88올림픽 직전에 수행된 서울시의 산성비에 관한 연구이다. 서울시를 여러 지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에서 내리는 빗물을 받아 pH를 측정하고 이를 종합하여 서울시의 산성비 강우상태를 파악하는 연구인데 연구결과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예측하고 있었던 상황 그대로였다.
문제는 이러한 연구결과를 KIST에 출입하는 중앙일보 기자가 자료를 입수하여 사회면 톱으로 기사화하면서 발생하였다.
서울시 전체가 산성비 문제로 들끓으면서 참여 연구원들은 걸려오는 전화에 시달렸으며 KIST 보직자들 역시 관련부처의 비난성 전화를 받아야 했다.
심지어 어떤 전화는 간밤에 비를 맞고 병아리가 모두 죽었는데 산성비 때문이 아니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올림픽 개최시기가 가까워지면서 서울시의 대기오염상태를 보여줄 수 있냐는 우려를 하고 있던 관련부처의 관리는 산하 연구기관을 통해 KIST 연구결과에 대한 신뢰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일부 기관에서는 측정자료의 정리과정에서 pH의 평균값을 구하면서 각각의 pH의 수소이온농도를 구하고 이를 평균한 뒤 pH값으로 환산하는 교과서적인 방법을 오히려 잘못된 방법이라고 지적하고 상대적으로 pH값이 올라가는 단순 산술평균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다행히 KIST의 계산방법이 옳다고 그 부처의 장이 인정함으로써 더 이상 거론되지 않았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어처구니 없는 연구수행의 한 과정이었다.
주택용 간이정화시설 정화조 개발
전두환 시절인 1986년 말경 조사연구 위주의 연구과제들에 다소 식상해 있던 환경공학연구실에 과기처로부터 개발연구의 요청이 들어왔다. 과기처의 특정연구개발비로 연구를 수행한 경험이 전무했던 당시로서는 의외의 요청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개발을 지시했다고는 하는데 아래로 전달되어 과기처의 조정관까지 내려오면서 무엇을 개발하도록 지시했는지가 모호해졌다.
연구자들은 개발해야 할 공정 또는 장치를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한강변의 정비가 완료된 것을 보러 나온 당시의 전두환대통령이 수행원들에게 강물을 오염시키는 주범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때 수행한 관계관이 가정에서 나오는 오폐수가 물을 오염시킨다고 답하면서 가정에서 나오는 오폐수를 정화하는 시설을 개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유추해석 할 수밖에 없었다.
“주택용 간이정화시설 개발”이란 제목으로 가정용 소형 정화조를 개발하는 연구를 시작하였다. 정화조 개발연구의 의미는 지금까지의 환경조사연구, 환경오염예측연구 등의 조사연구에서 환경오염을 저감시킬 수 있는 장치 및 공정개발 쪽으로 방향을 선회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가정용 정화조의 개발은 축산정화조의 개발로 연결되어 KIST에 많은 기술료를 벌어다 주는 효자노릇을 했다. 정화조는 분뇨가 포함되어있는 오폐수를 처리하는 장치이기 때문에 이 정화조의 개발연구에서 분뇨가 취급될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였다. 분뇨가 가지고 있는 악취와 더러움 때문에 연구참여자가 고생을 하는것은 물론 타 연구자들에게까지 피해를 끼치는 면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남들이 기피하는 분뇨처리용 정화조의 개발연구가 최근에는 오수처리시설(합병정화조)의 개발로도 연결되어 국가에서 요구하는 시점에서 외국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처리시설 및 기술을 공급할 수 있게되었다.
1990년대 안정기의 환경연구 수돗물 중금속오염
1989년 7월 환경연구에 커다란 변화를 준 환경사건이 발생하였다.
흔히 1차 물파동 사건으로 알려진 수돗물의 중금속오염사건이었다.
이 사건 역시 언론에 연쇄적으로 보도되면서 그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고 전 국민이 수돗물을 기피하면서 생수 소비량이 급격히 증가했다.
이 당시 생수사업은 보사부의 강력한 규제로 14개 업체만 미군 등 해외거주민에게만 판매할 수 있는 제한적 사업이었다.
전국의 약수터는 오염되지 않은 물을 먹고자 하는 사람들로 길게 줄을 섰다.
당시 정부에서는 맑은물 대책을 발표하고 이를 위해 각 부처에서는 대안을 마련하여 경쟁적으로 발표를 하였으나 급조한 부처별 발표는 일관성 없이 제각각이었다. 과기처 역시 물을 맑게할 수 있는 대안마련에 신경을 썼으며 당시 홍재희국장이 조정관으로 있었던 과기처 생물해양조정관실에서 대책수립을 위한 실무작업을 수행하였다.
이때 환경전문가로 참여한 최용수박사와 신응배박사는 작업이 진행된 3개월여 동안 50여일을 과기처에 출입하면서 새벽까지 작업을 하기도 했다.
내심 지금까지 부진했던 환경분야에 대한 정부의 R&D투자비를 이번 기회에 증액시키고 KIST의 환경연구에 대한 위상을 제고시켜 보려는 노력을 했다.
결과적으로 과기처에서는 물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긴급과제를 선정했고 이 과제의 추진을 위해 과기처 잔여연구비 20억중 14억3천만원을 긴급과제 연구에 할애했다.
KIST는 이중 3개 과제인 “축산폐기물 및 분뇨의 안정화처리와 재이용기술 적용” “단독주택용 분뇨정화조의 개선” “아파트 및 공공건물용 오수정화시설의 개선” 연구에 7억원을 배정했다. 그때까지 과기처를 통해 지급된 환경분야의 국가연구비가 총 4억원 정도였던 점을 고려하면 이때가 환경연구의 한 전환점이 되었다. 환경기술개발지원단이 이때 조직되어 KIST에 현판을 걸었으나 지원단의 활동은 미미하였다.
KIST에 환경연구의 기틀을 다져놓고 신응배박사는 1990년 3월 한양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긴급과제 등으로 늘어난 연구비와 타부서에 속해있던 환경관련 인력들이 모여 환경공학연구실은 수질연구실, 대기연구실 및 폐기물연구실의 3개 연구실로 확대되어 환경연구센터이 되어 환경복지단에 속해 있다가 2003년 4월에는 환경공정연구부로 재편되었다..
1990년대의 환경분야 연구개발은 선도기술개발사업(일명 G-7연구)으로 추진했던 환경공학기술개발사업이 대표될 수 있다.
KIST도 수질, 대기 및 폐기물의 전분야 연구에 고르게 참여하여 많은 연구성과를 거두었다. 1995년말에 오염토양 복원을 목표로 하는 환경복원기술개발과과기처에서 추진한 STAR과제의 일환의 연구를 수행했다.
2000년대 하수관거 정비 사업 초석 마련
그동안 5회에 걸쳐 산업화시대에서 공해와 환경으로 넘어오던 시대의 환경연구의 흐름을 짚어보았다.
박정희시대 과기원이 설립되면서 해외에서 환경전공자로 국내 입국한 신응배박사((37년생,함남 혜산출)는 환경연구의 초석을 마련했다.
환경분야가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70년대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및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환경공학연구실장, 부장 및 겸임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환경분야 최신과학기술을 도입하여 국내에서 효시적인 연구업적을 이룩했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경험했던 하수도 시스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970년대 후반부터 선진국과 비교해 열악한 우리나라 하수도 시설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공공 복지증진을 위해서 정책적, 기술적인 개선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여러 차례의 기고와 논문 발표를 통하여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하수관망의 설계 및 운영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1996~97년에는 환경부의 연구과제인 ‘도심 하수관 정비기법 연구’를 통하여 부실 하수관거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 연구보고서는 국내 하수관거 분야의 효시적인 지침서로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 하수관거의 부실정도를 등급화하여 진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정하여 우리나라 하수도 시설기준에 반영하였으며, 체계적인 절차를 통한 부실하수관거 개, 보수 및 기능개선방안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또한 도시지역의 하수관거에서 발생하는 침입수/유입수(I/I)에 의한 하수처리장의 수질저하 문제와 합류식 하수관거 월류수(CSOs)가 방류수역에 미치는 영향 등의 문제를 국내에서 최초로 제기하고 관거정비사업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신응배박사(사진)를 중심으로 산업화에서 환경산업시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연구를 수행한 과제들을 보면 대부분 국내에서 최초의 연구로 집약된다.
◾울산,온사지역등 공장부지 주위의 환경조사(75-77년)◾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 환경관리(76-77)◾창원공업기지 폐수관리기본계획연구(78)◾한국수출산단 종합폐수처리장 기본조사(77-79)◾정화조 오니처리시설연구(78)◾KAIST 내 폐수성상조사(78)◾발전소주위 환경보전 및 공해연구(78-79)◾전국특별대책지역 대기관리(79) ◾도시서민층을 위한 개량변기 및 처리시설(79)◾수자원 오염관리 및 폐수처리공정개발(79)◾전국지역별 대기관리에 관한연구(80) ◾수계수자원 오염관리에 관한연구(80-81) ◾서울시 대기오염도 연속자동측정 자료의 통계처리(81)◾분뇨 실용화(액비화)에 관한연구(82)◾다단식 혐기성소화방식에 의한 분뇨처리도 실험연구(82) ◾대기·수질 환경관리 전산모델연구(82)◾서울시 도시고형폐기물 처리장 건설 기본 계획(83) ◾수계별 수질예측 수치모델의 개발(84-85)◾회야수원지 환경영향평가(84-85)◾크롬 폐기잔유물 처리·처분(85)◾산성비 연구: 서울시를 중심으로(85-86)◾우리나라 수질오염 방지연구(86-87)◾회전원판법과 혐기성여상조를 이용한 고농도 폐수의 처리87)◾수계별 수질예측 수치모델 개발(86-87)◾주택용 간이정화시설 개발(86-87)◾ 한강주운 타당성 조사사업 환경조사(87-88)◾환경보전기술개발에 관한 연구(87-88)◾주택용 간이정화시설 개발(87-88)◾특정산업폐기물 수거시스템 및 효과적인 처리방법에 대한 연구(88-89)◾대기오염 적응식물 선발 연구(88-89)◾환경기술개발 종합계획(안) (89)◾단독주택용 분뇨정화조의 개선(91)◾서울시 지하철내 환경기준 성정 및 환경관리 방안에 관한 연구(92)◾하수의 고형물질 입도분포 특성과 처리효율(93)◾산업폐기물 레미콘 회수수의 활용방안(94)◾고도산업사회의 음용수수질 기준(진로,95)◾도심 하수관 정비기법 연구(96-97)◾하수도시설개축 및 기능개선전략연구(97-98)◾ 시화공단 발생하수 종합관리방안(97-98)◾지속가능한 수자원개발과 환경영향(98-99)◾미생물 활성도 지표개발을 위한 산소섭취율의 적용(20-21)◾한강수계 하수관거 정비 타당성 조사(01-02년) ◾ ‘합류식하수관거 월류수 및 분류수 우수관거 초기유출수 오염부하 기초조사(02-04년)등이다.
울산온산공단지역의 환경조사와 피해조사도 처음이며 공단지역등을 중심으로 폐수관리방안 연구도 처음이다. 폐수기술은 물론 주택용 정화조개발등 기술개발도 국내에서 첫 선을 보인 기술들이다.
정책적인 환경보전기술개발, 레미콘 폐수 회수방안, 하수관거정비등 오늘날의 연구의 시발점을 마련해 준 신응배박사의 활동은 환경과학의 역사와 함께 한다.
*신응배박사는 함경남도 단천군 단천읍 동상리 4번지에서 태어나 대구를 거쳐 한양대 공대 토목공학사, 서울대 석사, 미국Vanderbilt University에서 토목․환경공학과 박사를 받았다.
학위논문은 Methylmercury Uptake by Fish and Reaction Mechanisms of Mercury Biomethylation Under Controlled Laboratory Conditions ( Prof. Peter A. Krenkel)이다.
한국물학술단체 연합회장/안산환경기술개발센터장/한국환경과학기술협의회장/ 국무총리실 수질개선기획단 민간위원/국무총리실 새만금환경대책위원/대한환경공학회 6,7대 회장/태평양 연안지역 유해폐기물 학회장/대한토목학회부회장/국무총리실 낙동강 수질개선과 위천공단 대책위원회 위원 /ASEM/AEETCPPGG 제6차 회의 의장/대통령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논문으로 국제 학술지 및 학술발표 논문 55편, 국내 학술지와 학술발표 논문 193편, 연구보고서 100 여 편을 발표했다.
(환경경영신문 http://ionestop.kr 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 환경경영학박사, 시인, 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