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로보로스
뱀들의 왕
영겁의 상징
우주의 순환
줄리오 로마노
인류의 마지막날
우로보로스(그리스어: ουροβóρος)는 "꼬리를 삼키는 자"라는 뜻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고대의 상징이다. 커다란 뱀 또는 용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삼키는 형상으로 원형을 이루고 있다. 먹어도 먹어도 재생이 반복된다. 영원한 회귀와 무한한 순환, 영겁을 나타낸다. 스스로를 삼키는 고통은 어떨지? 감히 상상해 본다. 추위에 오른손을 왼손 소매에 넣은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추운 겨울, 운동장에서 한 시간째 연설하시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영원할 것 같은 순간에 난 혼나고 말았다.
인류가 지닌 감정중 가장 오래되고 진한 감정이 고통이다. 인류는 이 감정으로 인해 진화와 발전을 거듭해 왔다. 미국 출신의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ips Lovecraft, 1890년 8월 20일 ~ 1937년 3월 15일, 미국의 호러, 판타지, 공상과학 소설가)가 이 극강의 공포를 우주적 공포라는 의미로 "Cosmic Horror"라는 단어를 썼다.
장수말벌이 폭격기처럼 변해 나를 향해 날아오는 순간, 머리 위 흰 수염고래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순간, 인간을 초월한 압도감이 느껴지고 무력감이 몰려오는 순간, "코즈믹 호러"가 찾아온다. 밀려오는 미지의 공포감! 도망치다, 싸우다, 울다, 결국 포기한다. 거대한 공포 심해, 신, 우주, 괴물, 미지의 공포심을 말하는 것이다.
삶에 압도되는 순간을 가리킨다. 살아있기 때문에 느끼는 공포이다. 핵폭탄이 떨어지는 순간, 극도의 열기로 뇌가 부글부글 끓다가 폭발해 해골을 뚫고 튕겨나가는 느낌, 2000년 전, 위대한 땅 폼페이 최후의 날, 포말처럼 밀려오는 화산재를 바라보면서 죽어가는 것( 물론 그들은 가스로 인해 질식사했다.)과 같은 공포를 눈 뜨고 직시하는 감정을 말한다. 매미는 떠나고 허물만 남은 것처럼 그들은 사라지고 없다. 알 수 없는 것들 절망, 공포, 무력감, 슬픔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다가오는 것이다. 복잡, 미묘한 감정이다. 시공간을 넘어서 다가오는 것들이다.
인도의 잔디밭에 놓인 의자 위, 설풋잠이 들었는데, 스프링 쿨러와 무지개, 그리고 물 위를 걷는 여신처럼 다가오는 킹 코브라와 눈을 마주친 적이 있다. 소용돌이치는 극한의 공포와 웅장함과 경이로움에 숨이 멎었다. 제왕다운 모습에 압도되었다. 프랑스 왕족의 만찬에 나온 설탕 조각작품처럼 모든 게 굳어 버렸다. 찰나의 순간이 영원처럼 결정체가 되었다.
프랑스의 시인 쥘 르나르(Pierre-Jules Renard Jules Renard)의 <박물지>에 실린 시, 제목은 뱀(Le serpent) 내용은 "너무 길다(Trop long)"가 전부인 일행시이다. 이 한 줄이 시 그 자체였다. 세상에서 제일 짧은 시이다. 한동안 이 시를 놓고 고민했다. 나 같음 더 줄여서 긴뱀, 또는 긴 배에 <~~ 앰이라고 지었을 텐데, 시인의 재능을 오랫동안 의심했다. 이 시로 그는 더군다나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이 시와 화해를 하는데 46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 시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히틀러를 뜻하는 뱀과 그의 만행이 너무 길다는 속뜻과 기독교적인 인간의 죄가 기다란 해석도 또한 가능하다는 데 있다. 이육사 시인을 존경하는 내 맘과 프랑스 사람들의 교감이 일치하는 순간에 깨달음을 얻었다. 위대한 시는 언어의 현란함이 아니라 시대적 아픔과 시인의 삶에 대한 이해를 하고 난 순간에 나타났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내게 있어서 신은 살았다 죽었다를 반복했다. 뼈째먹힌 생선, 멸치 같은 인생이었다. 머리 잘린 뱀이 악다구니를 쓰고 마지막 발악을 한다. 오금이 저려온다. 수년간 담근 술에서 깨어나 발악하는 뱀처럼 난 그렇게 3년을 가사 상태에서 살아왔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후반전을 준비해야 하는 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다. 채집당한 곤충처럼 등짝에 핀을 꽂힌 채 수년을 버텼다.
허망한 젊음도 갔다. 과거에 아름다웠지만 이젠 늙어버린 연예인들의 근황을 보고 내가 안타까운 이유는 그들의 아름다움이 가버려서일까? 아님 그들의 청춘이 나와 함께 사라져서일까? 내 또래 유명인의 늙음을 보고 울컥했다. 고급지고 찬란한 외모가 사라졌다.
청순함과 섹시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여배우는 눈, 코, 입이 따로 웃었다. 방부제 미모라는 기사 제목이 반어법처럼 보였다. 본인도 늙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기사가 더 나았을 것이다. 사라진 청춘의 씁쓸함이 느껴졌다. 뱀은 변온동물이라 날이 더워지면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인다. 늙지 않는 불꽃같은 삶은 결코 없다. 스스로 삼키고 죽어가는 뱀은 오히려 정직했다. 위대한 파괴자이다. 배부르게 죽어가는 뱀은 행복했을까? 자급자족이 가능해서 좋겠다. 아직은 놓아버려서는 안 되는 내 누추한 삶이여!
사자도 피하는 입속까지 검은 블랙맘바는 날씨가 갑자기 더워지면 스스로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심지어 자신의 몸도 삼킨다. 사람도 극한의 스트레스에선 식모증이나 손톱을 뜯는다. 엄지가 너덜해지고 약지의 손톱에 구멍이 났다. 뱀이 자신을 먹고 있는 모습은 당황스럽고 이상한테 나 또한 스스로를 갉아먹는 일상을 살고 있었다. 망각의 가닥들을 뜯어먹고 있다. 고통의 잉여에서 벗어나고 싶다. 뒤죽박죽 한생의 기억의 혼란이 환청으로 치환한다. 내 몸을 뜯어먹으며 살아온 날들, 절망을 넘어 망각이라는 동굴로 향한다.
스스로가 먹다 먹다 자신의 몸을 다 뜯어먹은 에리식톤이 생각난다.
뱀만이 진실을 알고 있겠지! 뇌가 속고 속이는 현상들,
에베레스트에서 벌거벗고 얼어 죽은 이들이 떠오른다
우로보로스에서 불교의 윤회를 본다. 1초에 50번 흔드는 방울뱀의 요령소리도 환청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왜 이유 없이 오만한가? 돌고래는 반구로 잠을 자며 언어가 다르고 이중언어를 쓰는 것들도 있다. 그들에게 신이 손을 선물해 주었다면 그들은 해저 도시를 만들어 우리를 초대했을지도 모른다. 자연의 위대함과 경이로움을 배우고 가는 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