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사람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3무(無) 형제가 있습니다.
“무대뽀, 무개념, 무책임”이 그것입니다. 원래 무대뽀는 일본말에서 유래되었다 합니다.
임진왜란 전 일본이 전국통일으로 엄청난 내전을 벌일때 일부 영주들은 포르투갈 상인들을 통해 조총을 수입합니다.
조총을 일본어로 텟포라(철포) 부른다 합니다. 텟포를 소유한 영주들에게 조총이 없는 사무라이 집단이 덤벼드는 모습을 무텟포라 칭하며 오늘날의 무뎃뽀라는 단어가 생겼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한 개념이 없는 사람과 책임감이 없는 이를 무개념, 무책임이라 칭합니다.
어느 조직이든, 조직을 선도해야 하는 리더들에게 요구되는 다양한 덕목 가운데 필수 조건이 책임감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 침략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왜군은 안전한 철수를 보장해 달라며 명나라와 강화협상에 나선 상태입니다.
이때 조선 조정에서도 강화를 할것인가 말것인가를 두고 거센 논쟁이 일어납니다.
강화를 하고 민생안정과 전후 복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들은 7년 전쟁시
실무진에 있었던 대신들이라 합니다.
그런데 일본에 복수를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던 이들은 강화론자들을 매국노 로 거세게 몰았다고 합니다.
일명 주전파들의 치명적 문제는 당시 조선 조정은 숨만 쉬는 상태로 재정과 군사력은 파탄이 났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민족적 자존심 운운하며 복수를 외쳤던 양반들 대다수는 전쟁 당시 실무에서 발을 뺀 사람들이었다 합니다.
(다시는 신을 부르지 마옵소서, 김준태지음, 눌민출판 참조)
이러한 기록들을 접하며 오늘의 조국 상황을 대입해보면 때때로 너무나 답답합니다. 개인적으로 정치인들에게 자신이 속한 당과 당론만 있지 과연 그들에게 조국(祖國)이나 국민이 존재하는가 묻고 싶어집니다.
평화의 시대에 위기상황을 대비하지 못하여 강산이 유린당하고 피로 물든 모습을 두 눈으로 보았으면, 이후부터는 부강한 나라를 일구는데 힘을 모아야 함은 당연지사입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35년 후 조선은 임진년의 참상과 비극을 재연한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1627년 후금의 침입인 정묘호란으로 양국은 형제의 예를 맺게 됩니다.
다시 한번 적국의 침입에 무방비하게 강제 협약을 맺었으면 이에 대한 대비나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당연한 상식임에도, 1636년(인조 14년) 2월 후금의 칸 홍타시가 국호를 청으로 바꾸며 황제로 즉위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심하고 어이없는 것은, 이때 조선 조정은 외교적 해결책이나 군사적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호칭 문제로 시간을 낭비했다는 점입니다.
후금이라 부를것인가 아니면 청이라고 부를것인가를 놓고 논쟁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는 신을 부르지 마옵소서, 김준태지음, 눌민출판 참조)
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에는 전제 요건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리에 앉는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 대한 책임을 가질 때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나이 살을 먹어가면서 늘 가지게 되는 생각 중 하나는 세상이든 교회이든 그 자리에 앉으면 안 되는 이들로 인해 시끄럽고 어려움에 처해 진다는 사실입니다.
원하든 원치 않았든 자기 자리에 앉았으면 응당 그에 걸맞는 처신과 행동이 요구됨에도 무책임하게 행동하고 대처하는 이들을 보면 답답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는 어찌보면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호칭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베드로는 박해속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베드로전서 4:11)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4:13절)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베드로전서4:15-16)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 이름의 비밀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1:20-21)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