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시인의 가난한 시
섬동
나무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잎은 춥고 가렵고 외로운 길에서 머뭇거렸다 이대로 나가면 시린 뺨은 얼지 않을까 그야말로 생살을 뚫고 가는 봄의 슬픈 길에서 어둠에 갇혀 있었다
햇빛의 손길과 바람의 입김과 가랑비의 눈길이 없었다면 반짝이는 나부낌은 없었으리라 그때 쓴 한 문장의 시로 핏줄 같은 그물맥을 만들어 길어 올린 미완성 시집은 한철 흔들렸다 모든 누리의 꿈을 다 가진 것처럼 따뜻한 언어의 밥을 지어 나무에 주었다
나뭇잎은 하늘을 베껴서 땅의 그늘에 시를 쓰고 천 번도 더 고치며 보냈다 시어를 들여 구들을 맞추고 군불을 때 영혼을 덥히려고 제 몸을 사르며 타올랐다 목숨을 걸고 길에 따르지만 팔천 원짜리 품절 시집 하나 사 주지 않는 세상일지라도 빛나는 여름을 지었다
시는 영원히 시들지 않으리라던 청춘의 넋은 가을이 오자 초록의 옷을 벗는다 남루(襤褸), 낡고 해진 옷에는 검고 누런 반점이 생기고 나뭇잎 뼈에는 숭숭 구멍이 뚫린다 그래도 시인은 가난이 이룬 운명은 나의 익은 가을이라고 팔랑거리며 떨어진다 바삭거리는 몸을 다른 단풍 시인의 어깨에 기대며 그래도 좋았다고 속삭인다
썩어서 거름이 되지 못하고 죽을지라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다 비록 한 줄의 시를 완성하지 못해도 운명에 당당히 맞서는 얼은 짱짱하다 정신의 잔고는 늘 바닥이라고 해도 가난한 시인답게 서릿발을 세운다 서늘하게 증명하는 사라짐은 차라리 절규였으니, 그 무엇이 이파리 시인에게 침을 뱉고 비웃고 깔보며 업신여길 수 있겠는가
----애지 봄호에서
* 섬동
경기도 이천 출생. 1997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시집으로 『꽃따기』, 『오래된 밥상』, 『어머니의 고백』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