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종편시대가 개막됐다.
수많은 채널 중 자신의 기호와 관심도에 따라 얼마든지 골라서 시청할 수 있게 됐다.
다양성, 놀랍도록 깊어졌고 넓어졌다.
그 중에서도 도전과 인간의 한계 그리고 뜨거운 피와 땀을 표방하는 'XTM 채널'은 특히 남성들로부터 인기가 많다.
바로 그 방송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특수부대 출신들의 숨막히는 전투와 혹독한 미션수행을 통해 최강 솔저를 선발하는 리얼 다큐프로그램을 방영했다.
6개월간의 치밀한 준비와 촬영.
총 6부작으로 방영되는 전직 특수요원들의 실제 서바이벌 다큐멘터리 - '국가가 부른다'
난 그런 프로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우리집에 놀러 온 장교후보생, 딸 친구가 소개해 주어 알았다.
"아버지, XTM에서 이런 이런 프로를 방영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걸 보면서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어요. 아버지도 꼭 보세요"
"그래?"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미 1, 2부는 끝난 뒤였다.
3부부터 마지막 회인 6부까지 매주 한 편씩 집중력있게 시청했다.
손에 땀이 났다.
실전을 방불케하는 치열한 모의전투와 가혹한 미션들이 줄을 이었다.
진흙탕 참호격투, IBS 해상침투, 일대일 KILL BOX, 탱크 섬멸전, 120킬로 타이어 끌기, 맨손 외줄타기, 300킬로 타이어 뒤집기,
야간 수색전, 대테러 훈련을 위한 CQB 근접 전투, 대검전투, 맨몸 해상침투와 수중 장비착용및 미션완수, 해상 헬기레펠, 바다 전투수영, 고속정 승선 이동 사격, 테러범 사살 후 함정 내 인질구출하기 등등 숨막히는 전투들과 기상천외한 미션들이 빼곡했다.
과연 아무나 지원할 수도, 지원해서도 않되는 프로였다.
XTM에서 제작 기획이 발표되자 경향각지에서 특수부대 출신자들 650명이 지원했다.
놀라운 반응이었다.
단계별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 최종 32명이 실제 다큐에 등장했다.
그 32명은 대한민국 최고를 자부하는 요원들이었고, 정예 중의 정예였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본격적으로 피튀기는 진검승부가 그들 앞에 놓여 있었다.
육군 특전사 출신자가 제일 많았고, 해군 UDT/SEAL, 정보사, 해병대 특수 수색대 출신자 등등 전력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1편부터 5편까지 각 단계별로 냉철한 평가가 뒤따랐다.
서든데쓰 방식이라 회차가 거듭될수록 탈락자들이 속출했다.
엄청난 땀과 치열한 전투 그리고 긴장의 연속, 일반인들의 상상을 불허하는 어려운 특수임무들을 순차적으로 통과했다.
급기야 5부를 마쳤을 땐 단 3명만이 생존해 있었다.
그들은 최고의 솔저들이었다.
대테러의 최고봉 특전사 최정예 707 출신의 이진봉(26세),
해군 특수전단의 자존심 UDT/SEAL의 전상우(26세),
최고령 도전자 해병대의 꽃중의 꽃 해병 수색대의 한경우(46세).
이들 중 과연 누가 대한민국 최고의 솔저가 될 것인가?
강철같은 체력, 불굴의 정신, 인내의 끝을 시험하는 다양한 전투와 임무들을 뚫고 마지막까지 생존한 육군, 해군, 해병대의 대표주자들 - 최후의 3인방.
하늘에 태양이 둘일 수는 없었다.
지존을 가려야 했다.
끝판왕을 골라내야 했다.
개인 전투력의 최후 테스트를 여실히 보여준 6부는 역시 난이도가 높았다.
오랜 세월 특수훈련으로 단련된 대원들이 아니라면 과연 손을 댈 수 없는 과제였다.
3인이 순차적으로 공정하게 미션을 수행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최강자로 선발된 요원은, 해병 특수 수색대 출신의 한경우였다.
나는 가슴이 벅찼다.
누구보다도 콧날이 시큰했다.
같은 부대를 나온 사람으로서 사실, 나는 한경우를 응원했다.
빨간 명찰과 흑상어 부대마크를 양쪽 가슴팍에 새긴 채 피땀으로 점철된 세월 속에서 극한의 고통을 참아가며
고강도 특수훈련을 감내했던 숱한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내 후배대원이 대한민국 최초 밀리터리 다큐에서 최강 솔저로 등극했다는 것.
그건 진정으로 가슴 떨리는 감동이었다.
방송이 끝났다.
밤이 깊었다.
해병대 특수 수색대가 우승한 건 무한한 기쁨이자 환희였지만, 그렇다고 각 부대에 우열이 있는 건 아니었다.
개인의 평가는 어느 정도 가능할지 몰라도 어느 부대가 더 강하고, 누가 더 약한지를 가늠할 수도 없고, 자웅을 겨루는 프로도 아니었다.
'국가가 부른다', 6부작이 모두 끝나자 오히려 난 더 숙연해졌다.
20대 피가 끓던 청춘의 어느 한 때.
조국과 민족의 안위를 위한 순수한 충정 하나로 스스로 지원해 들어가 목숨 걸고 피와 땀을 흔쾌하게 쏟았던 청춘의 나날들.
그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은 채, 사랑하는 국가를 위해서라면 지옥문 앞에서라도 기꺼운 마음으로 국방의 숭고한 미션을 수행하겠노라고 다짐하던 때.
그 뜨겁던 대원들이 지금도 눈 앞에 선하다.
단순하지만 순수하기 짝이없는 짐승남들의 충성혈통이 그립다.
어찌 작은 승패가 중요하겠는가?
나는, 이 자리를 빌려 대한민국 특수부대 출신들에게 깊은 존경심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 육군 특전사.
해군 특수전단 UDT/SEAL.
공군 CCT.
SSU, 정보사.
그리고 해병 특수 수색대.
아무나 갈 수 없는 혹독한 길이기에 지금도 춥고 거친 하늘, 땅, 바다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거는 그들에게 더욱 옷깃을 여민다.
그 다큐 프로그램은 맨 말미에 이렇게 되물었다.
"국가 위기 시, 조국이 당신을 부른다면, 당신은 단박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겠는가?"
대답은 각자의 몫이다.
신선한 기획과 치밀한 준비, 그동안의 금기를 깨고 한국 방송사에 새로운 장을 연 XTM 관계자들께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나도 가고 싶다.
50대 초반도 받아주나?
열심히 달려온 하루, 오늘도 겨울밤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