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년월일1917-10-20~사망1973-08-02
1950년대 중반 프랑스에서는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었다. 재능있는 영화감독을 지원하기 위한 산업적인 배경, 카이에 뒤 시네마 그룹에 의해 생긴 비평적 분위기, 막스 오퓔스, 장-피에르 멜빌과 브레송 같은 유럽 작가들의 등장은 혁신적인 분위기를 가능케 했다. 장-피에르 멜빌은 프랑스 독립영화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데뷔작에서부터 잘 드러났는데, 초기에는 문학을 각색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것은 누보로망 작가들의 영향력이기도 하였고, 뒤라스와 같은 이들은 직접 영화를 만들기도 하였다.
장-피에르 멜빌에게는 누벨바그의 감독들이나 문인 감독들과는 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장-피에르 멜빌이 누벨바그의 감독들이나 누보로망 작가들과 노선이 달랐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멜빌은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에서 소설가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가 추구한 것은 갱스터 장르의 새로운 완성이다. 1960년대 중반에 선보인 세편의 작품은 이러한 야심에 도달한 작품들이다. 또한 각각의 영화에서 서사적 기능을 중시했기에 전달에 용이한 스타들을 기용하였다. 장 폴 벨몽도가 주연한 <Le Doulos>(1963), 리노 벤튜라가 주연한 <두번째 숨결 Le Deuxi me Souffle> (1966) 그리고 알랭 들롱이 주연한 <사무라이 Le Samourai>(1967)가 그 예이다. 1930년대에 그는 미국 스릴러영화를 보며 감독의 꿈을 키워왔다. 갱스터영화의 신화학은 사회적인 연구 기반을 제공해 준다. 그리고 왜곡된 반영이야말로 진실을 전하는 수단이다. 멜빌은 실제적인 삶의 초상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스타 이미지를 빌려 시간을 잃어버린 신화학을 세워나갔고, 비극적 형상을 통해 갈등을 채워갔다. 이와 같은 작업들은 후에 멜빌의 영화가 프랑스영화의 고유한 것으로 남는 데 크게 기여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유럽 시장을 겨냥한 상업적인 마인드가 멜빌의 영화에는 있었다. 물론 할리우드와는 큰 차이를 보이지만 마지막 영화인 <불타는 마약단 Dirty Money> (1971)에서 설정한 알랭 들롱과 카트린 드뇌브의 콤비는 유럽인들에게도 매혹적인 선택이었다.
출처: [씨네21 영화감독사전]</b>
'형사' 리뷰
겨울철의 황량한 대서양 해변, 네 명의 갱이 은행을 털다가 그중 한 명인 마르크가 총에 맞는다. 일당들은 훔친 현금을 숨긴 후 마르크를 병원으로 데려간다. 이때 파리에서 콜망 경위가 조수 모랑과 함께 정기조사차 내려오는데, 콜망은 친구 시몽이 운영하는 나이트클럽에서 카티를 만난다. 모든 범죄를 배후에서 주도한 시몽은 마르크가 콜망에게 사실을 누설할까 봐 카티를 시켜 마르크에게 독약을 주사하게 한다. 사건을 조사해나가던 콜망은 시몬이 범죄에 깊이 연루됐음을 알고 그에게 경고하지만...
범죄자와 경찰의 대치를 다시 한번 변주하여 그리고 있는 멜빌의 마지막 작품. <사무라이>, <암흑가의 세 사람> 등 이전 작품들에 비해 단순한 구성과 덜 강력한 면모로 인해 발표 당시 비평과 흥행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멜빌 특유의 도덕적 모호함과 고독의 기운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폐부를 찌르는 작품. 바람과 파도 소리 속에서 아무런 대사 없이 은행강도 장면을 보여주는 오프닝 시퀀스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
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