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니 걸 (Funny Girl)
1968년 미국영화
감독 : 윌리암 와일러
제작 : 레이 스타크
출연 : 바브라 스트라이잰드, 오마 샤리프, 월터 피전
케이 메드포드, 앤 프란시스, 리 알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벤허' '우리생애 최고의 해' '미니버 부인' 등으로 3번이나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계의 거장 윌리암 와일러 감독은 66세가 된 1968년 뮤지컬 영화 '화니 걸'을 발표했습니다. 무성영화 시대부터 활동하면서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작 외에도 '로마의 휴일' '황혼' '탐정야화' '우정있는 설복' '빅 컨츄리' '콜렉터' 등 숱한 명작을 남김 윌리암 와일러 감독은 이미 이룰것은 다 이룬 거장이었지만 그가 좀체로 손대지 않았던 장르인 뮤지컬에 환갑이 넘은 나이에 새롭게 도전을 한 셈입니다. 거장의 멈추지 않은 새로운 도전이었죠.
'화니 걸'은 유명 무대극을 영화로 만든 것인데 무대에서 주연을 맡았던 바브라 스트라이잰드가 영화에서도 직접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첫 영화데뷔를 합니다. 당시 바브라 스트라이잰드는 26살의 나이였는데 비교적 영화에는 늦게 데뷔한 셈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로 대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영화 데뷔작으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는 보기 드문 기록을 세웁니다. (이건 '메리 포핀스'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 줄리 앤드류스도 마찬가지였는데 줄리 앤드류스는 TV영화에 출연하긴 했었죠)
당시 예쁜 미모의 배우들이 즐비한 헐리웃에서 예쁜 외모가 아닌 바브라 스트라이잰드 였지만 영화 데뷔작 답지 않은 능란한 연기로 미모가 아닌 재미있는 여배우로서의 재능을 활짝 발휘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설정 자체도 엄마 조차도 우려하는 평범한 외모의 여인이 무대에서 크게 성공하고 사랑도 이루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바브라 스트라이잰드도 가수로서 배우로서 큰 명성을 얻고 감독으로서도 활약한 다재다능한 스타였습니다.
무대에 서고 싶어하지만 매부리코를 가진 평범한 외모가 핸디캡인 화니(바브라 스트라이잰드)는 코러스 일원으로라도 무대에 서려고 노력하지만 리허설에서 냉정하게 쫓겨납니다. 하지만 포기를 안하고 무대에 서고 싶어하는 열망을 보이는데 그녀의 재능을 알아 본 에디라는 남자의 도움으로 겨우 무대에 서게 됩니다.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지 못하고 천방지축 행동하는 그녀의 실수가 오히려 관객을 크게 웃기게 되고 결국 인기를 얻어 유명한 지그펠드 극장의 무대에까지 서게 됩니다. 극장주 지그펠드(월터 피전)는 화니에게 피날레 노래를 맡기는데 노래 가사가 자신을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소개하는 내용이라서 크게 부담을 느낀 화니는 뱃속에 배개를 넣고 임신한 여인으로 등장하는 기발하고 코믹한 발상으로 다시 한번 무대를 폭소의 도가니로 만듭니다. 공연이 크게 성공하여 기뻐하는 와중에 닉 안스틴(오마 샤리프) 이라는 잘생긴 신사가 찾아옵니다. 멋진 닉에게 마음을 빼앗긴 화니, 닉은 화니의 집에까지 초대가 되고 둘은 오붓한 시간을 갖게 되는데 하필 닉은 곧바로 먼 곳으로 떠나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닉은 도박사였고, 이후 1년만에 다시 볼티모어에서 재회한 닉과 화니는 결국 결혼하게 됩니다. 일과 사랑 모두 성공하여 예쁜 딸까지 얻고 행복에 젖은 화니, 하지만 승승장구하는 화니와 달리 닉은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결국 화니와도 마찰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후 화니는 닉에 대해서 안좋은 소식을 듣게 되는데....
외모가 예쁘지는 않지만 노래와 무대 기획에 재능이 있는 화니라는 여성의 성공과 사랑을 다룬 영화입니다. 보통 한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는 영화들은 성공과 좌절을 오가는 내용이 그려지지만 이 영화는 보기 드물게 1시간 반이 넘게 흘러가도록 화니는 계속 좌절을 모르고 상승만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렇게 갈망했던 무대에 우여곡절 끝에 서게 된 이후부터는 만사가 술술 풀립니다. 단순히 무대에 서는 것 뿐만 아니라 멋진 신사가 찾아와서 호감을 보이고 이후 대형 극장에 서게 되어 승승장구하고, 그 멋진 신사와 꿈같은 사랑을 이루며 행복한 결혼까지 하게 되지요.
이렇게 너무 잘 나가는게 오히려 불안할 정도인데(계속 이렇게 잘 나가기만 한다면 그건 영화가 아니죠) 영화가 꽤 많이 진행될 동안 화니는 올라가기만 하고 추락을 모릅니다. 이런 화니의 행복에 제동이 걸리는 것은 거의 2시간 가까이 진행되고 부터입니다. 화니의 불행은 닉의 금전적인 문제때문에 발생하게 됩니다.
보통 아직 어려운 상황인 여성과 잘 나가는 남자가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되는 이야기는 이 상황이 역전되어 여자가 잘 나가고 남자가 추락하게 되면 그런 이유로 갈등을 겪게 되곤 합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결국 경제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못할 경우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생기는 것입니다. '스타 탄생'이라는 영화가 아주 대표적인 케이스고(이 '스타 탄생' 영화에도 바브라 스트라이잰드가 출연했지요.) 같은 윌리암 와일러의 영화중에서는 '황혼' 이라는 작품이 그랬습니다. '황혼' 역시 굉장히 어려운 상황의 여주인공을 근사한 남자가 도와주고 둘이 결혼까지 하지만 남자가 실직하고 여자는 대스타가 되면서 둘은 결국 비극적인 관계가 되지요. 윌리암 와일러 감독이 연출했던 이 '황혼'과 '화니 걸'은 그런 면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닥터 지바고'로 이름을 떨친 이집트 출신의 콧수염 미남배우 오마 샤리프가 화니의 연인 닉 으로 출연하는데 아직 스타덤에 오르기 전의 화니가 잘 생기고 세련된 닉을 만나서 설레이고 결국 닉의 청혼을 받고 너무 기뻐서 안절부절하는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특히 도박사인 닉이 돈을 따야 화니와 결혼하겠다고 하자 화니가 도박을 하는 장소까지 따라가서 옆에 앉아서 노심초사 지켜보는 장면이 재미있게 전개됩니다. 도박사 라는 불안정한 직업은 결국 언젠가는 어려움에 처할 수 있는 법, 화니가 매우 잘 나가서 유명한 무대배우가 되는 상황에서 닉은 반대의 상황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화니는 도와주려고 하지만 닉은 자존심 때문에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영화는 그래도 '스타탄생'이나 '황혼' 보다는 다소 유연한 결말입니다. 끝 장면이 '스타 탄생'과 아주 비슷하긴 하지만 그래도 닉과의 사랑에 대해서 완전히 끝나지 않은 희망을 갖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물론 그렇게 그냥 여운을 남기고 끝났으면 되는데 7년뒤에 굳이 2편인 '화니 레이디'가 등장하여 화니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까지 시시콜콜 만들어 버립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 20세기 초 보드빌 쇼의 스타였던 패니 브라이스(1891~1951) 라는 실존인물의 삶을 극화한 이야기입니다. 패니 브라이스는 무대극이 인기있던 20세기 초에 실제로 꽤 인기를 모았던 스타였습니다. 그녀의 모습은 '화니 걸'에서 지그펠드 극장의 소유주이자 화니를 출연시킨 인물, 월터 피전이 연기한 지그펠드의 이야기를 다룬 1936년 영화 '위대한 지그펠드'에서 볼 수 있는데(그 영화에서는 윌리암 파웰 이라는 배우가 지그펠드로 출연합니다) 본인이 직접 패니 브라이스 역으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Fanny Brice 가 이름이고 Fannie Brice 라고 이름을 쓰기도 했는데 재미난 소녀라는 의미로 발음이 비슷한 'Funny Girl'이라는 제목으로 무대극과 영화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극중 오마 샤리프가 연기한 닉은 패니 브라이스의 두 번째 남편을 모델로 한 것인데 패니 브라이스는 19살에 첫 결혼을 해서 3년만에 이혼하였고 이후 두 번째 남편과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고 8년만에 이혼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남편은 '화니 걸'의 속편인 '화니 레이디'에 등장하는 빌리 로즈 인데 영화에서는 4년간 결혼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기록에는 그와 10년간 결혼생활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실제 패니의 첫째 딸은 영화에서처럼 프란시스 라는 이름이고 1919년생이며 1992년에 사망했다고 하니 프란시스는 자기 어머니의 일대기를 다룬 두 편의 영화를 모두 본 셈입니다.
바브라 스트라이잰드는 이 영화를 통해서 여배우로서도 길을 열였고, 무려 캐서린 헵번 이라는 대배우와 경쟁하여 아카데미 상에서 보기 드물게 '공동 주연상 수상'이라는 결과를 낳습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는 '겨울의 라이온'에서의 캐서린 헵번 보다는 바브라 스트라이잰드가 좀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부담이 있었겠지만 데뷔작 답지 않게 능숙하고 코믹한 연기와 노래, 안무 등 다재다능함을 보여주었고, 그래서 미녀 배우들과 경쟁해야 하는 헐리웃에서 배우로서도 당당히 살아남았습니다.
오마 샤리프, 월터 피전 등 유명 스타들과 나름 주연 여배우였던 앤 프란시스 등이 함께 출연하면서 바브라 스트라이잰드를 뒷받침합니다. 앤 프란시스의 비중이 굉장히 적은 것이 좀 의외이긴 합니다. 주로 40년대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월터 피전의 나이든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노래와 안무가 등장하는 뮤지컬 영화인데 뮤지컬 배우는 아니지만 오마 샤리프가 노래하는 장면도 있고, 여러 노래 중에서 '피플'이라는 노래가 많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거장 윌리암 와일러의 후기 영화인데 그는 이 작품 이후 한 작품을 더 연출하고 은퇴를 했습니다. 무엇보다 바브라 스트라이잰드를 영화배우로 성공적으로 발굴한 영화라는 의미를 담은 작품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우리나라에서는 '스타 탄생'이 더 크게 히트를 했지요. 노래도 더 좋았고.
ps2 : 화니가 임산부 역할로 웃음을 주는 공연장면이 굉장히 화려하고 웅장한데 원래 20세기 초 보드빌 쇼가 이렇게 화려했나 보네요. 칼라 시네마스코프 화면에서 재현되는 그 무대극 장면이 정말 압권입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뮤지컬 연출에서 윌리암 와일러 감독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ps3 : 아카데미 8개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여우주연상 하나만 수상했습니다.(공동 수상으로) 함께 경쟁한 영화가 같은 뮤지컬 장르인 '올리버'인데 몇 차례 상을 받은 윌리암 와일러의 영화보다 영국의 캐롤 리드 감독의 '올리버'에 손을 들어준 셈입니다.
ps4 : 실존인물인 패니 브라이스의 사진입니다.
[출처] 화니 걸(Funny Girl 68년) 바브라 스트라이잰드 영화 데뷔작|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