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독서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십니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20,10-13
10 군중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기 마고르 미싸빕이 지나간다!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속아 넘어가고 우리가 그보다 우세하여
그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1 그러나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비틀거리고 우세하지 못하리이다.
그들은 성공하지 못하여 크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그들의 수치는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이다.
12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13 주님께 노래 불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31-42
그때에 31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33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하고 대답하자,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35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36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다 해서,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 하고 말할 수 있느냐?
37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38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39 그러자 유다인들이 다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40 예수님께서는 다시 요르단 강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
41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분께 몰려와 서로 말하였다.
“요한은 표징을 하나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가 저분에 관하여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42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언론은 제2의 신이다.(Mass Media is the second God.)'이란 말이 있습니다. 언론이 현대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이 말은 언론이 정보를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관을 형성하고 영향을 미치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은 언론이 사회적으로 매우 영향력이 크고 중요한 존재임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습니다. 언론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견을 형성하고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언론은 권력과 통제의 수단으로도 작용할 수 있으며, 이는 언론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을 더욱 부각시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영향력에는 부정적인 면도 존재합니다. 언론이 편향적이거나 왜곡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사회적 분열을 야기하거나 잘못된 사회적 가치관을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언론이 권력에 의해 조작되거나 통제되는 경우도 있어서, 그 영향력이 악용될 우려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언론은 제2의 신이다"는 표현은 언론이 현대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 그 영향력과 책임성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편식과 과식은 건강에 해롭습니다. 언론에 의해서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언론에 따라서 맹목적으로 판단하지 않기 위해서는 편향된 언론은 아닌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색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이 그렇게 보입니다. 파란색 안경을 쓰면 파랗게 보이고, 빨간색 안경을 쓰면 빨갛게 보이기 마련입니다. 권력에 의해서 사유화되는 언론이 가지는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권력과 야합한 언론에 의해서 단죄되었고, 죽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하셨습니다. 언론의 힘에 의해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매카시 광풍’이 있었습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증거도 없이 매카시는 ‘우리 사회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있다.’라고 선동하였습니다.
언론은 그것을 공개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죄도 없이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가 거룩하시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언론의 힘에 의해서 사람들의 거룩함이 상실되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의 언론도 권력과 야합했던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 폭도들이 소요를 일으켰다.’라고 보도했습니다. 합리적인 판단과 균형 잡힌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편식과 과식을 피해야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을 옳은 길로 인도하였지만 권력은 예레미야 예언자를 거짓 예언자라고 선동하였습니다. 선한 일을 한 사람이 단죄를 받고, 악인들이 부와 권력을 누리는 세상이라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예언자들의 시대에도 권력에 야합한 언론은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많은 표징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단죄하고 있습니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거룩하신 분’이라고 외쳤던 군중들은 언론의 선동에 따라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깨어 있는 시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요한은 표징을 하나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가 저분에 관하여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우리가 진정을 따라야 할 신은 ‘언론’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을 따라야 할 신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믿어야 할 분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