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과 함께 현재 미국영화계 최고의 비주얼리스로 꼽히는 감독.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인 <여인의 음모 Brazil>와 <바론의 대모험 The Adventure of Baron Munhau-sen>이 참담한 상업적 실패로 끝났지만, 길리엄의 시각적 상상력에 대한 평가는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여인의 음모>와 <12몽키즈 12 Monkeys>에서 보이듯, 길리엄의 풍부한 비주얼에는 문명의 광기와 탈출의 꿈이 절묘하게 대비된다. 비디오 세대의 지성 부재의 감각주의와는 여기서 분명히 갈라진다. 문제는 ‘비주얼의 과잉’에 비해 드라마가 허술하고 산만하다는 점. <피셔킹>에서 향상된 드라마 구성 능력을 보여주었고, <12몽키즈>의 스릴러도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평균을 넘어섰지만, 아직 할리우드 메이저는 길리엄의 작품에 투자하기를 꺼리고 있어 작품 활동이 뜸한 편.캘리포니아주 옥시덴털칼리지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길리엄의 첫 경력은 <헬프> (Help!)라는 잡지의 카투니스트. 영국에 건너간 길리엄은 <몬티 파이튼 비행 서커스>라는 TV쇼에 무정부주의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애니메이션을 선보이면서 77년 <자버워키 Jabber Wocky>로 극영화 데뷔의 기회를 얻었고, 81년 숀 코너리 주연의 <시간 도둑들 Time Bandits>이라는 기괴한 환상담 영화로 할리우드 제작자의 눈에 들게 된다.
첫 할리우드영화가 그해 LA비평가협회 최우수상 수상작인 <여인의 음모>(1984). 미래사회의 무서운 전체주의와 탈출의 환상을 황당무계한 블랙코미디에 담아낸 <여인의 음모>는 <블레이드 러너>(1982)와 함께 80년대 할리우드 SF의 대표작으로 꼽힌다.괴이한 유머와 과장된 비주얼로 가득 찬 <바론의 대모험>(1988) 역시 길리엄의 시각적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으나 지나친 제작비에 비해 상업적 구성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심을 샀고 흥행은 대실패로 끝났다. 91년의 <피셔킹>은 뉴욕거리를 헤매는 광기의 철학자를 그린 길리엄의 귀한 정통 드라마. 그러나 역시 흥행에서는 큰 재미를 못 봤다.
스틸만으로 구성된 크리스 마르케르의 실험적 SF <방파제> (1962)의 할리우드판 <12몽키즈>(1996)는 길리엄의 상업영화적 능력을 입증시킨 작품. 지구를 구하기 위해 현재로 투입된 미래 죄수의 비극적 모험담을 그린 이 영화는 시간에 관한 SF 중 90년대 최고작으로 꼽을 만하다. 최신작은 1998년 칸영화제에 출품돼 호평받은 <라스베이거스에서의 공포와 혐오 Fear And Loathing in Las Vegas>.
자료출처: [씨네21 영화감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