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토록 잔인해진 것은 억지로 내게 정해진 이 진저리 치도록 고독한 삶 때문이오!"
- 피조물(The Creature) 메리 셸리「프랑켄슈타인」
꿈속에서 창백한 얼굴로 끌어안고 내 피를 먹여 키운 나무가 있다. 심봉사가 눈을 번쩍 뜨고 안아준 심청이 같은 나무가 있다. 절망의 벼랑 끝에서 발끝으로 서서 퀭한 눈으로 내려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극한의 환경에서 가시 돋친 망토를 덮어쓴 악령 같은 두려움을 주는 나무가 있다.
한(恨)을 모아서 봉함한 균열의 미학을 지니고 있다. 후라 크레피탄스(Hula crepitans)라는 나무이다. 포섬우드(possumwood), 몽키 노클라임(monkey no-climb), 아삭(asak), 자비로(javiro)로도 알려져 있으며 아마존 열대우림을 포함한 북미와 남미의 열대 지역이 원산지인 스펄지과의 상록수이다.
까칠한 성격에 온몸이 빼곡히 가시로 덮인 것보다 더 섬뜩한 특징이 있다. 높은 독성의 수액을 품고 있다. "후라"라는 이름의 씨앗은 남미 기아나 원주민 부족의 "독약"이라는 뜻이다. 이 나무는 열매가 익으면 폭발하여 씨앗을 폭탄 파편처럼 흩뿌리며 번식한다. 씨앗은 최대 시속 257km로 날아가고 기류를 타면 100m 밖까지 날아간 기록이 있어서 ‘다이너마이트 나무'라고 불린다. 폭발이 격렬해서 씨앗 수집 연구자들조차 스파르타의 전사처럼 가림막 뒤로 가리고 다가간다.
발 빠른 벌목꾼들조차 피할 정도이다. 무슨 악이 받혀서 이토록 가슴 아픈 진화를 해온 것일까? 마치 한(恨)이 서린 원귀 같은 나무이다. 사연을 듣고 굽이굽이 쌓인 한을 서리서리 풀어주고 싶다. 잉크를 사용하던 시절에 이 열매에 잉크가 번지지 않게 가루를 넣어두는 상자로 사용해서 ‘샌드박스’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오로지 죽이기 위한 전쟁용 생화학 무기급 나무이다. 얌전한 식물의 맹독과 공격에 반전 스릴이 느껴지는 가학적 나무이다. 독으로 가득 찬 진액에 몸이 닿으면 바로 마비된다. 이기적 유전자의 최종보스이다. 열심히 진화한 노력이 눈에 두드러진다.
막 혼례를 올리고 연지곤지 찍고 술상 앞에 앉은 음전한 신부처럼 조신해야 할 식물의 공격이 상상을 넘어선다. 성장을 마친 해바라기도 우리가 기대하는 '태양의 꽃"이 아니다. 만개한 해바라기는 동쪽을 바라보고 곤충을 유인하는 일에만 열중한다. 살수록 새록새록 달라지는 사실들이 넘쳐난다.
세상의 모든 버림을 다 받고 스스로 철벽을 치는 사람 같아서 안쓰러운 나무이다.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악마"라고 부르는 괴물 같은 나무이다. 섬뜻하고 기괴함을 서슴없이 발휘함으로써 모두가 피해 가도록 만들어진 나무이다. 뉴턴이 사과나무아래서 잔 건 행운이 좋았던 것이다. 이나무 아래서 잤더라면 중력의 법칙은 고사하고 중상 입고 사망했을 것이다. 자연의 신비는 언제나 미지의 세계를 맞추는 마지막 퍼즐처럼 흥미를 끌어낸다. 아마존 열대우림이 얼마나 혹독하면 저렇게 무시무시한 괴물나무로 진화해야만 했을까? 열악한 환경이 나무의 물성을 결정지었다.
그러나 후라 크레피탄스는 우리가 그들을 찾아가지 않는 한 전혀 위험하지 않다. 문제는 우리이다. 인간은 방구석에서도 브라질의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있으니 우리야말로 인간 다이너마이트"후라 크레피탄스"이다. 지구촌 파괴에 일조를 가하는 인간은 무엇인가? 우리의 전투력은 무엇을 위함인가? 자신을 지키기 위함인가? 남을 파괴하기 위함인가?
스스로 무기가 된 나무를 보면서 괴물로 진화한 인류를 생각한다. 우린 아마존에 가지 않으면 그들이 우리를 괴롭히거나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린 어떠한가?
세상에 살다가 결코 한 번도 안 만날 나무를 무서워한다. 피로 낭자한 삶을 살아온 황천의 뒤틀린 나무인가? 홀로 독하게 자신을 지켜야 하는 의무감 때문이었을까? 움직일 수 없는 몸이 스스로를 독기를 품게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당신이 만약 이 씨앗을 한 알만 먹었다면 다른 씨앗도 맛볼 수 있겠지만 두 개이상을 먹었다면 곧 환각과 경련이 시작되고 사망할 수도 있다. 지금의 내 누추한 삶을 얼기설기 엮어서 짠듯한 피륙 같은 나무여!
아낌없이 고통을 주는 나무지만 큰 사고를 당했을 때 피부에 닿으면 마비증상이 오기 때문에 응급처치용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세상에 없어져야 할 생물은 없다.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온다."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하여 우리의 기준으로 생물들이 인간에게 위험하거나 해를 끼친다고 하여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나쁜 생물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인가?
집요하고도 질긴 긴 하루는 지옥을 수십 번 오갈 만큼 멀다. 우스운 건 1년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꿈이여! 허망한 삶이여!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균열된 나를 이제 모아 추슬러보자. 삶이 간절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무엇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 세상모두를 다 가져도 소용없는 다시 입을 수 없는 허물 같은 삶이다. 내 것이되 내 것이 아닌 것들 뿐이다.
모든 외로움의 가시는 나 스스로가 인간이 닿을 수 있는 극한의 땅에서 스스로를 던져버린 괴물처럼 다 내 몫의 아픔일 뿐이다. 새로운 슬픔을 길러내기 위해 내 몫의 마중물은 남겨 두어야 한다. 난 오늘도 내가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다. 아직은 나를 놓아줄 시간이 아니라고
세상의 모든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