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가리야의 노래 (Korean Catholic Hymns)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입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엘리사벳을 방문하셨을 때
요한은 어머니 엘리사벳의 모태에서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구세주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요한 세례자의 전구로 주님이신 예수님을
우리 안에 참되게 모실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아기를 갖지 못하는 엘리사벳이 성령의 은혜로 아들을 낳게 된다.
사람들은 통상적인 관례에 따라
아버지 즈카르야의 이름을 따서 아기의 이름을 지으려고 하였지만,
주님의 뜻에 따라 한동안 벙어리로 지냈던 즈카르야는
뜻밖에도 엘리사벳이 말한 ‘요한’이라고 이름을 짓는다(복음).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이 외칩니다.
“안 됩니다.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사람들은 아기의 이름을 친척이나 집안의 이름을 따르는 관례를 생각하여
아버지의 이름인 즈카르야를 따서 지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아기의 부모는 엉뚱하게 ‘요한’이라고 이름 짓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서 아이가 생길 것이라고 했고,
그 아이는 구세주보다 먼저 오는 예언자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고 하였습니다(루카 1,13-15 참조).
그렇습니다. 즈카르야는 천사의 명을 받들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아이의 이름을 ‘즈카르야’라고 한다면 사람들의 상식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 반면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한다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지금 이들 부부는 아이의 이름을 짓는 데 사람들의 상식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아이가 자라나 어떠한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상식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즈카르야’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버지처럼 사제로 살아가는 삶을 뜻합니다.
명망이 높아 존경받고, 기득권도 누릴 수 있는 신분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의 상식입니다.
그 반면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예언자로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오롯이 주님께 봉헌되어 명망과 존경보다는 박해를,
기득권보다는 광야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엘리사벳과 즈카르야는 이 두 가지 갈림길에서 주님의 뜻을 기꺼이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루카1,80)
광야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주님을 만나러 가기 위해
믿음을 단련하는
희망의 공간이며
시간이라네.
광야에서 머무는 동안
여리고 아기 같은
정신은
점점 더 굳세어지고
거기서부터
모든 이들이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한
영적여정의 첫걸음을 시작한다네.
- 김혜선 아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