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과 예수님 사역의 유사점
사사기 16:28~31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사사기 16:30)
찬송가 313장(내 임금 예수 내 주여)
우리는 삼손이 그의 생애 속에서 블레셋의 지배 아래서 안일하게 살아가는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떨어져나와 하나님 선민으로 살아가도록 일깨운 사명을 받았으나 그 일을 온전히는 이루지 못하였으나 그 시작은 이루었음을 사사기를 통하여 알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삼손은 비록 불완전한 구원자의 사역을 했지만 적지 않은 면에서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비슷한 점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삼손과 우리 구주 예수님의 사역 간에 비슷한 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출생의 영적 상태가 비슷합니다. 삼손은 경건한 어머니와 아버지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특히 삼손의 어머니는 천사의 방문을 받고 나실인으로 태어날 아들을 위하여 포도주도 삼가고 부정한 것들을 일체 먹지 않고 보지 않고 듣지 않는 태교를 하면서 아이를 낳아 길렀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정결한 처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니, 그야말로 거룩한 성령으로 잉태된 나실인이십니다. 그 보호자 야곱 역시 경건한 다윗의 후손으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늘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였습니다. 이 점에서 삼손과 예수님은 출생의 비밀과 그 양육 과정에서 비슷합니다.
또한, 사명에 있어서 비슷합니다. 삼손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민족 블레셋의 지배 아래 있으면서 아무런 문제 의식도 갖지 않고 점점 블레셋 이방 문화에 순응하고 블레셋 사람들과 결혼하며 우상 잡신을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삼손에게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떼어내고 거룩한 하나님 백성으로서 살도록 블레셋과 싸워 이스라엘을 건지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죄와 허물로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유다 백성과 온 세상 백성들을 구원하여 하나님께 돌아와 의와 거룩함과 진실함과 구속함을 입어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삼으려는 구원자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 점에서 사명의 방향성이 비슷합니다.
또한 사역을 감당하는 원동력이 성령인 점이 비슷합니다. 삼손도 나이가 차서 장성하였을 때에 여호와의 영께서 그를 움직여서 블레셋과 갈등을 일으켜 싸우도록 이끌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격동하게 할 때마다 성령께서 삼손에게 거룩한 분노와 무서운 괴력을 발휘하게 하여 블레셋을 치도록 역사했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도 성령으로 잉태되었을 뿐 아니라 때가 차매 세례를 받으시고 세상에 나가 일하시고자 할 때에 그에게 비둘기처럼 성령이 강림하셨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고 세상에 나가서 각종 기적을 일으키며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가르침으로써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여 구원하셨습니다. 이렇듯 성령의 이끄심과 역사하심을 힘입어 일하신 점이 동일합니다.
또한 사랑한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점이 비슷합니다. 삼손은 사랑하게 되어 아내로 맞이했던 블레셋 딤나 여인의 배신으로 수수께끼의 비밀을 들켰습니다. 또 그 후에 삼손은 사랑했던 여인 들릴라가 큰 돈에 눈이 멀어서 삼손을 배신하여 그 힘의 비밀을 원수 블레셋 방백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 결과 삼손은 힘을 잃어버리고 머리카락이 잘리고 눈이 뽑히고 놋줄에 매여 감옥에 갇혀 맷돌을 돌리며 블레셋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랑하였던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으며,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제자들의 배신을 당하여 홀로 버려졌고, 그의 제자 중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죽이려는 대제사장에게 은 삼십 량을 받고서 예수님을 넘겼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에게 배신을 당한 점에서 비슷합니다.
또한 죽을 때 원수들에게 조롱당하였으나 죽음으로써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삼손은 머리털이 밀리고 힘을 잃고 원수 블레셋 사람들에게 심한 조롱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감옥에서 회개하는 가운데 머리카락이 다시 자란 삼손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를, 자기 목숨을 희생하여 원수들인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기를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거대한 다곤 신당을 완전히 무너뜨렸고 그 자리에 있던 블레셋 방백들과 다곤 우상 숭배자들 수천 명 내지 수만 명을 일시에 다 죽였습니다. 이로써 삼손은 자신의 죽음으로써 블레셋의 힘을 꺾었고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는 그의 사명을 성취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에 그의 대적들의 조롱을 엄청나게 받았으나 끝까지 참으셨고, 그가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음으로써, 온 인류의 원수인 죄와 저주와 사망과 영벌의 심판을 다 담당하시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 죄사함과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과 영생과 천국의 복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의 죽음으로써 인류 구원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고 완전한 승리를 거두셨던 것입니다. 삼손도 죽을 때 사명 붙들고 죽었으며, 예수님께서도 죽음의 대가를 지불하여 죽음을 통하여 인류 구원의 사명을 완전히 성취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삼손은 많은 점에서 예수님의 사역과 비슷한 점이 많이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비교하면 삼손은 그의 삶에 수많은 실수와 허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세월을 낭비하고 육신의 정욕을 위하여 살았으며 많은 죄를 저지르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세월을 아껴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위하여 살았으며 지극히 선하신 일을 행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니 삼손과 예수님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삼손은 많은 능력과 은사를 주셨지만 그 복된 선물들을 자기 자신의 육신의 정욕을 위하여 낭비하였습니다. 그는 세상과 하나님의 종의 사명 사이를 위험하게 줄타기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삼손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영은 늘 조마 조마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육신의 정욕을 위하여 가사의 기생과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와 방탕한 세월을 보낼 때에 성령께서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생각이 됩ㅁ니다.
성령님은 질투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모하는 분이십니다. 야고보서 4:4 이하의 말씀에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야고보서 4:4~5)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마음을 소유하고 차지하기 위하여 늘 우리 마음을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이 세상에 팔려서 세상 것들을 사랑하고 거기에 쏙 빠져 있다면 얼마나 실망스러워하실 것이며 얼마나 뜨거운 거룩한 질투심에 사로잡히시겠습니까? 성령님은 근심하시기도 하시고 노하기도 하시고 질투하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감정이 매우 민감하신 분이십니다. 그러한 성령님을 슬프게 하지 말고 낙심하거나 노하거나 근심하게 하는 대신에 그를 기쁘시게 하고 그로 하여금 힘있게 일하게 하십시다. 우리 마음이 주님을 사랑하고 성령을 사모하며 그를 즐거워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성령께 늘 우리의 시간을 내어드립시다. 그럴진대 성령께서 우리와 늘 동행하시고 우리를 기뻐하시고 힘있게 계속하여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애를 더욱더 주님께 내어드립시다. 삼손처럼 아쉽게 하나님께 쓰임받지 말고 도리어 세월이 갈수록 더욱 성령님께 드려서 마음껏 성령님께 붙잡혀 쓰임받고 받은 사명 온전히 이루고 주님 앞에 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