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 박목월 -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상아탑>(1946)-
해설
[개관 정리]
◆ 성격 : 민요적, 향토적, 토속적, 관조적, 풍류적, 낭만적
◆ 표현 : 자연과 인간의 완벽한 조화(자연에 동화된 인간의 모습)
체언 종결의 간결한 형식미 → 생략과 여운의 효과, 이미지의 유동성을 막고 감동의
집중감을 줌.
수미 상관의 구조 → 주제연의 반복 강조.
7,5조의 친근한 민요적 율격과 2행 2구의 형식(3연에서는 5 · 7조로 변용됨).
◆ 심상 : 시각적, 후각적 심상
밀밭 길 ========== 술 익는 마을 ============= 타는 저녁 놀
(시각, 푸름) (후각) (시각, 붉음)
◆ 시어의 의미
* 나그네 ― 일제 치하에서 억압받는 우리 민족의 표상. 시대현실과 관련된 비극적
인간상
* 구름에 달 가듯이 ― 행운유수(行雲流水), 유유자적(悠悠自適)의 이미지
* 길은 외줄기 ― 나그네의 고독 연상
* 남도 삼백 리 ― 추상적 정감의 거리, 나그네가 가야할 길의 아득함
* 술 익는 마을 ― 생활의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던 당시의 사정을 고려해 볼 때,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표현으로, 비판의 여지가 있음.
◆ 주제 ⇒ 자연에 동화된 나그네의 삶의 달관
◆ 창작배경 : 조지훈이 박목월에게 보낸 시 <완화삼>에 대한 화답시
(부제 : 술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 지훈에게)
[시상의 전개(짜임)]
◆ 1연 : 향토적 배경
◆ 2연 : 나그네의 모습(체념과 달관의 경지, 유유자적의 이미지)
◆ 3연 : 향토적 배경(외로움의 정서)
◆ 4연 : 향토적 배경(풍류와 낭만의 정서)
◆ 5연 : 나그네의 모습(체념과 달관의 경지, 주제연)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강나루를 건너가면 밀밭 사이로 외줄기 길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고적한 풍경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강의 푸른색과 밀밭의 푸른 색조가 어울려 짙은 색감을 드러내며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다. 그리고 외줄기 길에서 느껴지는 나그네의 고독은 삼백 리로 더욱 깊어진다. 여기서 '삼백 리'는 실제적 거리라기보다는 화자가 느끼는 고독한 정감을 나타내는 추상적 거리를 의미하며, 삼(三)이란 수(數) 역시 한국적 정감을 나타내는 친숙한 숫자로 향토적 분위기 형성에 이바지하고 있다. 외줄기로 길게 뻗어 있는 쓸쓸한 황토길을 밟으며 술 익는 어느 마을을 지날 때, 마침 서산 하늘 가득히 타고 있는 저녁 노을이 고독한 나그네의 가슴을 온통 서럽게 불태우고 있다. 이렇게 노래되고 있는 자연 풍경은 분명 한국인의 의식 속에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정감 어린 정경이다.
'구름에 달 가듯이'라는 시구는 두 번 반복되는데,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길을 가는 나그네의 행로가 이 구절에서 반짝 빛을 발한다. 구름에 달이 지나갈 때 아무것도 이를 막을 수 없듯, 나그네의 행로를 붙잡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나그네의 행운유수(行雲流水)와도 같은 유유자적함이 구름을 따라 흘러가는 달의 움직임에 비유되어 있는 것이다. 나그네의 처지는 세속적인 집착과 속박에서 벗어난 동양적 해탈의 경지를 표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나라 잃은 백성의 체념과 달관을 뜻하는 동시에, 현실에서 밀려난 시인 자신의 표상이 될 수도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현실을 외면한 작품이라는 비난의 한편에서, 여전히 작품을 옹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나그네의 모습 때문이다. 현실에 얽매이거나 집착하지 않고 그것을 체념하고 달관해야만 견뎌낼 수 있는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본다. 현실을 나몰라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한 방편의 모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길"과 "나그네"의 연속적인 묘사로 이루어진 것 이 시의 묘미이다.
['나그네'에 대한 시인의 말]: 박목월의 "보랏빛 소묘"에서
나그네의 주제적인 것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였다. 그야말로 혈혈단신 떠도는 나그네를 나는 억압된 조국의 하늘 아래서, 우리 민족의 총체적인 얼의 상징으로 느꼈으리라. 나그네의 깊은 고독과 애수, 혹은 나그네의 애달픈 향수 ………(중략)…… 다만 생의 가냘픈 꿈과, 그 꿈조차 오히려 체념한 바람같이 떠도는절망과 체념의 모습으로서의 나그네가 내게는 너무 애닯은 꿈(영상)이었다.
[ 참고 ] : 조지훈의 <완화삼(玩花衫)>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
구름 흘러가는 / 물길은 칠백 리(七百里) //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 꽃은 지리라. //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작가소개]
박목월 : 박영종시인, 전 대학교수
출생 : 1915. 경상북도 월성군
사망 : 1978. 3. 24.
가족 : 아들 박동규
데뷔 : 1939년 문예지 '문장’
작품 : 오디오북, 도서
<정의>
해방 이후 『난, 기타』, 『어머니』, 『사력질』 등을 저술한 시인.
<생애 및 활동사항>
본명은 박영종(朴泳鍾). 경상북도 월성(지금의 경주) 출신. 1935년 대구의 계성중학교(啓聖中學校)를 졸업하고, 도일(渡日)해서 영화인들과 어울리다가 귀국하였다. 1946년 무렵부터 교직에 종사하여 대구 계성중학교,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연세대학교·홍익대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62년부터 한양대학교 교수로 재임하였다.
1947년 한국문필가협회 발족과 더불어 상임위원으로 문학운동에 가담, 문총(文總) 상임위원·청년문학가협회 중앙위원·한국문인협회 사무국장·문총구국대(文總救國隊) 총무·공군종군문인단 창공구락부(蒼空俱樂部) 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58년 한국시인협회 간사를 역임하였고 1960년부터 한국시인협회 회장직을 맡아 1973년 이후까지 계속하였다. 한때 출판사 산아방(山雅房)·창조사(創造社) 등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또한, 잡지 『아동』(1946)·『동화』(1947)·『여학생』(1949)·『시문학(詩文學)』(1950∼1951) 등을 편집, 간행하였으며, 1973년부터는 월간 시 전문지 『심상(心象)』을 발행하였다.
처음은 동시를 썼는데 1933년『어린이』지에 동시 「통딱딱 통딱딱」이 특선되었고, 같은 해 『신가정(新家庭)』지에 동요 「제비맞이」가 당선된 이후 많은 동시를 썼다.
본격 시인으로는 1939년 9월 『문장(文章)』지에서 정지용(鄭芝溶)에 의하여 「길처럼」·「그것은 연륜(年輪)이다」 등으로 추천을 받았고, 이어서 「산그늘」(1939.12.)·「가을 으스름」(1940.9.)·「연륜(年輪)」(1940. 9.) 등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데뷔하였다.
1946년 조지훈(趙芝薰)·박두진(朴斗鎭) 등과 3인시집 『청록집(靑鹿集)』을 발행하여 해방 시단에 큰 수확을 안겨주었다.
1930년대 말에 출발하는 그의 초기 시들은 향토적 서정에 민요적 율조가 가미된 짤막한 서정시들로 독특한 전통적 시풍을 이루고 있다. 그의 향토적 서정은 시인과 자연과의 교감에서 얻어진 특유의 것이면서도 보편적인 향수의 미감을 아울러 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청록집』·『산도화』 등에서 잘 나타난다.
6·25사변을 겪으면서 이러한 시적 경향도 변하기 시작하여 1959년에 간행된 『난(蘭)·기타』와 1964년의 『청담』에 이르면 현실에 대한 관심들이 시 속에서 표출되고 있다.
인간의 운명이나 사물의 본성에 관한 깊은 통찰을 보이고 있으며, 주로 시의 소재를 가족이나 생활 주변에서 택하여, 담담하고 소박하게 생활사상(生活事象)을 읊고 있다.
1967년에 간행된 장시집 『어머니』는 어머니에 대한 찬미를 노래한 것으로 시인의 기독교적인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1968년의 『경상도의 가랑잎』부터는 현실인식이 더욱 심화되어 소재가 생활 주변에서 역사적·사회적 현실로 확대되었으며,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사념적 관념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1973년의 『사력질(砂礫質)』에서는 사물의 본질이 해명되면서도 냉철한 통찰에 의하여 사물의 본질의 해명에 내재하여 있는 근원적인 한계성과 비극성이 천명되고 있다. 그것은 지상적인 삶이나 존재의 일반적인 한계성과 통하는 의미다.
수필 분야에서도 일가의 경지를 이루어, 『구름의 서정』(1956), 『토요일의 밤하늘』(1958), 『행복의 얼굴』(1964) 등이 있으며, 『보랏빛 소묘(素描)』(1959)는 자작시 해설로서 그의 시작 방법과 시세계를 알 수 있는 좋은 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사적(詩史的)인 면에서 김소월(金素月)과 김영랑(金永郎)을 잇는 향토적 서정성을 심화시켰으면서도, 애국적인 사상을 기저에 깔고 있으며, 민요조를 개성 있게 수용하여 재창조한 대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상훈과 추모
1955년 첫 시집 『산도화(山桃花)』(1954)로 제3회 아세아자유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1968년 시집 『청담(晴曇)』으로 대한민국문예상 본상을, 1969년 『경상도(慶尙道)의 가랑잎』(1968)으로 서울시 문화상을, 1972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우리시의 역사적 연구』(신동욱, 새문사, 1981)
『한국현대시론』(박두진, 일조각, 1977)
『현대시론』(정한모, 민중서관, 1973)
『한국의 현대시』(서정주, 일지사, 1969)
「향수의 미학」(김종길, 『문학과 지성』, 1971년 가을호)
[네이버 지식백과] 박목월 [朴木月]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