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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서해랑길 64-4코스(운산교 – 내포문화숲길 아미산방문자센터)
여 행 일 : ‘25. 2. 8(토 )
소 재 지 : 충남 서산시 운산면 및 당진시 용연동·대덕동·정미면·면천면 일원
여행코스 : 운산교→수당2교→대운산교→신성대학교→용천교→대덕공원→내포문화숲길 아미산센터(거리/시간 : 18.7km, 실제는 ’대운산교‘부터 14.85km를 4시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창리항에서 삽교호 함상공원으로 연결되는 64코스의 지선(총 6개) 중 네 번째 구간을 걷는다.
▼ 들머리는 운산교(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장리)
서해안고속도로 서산 IC에서 내려와 운암로(70번 지방도)를 타고 운산방면으로 1.5km쯤 들어오면 ‘운산교’에 이른다. 서해랑길(당진 64-4코스) 안내도는 다리 초입에 설치되어 있다.
▼ 운산면소재지(용장리)에서 ‘역천’을 따라 내려가다 ‘용천교’에서 내륙으로 방향을 틀어 ‘아미산’ 초입까지 가는 20.1km짜리 여정. 험하지는 않지만 산길을 7km나 타는데다, 눈에 담을만한 볼거리도 없어 추천할만한 코스는 아니다. 난이도도 별이 4개(전체 5개), 어려운 코스로 분류된다.
▼ 두루누비(한국관광공사의 정보 플랫폼)는 64-4코스의 관광 포인트로 ‘서산 유기방가옥’을 추천하고 있었다. 하지만 탐방로에서 2km 가까이나 떨어져 있어 쉽게 들러볼 수는 없다. 그래서 초반의 4km 정도를 생략하는 대신, 산악회 버스를 이용해 ‘여미리’에 있는 유기방가옥을 다녀오기로 했다. 마을에 도착하니 수문장이라도 되는 양 거대한 느티나무(수령 250년의 보호수)가 반긴다.
▼ ‘여미리’는 달의 넉넉함을 나눌 수 있는 마을이라고 했다. 하긴 늦봄인 사월 여미리에서 바라보는 달빛이 가장 아름답다 하여, 서산8경 중 5경인 ‘여월미야(餘月美也)’에 꼽혔을 정도이니 어련하겠는가.
▼ 마을 초입의 ‘유상묵 가옥(충남 민속문화재 제22호)’부터 먼저 둘러본다. 구한말인 1925년 종5품 벼슬을 지낸 유상묵이 운현궁(雲峴宮)을 본떠서 지었다고 한다. 야산을 배경으로 경사면에 기단을 쌓고 U자형으로 토담을 두른 후 안채와 사랑채를 들어앉혔다. 모티브로 삼았다는 운현궁과 어떻게 닮았는지가 궁금했지만, 문이 닫혀있는 데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아 외관만 살펴보고 발길을 돌렸다.
▼ 사랑채 대문에는 ‘나전헌(螺田軒)’이란 현판이 걸려 있었다. 유상묵의 손자인 유정로의 호라나? 안에는 일중 김충현(1921-2006)의 공산무인수류화개(空山無人水流花開)를 비롯해 나전심경(螺田心畊), 향감여미(鄕感餘美) 등의 편액이 걸려있다고 한다.
▼ ‘ㅡ’자형의 사랑채와 ‘ㄱ’자형의 안채가 ‘ㄴ’자형의 행랑채와 담장으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출입문도 구별되어 각각 안대문과 사랑대문으로 출입할 수 있으며, 행랑채 익랑에 있는 중문으로 사랑마당과 안마당으로 통하게 되어있다.(사진은 인터넷에서 구해왔다)
▼ 유상묵 가옥에서 80m쯤 떨어진 곳에는 320년이나 묵었다는 거대한 소나무가 있다. ‘서산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나이만큼이나 풍성한 품을 미륵불에 내어준다.
▼ 소나무 그늘에는 고려(초기) 때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입상(충남 유형문화재 제132호)‘이 있었다. 높이가 307cm나 된다는 거대한 미륵불은 살찐 방형(方形)으로 근엄하다. 머리 위에는 화불(化佛)이 새겨진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용장천(龍獐川)에 매몰되어 있던 것을 인근 주민들이 수습·보수해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 미륵불의 왼쪽 옆으로 난 샛길로 70-80m쯤 들어가면 ’선정묘(宣靖廟)‘가 나온다. 조선 정종의 4남 선성군(宣城君)과 배위 3명의 신위를 봉안한 사당이다. 왼쪽이 사당, 오른쪽은 재실인 ’선미재(宣美齋)‘이다. 두 건물 모두 문이 닫혀있어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 홍살문과 외삼문을 차례로 지나면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사당이 맞는다. 경기도 파주에 있던 것을 후손이 끊기면서 다른 후손들이 살아가던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참고로 전주이씨(全州李氏) 집성촌인 여미리는 경연참찬관을 지낸 이창주(李昌冑, 1567~1648)가 입향 시조이다.
▼ 초입으로 되돌아오자 이번에는 ‘달빛미술관’이 맞는다. ‘우전 마진식’이란 분의 개인 미술관으로, 봄·여름·가을·겨울을 느껴볼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가끔은 ‘여미달빛음악회’ 같은 이벤트도 열린단다. 하지만 문이 닫혀있어 작품을 구경하지는 못했다.
▼ 건물 밖도 전시장으로 꾸몄다. 대신 그림이 아닌 조각품들로 채워 넣었다. 그런데 서산과 말은 어떤 인연이 있는 것일까? 2주 전, ’해미 국제성지순례길‘을 답사할 때도 저런 말 조형물을 보았었다.
▼ 여미리를 방문한 탐방객들의 느낌을 담은 글과 그림들을 타일로 제작해 벽화를 만들었다. 옆에는 신재 이원중의 ‘여미가 어드메뇨 고향 한번 돌아보세!’란 시비도 세워져 있다.
▼ ‘달맞이 동산’이라고 했다. 정자에 올라 그 유명한 달빛을 구경해보란 모양이다. 참고로 여미리는 저 달맞이동산을 비롯해 석불입상, 성선군사당, 비자나무, 라전고택, 서암동천, 유기방가옥, 느티나무마당, 전라산 등을 ‘9경’으로 꼽고 있었다.
▼ 마을 끝에는 여미리의 얼굴 마담격인 ‘유기방 가옥(충남 민속문화재 제23호)’이 있었다. ‘두루누비’가 64-4코스의 관광 포인트로 꼽은 고택으로, 양지바른 산자락 남고북저의 지형에 건물을 앉히고 타원형 토담을 둘렀다. 가옥 좌측에는 지붕이 개량된 가랍집(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다)을 배치했다. 1919년에 지어졌는데, 서산지역의 전통 양반 가옥 배치를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 고택은 ‘一’자형 안채와, 동편에 담을 사이에 두고 ‘ㄴ’자형의 사랑채, 그 앞에 ‘ㄱ’자형 사랑 대문채가 자리한다. 안마당 서측에는 동향으로 작은 행랑채가 안마당을 감싸며, 대문은 누각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안채에서 작은 문으로 연결되는 사랑채에서는 한옥 체험도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문이 닫혀있어 들여다보지는 못했다.
▼ 여미헌(餘美軒)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는 누각형 대문을 들어서면 부엌과 방, 대청, 건넌방으로 이어지는 '一 자형' 안채가 양반가다운 규모를 드러낸다. 안채 왼쪽에 행랑채, 오른쪽에 사랑채가 있어 전체적으로 마당을 가운데 둔 'ㅁ 자형'이다. 덕분에 크기가 상당한 가옥인데도 아늑한 인상이다.(구도가 안 맞아 다른 분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구해왔다)
▼ 고택 곁에 있는 ‘감나무(서산시 보호수)’도 주요 볼거리 중 하나다. 수령이 400년도 넘었다는데 높이가 13m나 된다고 했다.
▼ 유기방 가옥은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성인 기준 8천원이라니 제법 비싼 편이다. 하지만 수선화가 피어 있을 때만 받는다니 마음 놓고 들어가 볼 일이다. 대신 살림집을 겸한다니 주인장의 안정을 깨뜨리지는 말자.
▼ ‘주막’이란다. tvN의 ‘미스터 선샤인’을 비롯해 KBS-2의 ‘직장의 신’과 ‘붉은 단심’, MBC ‘연인’, SBS ‘꽃선비 열애사’ 등 수많은 드라마가 이 주막이나 고택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고 한다.
▼ 가옥 안내도는 수선화로 치장되어 있었다. 맞다. 유기방 가옥에서는 ‘수선화 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수선화 꽃밭에 둘러싸인 고택을 중심으로 열리는데, 만개한 수선화를 벗 삼아 마음껏 봄나들이를 즐길 수 있단다.
▼ 유기방 가옥의 오른쪽 언덕에는 수령이 350년이나 된다는 ‘비자나무’가 있다. 입향조(이창주)의 증손인 이택(李澤, 1651-1719)이 1675년 제주도에서 흙과 함께 가져와 심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세 그루를 심었는데 한 그루만 남아 둘레 246cm에 높이가 20m나 되는 거대한 몸집을 자랑한다. 제주에서 군락을 이루는 비자나무는 전라도의 백양산과 내장산에서 자생하는 게 전부라고 한다. 중부지방 이북은 이처럼 장수하는 고목이 흔치 않다니 충남 기념물(제174호)로 지정받을 만하다.
▼ 유기방 가옥 앞에는 한 쌍의 해태상이 세워져 있었다. 저곳이 ‘서산 아라메길’ 1구간인 ‘천년미소길’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서산아라메길’은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메’를 합친, 서산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길이다. 1구간은 역사 유적지와 계곡, 산으로 이뤄진 친환경 트레킹 코스로 전라산·용현리 등을 거쳐 해미읍성에 이르는 20.1km 구간이다.
▼ 09 : 50. 실제 출발지인 ‘대운산교’. 첨부된 지도에서 탐방로가 ‘647번 지방도’와 만나는 지점이다. ‘여미리’를 둘러본 다음 산악회 버스를 이용해 이곳까지 왔다. 덕분에 오늘은 정규코스에서 4.35km(두루누비 표기)를 단축해서 걷는 셈이 됐다.
▼ ‘내포 문화숲길’ 중 ‘원효깨달음길’을 걷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내포 문화숲길’은 내포(內浦)의 역사·문화·생태를 아우르는 걷기 여행길이다. 서산·당진·홍성·예산 등 내포지역에 위치한 4개 시·군이 공동으로 조성·운영하는 숲길로 26개 읍면동, 121개 마을 총 320km를 지난다. 원효깨달음길, 내포천주교순례길, 백제부흥군길, 내포역사인물길, 내포동학길 등 5개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 09 : 50. ‘역천’의 물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제방 위로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길이 나있다. 잠시 후 둑길(이정표 : 영탑사→ 9.14km/ 안국사지↓ 4.45km)과 헤어져 들녘으로 들어간다. 참고로 역천(驛川)은 서산시 가야산 ‘석문봉’에서 발원, 북으로 흘러가면서 서산(운산면)·당진(고대면·정미면)의 퇴적평야를 일군 뒤 서해로 유입되는 29.13Km 길이의 하천이다.
▼ ‘원효깨달음길’이 ‘내포불교순례길’로 이름을 바꾸었나보다. 원효깨달음길은 우리나라 불교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원효대사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성찰과 깨달음을 얻는 길이다. 103.5,km를 10개 코스로 나누었는데, 이곳이 7코스와 8코스의 경계지점인 모양이다.
▼ 09 : 58.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검암천(劍岩川)’을 건넌다. ‘두루누비’가 ‘대방교’의 교각 침하로 위험할 수도 있다며 ‘검암천교’로 우회시키는 구간이다. 하지만 안내판은 차량통행만 금지하고 있었다. 참고로 검암천(劍岩川)은 당진시 아미산(峨嵋山)에서 발원 남서로 흐르다가 정미면에서 역천으로 유입되는 길이 8.96km의 하천이다.
▼ 10 : 05. 또 다시 ‘역천’을 따라간다. 역천과 ‘대방(大防)’ 들녘을 좌우에 끼고 가는 모양새이다.
▼ 10 : 12. ‘신성대학교’로 들어가는 ‘덕마교’는 스치듯 지나간다. 때문에 대학교나 학사촌은 곁눈질하는 선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다.
▼ 다리 건너에는 1995년에 개교한 ‘신성대학교’가 있다. 2007년 4년제 학사과정을 인가 받아 전공심화학부를 열었다. 그래선지 전문학교에서 보아오던 물리치료학과와 치위생학과, 사회복지학과 등이 4년제로 편재되어 있었다.
▼ 10 : 13. 역천은 ‘덕마교’를 이용해 건넜다. 하지만 이 다리도 중간이 움푹 꺼져 있었다.
▼ 이후부터는 ‘역천’을 오른쪽에 끼고 간다. 왼쪽에는 모평리의 들녘이 드넓게 펼쳐진다. 요리조리 꿈틀대는 역천의 물줄기가 빚어놓은 충적평야이다. 이름에 걸맞는 풍경이라고나 할까? ‘모평리(模坪里)’란 지명이 대모산(大模山) 기슭에 들어앉은 촌락이 드넓은 평야(平野)를 뜨락으로 삼았다는 데서 유래했다니 말이다.
▼ 10 : 30. ‘모평중보’란다. 모평리 들녘에 물을 대기 위해 막아놓은 수중보(水中洑)라는 얘기일 것이다.
▼ 10 : 37. 운평교. 저 다리를 건너 ‘용연동’으로 갈 수도 있지만, 탐방로는 계속해서 둑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 10 : 45. ‘용천교’로 역천을 건넌다. 정미면을 달려온 서해랑길은 저 다리를 기점으로 당진시내인 용연동으로 넘어간다.
▼ 초입의 안내판은 ‘양지말(역말)’의 유래를 전하고 있었다. 조선 전기, 당진에는 순성역(順城驛)과 흥세역(興世驛)이 있었는데, 이곳 용연동이 ‘흥세역’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역말’이란다. 참고로 홍세역에는 역리(驛吏) 17명과 노(奴) 2명, 비(婢) 2명, 기마 4필, 복마 4필이 있었다고 한다. 꼬맹이 역참(驛站)이었다고 보면 되겠다. 하나 더. 우리가 흔히 쓰는 ‘한참이나 간다’라는 어휘는 이 역참에서 유래되었다는 것도 알아두자. 역참과 역참 사이의 거리를 ‘한 참(站)’이라 했는데, 고려시대는 이 '한 참'의 거리가 100리(약 40km)에 이르렀다니 오죽이나 힘들었겠는가.
▼ 역천의 상류 쪽 풍경. 모평리 들녘에 물을 대는 ‘용현보’가 물길을 막고 있다. 참고로 역천이란 지명은 조선시대 시흥도역승(時興道驛丞) 산하 7개 속역 중 하나인 ‘흥세역(興世驛)’의 옆을 흐르는 하천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 하류 쪽 풍경. 저 물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석문호수’를 만난다.
▼ 10 : 49. 다리 건너 삼거리에서 ‘역천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간다. 150m쯤 진행하면 또 다른 삼거리, 탐방로는 이곳에서 역천로를 벗어나 ‘용연로’로 들어선다. 옛날 ‘흥세역’이 있었다는 곳이기도 한다. 자연부락 이름도 ‘역말(驛村)’로 불린다고 했다.
▼ 이후부터는 ‘용연로’를 따라간다. 오른편은 ‘용연천’, 면천면(죽동리) ‘음고개’에서 발원 서쪽으로 흘러 용천교 앞에서 역천에 유입되는 2.8km 길이의 하천이다.
▼ 1975년에 문을 열었다는 ‘용연초등학교’도 험난한 세파를 배겨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학생 수 부족으로 문을 닫았고, 지금은 당진 유일의 공립 단설유치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 ‘용연1통’ 마을회관. ‘용연(龍淵)’이란 지명은 옛날 이곳에 있었다는 큰 연못(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는)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가뭄이 있을 때 남쪽 이배산(利背山)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돼지머리를 굴려서 용연에 떨어지면 비가 온다고 믿었단다.
▼ 11 : 02. 2차선의 널찍한 ‘용연로’와 헤어진 다음, 1차선인 ‘용란재길’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사진에서 보이는 움푹 파인 능선안부를 넘어간다.
▼ 탐방로는 이제 ‘용란재길’을 따라간다. 읍내동과 용연동 간을 잇는 1차선 도로다. 아까 삼거리에서 만났던 이정표(어름수변공원 3.13km/ 용천교 1.30km)를 시작으로 심심찮게 나타나는 내포불교순례길 이정표가 가리키는 ‘어름수변공원’ 방향으로 가면 된다.
▼ 양지바른 산자락. 그럴듯하게 지어진 저 건물은 재사(齋舍)일까 아니면 살림집일까?
▼ 11 : 18. 길은 해발 72m(핸드폰 앱)의 나지막한 고개를 넘는다. ‘용란재’라고 하던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참! 고갯마루 부근에서 만난 ‘염수 분사장치’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원격제어로 염수를 분사시킬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 고개를 넘으면 ‘대덕동’이다. 당진 시내에 가까워졌는지 고층아파트가 머리를 내밀기 시작한다.
▼ 11 : 24. 아미로(609번 지방도)는 곧장 횡단해버린다. 이어서 ‘ㄱ’자 모양으로 들녘을 가로지른다. ‘엘지시스템 에어컨’ 앞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개울둑을 따르는데 이정표(어름수변공원← 1.26km/ 용천교↓ 3.18km)가 방향을 알려준다.
▼ 11 : 29. 빌라촌 앞에서 ‘양지말길’을 만나 어름수변공원을 향해 간다. 왼쪽 산자락에 대덕맨션, 송정빌리지, 송정빌라 등 공동주택 단지가 여럿 들어서 있었다.
▼ 잠시 후 임도가 시작된다. 당진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능선의 숲속으로 들어간다고 보면 되겠다.
▼ 11 : 38. kakaomap은 이 일대를 ‘봉암(산) 근린공원’으로 표기하고 있었다. 어름수변공원, 버들수변공원, 여울수변공원과 연계 조성된 도심 근린공원으로 가족단위 나들이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 내포문화숲길 종합안내도. 내포 지역 지자체(서산·당진·홍성·예산)들이 불교 성지와 천주교 성지, 동학, 역사인물, 백제 부흥운동 등 수많은 흔적들을 옛길과 마을길, 숲길, 들길, 하천길로 연결한 길이 320km의 장거리 도보 트레일이다.
▼ 50m쯤 더 걸으면 삼거리. 이정표(어름수변공원← 0.46km/ 용천교↓ 3.97km/ 아미산정상↑ 6.87km)가 이제껏 함께 걸어오던 ‘어름수변공원’과 헤어지란다. 그리고는 아미산을 향해 걸을 것을 지시한다.
▼ 탐방로는 근린공원답게 잘 닦여 있었다. 산책 나온 시민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참! 도심에서 가까운 탓인지 능선에 농지나 농가가 들어서 있기도 했다.
▼ 11 : 49. 10분 남짓 더 걸었을까 이제 그만 임도를 벗어나란다. 임도가 넷으로 나뉘는 지점인데, 산길 하나를 더 내놓은 것이다.
▼ 이정표(아미산 정상 6.4km/ 어름수변공원 0.9km)와 함께 세워놓은 안내판이 ‘산길’이 시작됨을 알려준다.
▼ 도심 근교의 산답게 길은 고왔다. 보드라운 흙길은 널찍하게 잘 닦여있는데다 경사까지도 거의 없었다. 시민들이 산책삼아 나서기에 딱 좋은 코스라 하겠다. 이즈음 산비탈 반대편으로 풍요로운 당진의 들녘이 먼발치로 건너다보이기도 한다.
▼ 12 : 00. 길이 나뉘기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이정표를 세웠고, 곳곳에 놓아둔 벤치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정자까지 지어놓았다.
▼ 12 : 05. 잠시지만 임도에 내려서기도 한다.
▼ 12 : 08. 느닷없이 나타난 계단. 이정표(아미산정상 5.27km/ 어름수변공원 2.07km)가 계단으로 올라가란다.
▼ 계단 위에는 ‘대덕공원’이 들어서 있었다. 대덕산(주민들은 그렇게 부르나, 검색되는 지도는 없다)에 조성된 공원으로, 풋살이나 농구를 즐길 수 있는 경기장에다 산책로, 벤치·파고라 같은 휴식시설 등을 가미해 시민들의 힐링 공간으로 꾸며놓았다.
▼ 대덕공원 표석과 조형물. 조형물은 가족나들이에 딱 좋은 공간이라는 자랑을 담았지 않나 싶다.
▼ 12 : 17. 대덕공원 앞. ‘당진시 도로관리사무소’ 진입로를 가로질러 맞은편 산자락으로 올라간다.
▼ 12 : 22. 눈티고개. 이후부터는 전형적인 산길이 이어진다. 그렇게 잠시 걷다보면 ‘눈티고개’다. 새말에서 대덕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높고 험하여 늦봄까지 눈이 녹지 않고 있다 하여 설티(雪峙)·눈틔고개·눈티고개 등으로 불린다는 곳이다.
▼ 안내판은 면천군과 당진현을 잇는 가장 큰 대로가 이 고개를 지나갔다고 적었다. 군수나 현감이 다니던 길이라서 당진군에서 가장 큰 서낭당이 고갯마루에 있었단다. 눈이 오면 통행에 어려움이 많았고 길을 닦는 부역에 동원된 주민들의 고층과 애환이 서려있는 고개이기도 하단다. 그들의 삶의 흔적과 염원이 깃든 돌탑도 있었다고 했으나 눈에 띄지는 않았다. 널찍했다던 고갯길도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 산길은 여전히 고왔다. 하지만 경사는 아까보다 상당히 가팔라졌다.
▼ 왼쪽 나뭇가지 사이로 당진시가지가 내다보인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것이 대도시의 풍모가 엿보인다. 1990년대 말 당진화력에 출장 왔을 때만해도 소읍에 불과했었는데,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에 딱 어울리는 풍경으로 변해있다.
▼ 12 : 26. 공식적인 지명은 없었지만 공동묘지를 지나기도 한다.
▼ 이때 아미산과 다불산이 조망된다. 두 산을 잇는 능선에는 ‘출렁다리’가 놓여있다.
▼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명색이 산길인지라 가파른 오르막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금방 끝나기 때문에 버겁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 64-4코스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서해랑길’의 이정표를 만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다른 시설물에 붙여놓은 ‘화살표식’와 ‘엠블럼’, 그리고 이런 가이드 리본이 전부였다.
▼ 12 : 37. 대신 내려가는 길은 무척 가팔랐다. 그렇다고 걱정할 일은 아니다. 계단을 놓아 부담 없이 내려설 수 있도록 했다.
▼ 12 : 45. 운치어린 대나무 숲을 스치듯 지나치자, 서해안고속도로 아래로 난 굴다리가 입을 딱 벌리고 있다.
▼ 굴다리를 빠져나오자 삼거리(이정표 : 아미산정상← 3.57km/ 어름수변공원↓ 3.37km)가 맞는다.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잠시지만 서해안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이기도 한다.
▼ 12 : 50. 산속으로 들어갈 것을 지시하는 이정표가 지금 우리가 ‘백제부흥군길(8코스)’을 걷고 있음을 알려준다. 홍성 오서산의 장곡산성(주류성), 예산의 봉수산 임존성을 거쳐 당진의 아미산까지 이어지는 '백제부흥군길'은 총 8개 코스로, 백제를 지키려는 민초들의 숱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참고로 660년 7월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 함락된 후, 임존성과 주류성을 거점으로 한 백제부흥운동은 무려 3년 넘게 이어졌다.
▼ 다시 시작되는 산길은 아까보다 많이 가팔라졌다. 오르내림도 상당히 커졌다. 당진시에서 가장 높은 아미산(350.9m) 자락에 들어섰다는 증거일 것이다.
▼ 12 : 57.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이정표를 만났다. 가야할 방향(아미산 정상 2.85km)은 같은데, 반대방향인 ‘어름수변공원(4.49km)’을 우리가 왔던 길이 아닌 능선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두루누비의 앱을 따라 왔는데도 말이다.
▼ 13 : 07. 산길에서 나와 임도(이정표 : 아미산정상 2.22km)를 가로지른다. 죽동2리와 성북2리를 잇는 임도가 지나가는 고갯마루(음고개)인데 차량통행이 잦은 듯 바퀴자국이 여럿 나있었다.
▼ 길은 건너편 ‘아미산’ 자락으로 파고든다. 250m쯤 떨어진 산중턱의 민가까지 비포장 길(도로에 가까운)이 나있다.
▼ 13 : 13. 민가에 딸린 정자 옆에서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 13 : 15. 가파른 산길을 잠시 치고 오르자 임도(이정표 : 아미산정상→ 1.93km/ 몽산← 4.05km/ 어름수변공원↓ 5.41km)가 나타난다. 왼쪽은 64-5코스의 주요 기점 중의 하나인 ‘몽산’으로 연결된다. 64-4코스의 종점은 당연히 오른쪽으로 간다.
▼ 13 : 23. ‘야외교실’이란다. 체험학습이라도 하는 공간인 모양인데, 나로서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실린 시판에 더 관심이 간다. 30년 가까운 공직생활 동안 늘 책상머리에 놓아두고 지표로 삼았었으니 당연하지 않겠는가.
▼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했던가?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立春)이 지났지만 동장군은 가실 줄을 모른다. 매일처럼 한파, 그것도 경보까지 발령하던 기상청이 어제는 이곳 서해안에 폭설이 내릴 거란 예보까지 덧붙였었다. 눈이 적게 내려 트레킹을 하는데 별다른 지장을 주지 않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 13 : 31. 아미산 쉼터. 아미산에 만들어놓은 여러 쉼터 중 하나로 산행을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 채비하기 딱 좋은 곳이다. ‘백제부흥길’의 주요 포스트 중 하나이기도 하다. 8코의 종점이자 9코스의 시점이다. 그래선지 이정표(아미산정상← 1.2km/ 내포문화숲길 당진센터↑ 0.7km/ 대덕공원↓ 4.0km, 몽산 4.8km) 옆에 ‘내포문화숲길 종합안내도’를 세워놓았다.
▼ 아미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코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정상까지 1.2km로 다소 멀지만, 대신 가장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 아미산 등산로 안내도.
▼ 내포문화숲길 당진센터 방향으로 간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임도를 따라가면 된다.
▼ 13 : 38. 서해랑길(64-5코스) 안내도는 아미산산림욕장 입구(이정표 : 내포문화숲길 당진센터→ 0.26km/ 몽산↑ 3.77km/ 아미산쉼터↓ 0.5km)에 세워져 있었다.
▼ 하지만 ‘두루누비’는 ‘내포문화숲길 아미산방문자센터’까지 조금 더 걸으란다. 자동차가 이곳까지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64-5코스 답사 때는 이 길을 다시 올라와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 13 : 41. 아미행복교육원. 당진교육지원청에서 운영하는 교육시설로, 폐교된 면천초등학교 죽동분교를 리모델링해 당진외국어교육센터로 활용하고 있단다. 원어민 교사가 이 지역 학생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외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나?
▼ 그러나 빗돌은 우리네 것을 고집하고 있었다. 시인이자 서예가인 늘빛 심응섭 교수의 ‘효행’을 새겨놓았다. 한글문자조형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분이다.
▼ 13 : 46. ‘내포문화숲길 아미산방문자센터’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오늘은 14.85km를 4시간에 걸었다. 7km나 되는 산길을 오르내린데다, 눈까지 쌓여있어 속도가 떨어졌던 모양이다.
▼ 오늘도 집사람이 함께 해줬다. 오늘만이 아니다. 내 생의 마지막까지 내 곁을 지켜줄 것이다. 어느 날 작은 시험이 진행됐다. 주부에게 아주 친한 사람 20명을 적게 한 다음, 덜 친한 순으로 지워나가도록 했단다. 동료, 이웃, 친구 등이 차례로 지워져나갔다. 부모님을 지울 때는 오래 망설였다. 자녀를 지울 때는 아예 대성통곡을 하더라나? 맞다. 시간이 흐르면 부모님은 세상을 떠날 것이고, 아이들은 자신들의 가정을 만들어 부모 곁을 떠나간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함께 할 사람은 배우자뿐인 것이다. 그렇게 소중한 아내와 함께 한 하루였으니 이 아니 행복할 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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