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27. 큐티
창세기 30:14 ~ 24
합환채 그리고 요셉
관찰 :
1) 합환채로 남편을 사는 레아
- 14절. “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 “합환채”는 ‘맨드레이크’ 혹은 ‘독말풀’ 혹은 ‘연가자’라고 불리우는 식물입니다. 이 식물은 줄기가 짧고 잎은 담뱃잎처럼 넓으며, 뿌리는 당근이나 인삼처럼 생겼습니다. 꽃은 희고 붉은 색으로 매우 향기로운 냄새를 풍깁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 식물을 최음제와 강장제 혹은 임신 촉진제로 믿고 있었습니다. 라헬은 이 “합환채”를 임신 촉진제로 믿었던 것으로 여깁니다. 라헬은 레아의 맏아들 르우벤이 얻은 “합환채”를 자신에게 넘길 것을 요구했습니다.
- 15절.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이르되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니라” => 라헬은 합환채 대신에 남편 야곱을 레아에게 넘겨 동침하게 하는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 자매가 얼마나 남편 야곱을 놓고 서로 시기 질투를 했었는지를 엿보게 됩니다. 남편을 차지하기 위한 갈등이 지나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16절. “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드뢰 내게로 들어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 => 양을 치고 돌아온 야곱은 일반적으로 라헬의 장막으로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한데 이 날은 레아가 야곱을 영접하며 자신의 장막으로 끌어갔습니다. 르우벤이 얻은 합환채로 삯을 치르고 남편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그러한 상황에 그저 따르고 있습니다.
- 17절.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 이 일에 대해서 레아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유다를 낳고 생산이 멈추었는데, 합환채로 남편을 사서 남편과 동침함으로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 18절. “레아가 이르되 내가 내 시녀를 내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의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 => “잇사갈”은 “보상이 있다”, “삯이 있다”는 의미의 이름입니다. 자신이 시녀를 빌하를 남편에게 주고, 또 합환채를 주고 남편을 사서 아들을 얻은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레아가 하나님을 찾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레아는 자신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한 행위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네 아내들 중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영적 감각이 있었던 것은 레아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 19절. “레아가 다시 임신하여 여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을 얻게 된 것을 알게 된 야곱이 다시 레아와 동침하게 되어 여섯째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 20절. “레아가 이르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하고 그의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 => “스불론”은 “남편과 아내가 함께 거한다”는 의미입니다. 레아는 여섯 째 아들을 낳으며 남편이 자신과 함께 거하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후한 선물이라고 여겼습니다. 레아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아들을 생산하며 계속 자라게 되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 21절. “그 후에 그가 딸을 낳고 그의 이름을 디나라 하였더라” => “디나”는 “심판”, “판단”, “변호” 등의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창 46:7)는 말씀을 통해서 야곱에게 딸이 디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딸들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창세기에서 야곱의 딸은 오직 “디나”만 그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후에 있을 문제가 발생하기에 등장시키는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2) 라헬의 태를 여시는 하나님의 은혜
- 22절.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 라헬은 자신이 자녀를 생산하지 못한 것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남편에게 심각한 짜증도 부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라헬의 태를 여셨습니다. 라헬의 소원을 하나님이 모르신 것이 아니셨고, 하나님의 때가 임해야 했던 것입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임의로 하나님의 시간을 조작할 수 없습니다.
- 23절.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도다 하고” => 당시에 자녀를 생산하지 못하는 여인을 저주받은 자로 여겼던 상황이었기에, 라헬이 아들을 낳게 된 것은 라헬의 수치를 거두게 된 일이 되었습니다. 라헬의 태가 열리고 아들을 낳게 된 것은 합환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잇사갈과 스불론의 동생이었기에, 합환채의 효능은 진작에 없어진지 오래 지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때에 라헬이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 24절.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 “요셉”의 이름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치워버리다”는 의미로 라헬 자신의 불임의 수치를 치워버리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다른 한 아들을 더 해주다”라는 의미입니다. 라헬의 고백과 같이 후에 베냐민이 라헬을 통해서 태어나게 됩니다. 라헬 역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지만 레아에 비해서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가르침 :
1) 야곱 집안의 아내들이 남편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과열되었습니다. 그러던 과정에서 르우벤이 합환채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합환채는 임신 촉진제로 여겨졌던 식물입니다. 그래서 라헬은 그 합환채를 자신이 사용하게 되기를 바랬습니다. 정상적이라면 언니 레아가 동생 라헬에게 그 합환채를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한데 이들은 한 남편을 두고 서로 차지하고자 하는 경쟁 관계에 있었고, 라헬은 자녀를 낳지 못하고 있었고, 레아는 남편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관계였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으로 “거래”가 진행되었습니다. 라헬은 합환채를 얻었고, 레아는 남편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해는 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심란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2) 야곱은 자신이 합환채에 의해서 팔리게 된 것을 알고 어떤 마음과 생각이 들었을까요? 참 어처구니 없었을 것입니다. 혼인을 하고 아침에 확인해 보니 신부가 바뀐 경험을 한 야곱입니다. 들에서 양을 치다 돌아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갈 것을 생각하고 도착해서 레아의 장막에 팔려들어가는 야곱의 심정은 정말 씁쓸했을 것입니다. 물론 레아를 아내로 여기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된 상황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레아를 통해서 잇사갈과 스불론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디나를 주셨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하나님께서 레아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정이었습니다. 게다가 레아가 아들들의 이름을 짓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야곱의 마음이 점점 레아에게도 움직였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3) 라헬은 자신이 시기하고 질투하며 야곱에게 자녀를 낳게 해 달라고 강청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합환채를 사용해서 남편의 자녀를 낳고자 했지만, 그것도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소망이 사라지게 되었을 즈음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라헬의 태를 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태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의 열심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4) 요셉은 얻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아들이 되었습니다.
적용 :
1) 레아는 아들을 낳으며 점점 하나님께 더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참 복잡한 가정이 되었지만,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은 도처에 널려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상황, 대지진이 일어난 튀르키에의 상황, 지금 거하고 있는 미얀마의 상황. 모두가 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자랄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을 갈망함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때에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상황 속에서 내 원하는 바가 당장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일희일비 하지 않고자 합니다.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주님의 뜻이 성취되기를 날마다 갈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