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를 걷다보면 사진관이 있는 곳은 어김없이 나란히 전시 된 것을 보게 되는데 부모님이 중심이 되어
의자에 앉고 자녀들이 에워싸고서 미소를 지으며 찍은 가족사진 이다. 예나 지금이나 가족의 소중함이
얼마나 좋은지 말해주듯 오래전의 가족사진은 모두들 카메라에 익숙 치 못해 뻣뻣한 분위기에 찍다보니
어색한 모습 이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크게 달라진 게 없지만 표정은 밝아졌고 카메라 앞에서 갖게 마련인
긴장은 많이 사라졌다, 과거에 비해 확대된 대형 사진을 많이 선호 하다 보니 많이 달라졌다. 마치 가족애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서로 가깝게 붙어 가족내부의 위게 질서를 보이는 풍경, 그 모습은 길거리의 사진을
통해서도 배우게 만든다.
화목함 밝음 아무 걱정 없는 행복한 가족, 결국 가족사진은 대단히 만사행복(萬事幸福) 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여준다. 아버지와 함께한 사진은 많아 추억의 앨범으로 만들었는데 얼마전에 어머니의
기일(忌日)이 지났지만 빛바랜 사진하나 없는 게 가슴 아프게 만드는 것 이다. 그저 마음속으로 얼굴을
상상만 하게 만드는 이유는 생전에 사진 찍기를 싫어 하시고 밖으로 활동 하는 것을 기피 하다 보니
여기에서 발견을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한 가정을 이루는 가족을 영어 스펠로 Family라고 하여
부모님 사랑 합니다( Fatther and mother I love you)의 첫 글자인 가 모여 이루어진 단어라고 한다. 주역은
살림을 꾸려 나가는 부모라고 말하며 그 속에 자녀들은 받들고 따름으로서 화목한 가정이 되는것 이다.
어머니가 지금도 살아 계시면 서울과 시골을 오 가는 모습을 보며 내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삶의 온기를 불어 넣어주는 모습을 볼수 있을것 이다.
나도 서울에서 결혼하여 하나의 가정(家庭)을 꾸리고 살며 아마도 20년이 훨씬 지난 무렵에 가족사진을 찍어
거실의 벽에 걸어 놓은 게 세월이 조금 흘렀다고 너무나 작게 보인 다 그 당시에 아내와 나는 조금 젊은
얼굴 이었고 아이들은 어릴 적 이니까 좋았지만 사진이 너무나 마음에 안들어 기회가 생기면 확대를 하여
벽에 걸어놓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조그만 울타리의 가족을 의미하듯 어느 가정을 막론하고 그 개념(槪念)이
부부(夫婦)와 자식(子息)그리고 부모(父母)가 공동 생활하는 조직체를 말하여 준다. 그래서 가족의 소중함
이기에 사진을 보면 미소(微笑)짓는 표정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인다.가정(家庭) 이란게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가족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장소라고 보는 것이 보통이다. 또, 집이라는 말은 가장(家長)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인간에게 있어 보편적인 사회집단으로, 사회의 발전단계와
이에 따르는 여러 조건, 또는 경제구조나 정치형태에 의하여 나라와 민족마다 각기 다른 형태의 규범과 질서
속에서 복잡한 역사적 변천과정을 밟아 왔다. 대가족과 소가족, 확대가족과 핵가족 같은 가족 형태상의
구별도 한 사회에서 그와 같은 관습이 일반화되면 단순한 분류기준으로 서만이 아니라 바로 가족제도의
개념(槪念)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가정’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르게 되어버린듯 싶다. 우리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가정의 표상은 오늘의 현실적 가정이 아니라 몇십년 전에 사라져 버린 농경문화적 대가족 제도의
가정문화의 모습이다. 오늘날 TV나 소설속에서 보고 있는 가정의 모습 역시 우리들 주변에 살아있는
가정의 실상과는 거리가 먼 무대 위의 연극일 뿐이다. 우리는 내가 갖지 못했기 때문에 가정을 그리워하고
부러워하지만 그립고 부러운 가정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진실로 가정다운 가정이란
어떠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아이들은 ‘ 가정’이라는 개념만 소중한 것으로 배우면서 자랐을 뿐이지 그것을
실제로 체험하면서 자라지는 못했다. 가정마다 문화적 개성이 사라진 시대에서는 가정 문화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기 힘들다. 오늘날의 가정문화는 대중화의 획일화의 방향으로만 치달아 왔다.
그러니 자라나는 세대들이 체험한 가정문화는 규격화한 몰개성적 대중문화일지언정 우리집 나름의
가정문화는 아닌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잃어버린 가정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겠는가. 가정은
무엇이어야 하며 무엇일 수 있겠는가. 공간적 기능으로서의 가정의 의미는 옛날에 비해 형편없이
쪼그라들었기 때문에 더 이상 공간으로서의 집과 가정을 동일시 할 필요는 없게 되었다. 그러니 가정을
지킨다는 말도 이제는 집안에 머물러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 될 수는 없다. 집이라는 공간기능 보다는
가족의 정서적 공감대의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가정의 의미는 살아날 수 있다. 오늘날의 가정에서 가장
모자라는 부분이 가족들 사이의 서로 다른 정서가 만나서 어울리는 공감대 내지는 감정적 유대일 것이다.
세대에 따라 가치관과 취향이 다른데 어떻게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겠나 싶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함께 노력해서 가족 공동체를 느낄 수 있는 정서적 공감대를 찾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만 가정문화가
회복 될수 있는것 이다. 우리의 문화적 전통 중에서도 핵심적인 부분은 가족문화 일터이다.
해마다 추석과 설 명절 때가 되면 귀향 길에 오르는 민족 대이동 현상만으로도 우리의문화적 전통의 중심이
가족주의임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가족주의 문화는 혈연과 가문의 테두리 속에서만 묶여 있는
내향적 내지는 폐쇄적 가족주의 문화이다. 우리의 폐쇄적인 가족주의 전통은 족보문화를 발달하게 할망정
개방적 문화를 키우지는 못했다. 옛날 어려웠던 시절엔 무엇보다 먹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인지 사람의 수를
세는 단어에는 '입 구(口)'자가 들어가 있다. 인구(人口)·식구(食口)·가구(家口) 등이 그렇고, 노비나 재산을
나누어 주는 것을 뜻하는 분구(分口)가 그렇다. 가구(家口)는 집 가(家)와 입 구(口)'가 합쳐져 만들어진 말로
원래 집의 입을 뜻하며 가족 수(家族 數)를 뜻하던 것이 의미가 확대돼 주거 및 생계를 같이하는 사람의
집단이나 그 집단을 세는 단위로 쓰이게 됐다.
예전에 대가족 제도에서 핵가족으로 바끤 요즈음 길거리를 걷거나 공공장소를 가봐도 나이 많으신 부모님과
같이 어울려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고 오직 어린 자녀들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불혹(不惑)과
지천명(知天命)에 살며 길 거리를 걷다가 늙으신 부모님과 온 가족이 미소(微笑)를 지으며 다정(多情)하게
찍은 사진을 볼때면 한참 쳐다보게 만든다. 우리가 늙으신 부모님의 덕분에 이 시대를 살아 가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며 조그만 울타리의 가정(家庭)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 南 周 熙
첫댓글 가족에 대하여 정성스럽게 쓰신 글, 감상 잘 했습니다.
줄간격을 좀 넓혀주시면 감상하기에 편리할 것인데, 꼭 그럴 필요성이 있다면, 할수없구요.
글 잘읽었습니다 ...가족 ...참으로 소중한가족...새삼 가슴이 따뜻해지네요
가끔 몸불편하신 어머님 모시고 오는 젊은 며느리보면 어째그리 예쁘보이는지...
드문현상이거든요~~~
삶에 진솔한 이야기 즐감하고 갑니다.
님의
귀한
글에서
쉬어갑니다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세요
다시 와서 볼게요
늦게 게시물을 보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선생님
가족의 사랑이 깃든 가정의 모습이 드물게 그려지는 이즈음
생산과 사랑의 기초 단위인 가정이 제 자리에 잘 지켜져 있는지
돌아봐집니다
행복은 가정에서 시작하여 가정에서 이루어질 터인데
토대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듯 하지만
어디선가 방망이 소리와 아기소리 글 읽는 소리에
그래도 사랑이 깃든 정든 내 집이라는 노래처럼
아련히 들리는 가정의 행복을 건져보는 사람들도 많으리
자족하며 가정의 행복을 위해 애쓰시는 비룡님께도
같은 행복과 건강을
기원드리며 새벽 걸음 하옵니다
베베님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