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저녁. 후텁지근했습니다. 아. 덥다. 더워.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피부에 불이라도 낼 것 같은 날씨였습니다. 서울 KBS 본관 앞을 찾았습니다. 촛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2천여명의 시민들이 본관 앞 인도를 따라 긴 줄을 만들어 앉아 있었습니다. 요란한 음악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끔 구호소리도 들렸습니다. KBS ‘개념 탑재의 밤’ 문화제 행사였습니다.
사실 이날 저는 가야할 곳이 따로 있었습니다. 김종배 시사 평론가가 한겨레 노조원들을 만나러 왔었거든요. 한겨레 기자들 ‘일 잘 하라’며 저희와 토론하기 위해 오신 것이었습니다. 김종배씨는 저녁 6시 한겨레신문사 6층 노조 사무실 앞에서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와 인사를 하고 테이블에 저녁 대신 놓여진 피자를 먹었습니다. 저, 근데 피자만 먹고 도망나왔습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김종배냐. KBS 노조원들이냐.
김종배씨에겐 미안하지만, 전 그냥 KBS 앞을 찾았습니다. 말도 안하고 그냥 슬쩍 빠져나왔습니다. 아마 선배들은 갑자기 사라진 절 비난했을 겁니다. -.- ‘저 자식은 피자만 먹고 어디로 사라졌어?’
KBS 본관 앞에는 진알시도 와있었고, 오랜만에 만나는 촛불 시민들도 와있었습니다. 냉커피 만들어온 분들도 계셨습니다. 절 알아보고 냉커피도 주시더군요. 완전 고맙. 터벅터벅 걸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촛불도 하나 얻었습니다.
“기자가 왜 촛불을 들어요?”
저를 알아본 어떤 시민이 물었습니다.
“기자니까 들어야지요. 이건 KBS만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취재온 거 아니었어요?”
“아니요. 오늘은 그냥 왔어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촛불은 바닥에 놓았습니다.
새색시 볼처럼 바알간 촛불이 바람에 흔들리며 조금씩 몸을 굽혀갔습니다.
‘아, 뭔가 뿌듯하다.’
이런 게 연대의 느낌인가? 가슴이 설렜습니다.
KBS 노조원들의 표정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상기된 표정들.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같이 즐거워졌습니다.
‘파업 장기화와 몰골들’이라는 이름의 라디오 피디 밴드가 무대에 섰습니다. 미니콘서트를 열더군요. 서태지의 필승을 볼렀습니다. ‘정말 못한다.’ 솔직히 손발이 오그라드는 노래 실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열심히 따라불러주더군요. 노래 자랑하러 나온 거 아니니까요. 같이 ‘파업 필승’을 외치러 나온 자리니까요. 저도 열심히 따라불러주었습니다.
KBS가 파업을 시작한 지 일주일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사측은 아직도 KBS 노조와의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중노위의 협상중재 선언이 있고나서 파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합법파업인데도 사측은 불법파업이라고 왜곡하고 있습니다. 앞길이 여전히 까만 암흑과도 같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KBS 노조원들의 모습은 밝았습니다. 눈사람 박대기 기자도 밝게 웃고 다녔습니다. 박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는군요. “KBS 입사한 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요. KBS 노조원들은 파업 이후 벌어질 징계같은 것은 걱정하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엄경철 노조위원장은 이렇게 말 했습니다. “징계요? 아마 받게 되겠지요. 하지만 걱정 안합니다. 이게 KBS 의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될 거라고 확신하니까요.”
KBS 노조원들은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에 맞서, 김인규 사장의 노조 탄압에 맞서 당당하게 비명 한번 질러본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KBS는 사실상 죽은 방송이었습니다. 이들은 그래서 ‘지키겠다’고 나선 MBC노조와는 달리 ‘KBS를 살리겠다’고 적힌 손수건 팻말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KBS 노조는 KBS를 살릴 수 있을까요.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KBS 구노조가 파업에 동참하고 있지 않고 김인규 사장은 꿈쩍도 안합니다. 대부분 언론이 KBS 파업 소식을 제대로 전달도 안합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이들이 KBS의 새역사를 쓰고 있다는 겁니다. KBS 새노조는 작동을 멈춘 폐에 열심히 산소를 공급하는 인공호흡기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언론은 카나리아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들여마시는 공기에 위험한 물질이 섞여 있으면 비명을 질러 이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언론이 죽으면 우리 모두가 함께 죽습니다.
정권과 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언론으로 남기 위한 KBS 노조의 파업이 꼭 성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언론노조 KBS 본부, 화이팅입니다.
#덧글
KBS 노조에게서 구해온 영상 올려드립니다.
KBS가 파업을 시작한 뒤 벌어진 3일간의 기록입니다.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날 정도로 찡하네요.
첫댓글 언론장악... 무섭다 정말... 맹박이 목을 내 속으로 딸 수 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