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송년 산행기] 인왕산~안산 17년의 성상 돌아보며

[뜬구름]

알대장이 작성한 산행기이며, 카페 접속 장애가 있어서 총무가 대신 카피해서 올립니다

(일부 오탈자 수정)

[2021년 송년 산행기] 인왕산~안산 17년의 성상 돌아보며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남인복 회장이 드디어 물러난다는 얘기를 하며 한달에 한 번씩 죽 했으니 얼마인지 모르겠다고 말했을 때, 그리고 약간의 머뭇거림 끝에 200 얼마 되겠네 말했을 때, 난 머릿속으로 열심히 주판을 두들기고 있었죠. 원래 셈에 약해 한참 걸렸어요. 지금이야 휴대폰 전자계산 앱 열어 간단히 17×12=204란 답을 얻었지만 2021년의 마지막 12월 정기산행지인 서울 서대문구 안산 전망대에선 그 답이 선뜻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주마등처럼 스친다는 표현을 이런 때 곧잘 쓰곤 하죠. 산악회가 만들어진 뒤 몇년 안 됐을 때 태백산 올라 다른 회원들이 모두 그만 내려가자고 했을 때 제가 X고집 부려 시간을 끌었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짙은 구름에 휩싸였던 사위가 일순간 천지개벽하듯 열리는 놀라운 경험을 했던 일이나 지리산 뱀사골 옛 대피소 근처에서 재로가 만들어온 콩국수로 산중 잔치를 벌였던 일화, 어느 해 겨울 무등산 중봉 일대에서 온몸을 날려 보낼 듯 바람이 불어대는데도 기어이 비상식량 먹겠다며 덜덜 떨다 저체온증 걸릴 뻔했던 일 등등.
　숱한 세월에 온갖 풍상을 겪으며 견뎌온 17년 세월을 마감하며 또다른 17년을 바라보며 걷는 산행이 어찌 무겁지 않을까요? 또 산행기를 써야 하는 제 무거움은 어찌할까요?
　그날 새 회장이 된 희망과용기 형이 여느 산행과 달랐던 점을 여러분은 느끼셨는지요? 뭔가 진중하고, 막중한 책임감에 짓눌려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물론 오전 9시 10분쯤 경복궁 전철역에서 10명(남인복 장덕수-75 이희용 강만석-80 김종원 박환-81 임병선 이용진-82 정은경 이현준-83)이 만나 인왕산 오를 때까지도 그랬다가 인왕사 내력을 설명하며 아재 개그로 분위기를 눙치긴 했으나 안산 전망대에 이르러 다시 두 손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형의 태도를 예의 보시지 않았던가요?
　인왕산이야 많이 올랐던 곳이지만 바위에 모두 올라 조망한 남산과 관악산, 청계산 조망은 정말 그럴듯 했지요. 앞날이 캄캄한 산악회와 달리 말이죠. 무악재 가로지르는 생태통로를 이용해 안산을 한바퀴 도는 구간은 늘 공사장 소음으로 시끄러웠는데 이날은 한겨울이라선지 비교적 조용한 편이어서 무척 좋았어요.
　안산 능선 길을 걸은 것은 개인적으로 처음이었는데 북한산 탕춘대 코스처럼 이 산의 능선 부위 길이 널찍한 게 아주 인상적이었죠. 인왕산의 모아이 석상이 이 능선 길에서 아주 멋지게 보인다는 사실을 안 것도 개인적 소득이었고요.
　안산 정상 쪽으로 발길을 돌려 전망대에 이르니 오전 11시쯤이었어요.
　앞에 말한 대로 머릿속으로 딴 계산을 하느라 회장님의 고별사는 듣는 둥 마는 둥했는데 그래도 기억에 남는 대목은 단 하나,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산행에 빠지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지요.  그리고 새 회장님의 취임사가 있었어요. 늘 하던 대로, 이런 날이 올지 몰랐는데 오고야 말았다, 어떻게 뒷일을 감당할지 두렵기만 하다, 힘을 모두어 나아갔으면 한다 등.
　그리고 내가 카톡에 고지한 대로 올해 좋았던 일 셋을 얘기하고 내년 2022년 정기산행 가운데 상반기 계획을 설명했지요. 눈치 빠른 분들은 알아차렸겠지만 우리가 갔던 산들 중에 특히 선명한 기억이 남는 산들을 돌아보는 컨셉트로 내년 산행지를 선정할 생각이에요.
　새 회장님이 예리하게 치고 들어왔죠. “어차피 산행 공고는 사나흘 전이 돼야 할 거 잖아” 새 회장에게 이 자리를 빌어 약속 드립니다.. 그보다는 조금 더 빠를 것이라고요,
　상반기 중에 남 회장이 경주에 머무르게 되면 2박3일쯤 일정을 잡아 남산과 일대를 찬찬히 톺아보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아울러 그 때쯤 방역 상황도 한결 나아져 무슨 게릴라들 작전하듯 모임 계획을 짜지 않고 자연스럽게 많은 회원들이 경주 남산 탐사를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지요.
　그 뒤 아내와 함께 고민해 고른 에트로 가방 전달식이 있었어요. 물론 새 회장님과 총무 승인을 미리 얻었고요. 최고급 명품은 아니더라도 중저가 명품 정도는 돼야 하며, 나이가 들어 어느 자리에 가더라도 돋보이지는 않아도 제법 비싼 인상을 주고, 80대가 되더라도 가벼워야 한다는 기준을 아내가 제시했는데 셋 모두 제법 마음에 들었지요. 디자인도 제법 세련된 느낌을 줬어요. 참고로 아내도 똑같은 크로스백을 들고 다녀요.
　방역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 애프터를 갖는 등 17년 성상의 좋았던 일들에 대한 감회를 나누고 회장님을 떠나보내고 새로 맞는 정을 함께 나누지 못해 아쉽기 짝이 없어요.  5월쯤 경주에서의 일정이 그 아쉬움을 풀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요.
　산행에 참여한 10명이 뿔뿔이 흩어질 계획을 짜고, 독립문 역사공원으로 하산해 유적들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어요.  12시 30분쯤 차례로 신호등을 건너 애프터 장소로 뿔뿔이 이동했는데 첫 조가 건너고 얼마 뒤 안은섭 선배가 와 함께 움직였지요.  나중에 산악회 발전에 일익을 담당한 멍게 총무와 홍주 형이 합류했고요.
　사실 그날 얘기하지 않았는데 난 23일 태국 국경의 미얀마 난민촌을 민주당 의원들,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찾아 27일까지 머무를 계획이었어요. 마음 속으로는 태국 출장 가서 산행기 쓰겠구나 싶었는데 이재명 캠프에서 강력하게 반발했고, 국회의장이 아예 여야 누구도 나가지 말라고 금족령을 내려 방역 상황이 나아진 뒤 일정을 다시 잡기로 했어요. 아마도 이번에 출장을 주도한 시민단체 사람들은 내 의사와 상관 없이 다음 일정을 잡을 거에요. 부득이하게 정기산행과 겹치는 일정이 잡히더라도 혜량 바란다는 취지에서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남 회장이 우리 산악회에 남긴 족적은 길고 깊어요.  어딘가 빈 듯하고 틈이 많을 것 같은 우리 산악회를 어떻게 끌고 갈지 새 회장님의 걱정과 책임이 무거울 것 같아요. 나라도 산행대장으로서 남 회장의 인격을 믿고 허술하고 옹색하게 꾸려가던 일들을 빈틈없이 옹골차게 여밀어 새 회장님을 보필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돼요. 
　아마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답니다. 지난 일년 모두 수고하셨어요.. 그리고 지난 17년 역시 그러했지요.  앞으로도 17년, 그 갑절을 모두 함께, 비록 몸은 멀리 있고 함께 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으로는 함께 할 것으로 믿어요. 모두 행복한 새해 맞으세요. 감사합니다.

[꼬맹이]

일등이네요...ㅋㅋㅋ. 잘 읽었습니다. 일년 산행을 마무리하고 신·구 회장님을 보내고 맞는 대장의 복잡미묘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어서 읽으면서도 숙연해졌다는... 그런데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인가요? 글이 --에요체에서 중간에 --다체로 바뀌었네요...ㅋㅋ. 이런 게 눈에 띄는 것도 직업볌병... 이것도 벗어나야 할 숙제네요. 새해에는 더욱 알찬 우리가 되어요. 감사합니다.

[달라무]

지난 17년의 역사를 느낍니다 앞으로 17년 역사ᆢ 그러면 제 나이가 ᆢ 에 참여하겠습니다

[peoplelover]

산행기 쓰느라 수고했다. 그런데 17년간이나 잘못 알고 있었단 말이냐??? 나와 덕수는 76이 아니고 75란다...한 살 어리게 해주는 것은 좋은데... ㅎㅎㅎ
암튼 대장으로 이끄느라 수고 많았고, 앞으로도 변함없는 진행 기대한다. 물론 새 회장과 케미도 당근 좋겠지만... 뜬구름 총무에게도 당부 전하며...

[아톰]

감성 듬뿍 담긴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산악회 하는 목적은 건강과 친목인데, 이것도 균형이 필요할 듯합니다~~
내년에도 잘 걷고 잘 소통하기를 바랍니다~~

[뜬구름]

대장이 바쁜줄 알지만, 그래도 가장 오랜 세월 같이한 대장이 회장에 대한 思慕曲하나 불러주길 바라는 심정에서 빨리 쓰라고 대장을 엄청 괴롭혔지요. 대장! 미안합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