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하얀 거짓말’을 합시다
신우식 / 대한언론인회 고문 · 전 서울신문사장
사람은 일생동안 몇백몇십만번의 거짓말을 한다는 어느 외국 심리학자의 연구결과를 외신 보도에서 본 적이 있다. 정확한 회수를 기억하지 못하지만‘몇백몇십만번’은 아마도 틀림 없을 것이다. 사람은 하루 평균 2백번 거짓말을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니 ‘몇백몇십만번’은 아마도 엇비슷할 것이다. 하루 2백번 거짓말을 한다고 치면 1년에 7만3천번이다. 이를 70으로 곱하면 5백11만번이다. 70평생에 그만큼 거짓말을 많이 한다고 볼 수있다. 80평생에는 5백84만번의 거짓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80평생에 5백84만번의 거짓말. 믿기지 않겠지만 아마도 이 숫자는‘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자, 지하철을 한번 타 보자.
아는 아주머니끼리 만났다.
“아유, 오랜만이야. 십년은 젊어 보이네. 무슨 비결이라도 있어?”
“무슨 말씀, 당신은 시집 또 가도 되겠어. 피부가 새색시처럼 고와~”
이쪽은 죽마고우라도 되는 듯 오랫만에 만난 친구 사이인 것 같다.
“야, 정말 오래만이다. 몇 번 전화 했는데도 왜 전화를 안 받아? 그래 별 일 없고? 우리 한번 연락해서 만나자.”
“그래? 전화 안될리가 없는데… 한번 연락하자. 식사라도 함께 하자.”
위의 대화에서 참말이 있을지 몰라도 거짓말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은 여러분도 경험을 통해서 잘 알 것이다.
휴대전화의 음악신호가 울렸다.
“어, 지금 종로 3가역이야. 곧 도착할 거야. 좀 기다려.”
3호선 대화행 전차는 막 옥수역에 도착한 순간이다. 이 사람이 어디까지 가는지 모르겠지만 옥수와 종로3가 사이에는 다섯 개 역이 있다. 금호~ 약수~동대입구~충무로~을지로3가를 지나야 종로3가에 다달을 수 있다. 역과 역사이 주행시간을 2분으로 잡는다면 12분간 걸린다. “좀 기다려” 라고 했으니, 12분은 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인가. 어쨌든 거짓말이다.
그뿐인가. 지하철 전차안에서는 갖가지 거짓말 잔치가 펼쳐진다.
“나는 괜찮아. 다리 아프지 않아. 자네가 앉아.”
그러나 다리가 아프지 않다던 그는 건너편 빈 자리에 얼른 가서 앉는다.
‘임산부’와 ‘노약자’가 서로 자리에 앉으라고 버티고 있었다.
결국 노약자가 한마디 했다.
“나는 다음에 내려요. 그러니 앉아요.”
임산부는 마지 못해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다음 역에 내린다던 노약자는 한참 가다가 임산부가 내렸는데도 계속 내리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시간은 오후 2시.
“괜찮아. 나 배고프지 않아. 내 걱정말고 많이들 먹어.”
“벌써 점심을 먹어? 나는 시장하지 않아.”
귀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거짓말로 밖에 의심할 수 없는 말씀들이다.
전차에서 내려 지하철역 화장실에 들어갔다.
“지금 회의중이라 전화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째깍 전화를 끊어 버린다.
하기야 서서 볼 일을 보는 것도 ‘회의’라면 ’회의’다.
지하철의 거짓말들 재미 있지 않은가.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이미 몇가지 거짓말을 하기 시작해서 저녁에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할 것인가.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잠들 때까지 계속 거짓말 행진을 할 것이다. 하루 평균 2백번 거짓말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결코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거짓말을 하지만 그 대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말하자면 생활의 활력소이다.
부모의 거짓말에는 자식을 위한 사랑의 성분이 많이 들어 있게 마련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더듬어보면 모성애속에는 거짓말이라는 당분이 꿀처럼 가득하지 않았던가. 아들 딸의 거짓말속에도 어버이를 위한 영양소가 듬뿍 들어있지 않은가.
- 영국에서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하는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이라 하고 죄 있는 거짓말을 까만 거짓말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기 위하여하는 거짓말은 오색이 영롱한 무지개빛 거짓말일 것이다. -
피천득선생의 수필‘이야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우리 모두 하얀 거짓말을 합시다.
무지개빛 거짓말로 멋진 노후를 누립시다.
시니어스타임즈 131호(2008-07-31)
첫댓글 거짓말도 하면 는다고 하지 말라고 하지만, 하얀 거짓말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쁜 거짓말, 하얀 거짓말 하며 삽시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