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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15일 금요일 말씀 묵상♣
성경:마태복음11:7-15(신17P))
제목: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7.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9.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10.기록된 바 ㄱ)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말 3:1
11.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1)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헬, 또는 침례
12.1)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헬, 또는 침례
13.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14.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15.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할렐루야! 오늘도 말씀을 묵상하시고 말씀과 삶이 일치되는 삶을 사시기를 소원합니다.
***{제목}***“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여러분! 우리는 어제 말씀(마11:1-6)통해서 의심과 회의를 신앙의 성숙과 발전을 위한 영적인 비료로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1.날마다 찾아오는 의심과 회의.
오늘 말씀을 묵상하시는 여러분들 중에서 혹시 의심과 회의에 빠져 고통 받는 분들이 있다면 주님께서 도마를 불쌍히 여기신 것처럼 불쌍히 여겨주시고 찾아와 만나주시고 확신 주심으로 의심과 회의를 극복하게 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2.의심과 회의가 찾아오는 원인.
첫 번째 이유와 원인은 요한이 기대하는 대로 예수님께서 행동하시지 않
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와 원인은 세례 요한이 지금 너무 오래도록 극한의 고통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이 한 행동에서 우리는 의심과 회의를 극복하는 중요한 한 가지 팁을 발견하게 됩니다. 뭡니까?
1).“예수께로 나아가 질문하라!”
2).“성경 말씀을 붙잡아라!”
3).“행함으로 의심을 물리치라!”
신앙생활에 의심과 회의는 필연적으로 찾아옵니다. 의심과 회의를 거름 삼고 자라는 나무가 믿음이라는 나무입니다.
믿음이란 의심과 회의를 이겨내는 힘입니다. 의심과 의혹이 없는 믿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의심과 회의를 싸워 이기는 일 없이는 결코 신앙의 성장이나 성숙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의심과 회의가 전혀 없다는 것이 강한 믿음의 증거가 아닙니다. 의심과 회의가 전혀 없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이건 말하자면 우리 몸 안에 병균이 하나도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몸 안에 병균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병균이 없으면 면역도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사람에게 강력한 병균이 침입하면 감당을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몸에 면역력을 길러주기 위해서 약화된 병균을 몸에 넣어줌으로 우리 몸이 병균과 싸워 이기게 함으로 항체가 생기게 합니다. 그게 백신주사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의심이나 의혹이 아예 없어야 좋은 믿음이라는 오해를 버려야 합니다. 좋은 믿음은 오히려 많은 의심과 의혹이 밀려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앙의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의심과 회의가 찾아오는 것을 겁내지 마십시오. 그 대신에 의심과 회의가 찾아올 때에 절대로 거기에 매여 있지 말고 주 앞에 나와 주님께 기도로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항상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서 말씀에서 증거를 찾으시고 답을 찾으십시오.
제일 좋은 길은 한 마디 말씀이라도 순종하고 실천해 보는 겁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은혜를 풍성히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부디 의심과 회의를 거름으로 삼아 자신의 믿음을 가꿀 줄 아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마태복음11:7-15)
본문의 문맥을 다시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앞서서 세례 요한은 감옥에서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메시야를 기다려야만 됩니까?”
예수님은 대답 대신 예수님을 믿은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대답에 이어서 주님은 오늘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씀의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세례 요한에 대한 칭찬이고,
둘째는 천국과 관련된 세례 요한의 역할입니다.
세례 요한은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그 요한이 한 역할에 주목해야 합니다. 요한은 메시야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오도록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1.가장 위대한 선지자 세례 요한
오늘 말씀은 먼저 세례 요한에 대한 칭찬으로 시작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여자가 낳은 자”란 인간으로 태어난 자 즉 모든 인류를 총칭하는 말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세례 요한보다 위대한 선지자는 없다!
이런 칭찬은 바로 앞선 내용을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면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대한 의구심을 품고 질문을 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진짜 메시야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메시야를 기다려야 됩니까?”
이런 세례 요한이 왜 최고의 선지자로 칭찬을 받았을까요?
칭찬의 첫 번째 이유는 선지자로서 세례 요한의 삶입니다.
우선 세례 요한은 세상 풍조에 흔들림이 없는 선지자였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란 세상 시류에 따라 이리 저리 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세상 지도자들은 흔들리는 갈대와 같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생각을 바꾸고 태도를 바꿉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일관된 모습을 갖고 있었습니다. 신앙이 변치 않습니다. 가치관이 변치 않습니다. 생활 모습이 불변합니다. 가르침에 변함이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세례 요한은 훌륭한 선지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세상의 부귀영화에서 떠나 超然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는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부드러운 옷이란 비단옷과 같이 화려한 권세와 부요를 상징합니다. 당시에 헤롯 임금이나 사두개인 제사장들은 화려한 의복으로 치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청빈한 선지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했던 바로 그 선지자입니다(마3:4, 왕하1:7).
칭찬의 두 번째 이유는 세례 요한의 역할 즉 그가 한 일입니다.
그는 메시야를 직접 세상에 소개한 선지자입니다. 바로 이점이 요한을 칭찬하신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더 나은 자니라/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마11:9-10).
구약 시대 선지자들의 역할은 대략 두 가지 역할을 했습니다.
첫째는 동시대 사람들에 대한 심판과 경고의 메신저 역할입니다.
경고의 메시지는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이고 다른 하나는 도덕적인 타락에 대한 경고입니다.
선지자는 왕이나, 방백들, 제사장들과 같은 권력자들의 타락을 경고했고, 백성들의 타락을 경고했습니다.
둘째는 미래적인 예언입니다. 장차 일어날 일을 미리 알리는 겁니다. 그 예언의 내용은 가까운 장래의 것도 있고 먼 장래의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미래적 예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예언은 바로 메시야가 오신다는 예언입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말라기까지 모든 선지자들이 메시야의 到來를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세례 요한을 이런 모든 선지자들보다도 뛰어난 선지자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10:11).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위대하다는 말입니까? 사실 세례 요한은 성경을 기록하지도 않았습니다. 미래에 대한 예언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기적을 일으킨 적도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큰 업적이 있다는 말일까요? 그의 업적은 단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세상에 소개한 일뿐입니다.
다른 선지자들은 메시야가 오신다는 예언은 했지만 그 메시야가 누구인지 그 메시야를 직접 사람들 앞에 소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직접 대면했습니다.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예수님을 당당히 세상에 소개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
비록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의구심을 품고 제자들을 보내어 질문을 했다고 할지라도 세례 요한이 한 일은 가장 위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구약의 어떤 선지자도 메시야가 장차 온다는 말만 했지 그 메시야를 세상 사람들 앞에 직접 소개하는 일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오직 세례 요한만이 그 일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 요한은 구약 시대의 관점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렇게 세례 요한을 칭찬하신 이유는 세례 요한을 높이는데 뜻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강조하시고자 한 것은 세례 요한의 역할입니다. 즉,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리고 믿게 한 일입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야를 세상에 알리는 것으로 자신의 사명을 다 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가 전한 메시야를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할 것인지? 만일, 우리가 주님을 믿지 않고 영접하지 않는다면 세례 요한의 위대한 사역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세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십시오. 천국에 들어가세요.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가장 중요한 뜻입니다.
2.천국을 침노하라
천국을 침노하라! 천국을 차지하라! 그것이 오늘 말씀의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세례 요한이 전하려고 했던 내용도 바로 그겁니다.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 천국 백성이 되라! 주님은 오늘 아주 극단적인 표현을 하십니다. 천국을 침노하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12절).
천국이 침노당할 수 있나요? 천국이 빼앗는다고 빼앗을 수 있는 곳인가요? 절대 그렇지는 않습니다. 천국은 인간이 침노한다고 열려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시지 않는 한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입니다. 하나님만이 열고 닫으십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셔야 들어가는 것이지 사람이 연다고 열리는 문이 아닙니다.
“침노”라는 말은 노력해보라는 뜻도 아닙니다. 침노하라고 하니까 인간적인 열성으로 노력하면 천국갈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곤란합니다.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천국은 노력으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옛날에 어떤 여공 한 사람이 방직 공장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간의 수습 기간을 거쳐서 드디어 방직 기계 앞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반장이 기계 작동을 가르쳐 주면서 말합니다.
“네가 지금까지 여러 날 실습을 했지만 막상 일을 하다 보면 고장이 날 때가 많을 거야. 그런 때에는 지체 말고 내게 달려 와야 돼. 알았어!”
얼마쯤 지나서 드디어 옷감의 올이 하나 풀렸습니다. 기계를 멈추고 그 풀려진 올을 바로잡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올을 풀다 보니 이실 저실 엉켜서 엉망이 되었습니다.
한 참을 애를 쓰다가 반장에게 달려갔습니다. 반장이 와서 보고는 간단히 고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 고장이 났느냐고 물었습니다. 몇 시간 됐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이제야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여공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제가 고쳐보려고 최선을 다 했습니다” 반장이 다시 말했습니다. “너희 최선은 네 자신이 고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고장 났을 때 즉시 내게 달려오는 것이야! 알았어!”
우리는 최선을 다 한다는 말을 잘 합니다. 그러나 천국에 이르는 최선은 내 자신이 천국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 최선입니다.
천국이 침노당하기 시작한 시기를 주목하세요. 바로 세례 요한의 때부터입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세상에 소개하기 전까지는 메시야를 믿고 싶어도 누가 메시야인지 몰라서 못 믿었습니다.
물론 구약의 선지자들이 메시야를 예언하고 믿으라는 말은 했습니다. 메시야가 동정녀에게 나시고 베들레헴에 나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실 것과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메시야가 병자들을 고치시고 가난한 자들을 구원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그 메시야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다만 메시야를 기대하고 믿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와서 나사렛의 예수가 메시야 그리스도이심을 확실히 알렸습니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의 소리를 듣고 비로소 메시야가 누구인지 알게 되고 믿게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을 통해서 예수님이 구주이신 것을 알고 사람들이 몰려와 믿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제 천국을 침노하라는 말에 담긴 중요한 세 가지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천국을 침노하라는 첫 번째 의미는 주님을 적극적으로 찾고 영접하고 믿으라는 말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예수님 열심히 찾으세요. 예수님을 열심히 만나세요. 예수님께 인생을 전적으로 맡기세요. 그것이 곧 천국을 침노하는 일입니다.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이 나타나거든 적극적으로 사랑을 고백하세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 너를 사랑한다! 결혼 했으면 좋겠다!
괜히 짝사랑만 하다가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우리 전통 민요 노랫말에 보면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벙긋!”
좋은 사람이 나타났는데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벙긋 해서는 일이 안 됩니다. 사람을 사귀는 것도 그래요. 사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악수를 나누세요.
찾아 가고 식사도 나누고 선물도 주고 대화도 하고.... 신앙도 그렇습니다. 주님과의 거리가 곧 천국과의 거리입니다.
주님이 멀리 있는 사람은 천국이 먼 사람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모신 사람은 천국이 가깝습니다.
천국을 침노하라는 두 번째 의미는 세상 종말이 가까이 왔으니 빨리 주님을 만나라는 뜻입니다.
십여 년 전에 어떤 이단자가 나타나서 1994년 10월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선전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다가 헛물을 켰습니다.
그렇다고 주님이 재림하시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분명히 종말은 다가옵니다. 인류 역사에 종말이 있습니다.
지구의 운명에도 종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종말보다 더 확실한 종말은 개인적 종말입니다. 우리의 죽음은 항상 코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우리는 죽기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죽을 날짜를 받아 놓고 카운트다운 하면서 사는 게 인생입니다. 줄기 세포 연구해서 생명을 조금 더 연장해 봐야 몇 년 더 사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은 죽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등불을 준비하고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심정으로 항상 종말을 준비하고 있으라고 합니다.
지금은 구원의 기회가 열려 있는 때입니다.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그러나 은혜의 때가 지나면 곧 천국은 닫힙니다. 한 번 닫힌 천국 문을 절대로 다시 열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천국에 갈 기회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기회가 끝나기 전에 주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을 침노하라는 세 번째 의미는 전투적으로 신앙의 난관을 극복하라는 뜻입니다.
사단의 방해가 극심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인생을 삼키려고 두루 찾아다닌다고 했습니다.
때로는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여 거짓 교훈을 전합니다. 그 외모는 천사 같고 그 능력과 권세는 선지자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단의 하수인을 따라갑니다. 우리가 천국 가기 힘들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고행을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참과 거짓을 구별하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천국을 적극적으로 공격적으로 찾지 않으면 우리는 사단의 세력에 걸려 넘어집니다. 사람들은 인생살이를 생존 경쟁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세요. 얼마나 전투적입니까?
강남의 아파트 추첨을 위해서는 전 재산을 팔아서 올인 합니다. 돈만 된다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작 영원한 천국 집을 위해서 밤새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 세상일에는 열성적인데 천국을 위해서는 열성이 없을까요?
첫째는 눈앞의 이익만 바라보고 훗날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의 시야는 너무나 짧습니다. 눈앞의 이익 눈앞의 권리 눈앞의 명예만 바라봅니다. 후일을 위한 이익 영원을 위한 소득은 보지 않습니다.
둘째는 천국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다면 만사를 제쳐두고 나설 겁니다. 그런데 확신이 없습니다. 사후 세계가 과연 있을까? 과연 고통스런 지옥이 있을까? 과연 하나님은 인생을 심판하실까? 모든 것이 의심스럽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천국 얻는 일은 뒤로 미루고 세상일에만 열심을 냅니다.
천국을 찾는 열심을 내세요. 니고데모는 한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돈도 많고 공회원으로 지위와 명예도 있는 사람입니다. 나름대로 종교 생활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천국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남의 눈이 있고 체면이 있어서 낮에는 감히 예수님을 찾아오지 못했습니다.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인간적인 노력을 많이 했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 니고데모를 향해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주님을 만나기 위해 한 밤중에라도 찾아 오십시요.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집으로 주님을 초청하고 천국에 이르는 길을 들었습니다. 가버나움의 백부장은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몇 십리 길을 달려와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개라고 부르는 것도 상관치 않고 주님을 만났습니다.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한 예배의 열심을 내십시요. 기도의 열심을 내십시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열심을 내십시요. 주님을 믿는 것이라면 뭐든지 열심을 내십시요.
3.천국 생활을 시작하라.
천국은 열려 있습니다. 천국에 가면 어린 아이라도 위대한 선지자 세례 요한보다 낫습니다.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구약 시대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들보다도 더 훌륭한 영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요한보다 더 메시야를 잘 알고 천국을 잘 알고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구원의 길을 잘 알아요. 우리는 바로 그런 시대의 사람들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세례 요한보다 몇 배나 나은 신령한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천국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천국을 침노하십시오. 적극적으로 천국을 차지하기 위한 열심을 내십시요. 세상 일에 쏟는 열심의 절반만 쏟으면 천국의 축복을 넘치도록 받을 수 있습니다.
***{결론}***
여러분!세례 요한은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그 요한이 한 역할에 주목해야 합니다. 요한은 메시야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오도록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1.가장 위대한 선지자 세례 요한.
이런 세례 요한이 왜 최고의 선지자로 칭찬을 받았을까요?
칭찬의 첫 번째 이유는 선지자로서 세례 요한의 삶입니다.
칭찬의 두 번째 이유는 세례 요한의 역할 즉 그가 한 일입니다.
2.천국을 침노하라.
그러면 이제 천국을 침노하라는 말에 담긴 중요한 세 가지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천국을 침노하라는 첫 번째 의미는 주님을 적극적으로 찾고 영접하고 믿으라는 말입니다.
천국을 침노하라는 두 번째 의미는 세상 종말이 가까이 왔으니 빨리 주님을 만나라는 뜻입니다.
천국을 침노하라는 세 번째 의미는 전투적으로 신앙의 난관을 극복하라는 뜻입니다.
왜 세상일에는 열성적인데 천국을 위해서는 열성이 없을까요?
첫째는 눈앞의 이익만 바라보고 훗날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천국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3.천국 생활을 시작하라.
주님을 모시는 사람에게 천국은 이 땅에서 시작됩니다.
먼저는 우리의 마음 속에 천국이 임합니다. 평안합니다. 기쁩니다. 인내합니다. 사랑합니다. 믿고 신뢰합니다. 용기와 담력이 있습니다. 지혜가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형통한 삶이 됩니다.
다음은 가정 천국입니다. 주님을 적극적으로 모신 가정은 가정이 천국으로 변화됩니다. 마지막으로는 교회 천국입니다.
내세 천국이 오기 전에 우리 삶의 처소들이 천국으로 변하는 체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가까이에서 시작됩니다. 천국을 이루면서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마태복음11:7-15절입니다.오늘도 말씀을 묵상하시고 천국의 삶을 사시기를 소원합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