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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문화재청으로부터 사적 지정 예고된 '마산 진동리 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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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 |
| 경남 마산 진동(鎭東面)에는 지금으로부터 약 1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 전기에 살았던 이구아나룡과에 속한 공룡들의 발자국 화석이 또렷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특히 고현리 바닷가 주변 바위 위에 흩어져 있는 400여 개의 공룡 발자국은 두 발로 걸어다니는 초식성 공룡 30여 마리가 걸어다닌 흔적으로 확인되었으며, '공룡나라'로 불리는 가까운 고성보다 훨씬 많은 공룡발자국이 찍혀 있다.
게다가 진동은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마다 봉래산과 고현 앞바다에서 낙화를 서로 연결해 태워 불야성을 이루는 '불꽃낙화축제'가 해마다 열릴 뿐만 아니라 티없이 맑은 바다에서 자라는 미더덕과 오만둥이(주름미더덕, 흰 멍게) 축제로도 유명한 고장이다.
어디 그뿐이랴. 진동은 우리나라 3·1운동사에서 가장 처절했던 '수원 제암리 사건'과 '선천읍 사건', '수안 의거'와 더불어 전국 4대 사건으로 손꼽히는 '삼진(三鎭)의거'가 일어난 고장이다.
삼진의거란 일제시대 때 선진적 애국사상을 가진 진동, 진전, 진북 3개면 농어민들이 스스로 일으킨 순수 반일민중봉기를 말한다. 또한 진동은 한국전쟁 때 보도연맹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오랜 역사와 문화, 압제에 의한 저항정신이 흐르는 진동에 국내 최대 규모의 청동기시대 집단묘역이 발견됐다. 이 사실은 진동지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을 앞두고 지난 2004년 9월 6일부터 이듬해 5월까지 경남발전연구원에서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확인됐다.
경남발전연구원은 이에 앞서 지난 2003년 3월 24일부터 같은 해 5월 30일까지도 이 일대에 대한 시굴조사를 실시했으며, 그 결과 유적이 분포한다고 문화재청에 보고했다.
이어 이 단체는 지난 해 5월까지 본격 발굴조사를 통해 지석묘 8곳과 석관묘 41기를 비롯해 관련 적석(積石) 유적 등 청동기시대의 집약적인 인간 활동 흔적을 찾아냈다.
특히 이 지역의 지석묘들은 그 주변으로 원형 혹은 장방형인 대형 호석(護石 : 무덤 주위를 두른 돌담장)을 갖춘 독특한 형태로 드러나 고고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는 지석묘의 규모로 보아 이들 무덤이 처음 만들어지던 시대에는 이 지역에 상당히 높은 정치적 지배력을 갖춘 권력계층이 지배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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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 진동리 유적 분포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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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 |
| "'마산 진동리 유적'은 지석묘 및 석관묘 무덤군의 규모와 형태, 구조와 특징에서 우리나라 초기국가의 발생과정과 집단의 지위 및 혈연관계를 알 수 있다. 또한 그 문화상에 있어서 중국 동북지방의 청동기시대 유적과 비슷하며, 향후 비교 연구를 통한 문화의 흐름과 전통, 원류를 찾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화재청 '보도자료' 몇 토막
문화재청은 청동기시대 각종 유적이 수없이 쏟아져 나온 경남 '마산 진동리 유적'에 대해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 심의 결과 문화재 지정가치가 있다는 결론이 나옴에 따라 진동리 156-1번지 외 99필지 9만7757㎡(약 3만평)를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다고 29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마산 진동리 유적'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을 앞두고 발견된 유적으로, 보존에 따르는 사유재산의 침해 문제와 문화재 지정을 원치 않는 지역주민들의 반대여론 등으로 수많은 줄다리기를 해왔다"며 "그 동안 문화재청은 개발사업자와 지역주민, 지방자치단체, 문화재전문가 등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하는 갈등조정위원회를 구성, 여러 차례 토론과 협의를 거쳐 마침내 사적 지정 예고를 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지정 예고기간은 관보에 게재되는 날로부터 30일 이상이다. 그리고 그 동안 예고된 내용에 대해 관계 학자와 토지소유자, 관할 지방자치단체 등이 제기하는 의견을 모아 다시 한번 문화재위원회에서 심의하여 정식 지정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사적 지정이 예고된 뒤 뒤에 취소된 사례는 문화재보호법이 시행된 지난 40여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없었던 관례에 비추어볼 때 '마산 진동리 유적'은 이달 말쯤이나 오는 8월중에 사적 지정이 확실시되고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마산 진동리 유적(馬山 鎭東里 遺蹟)에서 발굴된 지석묘는 원형 또는 장방형으로 넓은 범위(길이 500m, 폭 150∼200m)에 걸쳐 대형묘역이 서로 연접되어 군집을 이루고 있으며, 석관묘는 41기가 조사되었다.
또 이 묘역은 2∼5기씩 4곳으로 나뉘어 소형 묘역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출토유물로는 마제석검, 돌화살촉, 무문토기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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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최대의 청동기시대 집단묘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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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 |
| 문화재청 사적과는 "지석묘 A군 1호 지석묘는 상석의 존재는 알 수 없으나 묘역과 매장주체부를 가지고 있다"며 "원형의 묘역은 직경 20m내외로 대형이며, 둘레는 주구(周溝, 물고인 도랑)를 설치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적과는 "묘역의 내부는 잔자갈로 쌓아 1차 분구(墳丘)를 만들고 그 위에 흑갈색점질토를 재차 성토하면서 그 상부를 즙석(葺石)하였다"며 "묘역 중앙에는 지상식 매장주체부를 설치했다"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묘역의 규모나 형태를 볼 때 지석묘 피장자들과 석관묘 피장자는 그 생전 위상이 현저하게 차이가 났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사적지에 대한 보상은 중앙정부(문화재청)와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7대3의 비율로 부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마산 진동리 유적' 사적지 3만평을 매입하려면 200억원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문화재청은 최근 이 지역 보상을 위해 예산 50억원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