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의 여행만리 - 봄은 맛있다, 한 번 먹으면 멈출 수 없는 장흥별미
전남 장흥,산뜻한 맛과 함께 하는 봄 여정· 볼거리 즐길거리도 풍성
장흥에선 천관산 동백림이 잘 알려져 있지만 용산면 마을어귀에 있는 묵촌리 동백림도 명소다. 바닥에 붉은빛으로 낙화한 동백꽃길을 걸으면 봄을 즐길 수 있다.
대덕면 들판에 피어난 초록빛 소풀과 금빛으로 변해가는 보리밭
장흥에 가면 꼭 먹어야하는 별미, 매생이떡국과 장흥삼합,청태전(사진 왼쪽부터)
평화다원가는길에 만난 편백나무 뒤로 노을이 지고 있다
하늘빛수목정원에 홍매화가 활짝 피었다
청태전 티로드가 있는 보림사
어민들이 청정바다에서 자라는 김을 작업하고 있다
장흥에서 자란 특산품인 한우, 표고버섯, 키조개를 구워 함께 먹는 장흥삼합
장흥 다예원의 청태전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봄의 길목입니다.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불어오는 바람에 봄향기가 가득합니다. 전남 장흥땅으로 갑니다. 장흥은 향기가 있는 고장입니다.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거장 이청준, 송기석, 한승원 등이 뿜어내는 문학의 향기가 있습니다. 편백숲 우드랜드와 천관산 동백림은 웰빙의 향기입니다. 장흥의 향기에는 보고 즐기는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맛이 주는 향기도 그만입니다. 이번 주는 그 맛에 대한 여정입니다.
아무리 좋은 풍경이나 웰빙을 즐겨도 맛을 놓쳤다면 허전한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여행 좀 한다는 사람들은 '맛집'을 정하고 주변 여행지를 찾기도 합니다. 다른것은 실패해도 '맛'은 확실히 챙기겠다는 뜻이겠지요. 장흥의 맛은 뭐니 해도 신선한 재료에서 나옵니다. 청정 바다와 산, 육지에서 나오는 재료들이 넘쳐납니다. 득량만에서 자란 키조개와 표고버섯, 한우가 어우러진 장흥삼합을 비롯해 매생이, 갑오징어, 낙지, 석화(굴), 바지락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중 장흥삼합과 매생이탕은 장흥 9미 중 첫 번째 두 번째 자리를 차지 할 정도로 일품입니다. 그뿐인가요. 천년을 이어온 야생 발효차인 청태전도 있습니다. 처마아래에서 발효된 야생차를 다기에 넣고 끓여내면 향은 그윽하고 맛은 부드럽습니다. 봄의 길목, 풍성하고 꽉 찬 맛을 찾아 장흥으로 갑니다.
# 매생이-봄빛 머금은 초록, 이제 봄이 오려나보다
장흥에서도 남쪽 맨 끝자락인 대덕읍 내저마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매생이 양식이 시작됐다는 곳이다. 매생이는 파도가 잦아지는 굽은 곳, 바닷물과 민물이 몸을 섞는 곳에서 잘 자란다. 항아리 형태의 내저마을 앞바다가 최적지로 꼽힌다. 내저마을로 들어서면 바다엔 매생이 발을 설치한 '말대'(말목)들이 빼곡하게 깔렸고 선착장에선 수확한 매생이가 내뿜는 향기로 가득하다. 이달 말 매생이 채취 완료를 앞두고 어민들은 봄빛 머금은 초록 매생이 수확에 여념이 없다. 마을주민들은 매생이 수확이 끝나면 봄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매생이는 '생생한 이끼를 바로 뜯는다'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김이나 파래, 감태와는 '사촌'쯤 된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매생이를 '누에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하며 길이가 수척에 이른다. 빛깔은 검푸르며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럽고 맛은 매우 달고 향기롭다'고 했다.
매생이는 채취 후 겨울철 상온에서도 3~5일을 버티기가 쉽지 않다. 최근에는 냉동기술이 발달해 사철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지만 제철 산지에서 먹는 맛에 비할 바가 아니다.
장흥에선 국물이 안 보일 정도로 걸쭉하게 매생이탕을 끓인다. 매생이 올이 드러날 정도로 연하게 끓인 도시의 매생이국은 댈 게 못 된다. 갓 수확한 매생이에 굴을 넣고 끓여내는 매생이탕은 최고의 영양식이자 별미다. 입에 넣으면 씹을것도 없이 호로록 넘어가는 감칠맛에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다.
또 떡국떡을 넣어 매생이떡국을 끓이거나 매생이전, 매생이칼국수 등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매생이탕을 맛보려면 읍내의 식당들을 찾으면 된다. 매생이 음식만 내는 전문식당은 없지만, 장흥토요시장내 식당들은 대부분 매생이탕ㆍ매생이떡국ㆍ매생이전을 차려낸다.
# 장흥 특산품이 키운 삼합-한우, 키조개관자, 표고버섯 환상궁합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 중 '합이 맞다'라는 것이 있다. 서로 잘 맞는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특히 '삼합'은 세 가지가 잘 어울려 딱 들어맞는다는 뜻이다. 장
흥에는 한우와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을 싸먹는 삼합이 있다. 바로 장흥의 맛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흥삼합'이다. 한 번이라도 그 맛을 보면 갈 때마다 먹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삼합에 들어가는 세 가지 모두 장흥 특산품이다.
한우는 그 자체로도 으뜸 별미다. 장흥인구보다 사육되는 한우가 더 많다. 청정 무공해 지역에서 자란 표고버섯 또한 장흥을 대표한다. 육질이 두껍고 맛이 뛰어난 키조개는 득량만에서 건져내 바다향이 진하다. 이런 한우와 표고, 키조개가 만났다.
달궈진 불판에 한우 한 점과 수분을 머금어 탱탱한 표고를 올리고 키조개는 육수물에 담근다. 고기육즙이 배어나올 때 뒤집어 살짝만 익히다. 상추에 고기와 표고, 키조개를 싸서 입안에 넣는다. 부드럽고 담백한 한우에 은은한 표고 특유의 풍미가 더했다. 텁텁할 수도 있는 맛을 키조개의 쫄깃하면서도 산뜻한 맛이 감초 역할을 한다. 그래서 조금은 낮선 세 가지의 재료가 섞어내는 맛은 조화롭다. 정말 합이 잘 맞는다. 겨자를 푼 간장이나 소금장에 찍어 먹으면 맛은 더욱 살아난다.
# 청태전-천년의 시간이 만든 야생 발효차의 그윽한 향기
요즘 장흥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맛이 있다. 바로 삼국시대부터 근세까지 장흥을 중심으로 발달한 야생 발효차인 청태전(靑苔錢)이다. 이름을 풀어보면 '푸른 이끼가 낀 동전 모양 차'라는 뜻이 된다. 실제로 이끼가 낀 것이 아니라 발효하는 동안 푸른빛이 돌아 이끼처럼 보인다.
녹차는 일반적으로 찻잎을 따서 가마솥에 덖는데 청태전은 야생찻잎을 쪄서 절구에 빻은 뒤 동그랗게 엽전처럼 빚는다. 옹기나 처마아래에서 발효과정을 거치고 나면 차맛은 부드럽고 그윽한 향이 으뜸이다.
보통 1년간 발효를 거치면 차로 마실 수 있지만 제대로 된 청태전을 맛보려면 3년 정도는 발효된것을 마시는 게 알맞다.
청태전은 단단하게 뭉쳐 발효된차라 우려먹는거 보다는 끓여 먹는것이 좋다. 엽전모양의 차 1구에 물 1리터를 부어 끓여 수시로 마시면 된다. 청태전을 맛보고 직접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는곳이 여럿 있지만 장흥다예원과 평화다원이 알려져 있다.
장흥 청태전의 역사는 우리나라에서 선종이 가장 먼저 정착한 보림사에서 시작됐다. 고려시대 차를 만드는 마을인 '다소'가 가장 많은 곳이 장흥이었다. 그 중심에는 야생 차밭이 둘러싼 보림사가 있다. 지금도 아름드리 비자림 아래 야생차밭이 이어지는 보림사 뒤로 청태전 티로드가 조성되어 있다. 차한잔 마셨다면 보림사를 찾아 비자림 속 야생차밭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청태전 티로드는 찻잎이 새로 돋은 4월부터 5월이 특히 아름답다.
장흥=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 여행메모
△ 가는길=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출발하면 경부고속도로~천안ㆍ논산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순천ㆍ완주고속도로~영암ㆍ순천고속도로~장흥나들목으로 이어진다. 약 4시30분~5시간 정도 걸린다.
△ 볼거리=장흥의 천관산은 호남의 5대 명산이다. 이곳에 동백나무 군락지가 있다. 50∼200년생 2만 그루가 서식하는 최대 동백림이다. 인근 용산면 묵촌면도 동백꽃 명소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140여 그루의 동백이 있다. 바닥에 붉은빛으로 낙화한 동백꽃길을 걸으면 봄을 즐길 수 있다.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는 장흥을 대표하는 힐링명소다. 건강에 좋은 것으로 알려진 피톤치드와 음이온을 많이 내뿜는 편백나무가 100㏊에 걸쳐 조성된 곳이다.
남포마을 바로 앞에 있는 소등섬도 가볼 만하다. 득량만 바다가 손에 잡힐 듯하다. 먼바다에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위해 호롱불을 켜 놓고 그 불빛을 보고 무사히 귀환하기를 빌었다고 해서 소등(小燈)섬이라고 한다.
다도해 한눈에 들어오는 정남진 전망대는 광화문에서 정확히 남쪽으로 이어진 육지 끝자락이라는 의미를 담아 바다를 조망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전망대다. 꼭대기에서는 득량만 바다와 소록도, 거금도, 금당도, 평일도 등 고흥과 완도의 섬들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장흥토요장터, 이청준 생가, 한승원문학길, 천년학세트장(사진), 천관산, 선학동마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