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난을 보면 정말 부처님의 가피가 대단한 것 같다.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그렇다. 경전이나 불보살님의 명호, 진언이나 다라니등에는 알수 없는 그런 힘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기적이란 있을 수 없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일 뿐이다.
요즈음은 마음의 세계도 과학적으로 증명을 해나가는 그런 세상이다. 정신세계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몇 번쯤 읽어 봤을 것이다. 일본인이 쓴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라는 책을 보면 우리들이 늘상 사용하고 있는 말이나 글 생각등 모든 만물에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파장들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까페의 어딘가에 "감사하다란 말을 들은 밥은 향기롭다"고 밥을 가지고 실험한 것이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시사 취재 칼럼란에 "염파와 주문"이라는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인도계 미국인인 디팍 쵸프라란 의사이자 명상가인 그는 진언을 가지고 여러가지 실험들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진언을 가지고 다양한 실험을 하여 병원균 조차도 살균시키는 힘이 진언에는 있다고 하였다 그밖에 많은 부분에서 마음의 세계를 다뤄주고 있다.
나는 진언이나 다라니 불보살님의 명호로 직접 많은 사람들이 병고나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을 많은 사람에게 보아 왔다. 체험은 우리들에게 정말 중요하다. 체험은 우리들에게 흔들리지 않은 믿음을 가져다 준다. 나 엮시그러한 체험들이 더욱 더 경전이나 진언이나 다라니 불보살님의 명호들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만들었다.
하루는 절에 다니는 신도분의 언니가 중풍으로쓰러져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병을 가자는 것이다. 신도분 몇하고 병문안을 갔다. 그분은 종교가 카톨릭 이어서 문병만 하고 돌아 왔다.
그런데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왜 그냥 왔냐는 것이다. 기도를 좀 해주라고 다시 갔으면 했다. 그분은 기도를 하면서 경험이 많은 분이었다. 그래서 다시 몇 분하고 같이 갔다.
나는 병 문안을 가면 다라니와 광명진언을 해준다. 다라니와 진언을 하기 전에 나는 먼저 그분들이 편안하도록 이완을 시킨다. 이완을 시킨 이유는 그럴 때 다라니나 진언의 힘들이 그 분들에게 강렬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불보살님의 명호등의 정화시키고 치유의 시키는 힘을 평소에 느끼지 못하시던 분들도 이완된 상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경험을 하게 된다. 그분들은 진언이나 다라니등에서 많은 경험을 하고 확실한 믿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나름대로 활용들을 할수 잇게 된다.
내가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면 내안의 응어리나 영가들은 어떤 형태로든 모습을 드러나게 된다. 어떤이들은 전에 아픔을 느끼지 못했던 아픔을 느끼기도 하고, 무서움들 때문에 절에 가는 것 조차도 방해를 받기도 한다.
어떤이들은 서글퍼서 한없는 울음들을 울기도한다. 때로는 돌아가신분들의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특히 우울증이나 불안함을 간직한 사람들은 이완된 상태가 되면 검은 아주 큰 사람들이 옆에 있단다.
그밖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또 기도 기간이라면 아떤 어려움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우리들은 그것을 마장이라고 한다. 그것은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감추어져 있던 것이 드러나온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 내가 버려논 감정과 연결이 되어 있다. 그것이 드러날 때 우리들은 멀리 해버린다. 그래서 어려움들이 반복되어 버린다. 드러난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그때가 기회다. 그러니 그것은 아주 좋은 현상이다 왜냐하면 몸과 마음이 편안한 이완된 상테가 되면 붙어 있을 공간이 사라져 밖으로 드러나는 과정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라져 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하나의 현상이다.
축하드려야 할 일들이다. 그렁나 한편으로는 그때 잘 다루어 주어야 한다. 기도하시는 사람이라면 그때 더욱더 정진으로 이겨 나가야 한다. 먼저 소리를 내지 않고 각자가 느끼면서 다라니를 30여분 정도 한다.
그러니 어떤 검은 점이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그걸 크로즈업을 시키니 8년전에 돌아가신 시숙이 보인단다. 그분을 느껴보라고 하니 영락없이 지금의 그상태다. 그분에게 말을 거니 말씀을 하시지 않는다.
살아 계셨을 때 말씀이 없으신 분이란다. 그래서 더 이완을 시킨후 몇분들과 광명진언 108편을 요령을 흔들면서 해주었다. 그리고 광영진언 7편으로 멘트와 함께 마무리를 지었다.
끝나고 나서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요령을 흔들면서 광명진언을 해주니 빛이 나타나더니 그 빛을 따라 환한 모습으로 고맙다고 하면서 사라졌다고 한다. 광명진언이라는 이름이 그냥 붙여진 이름이 아닌 모양이다.
이완된 상태에서는 광명이라는 글자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빛을 보게된다. 그빛은 이세상의 지금까지 봐왔던 빛이 아니다. 신기한 일이다. 광명진언을 할때 거의 대부분이 체험을 한다는 사실이다.
남들이 해줄 때와 내가 할 때는 차이가 있다. 그것은 마치 지압을 내손으로 나의 몸을 했을 때와 남의 손으로 해줬을 때 차이가 나는 것 처럼 기도도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거나 힘이 없을 때는 남들이 해주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그럴 때 전제조건이 그사람을 편안하게 해준 다음에 하는 것이다. 그러면 훨씬 효과가 빨리 나타난다. 경험을 하고 난 후부터는 기도를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우리들이 겪고 있는 삶에서의 어려움, 경제,병고, 관게속에서의 어려움, 업보라고 하는 것은 표현만 다를 뿐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가의 장애와 깊은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식들은 서로 연결된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이다.
죽은자들의 영향은 살아 잇는 사람들 보다 더 강렬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식은 그 상태에서 머물러 있고 죽으면 그 집착심들이 9배로 커진다고 한다. 그래서 영가를 천도 시킨다는 것은 죽은자의 몫이 아니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 되어 버리고 만다.
며칠 후 나는 잊어버리고 밖에 나갔다오니 주차장에 무슨 차들이 많이 있었다. 들어와보니 중풍으로 쓰러지셨던 그분과 가족들이 와 있었다. 기도를 해주고 간뒤로부터 한결 가벼워지다니 자고 일어나니 전과 다름없는 몸으로 돌아 왔다는 것이다. 그때 바로 퇴원하려고 하니 의사가 하루만 더 있다가 퇴원을 해라한다. 그래서 퇴원을 하면서 바로 오는 중이였다는 것이다.
불보살님의 명호나 경전 다라니 진언등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그런 힘들이 담겨져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빨리 나타나고 더디게 나타날 뿐이다. 그것은 어떨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간절하느냐의 차이일뿐이다.
나는 다라니나 진언 가지고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 왔다. 비결은 노력과 끈기와 정성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이완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