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헌(錦泉軒) 앞마당에 사랑의 채소가 자란다.
계절의 시대이다
봄엔 나들이
여름은 바람
가을은 향기
겨울은 추억
봄의 계절이다.
연둣빛 세력이 왕성하다.
“연두가 연두일 때 연두가 연두였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전에
오늘은 연두하고 오래 눈을 맞추자”안도현
이 계절의 신선한 생명력을 노래했다.
고향 집을 지키는 구십 노인 형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씨감자를 사러 시장에 가려던 참이라고 하셨다.
형님은 건강이 좋지 않아서 식구들은 텃밭 일을 하시는 것조차 염려하지만,
땅을 놀릴 수 없으니 올해만 더 짓겠다며 또 텃밭 일을 시작하신다.
그래서 고향 집 집터에 딸린 작은 밭에는 형님의 사랑 감자가 열리고,
고추가 붉게 익고, 부추와 대파가 푸르게 서고,
속이 찬 배추가 자랄 것이다. 이정록 시인이 시 ‘삽’에서
‘농부는/ 삽을 뒤춤에 챙기고/ 물의 수평을 잡고/
고랑과 이랑의 춤사위를 가늠한다’이정록
형님께서 새봄에도 농부의 일을 위해 앙상한 두 팔을 걷어붙이신다.
씨감자 심는다는 어머니의 봄
봄은 연둣빛과 꽃의 대향연
소생 못 하는 것에 애상도
형님 내일 동네에 부역이 있어서 나가보려고 한다.
봄맞이 청소를 하는데, 어머니는 새참으로 내놓을 국수를 삶는 일을 돕겠다고 하셨다.
내 고향 마을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손을 모아서 하는 공동 부역이 가끔 있다.
마을에 논의할 일이 있을 때는 회의를 열어 마을 사람들의 의견을 일일이 묻기도 한다.
물론 전원생활을 배경으로 한 연속극에서 보았던 그 확성기도 있어서
이장님의 육성으로 하는 안내 방송을 들을 수도 있다.
옛날엔 이장님 댁에 유선전화가 한 대 있어서 누군가에게 전화가 오면 그것을 알리려고
확성기 안내 방송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밭일을 하다가도 그 방송을 듣고 전화를 받으러 가던 일이 있었다.
이제는 꽤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었다.
아무튼 형님께서 들려주신 근황을 통해 고향
마을의 봄 풍경을 눈에 선하게 그릴 수 있었다.
내가 살던 의성 춘산 금천리
인근 빙계서원 천년을 살아 숨 쉬는 벚꽃나무가 있다.
빙혈 앞에는 빙계사지 오층석탑이 매끈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의성 빙계계곡은 빙계서원에서부터 시작된다.
바람 맑고 달빛 고운 마을에 비단천 빙계천이 흐른다.
학동들이 책 읽는 소리가 청아하게 들린다.
아름다운 산세, 맑은 물이 흐르는 비단천 빙계천이 흐른다
경북 명승 8경의 제일 명승지
아름다운 산세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비단천 빙계천이 흐른다
바람 맑고 달빛 고운 마을에 비단천 빙계천이 흐른다.
학동들이 책 읽는 소리가 청아하게 들린다.
아름다운 산세, 맑은 물이 흐르는 비단천 빙계천이 흐른다
신라의 명승 원효가 공부한 아름다운 배움의 고장에
춘원 이광수는 ‘원효대사’에서 무열왕의 둘째 딸 요석공주가
유월 염천에 젖먹이 아들 설총을 데리고
지아비인 원효대사를 만나기 위해 빙혈을 찾은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공주는 좁은 굴 속을 더듬더듬 기어 들어갔다.
이리 꼬불 저리 꼬불 몇 굽이를 지나 얼마나 들어갔는지 모른다. 점점 추워졌다.
공주는 전신이 꽁꽁 어는 듯하였다.”
빙산사 앞을 흐르는 비단천 빙계천은 굽이굽이에 소가 있고
소에는 용이 되고자 하는 이무기 네 마리가 살고 있었다.
빙산사에서 깨달음을 얻고자 열심히 정진 하였다
마음에서 탐진치를 잘 다스려라
탐진치(貪瞋痴)는 모두 마음에서의 일이다.
탐(貪)은 탐욕/탐심....즉 이기적인 욕망/욕심을 뜻하고,
진(瞋)은 분노/화/불만을 뜻하고,
치(痴)는 어리석음/무지/무명/착각을 뜻한다.
삶을 괴롭게 만드는 뿌리는 치(痴)이다.
인간 세상에 도움을 주고자 선한 이무기는 용이 되어 등천하는 용오름 산이 있다
마음이 나쁜 세 마리 이무기는 탐(貪)을 다스리지 못했고
진(瞋)을 다스리지 못했고, 치(痴)를 다스리지 못해
용이 되지 못하고 소가 막혀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름다움을 가르치는 소이다
빙산사 앞에는 문필봉이 복두산이 있고
복두산 뒷에는 악산인 뱀미산이 있다.
빙혈 앞에는 빙계사지 오층석탑이 매끈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천년을 살아 숨 쉬는 벚꽃나무가 있다.
벌써 꽃망울이 맺혀 내일모레면 피기 시작할 것 같다.
벚꽃이 피면 가 근바 사람들이 모여 꽃구경을 한다.
요즘은 휴대전화나 여럿이 정보를 나누는 메신저 채팅방을 많이 이용해서
마을 공동체에서 하는 확성기 방송은 거의 사라졌지만,
그 때문에 아직 남아 있는 이러한 알림의 방식이 더 정감이 있기도 하다.
봄은 돌아와 꽃은 여기저기서 핀다.
꽃이 진 그 자리에 다시 움이 트고 꽃은 핀다.
물기를 꼭 쥐어짜 놓은 것 같은 마른 꽃과 줄기가 남아 있었지만,
그 아래에는 새로운 싹이 올라온다.
그 싹도 머잖아 꽃봉오리를 지닐 것이다.
생명 세계의 순환을 다시 느끼게 된다.
봄철은 벚꽃이 화사하게 피고
골골에 들꽃이 피고, 맑은 물이 흐르는 향기로운 고장이다
형님은 300년 함창김씨 평리공비안파 금천종중 종손으로
금천헌에서 마음을 다스리며
텃밭의 채소와 열매로 사랑을 전달하신다.
금천헌 마당에
오래된 의자 하나를 봄 햇살이 잘 드는 곳에 놓아두고.
조상들과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누실 것이다
빙계서원에서 공부 하시던 할아버지들의 가르침을 배울 것이다
더러는 이곳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화단의 꽃과 채소가 자라는 모습을 바라볼 것이다.
채소를 봉지 봉지 사주시며 나눈 사랑, 더 그리운 것들도 생각날 것이다.
그리하여 봄밤이 한없이 아득하고 깊고 깊다는 것을 또 느끼게 될 것이다.
봄이 되어 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듯이
형님의 마음엔 친척들과 고향의 채소로 사랑을 나누며
우리가 비록 지금 가난하고 어려운 때를 살더라도
우리의 삶에도 꽃의 시절이 곧 도래할 것임을 잊지 말자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봄의 세계가 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봄의 연둣빛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활착(活着)하는 것은 아닐 테다.
봄의 낮과 밤에 애상(哀傷)이 눈뜨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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