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통영 수국 여행 공지를 보고 만화방초는 10년 전이 가봤지만, 그땐 꽃에 관심이 없었고,
통영 광도천은 최근에 떠오르는 수국명소가 되었기로 어떤가 싶어 신청하였다.
그런데 날씨가 흐리더니 빗방울이 날린다.
오늘 꽃 구경이 좀 번거롭겠다 싶었다.
그런데 함양개평마을과 상림을 추가한다고 한다.
아하!!
그럼 더 좋다.
한옥마을의 정취는 비를 맞은 기와를 보는 것이다.
하늘이 쨍쨍할 때 석조물 문화재를 보러 외부로 가지 않는다.
햇빛에 반사되어 멋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비가 온 다음에 간다.
물기 머금은 석조물이 더 선명하고 멋이 있다.
비 내리는 개평마을!
그려지는 풍경이 기대된다.
나에겐
이번 여행은 주객전도의 여행이었다.
고성 만화방초
통영 광도천 수국
수국 감상은 각자의 느낌대로 간직한 추억이 되셨을 것이라서
후기를 쓸 것이 별로 없으니 생략하고,
함양 개평마을과 상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개평마을
함양군 지곡면은 현직에 있을 때 30대에 처음 선배 고향이라 모친상 당했을 때 갔었으니 인연이 있다.
그 선배가 풍천노씨였고,
개평마을에 풍천노씨 대종가 있는데 잠시 선배 생각이 났다.
이번에 가니 능소화가 담장에 걸려 있어서 잘 감상하고 왔다.
비가 후드득거리는 소리가 잘 녹음되었다.!!^*^ (영상은 능소화 편에서)
1. 비보 소나무숲
지곡초교 앞에 있는 소나무숲은 그냥 소나무숲이 아니라 마을의 동남쪽이 허해서 이를 보충하기 위한
인공으로 조성한 비보(裨補) 소나무숲이지요.
2. 비에 젖은 주홍빛 능소화
까만 기와와 정겨운 담장 너머로는 빗방울을 대롱대롱 매단 주홍빛 능소화가 넝쿨째 풍성하게 피어나 있었다.
주홍빛 눈물이 흘러내리듯 이제 낙화가 된 송이들도 보인다.
개평마을 능소화/ 신기한
까만 기와지붕 아래
묵묵히 세월을 견뎌온 흙 돌담 위로
타닥타닥, 하늘의 슬픈 고백이 떨어질 때
넌 참았던 숨겨둔 주홍빛 눈물을 터뜨린다
맑은 날의 화려함은 추억으로 씻겨가고
오직 투명한 빗방울만을 대롱대롱 매단 채
처연하도록 아름답게 피어 있어
돌아서는 발길을 되돌아보게 붙잡는구나
세찬 빗줄기 무게를 이기지 못해
투둑, 대지 위로 몸을 던진 꽃송이마저도
시들지 않는 고고한 그리움이 되어
비에 젖은 고택을 주홍빛으로 물들인다.
담장 넘어 넘실대는 이 여름의 날들
누군가를 기다리던 넋인 걸 아느니
빗물에 번지는 주홍빛 사연은
꽃잎마다 그리움이 아롱아롱 맺힌다
개평마을 담장과 고샅(시골 마을의 좁은 골목길)도 참 좋다.
3. 물그림자 흐르는 일두 정여창 고택(一蠹 鄭汝昌 古宅)
개평마을을 대표하는 고택이면서, 사극 촬영으로 유명한 곳이지요.
일두(一蠹)란 ’한 마리의 좀 벌레’란 뜻인데 자신의 낮춰서 붙인 호이다.
성리학자 정 여창 선생의 생애는 생략한다.
그로부터 하동정씨는 조선의 한 가문을 형성하게 된다.
다만 입구의 홍살(紅살)은 고택의 품격을 말하는 것이니 한번 보고 간다.
그래서 사랑채에 이런게 쓰여져 있다!
"충효절의"
상림공원
1. 최치원기념관
전국에는 최치원유적지가 여러 곳인데 30여 개 정도가 많이 알려졌지만 실지로 방문해보면 엉터리들이 많다.
대표적인 곳은 의성 고운사 인근의 문학관 그리고 함양의 기념관이다.
그러나 이 기념관에도 실지로 볼 게 별로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200년 전 신라시대 최치원이 남긴 게 별로 없다.
40대 초반에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마지막 흔적은 주로 홍류계곡 청량사 얘기가 많다.
그의 명성은 문학적,불교적으로 ‘사산비명(四山碑銘)’에 있어서 그 사찰이 있는 곳에 주로 유적지가 있다.
현존하는 최치원 비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은 887년 작성한 하동 쌍계사 마당에 있는
국보 진감선사대공탑비명(眞鑑禪師大空塔碑銘)이다.
쌍계사 가면 난 그 비의 냄새를 맛 곤하다.
그리고 이 천재가 왜 세상을 등진지 오래인데 그 후 수백 년간 유학자들이 숭상하는 대상이 되었을까?
그 이유는 길어서 다음에..........
아무튼 오랜만에 다시 사림속의 문창후 최치원선생 신도비(神道碑)를 찾아보았다.
고운 최치원선생을 그리는 정자 사운정(思雲亭)
사은정 인근에 있는 비를 머금은 이은리석불좌상
그리고 이제 전국에 35개만 남아 있는 척화비 중의 하나(부산에는 3개)
무심코 보이는 이 다리에도 전설이 있다. '오작노디 천년교'
지금부터 1,100여 년 전, 통일 신라 말기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함양 태수로 있을 때 해마다 하천 물이 흘러넘쳐 백성들의
생성과 재산을 앗아가자 제방을 만들고 물길을 돌려 나무를 심고 가꾸어 상림숲을 조성 하였다. 지금의 수목들은 그때
심은 나무들이다.
제방을 만들 당시 건너편에 살고 있던 총각이 함양성 안에서 사는 처녀를 사랑하여 매일 밤 시냇물을 건너왔 는데 이를
알게 된 선생이 가엾이 여겨 돌다리를 놓고, 일반 백성들은 다른 길로 다니게 하였다.
이를 놓고 사람들이 '오작노디(오작 징검다리)' 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때의 노디는 홍수로 없어지고 천 년이 지난 지금
함양군에서 천년교로 부활시켜 오작노디의 역할을 하게 하였다.
2. 상림 연꽃단지
연꽃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말은 처염상정(處染常淨)이다.
"더러운 세상(번뇌와 욕망)에 처해 있어도 언제나 마음은 청정함을 잃지 않는다."
즉 "세속에 살면서도 그 세속의 때에 물들지 않고 늘 깨끗한 마음을 지닌다."는 의미다.
요즘 세태를 보면 이런 말들은 책 속의 말일뿐, 돈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범죄가 범죄가 아닌 세상!
끔찍한 세상이다!
이런 상태로 가면 길거리도 마음대로 다니지 못할 세상이 될 것이다!!
아무튼, 백련을 가장 많이 심어놓은 상림 연꽃단지는 2003년부터 2만 평 규모로 확대해왔다.
꽃이 다 피어버린 듯했으나 아직도 봉오리로 있는 게 많아서 가만히 보니 볼거리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이놈들을 발견했다.
대부분 연꽃밭에 가면 홍련이 많은데 이곳은 백련이 많다.
백련 속의 홍련이라 더 이쁨을 받는듯하다.
3. 역사 인물공원
이곳에는 아주 특이한 비석이 하나가 있다.
동학혁명을 일어나게 한 탐관오리 조병갑의 비석이다.
설명은 안내문을 참고 하면 된다.
조병갑, 동학혁명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녹두장군 전봉준이다.
조병갑이 훗날 동학의 제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 선생의 재판에 배석판사로 참여하여 사형 판결을 내린 것은 조선 후기
대한제국이 얼마나 썩어빠진 나라였는지를 알게 한다.
그 조병갑이 결국 민비시해사건의 단초가 되었고, 결과는 마침내 나라를 빼앗겼다.
전쟁도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그리고 수천만명이 고통을 당했다.
범죄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뭘 하는지, 어떻게 되는지!
역사는 이렇게 증명하고 있다!!!
난 조만간 조병갑의 묘를 찾아갈 참이다.
이상으로 후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회장님!
총무님!
신우짱님!
터치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회원여러분들 반가웠습니다.
늘 아름다운 행복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여행길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2026.7.8.
신기한 拜
첫댓글 와우와우 ~♡
멋진 후기가
더 빛나는 여행지~♡
항상 해박하신
신기한님 덕분에
마니 배웁니다~♡
장문의 후기
잘 읽었습니다 ㅎㅎ
수고하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담 여행길에서
또뵙길요 ~~♡
오랜만에 뵙는 신기한님 반가웠습니다
전문가의 수준을 넘어서는 신기한님의
해박한 설명에 감사의말씀을 올립니다
그냥 눈으로만 보고오는 여행보다
알고가면 의미깊고 즐거운 여행이 되겠죠
재미있는 역사공부도 되기도 하구요
엊거제 다녀온 여행 이지만
이제사 새로운 이해와 의미를
알게됩니다
감사합니다
자주뵙기를 기대합니다
이 글을 먼저 읽었더라면 더 멋지고 풍요로운 여행이 되었을 것을 아쉽다.
작가 신기한님의 글 속에 정감과 분노도 깃들어 그 속으로 들어가 본다. 훗날 다시 간다면 이 글을 세세히 읽고 가리라.
멋진 여행기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함양 또
갔군요
저번주에 다 우리도
다녀왔거든요ㅎ
설명글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