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가 나타나다
오나라의 손권 부인 조씨가 그렸다는 산악 지형의 그림이 있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산수화가 아니다. 주로 도성의 구역, 변방의 마을과 마을의 경계를 그렸다. 이것은 그릴이라기보다는 지형도였다. 즉 지도였다. 그러나 산수화가 이런 지형도에서 발전해온 것은 분명하다.
왕미는 그즤 저서 서화 敍畫에서 인물, 동물, 기타 듣등은 산수의 정취를 부각시키는 보조 역할만을 한다. 그래써 산수화는 산수의 정신을 그려야 한다고 했다.
위진시대 이전의 회화는 유가사상의 영향으로 교화가 목적이었다. 인륜을 세워서 이 세상을 악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윙진시대로 전환되면서 나라는 어지러워지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경제적 여유가 잇는 사대부들은 세상 일을 잊고 산수를 유람하는 것을 즐겼다.
인물화가 주로 유교적인 테두리 안에서 발전했다. 반면에 산수화는 도교 사상과, 도교 사상에 입각한 생활태도가 산수화의 태동을 도왔다. 자연과의 교감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산수를 선택했다. 그래서 六朝時代에 도교적 시인과 화가에 의햇서 나타났다.
육조시대의 산수화가 남아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고개지의 낙신부도에 그려진 산수화(배경으로 그려졌다)를 통해서 대강의 분위기나마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