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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철보신(明哲保身)
이치에 밝아 몸을 보전한다는 뜻으로, 매사에 요령 있게 처신해 몸을 보전한다는 말이다.
明 : 밝을 명
哲 : 밝을 철
保 : 지킬 보
身 : 몸 신, 나라 이름 건
이 성어는 총명하여 도리를 좇아 사물을 처리하고 몸을 온전히 보전한다는 뜻으로, 매사에 법도를 지켜 온전하게 처신하는 태도를 이르는 말이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편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甯武子 邦有道則知, 邦無道則愚. 其知可及也, 其愚不可及也.
영무자 방유도즉지, 방무도즉우. 기지가급야, 기우불가급야.
영무자(寗武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지혜로웠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은 듯이 했다. 지혜로운 것은 미칠 수 있지만, 어리석은 듯함은 미칠 수가 없다.’
알아주는 임금 앞에서 마음껏 역량을 펼치다가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어리석은 체 숨어 자신을 지킨다. 후세는 영무자(寗武子)를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지혜자로 높였다.
하지만 좀 얄밉다. 누릴 것만 누리고, 손해는 안 보겠다는 심보가 아닌가? 공자(孔子)께서는 어째서 이를 대단하다 하신걸까?
춘추(春秋)에 보이는 전후 사정은 이렇다. 처음에 영무자는 위성공(衛成公)을 따라 여러 해 갖은 고초를 겪으며 충성을 다했다. 덕분에 사지에서 돌아온 성공(成公)은 영무자 아닌 공달(孔達)에게 정치를 맡겼다.
영무자의 서운함과 배신감이야 말할 수 없었겠는데, 그는 원망하는 대신 바보처럼 자신을 감추고 숨어 끝내 공달과 권력을 다투지 않았다. 공자는 처지를 떠난 영무자의 한결같은 충성을 높이 산 것이다.
나라는 어찌되건 제 한 몸만 보전하려는 꾀를 칭찬한 말씀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를 박수칠 때 떠나라는 식의 처세훈으로 오독(誤讀)했다.
명철보신(明哲保身)이란 말은 시경(詩經) 대아(大雅) 증민(蒸民)편에 나온다. 주(周)나라 선왕(宣王) 때의 재상 중산보(仲山甫)의 덕망을 칭송한 내용이다. ‘현명하고 또 밝아서 그 몸을 붙들어, 온 종일 쉬지 않고 한 임금만 섬기누나’라는 시다.
旣明且哲, 以保其身. 夙夜匪解, 以事一人.
기명차철, 이보기신. 숙야비해, 이사일인.
이것도 흔히 좋은 세상에서 누리며 잘 살다가 재앙의 기미가 보이면 재빨리 물러나 제 몸과 제 집안을 잘 보전하는 것을 가리키는 뜻으로 쓴다. 실제의 쓰임과는 정반대의 풀이다.
명철(明哲)은 원래 선악(善惡)과 시비(是非)를 잘 분별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이익(利益)과 손해(損害)를 잘 판별하고, 나설 때와 침묵할 때를 잘 아는 것으로 풀이한다. 어리고 약한 것을 붙들어 잡아주는 것이 보(保)다. 사람들은 제 몸을 지켜 재앙을 면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다산(茶山)은 세상에서 명철보신이란 말을 제 몸과 제 집안을 보전하는 비결로 여기면서부터 저마다 일신의 안위만 추구할 뿐 나랏일은 뒷전이 되어, 임금이 장차 국가를 다스릴 수조차 없게 되었다고 통탄했다. 경전을 제대로 읽지 못한 오독의 폐해가 참으로 크다.
명철보신(明哲保身)
이치에 밝아 몸을 보전하다는 뜻으로, 매사에 요령 있게 처신해 몸을 보전한다는 말이다.
明 : 밝을 명
哲 : 밝을 철
保 : 지킬 보
身 : 몸 신
명철(明哲)은 총명하고 사리에 밝음의 뜻이고, 보신(保身)은 자신의 몸을 온전히 지킴의 뜻이다. 그러므로 명철보신(明哲保身)은 일을 잘 처리하고 요령있는 처신으로 몸을 보전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자고로 널리 사리에 통하고 깊이 사물의 이치를 캐 낸 지혜로운 사람, 또는 그 덕(德)이 높고 지혜에 의하여 출소(出所) 진퇴(進退)를 그르치지 않고 처신한 현인들을 칭송하여 명철보신(明哲保身)이란 말이 쓰여져 왔다.
서경(書經)의 설명편(說明篇)과 시경(詩經)의 대아(大雅) 증민편(烝民篇)에서 비롯된 말이다.
서경(書經)의 설명편(說明篇)에 보면, 은(殷)나라의 무정(武丁)은 부왕(父王)에 이어 왕위(王位)를 물려받았을 때 망부(亡父)의 3년상(喪)을 치르고도 침묵을 지킨 채 조용히 신하들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러더니 후에 열(說)이라는 현자를 발탁하여 보좌를 받으면서 선정을 펴 만백성의 칭송을 받았다. 이에 군신들이 일제히 이를 칭송하여 “천하의 사리에 통하고 무리에 앞서가는 것을 명철(明哲)이라 하며, 명철한 사람은 참된 사회규범을 정(正)하는 분입니다.”라고 했다는 말이 나온다.
시경(詩經)의 대아(大雅) 증민편(烝民篇)에는, 주(周)나라 때의 명재상 중산보(仲山甫)가 선왕(宣王)의 명을 받고 제(齊)나라로 성을 쌓으러 갈 때 길보(吉甫)라는 신하가 그의 덕(德)을 찬양한 다음과 같은 시(詩)가 실려 있다.
肅肅王命仲山甫將之(숙숙왕명 중산보장지)
邦國若否仲山甫明之(방국약부 중산보명지)
旣明且哲 以保其身(기명차철 이보기신 )
夙夜匪解 以事一人(숙야비해 이사일인 )
지엄하신 임금의 명령을 중산보가 그대로 행하고
이 나라가 잘 되고 못 됨을 중산보가 밝히네.
밝고 분별력 있게 행동하여 자기 몸을 보전하며
아침 저녁으로 게을리하지 않고 임금님만을 섬기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명철(明哲)이란 천하의 사리에 통하고 누구보다도 앞서 깨닫는 사람을 말하며, 보신(保身)이란 나오고 물러남에 있어 이치에 어긋남이 없음을 뜻한다.
오늘날에는 명철(明哲)과 보신(保身)을 떼어 놓고 말하여, 처세에 능한 사람을 보신한다고도 하며, 명철함이 보신을 부추긴다고 하기도 한다.
여기 기명차철(旣明且哲), 이보기신(以保其身)이란 중산보(仲山甫)를 칭송한 말이나 서경의 명철의 용어가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어원이 된 것이다.
당대(唐代)의 대 문장가 유종원(柳宗元)이 기자(箕子)를 칭송하는 문장에서 그 명철을 보(保)한다고 말한 것도 시경에서 인용한 것이다.
기자(箕子)는 은(殷)나라 주왕(紂王)으로 몸을 온전케 하고, 도(道)를 후세에 남긴 현인이라고 전하여 지지만 유종원(柳宗元)은 그 비(碑)에 ‘기자의 묘비(廟碑)에 서(書)함’ 이라는 명문을 지었고, 그 가운데에서 기자의 인덕을 칭양하여, 그 명철을 보(保)하다 라고 썼다.
또한 같은 당대의 시인 백낙천(白樂天)의 ‘두우(杜佑) 치사(致仕)의 제(制)’라는 문장에서, ‘힘을 다하여 임금을 받들고 명철보신(明哲保身)하며 진퇴종시(進退終始), 그 길을 잃지 않았다. 현달한 사람이 아니고서 누가 능히 이것을 겸하리오.’라고 두우를 칭송하였다.
이와 같이 명철보신(明哲保身) 하는 인사는 옛부터 그 수가 많다. 적어도 문장에는 이 말이 자주 쓰여 왔다. 명철(明哲)이 보신(保身)과 병칭되어 지덕(知德)을 겸비한 사람이 난세에 처하여 보신을 겸하였다고 칭송하는 이 말에는 동양적인 은일한 사상과 유교적인 처세술의 냄새를 풍긴다고 볼 수도 있다.
명철보신(明哲保身)
바른 판단으로 몸을 보호한다는 명철보신(明哲保身)이란 말이 있다. 명철(名哲)이란 깊은 통찰력, 보신(保身)이란 몸을 지키는 것, 즉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자신의 몸을 지킨다는 이야기로 사기에 나오는 범려(范蠡)가 이에 해당한다.
사기(史記)의 기록을 보면 범려(范蠡)라는 월(越)나라의 충신이 등장한다. 기원전 5세기 즉 2,500년쯤 지금의 소주(蘇州) 와 항주(杭州)가 있는 강남의 땅에서 오(吳)와 월(越)이라는 두 나라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월왕(越王) 구천(勾踐)은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참패를 당하고 회계산(會稽山)에서 굴욕적인 화의를 맺는다. 귀국(歸國)이 허용되어 돌아온 구천은 회계산의 수치를 씻고자 온갖 고초를 견디어 내어 20년 후 결국 오(吳)를 멸망시키고 원한을 씻었다.
여기에서 고사성어 오월동주(吳越同舟), 와신상담(臥薪嘗膽) 이란 말이 나온다. 이때 월왕 구천을 도와 복수를 성공시킨 자가 범려란 인물이었다. 여기까지는 확실히 전형적인 충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후의 행적을 보면 단순한 충신이라는 범주(帆柱)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공적에 의해 대장군이라는 최고의 자리에 임명된 범려는 이렇게 생각했다. ‘의기가 절정에 있는 군주를 계속 섬기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첫째 구천이란 사람은 고생을 함께 나눌 수는 있어도 즐거움을 함께 나눌 타입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범려는 구천에게 편지를 보내 사의를 표명하였다.
그리고 제(齊)나라로 이주(移住)하였다. 구천과는 인연을 완전히 끊어버린 것이다. 제(齊)나라로 옮겨간 범려는 거기에서 자식들과 사업을 경영하여 수십만금의 재산을 모았다.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제(齊)나라에서도 재상이 되어 달라는 간청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초야에 있으면서도 천금의 부를 쌓고 벼슬길에서는 재상에 오르는 것은 필부의 몸으로 이 이상의 영달은 없다. 그렇지만 이 같은 영달은 화(禍)의 원인이 된다고 하면서 제나라의 부름을 사절한 뒤 재산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몰래 제(齊)나라를 떠나 도(陶)라는 곳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도(陶)라는 고을에서도 또한 사업경영에 성공하여 순식간에 백만금의 부를 쌓았다고 한다. 범려란 사람은 이재(理財)에도 상당한 재능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무렵, 그의 차남(次男)이 초(楚)라는 나라에서 사람을 죽여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범려는 당장 그의 막내 아들에게 막대한 로비자금을 주면서 차남의 구출공작에 나서도록 하였다. 이것을 본 장남이 ‘그것은 장남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꼭 제가 가도록 해주십시오’라고 간청하였다.
모친도 옆에서 ‘이왕이면 장남을 보냅시다’라고 거들었다. 할 수 없이 범려는 장남을 보냈다. 그러나 장남은 가지고 간 대금을 쓰기가 아까워서 결국 구출공작에 실패하고 처형당한 아우의 유해를 안고 돌아왔다. 모친은 한탄을 하며 슬퍼하였다.
그러나 범려는 쓴웃음을 지우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런 결과가 되리라는 것을 나는 미리 짐작했었어. 큰애가 동생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큰애는 어렸을 때부터 나와 함께 온갖 고생을 겪어왔기 때문에 돈을 손에서 좀처럼 놓지를 못하는 거야. 그러나 막내 녀석은 생활의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기 때문에 돈쓰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지. 내가 처음에 막내를 보내려 한 것도 막내라면 마음 놓고 돈을 쓸 수 있기 때문이었어. 큰애는 그것이 안돼. 결국 동생을 죽인 셈이 되었지만 그것도 운명이니까 슬퍼할 일은 못된다.”
즉 범려는 충신이라기보다는 명철보신(明哲保身)의 달인이라 할수 있다.
명철보신(明哲保身)
좀 더 크게 굵게 살아보자.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다. 최악의 상황이야말로 자신을 증명할 절호의 기회이다. 삶에 있어서 고난은 불가피한 것이며 그것을 피할 길은 없다. 우리는 고난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할 의지를 잃었을 때 불행해진다.
재는 넘을수록 험하고, 내는 건널수록 깊은 것임을 알고, 초년고생 말년낙(末年樂)을 철저히 믿고, 자신을 엄청난 일속에 몰아넣어 한계에 부딪쳐보는 체험을 해보자. 화(禍)가 있으면 복(福)도 있고, 비온 뒤에는 활짝 갠다.
아직까지 자신의 능력을 10%도 발휘하지 못 하였음을 인정하자. 평소에 수영을 전혀 못한 사람도 물에 빠지게 되면 체력과 정신력이 다 소진될 때까지 괴력을 발휘하여 빠져 나온다.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최상의 기지가 발휘된다.
급박하고 긴박한 돌발 상황에서도 허겁지겁 당황하지 말자. 급할수록 한발 뒤로 물러나 이걸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냉철히 판단하여 이 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해 내는 영웅이 되자.
사람을 대할 때는 남들보다 영리하게 여겨지거나 보다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려 들지 말자. 그 사람이 누구의 인맥인가 어떤 집안의 사람인가도 보지 말고, 누구에게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인가를 먼저 보도록 하자. 또 그 사람의 재산이나 지위보다는 그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인가를 먼저 보아야 한다.
화 잘 내고 남의 선행을 비웃거나 음모를 잘 꾸미는 사람, 동정심도 없고 개인주의적이며 남의 것을 가로채거나 돈 때 먹고, 거짓말 잘하고 불효하며 배우자 아닌 다른 이성과 불륜 하는 사람은 천한 사람이다. 인색하여 손님 대접 소홀히 하고 남을 무시하며 부끄러운 줄 모른 사람도 천한사람이다.
아무리 거짓도 아첨도 이 세상살이라 하지만 이런 사람과는 가까이 하지 말라. 가까이 하면 자신도 천한 사람으로 전락하게 된다.
명철보신(明哲保身)하자. 지리산이나 남강은 말없이 서있고 흘러도 위엄을 잃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이라도 의타심을 버리고 용기를 갖고 자립을 선언하라. 과감하게 무기력을 벗어던지고 미지의 세계에 용감하게 도전하자.
무슨 일이든지 하려고 맘만 먹으면 방법은 많이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죽느냐 사느냐의 심정으로 몰두하며 만약 이일을 성공시켜 내지 못하면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라. 어려운 일일수록 나를 증명해보일 절호의 찬스다.
진짜 강한 사람은 칠전팔기란 단어를 생각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좌절을 딛고 벌떡 일어선다. 강한 집념을 불태우며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혈전을 치룰 각오로 임해야 한다. 그때가 무서운 괴력이 폭발되는 순간이다.
지금 모든 걸 다 잃었다 해도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미래가 있다. 매일 고급 음식점에서 술잔이나 부딪친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말라. 그들이라 하여 모두 고귀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 중에서도 손가락질 당하고 욕먹는 사람이 많다.
우리가 공평하게 하나씩 달고 있는 두뇌는 모두 개인 것이다. 개인의 생각은 오직 자기만의 것이며 그 생각을 유지하고 성숙시켜 나간 것도 자기뿐이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한 점 낭비없이 현재의 일에 몰두하라.
지난날 나태한 생활이 있었다면 뼈아픈 반성을 거듭하자. 격변의 시대에는 늘 새로운 경험을 쌓아 나가며 미래지향적, 외부지향적이 되어서 착실한 성장과 지속적인 개혁만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수월하면서 꿈과 목표가 이루어진 곳은 지구상에 단 한곳도 없다.
허물없는 것도 공이고, 원망 듣지 않음이 곧 덕이다. 어려운 현실의 자신을 못난이라 미워하지도 말라. 환한 미소와 밝은 표정이 문제해결의 열쇄이며 그 여유로움이 고난을 치유하는 묘약이 된다. 다 같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훌륭한 미래를 만들어 나가자.
혀가 달린 금인(金人)
공자가 주(周)나라에 갔을 때 사당의 섬돌 앞에 쇠로 주조한 금인(金人)이 있었다. 그 입을 세 번 봉하고 그 등에 ‘옛날에 말을 조심한 사람이다. 경계하여 말을 많이 하지 말라. 말이 많으면 실패가 많다. 일을 많이 만들지 말라. 일이 많으면 근심이 많다’라는 명(銘)이 새겨져 있었다.
많은 조선의 문인들은 침묵의 미덕을 강조한 이 금인명(金人銘)을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 실학자 이익(李瀷)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이 금인이 의(義)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시골 구석에 있는 서민도 이렇게 해서는 아니 될 일인데 임금이 금인을 만들어 모범으로 보여 사람들로 하여금 보고 본받게 한다면 나라가 위태롭게 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그리고 후진(後晉)의 손초(孫楚)라는 사람의 반금인명(反金人銘)을 소개했다. 쇠 대신 돌로 석인(石人)을 만들되 그 입을 크게 벌리게 하고 배 대신 그 가슴에다 “나는 옛날에 말을 많이 한 사람이다. 말을 적게 하지 말고 일을 적게 하지 말라. 말을 적게 하고 일을 적게 하면 후생들이 무엇을 서술할 수 있겠느냐”라고 썼다.
침묵이 개인의 명철보신(明哲保身)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국가와 사회에는 오히려 폐해가 될 수 있다. 19세기 역관(譯官) 출신의 문인 변종운(卞鍾運)은 ‘금인명의 뒤에 쓰다(題金人銘後)’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말은 신중하지 않을 수 없으니 한 번 나오면 천리마처럼 달려 따라잡을 수 없고 한 번 실수하면 그 잘못을 없앨 수 없다. 작은 것은 허물을 초래하고 큰 것은 나라를 잃게 한다. 이 때문에 성인이 주나라 사당의 금인을 보고 세 번 탄식했다. 그런데 금인의 입을 세 번 봉한 것은 말을 신중하게 하라는 뜻일 뿐이었지만, 입을 봉하지 않아야 할 때 입을 봉한 자들이 후세에 어찌 이리 많아졌는가? 더구나 묘당에 앉아서도 나라의 안위를 논하지 않고 대궐 앞에 서서도 임금의 잘잘못을 말하지 않으니 이는 공경대부가 그 입을 봉한 것이요, 책선(責善)의 말이 벗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청의(淸議)가 사림에서 일어나지 않으니 이는 선비들이 그 입을 봉한 것이다. 감히 한번 말하는 자가 있으면 벌떼처럼 일어나 고함을 치면서 말을 하지 못하게 하니, 세상에 아부하여 구차하게 면하려고만 드는 일이 어느 새 습속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오히려 군자욕눌(君子欲訥ㆍ군자는 말을 번지르르하게 하지 않고자 한다)을 핑계로 삼고 있으니 이 어찌 신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마음은 말이 아니면 펼쳐지지 않고 일은 말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략) 입이 없는 표주박은 원예사가 잘라 버리고, 소리가 나지 않는 종은 대장장이가 녹여 없애는 법이다. 나는 수양산의 구리를 부어 금인을 만들되, 그 뺨을 넉넉하게 하고 그 혀를 붙여 넣어, 이로써 입을 봉하지 않아야 할 때 봉하는 자들로 하여금 경계로 삼게 하노라.”
입을 봉한 금인이 아닌, 입이 크게 벌리고 혀를 단 금인을 만들어 위정자의 곁에 둘 일이다. 이익의 제자 안정복(安鼎福)은 당시 벙어리라고 부르던, 입이 있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기물을 깨부수면서, “입이 있으면 울고 입이 있으면 말을 하는 것이 천하의 바른 도리인데, 입이 있으면서도 울지 않고 말을 하지 않는다면 이는 상리에 반하는 요물이다. 이 기물이 나오면서부터 위로 조정에서는 말할 만한 일도 말하지 않게 되고 사람들이 모두 말하는 것을 서로 경계하게 되었으니, 이는 온 천하 사람들을 벙어리로 만든 것이다”라고 했다.
설화(舌禍)와 필화(筆禍)로 세상이 시끄럽다. 어쩌다 놀린 부드러운 혀와 붓이 세인의 귀와 눈을 거치면서 날카로운 칼과 창이 되어 스스로를 찌른다. 이 때문에 침묵을 명철보신의 금과옥조로 여기는 군자가 많아질까 걱정이다.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오히려 그 말을 가지고서 그 사람됨을 알아볼 수 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더 무섭다. 술자리에서도 그런 군자가 있으면 남들도 덩달아 입을 다물게 만들어 술판의 흥이 사라지게 하지 않던가!
난세의 처세방법
예로부터 현인들은 난세에 출사하지 않고 은거하며 자신을 수양하기에 힘썼다. 오직 현명하게 자신의 몸을 보존하는 명철보신(明哲保身)만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주역(周易) 건괘(乾卦) 초구(初九)에 대해 공자(孔子)는 “세상에 은둔하여 근심하지 않고 남의 인정을 받지 못해도 근심하지 않으며, 태평한 세상에는 나아가고 근심스러운 세상에는 물러난다(遯世无悶 不見是而无悶 樂則行之 憂則違之)”고 말하였다.
이 말이 많은 현인들에게 처세론의 근거가 되었다. 결국 그들이 치세에서는 출사하지만, 난세에는 화를 피하기 위해 현실도피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다.
예로 중국 서주(西周)의 정치가 강태공(姜太公)은 좋은 때를 기다리기 위해 위수(渭水) 반계(磻溪)에 은거하며 바늘 없는 낚시질을 했다. 마침내 거기서 문왕(文王)을 만나 사부로 등용되고 천하를 평정하였다. 그 후 강가의 은사(隱士)들은 낚싯대를 삼공(三公)의 벼슬과도 바꿀 수 없는 귀물로 여겼다.
또한 진말(秦末) 한초(漢初) 네 노인, 사호(四皓)인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 등은 난세의 폭정을 피하기 위해 상산(商山)에 은거하여 약초를 캐며 생활했다. 유방(劉邦)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다가 후에 장량(張良)의 권유로 다시 출사하였다.
한편 초(楚)나라 대부 굴원(屈原)은 소인들의 참소로 억울하게 파직당하고 상강(湘江)가에 은거하여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다 끝내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졌다. 그가 생전에 지은 이소(離騷)에 “집집마다 쑥을 허리에 가득 차고, 그윽한 난초는 찰 수 없다 한다네(戶服艾以盈腰兮 謂幽蘭其不可佩)”라고 하였다. 쑥은 아첨하는 소인이고 난초는 충직한 군자를 뜻한다. 즉 임금이 간신을 가까이하고 충신을 멀리하는 현실을 비유한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극렬한 은둔파 현사들도 있었다. 고려 말의 충신 72인은 이성계가 역성혁명으로 창업한 조선 왕조 섬기기를 거부하고 두문동(杜門洞; 개풍군 광덕산 골짜기)에 들어와 세상과 격리되어 살면서 절의를 지켰다. 이처럼 옛 현인들은 난세를 피해 은거하여 치세를 기다리거나 세상과 절연하는 등의 최후의 선택을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현인들이 따른 용사행장(用舍行藏)의 도이다.
그러나 이순신(李舜臣)이 난세에 처세한 방법은 이들과는 달랐다. 이순신은 무과시험에 합격한 뒤 처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었다. “국가에 관리로 등용되면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이지만, 등용되지 않더라도 농사짓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권세 있는 자에게 아첨하여 헛된 부귀를 누린다면 나의 수치일 것이다.”
이 말은 이순신의 좌우명(座右銘)과도 같은 것인데, 여기에는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와 헛된 부귀영화을 탐하지 않겠다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의지가 담겨 있다.
난세에서 파직을 당한 경우 대부분의 현인은 은거를 택하지만, 이순신의 경우는 그들과 달랐다. 임진왜란 초기부터 지휘관으로서 참전하였고, 정유재란 때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석방된 뒤 백의종군의 명을 받고 모친의 상중에 기복(起復; 상중출사)을 하였다.
난중일기(亂中日記) 정유년(丁酉年) 4월 19일
일찍 나와서 길에 오르며 어머님 영연(靈筵)에 하직을 고하고 울부짖으며 곡하였다. 어찌하랴. 천지사이에 어찌 나와 같은 사정이 있겠는가. 빨리 죽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 조카 뇌(蕾)의 집에 가서 조상의 사당 앞에서 하직을 아뢰었다.
이순신은 모친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출정하여 권율(權慄)의 휘하에서 작전을 도와야 했다. 파직과 백의종군, 그리고 모친의 사망으로 악순환이 연속되는 참담한 상황에서도 국난 극복에 대한 강인한 염원을 결코 저버리지 않았다. 칠천량 패전이후 직접 시찰에 나서 잔병과 폐선을 수습하고 수군을 재건하기까지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그의 적극적인 구국활동은 옛 현인들의 처세와는 판연히 다르다. 절의를 지키기 위한 은거도 의미가 있지만, 국난극복의 의지를 관철시킨 노력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국가와 민족을 위한 대의를 실현한 것이다.
400여년 전 병신년 겨울 조선은 정유재란을 맞을 위기 상황에 있었다. 우리는 현재 국정혼돈의 위기에서 세모를 보내고 있다. 새해의 밝은 여명을 맞기 위해서라도 이순신이 항상 경계했던 역천(逆天)의 일들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진실을 호도하는 위선의 자줏빛이 곳곳을 물들여 정도를 따르는 이들이 위태롭다. 주역(周易)의 천지비괘(天地否卦)에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온다(大往小來)”고 했듯이 소인에 의해 군자가 가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실 도피보다는 보다 더 적극적인 현실타개의 노력이 요구된다. 그래도 산이 아닌 도시에 사는 진정한 대은자(大隱者)는 오늘도 밝은 미래를 구상할 것이다.
▶️ 明(밝을 명)은 회의문자로 날 일(日; 해)部와 月(월; 달)의 합해져서 밝다는 뜻이 되었다. 그래서 明(명)은 (1)번뇌(煩惱)의 어둠을 없앤다는 뜻에서 지혜 (2)진언(眞言)의 딴 이름 (3)사물의 이치를 판별하는 지력(智力)으로 이치가 분명하여 의심할 것이 없는 것 (4)성(姓)의 하나 (5)중국 원(元)나라에 뒤이어 세워진 왕조(王朝)로 태조(太祖)는 주 원장(朱元璋) 등의 뜻으로 ①밝다 ②밝히다 ③날새다 ④나타나다, 명료하게 드러나다 ⑤똑똑하다 ⑥깨끗하다, 결백하다 ⑦희다, 하얗다 ⑧질서가 서다 ⑨갖추어지다 ⑩높이다, 숭상하다, 존중하다 ⑪맹세하다 ⑫밝게, 환하게, 확실하게 ⑬이승, 현세(現世) ⑭나라의 이름 ⑮왕조(王朝)의 이름 ⑯낮, 주간(晝間) ⑰빛, 광채(光彩) ⑱밝은 곳, 양지(陽地) ⑲밝고 환한 모양 ⑳성(盛)한 모양 ㉑밝음 ㉒새벽 ㉓해, 달, 별 ㉔신령(神靈) ㉕시력(視力) ㉖밖, 겉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밝을 금(昑), 밝을 돈(旽), 밝을 방(昉), 밝을 오(旿), 밝을 소(昭), 밝을 앙(昻), 밝을 성(晟), 밝을 준(晙), 밝을 호(晧), 밝을 석(晳), 밝을 탁(晫), 밝을 장(暲), 밝을 료(瞭), 밝힐 천(闡),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꺼질 멸(滅), 어두울 혼(昏), 어두울 암(暗)이다. 용례로는 명백하고 확실함을 명확(明確), 밝고 맑고 낙천적인 성미 또는 모습을 명랑(明朗), 분명히 드러내 보이거나 가리킴을 명시(明示), 분명하고 자세한 내용을 명세(明細), 밝고 말끔함을 명쾌(明快), 밝음과 어두움을 명암(明暗), 명백하게 되어 있는 문구 또는 조문을 명문(明文), 밝은 달을 명월(明月), 분명하고 똑똑함을 명석(明晳), 세태나 사리에 밝음을 명철(明哲), 똑똑히 밝히어 적음을 명기(明記), 일정한 내용을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풀어 밝힘 또는 그 말을 설명(說明), 자세히 캐고 따져 사실을 밝힘을 규명(糾明), 사실이나 의사를 분명하게 드러내서 밝힘을 천명(闡明), 날씨가 맑고 밝음을 청명(淸明), 흐리지 않고 속까지 환히 트여 밝음을 투명(透明), 틀림없이 또는 확실하게를 분명(分明), 마음이 어질고 영리하여 사리에 밝음을 현명(賢明), 어떤 잘못에 대하여 구실을 그 까닭을 밝힘을 변명(辨明), 의심나는 곳을 잘 설명하여 분명히 함을 해명(解明), 의심할 것 없이 아주 뚜렷하고 환함을 명백(明白), 어떤 사실이나 문제에서 취하는 입장과 태도 등을 여러 사람에게 밝혀서 말함을 성명(聲明), 불을 보는 것 같이 밝게 보인다는 명약관화(明若觀火),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이라는 명경지수(明鏡止水), 새를 잡는 데 구슬을 쓴다는 명주탄작(明珠彈雀), 아주 명백함이나 아주 똑똑하게 나타나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명명백백(明明白白), 맑은 눈동자와 흰 이라는 명모호치(明眸皓齒) 등에 쓰인다.
▶ 哲(밝을 철)은 형성문자로 喆(철)은 통자(通字), 悊(철)은 고자(古字), 埑(철)은 동자(同字), 啠(철)은 와자(訛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折(절, 철)로 이루어졌다. 죄를 하나 하나 들어 말하며 꾸짖다가 원래의 뜻이 전(轉)하여 잘 알다의 뜻이 되었다. 그래서 哲(철)은 ①밝다 ②슬기롭다 ③알다 ④결단하다 ⑤철인(哲人; 도리나 사리에 밝은 사람) ⑥높임말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인간이나 인생 세계의 지혜로 궁극의 근본 원리를 추구하는 학문을 철학(哲學), 학식이 높고 사리에 밝은 사람을 철인(哲人), 철학 상의 이치를 철리(哲理), 어질고 슬기로우며 사리에 밝은 여자를 철부(哲婦), 어질고 밝은 남자를 철부(哲夫), 어질고 밝은 신비를 철사(哲士), 어진 임금이나 명철한 임금을 철벽(哲辟), 어진 지혜나 밝은 가르침을 철명(哲命), 현철한 말을 철언(哲言), 세태나 사리에 밝음을 명철(明哲), 영민하고 사리에 밝음 또는 그러한 사람을 영철(英哲), 뛰어난 철인을 명철(名哲), 슬기롭고 명철함을 혜철(慧哲), 어질고 사리에 밝음 또는 그런 사람을 현철(賢哲), 옛 철인을 고철(古哲), 깊은 지혜가 있음 또는 그 사람을 준철(濬哲) 등에 쓰인다.
▶ 保(지킬 보)는 회의문자로 어른이(人) 아이를(呆) 지키고 보살핀다는 데서 보전하다를 뜻한다. 옛 모양은 사람 인(人=亻; 사람)部와 子(자; 아이)로 쓰고 好(호)의 얼개와 비슷하고 뜻도 관계가 깊다. 그래서 保(보)는 (1)보증(保證) (2)보증인(保證人) (3)고려(高麗) 때 세자(世子) 첨사부(詹事府)의 으뜸 벼슬. 곧 세자보(世子保)의 일컬음 (4)옛날 중국에서 행해진 인보조합(隣保組合). 일정한 호수(湖水)로 조직되어 연대 책임을 짐. 보갑법(保甲法) (5)대만(臺灣)의 지방자치 단위의 하나. 10갑(甲; 1갑은 10호)을 1보로 하여 연대 책임을 지게 함 (6)보포(保布) 등의 뜻으로 ①지키다, 보호하다, 보위하다 ②유지하다, 보존하다 ③보증하다, 책임지다 ④보증을 서다 ⑤돕다, 보우하다 ⑥기르다, 양육하다 ⑦붙다, 귀순하다 ⑧편안하다, 안정시키다 ⑨차지하다, 점유하다 ⑩믿다, 의지하다 ⑪보증인(保證人), 보증(保證) ⑫보험(保險) ⑬고용인(雇傭人), 심부름꾼 ⑭조합(組合) ⑮보(조선 시대 장정의 조직 단위) ⑯포대기 ⑰작은 성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지킬 수(守), 지킬 위(衛)이다. 용례로는 잘 보살피고 지킴을 보호(保護), 일이 잘 되도록 보호하거나 뒷받침함을 보장(保障), 보전하여 지킴을 보수(保守), 물건을 어느 곳에 안전하게 두는 것을 보관(保管), 간직하고 있음을 보유(保有), 어떤 일을 처리하지 않고 미루어 둠을 보류(保留), 보호하여 남아 있게 함을 보존(保存), 보호하여 유지함을 보전(保全), 남의 신분이나 행동을 뒷받침하여 책임짐을 보증(保證), 건강을 잘 지켜 온전하게 하는 일을 보건(保健), 어린아이를 돌보아 기름을 보육(保育), 사회의 안녕 질서를 보호함을 보안(保安), 보호하고 방위함을 보위(保衛), 몸을 보전함을 보신(保身), 일정한 온도를 그대로 지킴을 보온(保溫), 눈을 보호함을 보안(保眼), 확실히 보유함을 확보(確保), 편안히 보전함을 안보(安保), 빚을 대신할 수 있는 신용으로 제공하는 보장을 담보(擔保), 뒷날로 미루어 둠을 유보(留保),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이 아주 확실함을 보무타려(保無他慮), 세상을 잘 다스려 보전하는 군주를 보세지주(保世之主), 일신을 보전해 가는 꾀를 보신지책(保身之策), 한마음을 가지면 큰 의미의 대화합을 이룰 수 있다는 보합대화(保合大和) 등에 쓰인다.
▶ 身(몸 신, 나라 이름 건)은 상형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아기를 가진 여자의 모습을 본뜬 글자로 몸을 뜻한다. 형성문자로 보면 人(인)과 申(신)의 합자(合字)인데 人(인)은 뜻을 나타내며 부수가 되고 申(신)이 발음을 담당하는 글자로 본 것이다. 부수(部首)로서는 몸에 관계가 있는 뜻을 나타낸다. 그래서 身(신, 건)은 ①몸, 신체 ②줄기,주된 부분 ③나, 1인칭 대명사 ④자기, 자신 ⑤출신, 신분 ⑥몸소, 친히 ⑦나이 ⑧아이를 배다 ⑨체험하다 그리고 ⓐ나라의 이름(건) ⓑ건독(身毒; 인도의 옛이름)(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몸 기(己), 물건 물(物), 고기 육(肉), 스스로 자(自), 몸 궁(躬), 몸 구(軀),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마음 심(心)이다. 용례로는 개인의 사회적인 지위 또는 계급을 신분(身分), 일신 상에 관한 일을 신상(身上), 일신 상의 처지와 형편을 신세(身世), 몸과 목숨을 신명(身命), 몸에 생긴 병을 신병(身病), 사람의 얼굴에 나타난 건강 상태의 빛을 신수(身手), 몸과 몸의 주위를 신변(身邊), 사람의 키를 신장(身長), 사람의 몸을 신체(身體), 집이 가난하여 종을 두지 못하고 몸소 종의 일까지 함을 신겸노복(身兼奴僕), 홀로 있는 몸이 아니고 세 식구라는 신겸처자(身兼妻子), 몸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신외무물(身外無物),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의 몸 전체를 신체발부(身體髮膚), 남에게 맡기지 아니하고 몸소 맡아함을 신친당지(身親當之), 몸과 태어난 땅은 하나라는 신토불이(身土不二)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