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생 여러분, 이번기수의 이름과 관련된 노란리본에 대해 매일경제신문에 실린 내용을 적어봅니다.[2014-04-24]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마친 한 남자가 고향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아내에게 "아직도 나를 원한다면 동네 입구 떡갈나무에 노란리본을 달아 달라"는 편지를 보낸 다음이었다. 그는 차마 고개를 못들고 버스기사에게 대신 창밖을 봐 달라고 하는데 버스 속에서 환호가 터진다. 떡갈나무에 매달린 수백 개 노란리본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던 것이다. 1973년 토니 올랜도와 돈이 발표한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 (늙은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 주오)"의 가사 내용이다. 이 노래로 노란 리본은 멀리있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상징이 됐다. 이보다 이른 1971년 신문 칼럼니스트인 피트 헤밀이 뉴욕포스트에 기고한 'Going Home'이란 칼럼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지만 옛 구전가요가 기원이라는 얘기도 있다. 미국에서 노란 리본 달기 운동이 확산 된 것은 1979년 미국인 52명이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에 인질로 억류된 사건이 터졌을 때다. 인질 가족들이 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기 시작했는데 미국인들이 동참하면서 전국으로 번졌다. 1990년대 초 걸프전이 발발하면서 다시 등장했고, 2003년 이라크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는 자동차에 노란색 리본 모양 스티커나 자석을 붙여 이라크에 파견된 군인들을 기억하려 했다. 세월호 침몰로 온 국민이 비탄에 빠져있는 가운데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SNS가 노란 리본으로 물들고 있다. 대학생 연합동아리 ALT가 처음 인터넷에 올린 것으로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라는 문구를 적어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고 있다. 사진을 내려받아 페이스북,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바꾸면 된다. 괴담이 판치는 SNS에서 간만에 가슴 뭉클한 일이다. 인터넷 리본은 시민운동의 한 방식으로 베트남전 때 포로가 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찾기위해 노란색 리본을 사용한 게 시작이었다. 이후 양심을 찾자는 그린 리본, 낙태를 반대하는 하얀 리본 등도 등장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괴로운 사람들은 미약하지만 카톡 때문에 노란 리본을 걸면서 기적을 빌고있다. 노란 리본의 기다림이 바다 속까지 전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뒷 부분은 생략할까도 생각했으나 우리가 공부하던 시기의 사회현상이 잘 반영된듯 하기도 하고 훗날 우리들의 기억속 한 구석에 깊이 자리잡을듯하여 있는 그대로 옮겨 보았습니다.수업중인 여러분 가벼운 기분으로 읽어 주세요.----감사합니다.
-최원철 주식아카데미 데이트레이딩 동호회(다음카페)-
http://cafe.daum.net/dayonepro
첫댓글 떡갈나무 노란리본 감동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