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2010년의 지금에 와서 <대부>를 소개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다. 미국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으며 갱스터영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는 이 영화에 관해 말하자면 아마 지금까지 나온 찬사만 모아놓는다 해도 짧은 지면이 다 모자랄 것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그저 좀 재능있는 신인감독으로 여겨졌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그의 첫 성공작으로 <대부>를 완성했다. 여기에는 젊은 코폴라의 확신이 한몫 했다. 메소드 연기의 달인으로 청춘을 보냈지만 전성기는 지난 말론 브랜도와 연극판에서만 조금 알려져 있는 신출내기 알 파치노의 캐스팅을 밀어붙인 것도 코폴라였다. 결과적으로 <대부>는 미국영화사에 기록될 만한 불멸의 두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대부>는 특히 국내에서 어느 갱스터무비 이상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국내에서는 1977년 5월25일 극장 개봉했으며 그해 한국 극장가의 가장 큰 이슈를 모았다. 작품의 내용이 변하거나 추가된 것이 없는데도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이라는 동기로 재개봉까지 되었을 때는 ‘영화의 내용’이 아니라 ‘영화를 스크린에서 보는 경험’이 우선 고려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2010년의 <대부>는 어쩌면 <대부>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극장에서 기필코 보고 싶은 향수의 관객과 행여 아직 <대부>를 너무 몰라 이번에야말로 극장에서 꼭 확인해보고 싶은 관객을 위한 것일 수 있겠다. 수입사는 8월경 <대부2>를 개봉 대기 중이라고 밝혔다.
코폴라는 이 영화에 관해 “매 장면이 1970년대의 시대상황과 연관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한다. 동시에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라고도 말한 적 있다. 당대의 무비브랫(영화악동) 세대 중에서도 고전적 풍모를 잘 이해하는 쪽이었던 젊은 코폴라가 무서운 집념으로 완성해낸 <대부>는 미국문화에 대한 의식과 관여를 지닌 동시에,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영화가 성취할 수 있는 고전적 서사의 품격을 갖춘 하나의 예로서 지금까지 남아 있다. <대부>는 딸의 결혼식 장면으로 시작하여 장남을 잃고 그 자신이 죽음을 맞으며 세상을 떠나는 대부와 그들 자식 중 새로운 대부로 마이클 콜레오네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글 정한석(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2010-05-26
1947년 돈 꼴레오네의 호화 저택에서는 막내딸 코니와 카를로와의 초호화판 결혼식이 거행되고 있다. 시실리아에서의 이민과 모진 고생 끝에 미국 암흑가의 보스로 군림하는 마피아의 두목 돈 꼴레오네는 재력과 조직력을 동원, 갖가지 고민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해결해 사람들은 그를 '대부(代夫)'라 부른다.
돈 꼴레오네는 9세때 그의 고향인 시실리아에서 가족 모두가 살해당하는 불행을 겪으며 미국으로 도피하여 밑바닥 범죄 세계를 경험하면서 확고한 기반을 다지게 된다. 세월이 흐른 후 부모의 복수를 위해 시실리로 돌아온 그는 조직적 범죄를 통해 비약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돈 꼴레오네의 라이벌인 탓타리아 페밀리의 마약 밀매인 소롯소가 돈 꼴레오네를 죽이면 천하가 자기 손아귀에 들어온다고 생각해 그를 저격, 중상을 입힌다.
돈 꼴레오네의 막내 아들 마이클은 대학 출신의 인테리어다. 아버지의 저격 사건을 계기로 조직에 개입하여 레스토랑에서 소롯소를 사살하고 시실리로 피신한다. 시실리아에서 시골 아가씨와 결혼하지만 집요한 추적으로 아내를 잃는다.
장남 소니는 자신의 여동생 코니를 학대하던 카를로를 혼내주나 이에 앙심을 품은 카를로는 자신의 패밀리와 소니를 배반하게 되고 이로 인해 소니가 처참하게 암살당한다. 돈 꼴레오네의 일가는 붕괴직전에 직면한다. 돈 꼴레오네 일가를 위해 귀국한 마이클은 대학시절 애인인 케이와 재혼한다.
얼마 후 손자와 뜰에서 놀던 돈 꼴레오네가 심장발작으로 급사, 마이클이 자리를 이어받아 이 집안의 양자로 오른팔 역활을 하는 변호사 톰을 참모로 조직을 단결시켜 적의 격퇴를 해 나간다.
제작 노트
33년 만에 <대부> 스크린으로 돌아오다 !!
영화 <대부>가 스크린으로 돌아온다. 1972년 미국에서 개봉한지 38년, 한국개봉으로는 33년만이다. 타임지 선정 100대영화, 엠파이어지 선정 최고의 영화, IMDB 관객평점 역대 2위 등 수많은 기록과 찬사를 받은 영화. 영화 학도들에겐 갱스터 무비의 교과서, 영화시나리오의 교본으로 꼽히며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전중의 고전으로 꼽히는 걸작을 스크린으로 다시 만난다는 것은 영화를 사랑하는 누구에게나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더구나, 세월이 흐를수록 그 빛이 더욱 찬연해지는 ‘고전’을 다시 재조명함으로써 현대의 트렌드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어 더욱 의미가 클 것이다.
거장 감독들의 염원이 만들어 낸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프로젝트
영화<대부> 시리즈 디지털 복원작업
영화 <대부>를 스크린으로 다시 만날 수 있게 한 것은 영화<대부>의 디지털 복원작업 때문이었다. 할리우드 자료보관사에 ‘흥행에 성공한 영화일수록 오리지널 필름은 더 많이 손상되고 상처를 입는다.’라는 말이 있다. 흥행에 실패한 영화는 찾는 사람이 적은 만큼 자료는 비교적 깨끗한 상태로 보관되는 반면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그만큼 필름 여기저기 ‘영광의 상처’를 간직한 채 세월을 견뎌야 한다는 얘기다.
70년대에 제작되었던 영화<대부I>, <대부II>가 바로 그 대표작이었다. 두 작품 모두 30여 년의 세월 동안 파라마운트사의 자료보관소에서 쇠락해져 가고 있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언젠가 <대부> 시리즈를 디지털로 복원할 수 있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고, 2006년 마침내 프로젝트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스필버그 감독이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대부>시리즈의 디지털작업에 누구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스필버그 감독이 코폴라 감독을 대신해 파라마운트사를 설득했고, 그 덕분에 <대부I>, <대부II>의 디지털 복원이 가능했던 것이다.
영화 <대부>가 남긴 기록, 기록들
영화<대부I>과 <대부II>는 영화사상 다시 없을 만큼 많은 기록과 추앙을 한 몸에 받았다. <대부I>은 1973년 45회 아카데미시상식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작품상, 남우주연상, 각색상을 수상했다. 1973년 제작된 <대부II>로 47회 아카데미에서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작품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각색상, 음악상, 미술상 6개 부문을 석권해 전편에 이은 연속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더구나 영화사상 속편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유일한 영화가 되었으며, <대부>시리즈는 갱스터 무비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최초의 영화가 되었다
Special issue 1
_ 영화<대부>의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 이렇게 탄생됐다!
1. <대부>시리즈의 디지털 복원에 1등 공신이 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2006년 <대부I>이 제작된 지 34년 만에 코폴라 감독은 4K 디지털 기술이 <대부>시리즈를 디지털로 복원할 수 있을 만큼 발전했다고 판단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대부> 시리즈의 복원에 대해 논의를 했던 코폴라 감독은 이 프로젝트의 중요성과 규모에 대해 제작사를 설득해야 했다. 누구보다 <대부>시리즈의 디지털 복원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스필버그 감독은 직접 파라마운트사의 브래드 그래이 회장을 만나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했고, 마침내 오랜 숙원이었던 <대부>시리즈의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가 시작될 수 있었다.
2. 1년여의 시간, 막대한 예산, 수십 명의 인력이 동원된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디지털로 되살아난 세기의 걸작!!
2006년 가을, 자료보관 담당자 로버트 해리스가 참여했고 파라마운트사 부회장 마틴 코엔의 지원아래 마침내 본격적인 복원작업이 시작됐다.
<대부>시리즈의 복원에는 두 가지 선행되어야 할 사안이 있었다. 그 첫 번째는 <대부I>의 1972년판 원본 프린트의 편집본의 순서를 문서로 기록하는 작업이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당시에 개봉용으로 프린트된 오리지널 필름 프린트를 찾아내야 했다. 유일하게 보관된 프린트는 아카데미 필름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던 런던 테크니컬 칼라에서 프린트된 프린트였다. 이 프린트는 이탈리아 개봉용으로 제작되어 이탈리아어 자막이 입혀진 상태였고, 최종 승인을 거친 색채와도 차이가 있었다.
두 번째는 <대부>시리즈의 네거필름의 데이터를 필름을 손상시키지 않고 파라마운트사의 지하 자료 보관소로부터 코닥의 프로텍사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2006년 10월, 촬영감독인 고든 윌리스가 참여해, 코폴라 감독으로부터 필름의 외형에 대한 전권을 위임 받아 본격적인 복원작업을 시작했다. 2006년 11월, 3주간에 걸쳐 네거필름의 상태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상태에 대해 상세하게 주석을 달았다. 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네거필름은 살짝 줄어든 상태로 필름 전체적으로 작게 혹은 크게 흠집이 나 있었고 스프라켓 홀은 찢겨져 나가거나, 이미지 부분까지 손상되어 있었으며 필름 이음새나 샷의 전환부분은 보수된 흔적이 보였다. 네거필름에서 전체적으로 21분 가량, 1900피트가 넘는 필름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더구나, 복원과정에서 또다시 손상이 있을 수 있고 네거필름이 디지털 복원을 위한 과정을 견뎌낼 수 있을지도 불안했다. 그 외 필름의 어떤 조건 하나도 디지털 복원과정에서 희망적인 결과를 제시해 주지 않았다.
수많은 테스팅과 예산을 검토한 결과 작업은 MPI(Motion Picture Imaging)에 맡겨졌다. 색채전문가, 복원전문가 등 각분야 전문가들과 스탭들이 수백 번의 테스트와 공정을 거쳐 첫 작업에 들어간지 1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디지털로 복원된 <대부 I>과 <대부II>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대부>시리즈 복원에서 얻은 가장 흥미로운 결과는 <대부I>의 명장면 중 하나인 이탈리아레스토랑 장면이다. 1971년 3월30일과 31일, 이틀 동안 진행됐던 당시 촬영에서 제작진은 기술적인 한계에 부딪혔다. 윌리스 촬영감독은 특별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장면을 촬영해 랩에서 노출을 다시 최대화하는 과정을 거치길 요구했다. 두 번째 날 밤에 촬영된 알 파치노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장면 이후 스털링 헤이든의 클로즈 업 장면과 다양한 롱 샷을 포함한 모든 장면이 그러했는데, 랩의 실수로 일반적인 방식으로 현상이 이루어졌다. 결과적으로 너무 얇은 네거티브가 되었고, 사실 어떤 이미지도 만들어 내지 못했지만 재 촬영할 시간도, 예산도 없었다.
이 네가티브 롤이 디지털 복원작업에서 후반작업을 진행하던 스튜디오로 전달되었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테크니컬러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날 밤의 장면은 감마와 콘트라스트 레벨을 최대치로 올려 복제해서 보관했고, 그 복사한 장면을 다시 네가티브로 복제하여 가능한 정상적으로 보이도록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그림자의 디테일이 사라졌고, 색채감과 전체적인 해상도는 확실히 달라서 영화를 볼 때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1년여의 시간을 투자한 <대부I>, <대부II>의 디지털 복원 작업은 이제까지 진행된 복원 작업 중 가장 기술적으로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 두 개의 프로젝트로 기록될 것이다. 파라마운트사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애정덕분에 세기를 뛰어넘는 이 걸작은 35년 만에 디지털로 복원되어 후세에 전달될 수 있게 되었다.
Special issue2_ 영화 역사에 남은 촬영 에피소드
1. 코폴라 감독의 굴욕!
: 신인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언제 잘릴 지 몰라 매일 스트레스 받았다!
코폴라 감독은 <대부>를 회상하면서 ‘신인감독으로 영화를 맡게 되었고, 각색하는 동안 원작의 인기는 날로 치솟았다. 각색하는 동안에도 신뢰를 얻기 힘들었고, 원하는 캐스팅(말론 브란도, 알 파치노)을 위해 제작사를 설득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라고 말한다.
촬영에 들어가서는 더 심해졌다. 코폴라 감독은 언제 잘릴지 몰라 매일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 부인조차 남편이 언제 해고될지 몰라 불안했다. 촬영 현장에는 코폴라 감독이 당장 해고 될 때를 대비해서 제작사에서 예비한 감독이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
코폴라 감독은 영화개봉 후 관객이나 관계자들로부터 영화를 잘 봤다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이런 말을 촬영 당시 들었다면 용기를 얻어 영화를 더 잘 찍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을 남겼다고 고백했다.
2. 걸작의 촬영장면 에피소드
1탄- 가족들을 동원한 폭력 리허설?!
코폴라의 폭력장면 촬영 능력을 믿지 못한 제작사가 폭력장면 전문감독을 불렀다는 말을 듣고 코폴라 감독은 촬영 전날 무작정 여동생과 8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세트장으로 가서 폭력장면을 재현하기에 이른다. 돈 꼴레오네의 첫째 아들인 소니를 죽음까지 이르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 폭력장면은 소니의 여동생이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장면. 이로 인해 소니는 분을 참지 못하고 여동생의 집으로 향하게 되고 검문소에서 함정에 빠져 죽음에 이르게 된다. 가족까지 동원하여 리허설을 마친 코폴라는 실제 촬영장면에서 부인이 모든 것을 때려부수고, 남자가 벨트를 풀어 여자를 때리는 강렬한 부엌 폭력 씬을 탄생시키게 된다.
2탄- 이렇게 많은 폭죽을 달기는 처음
보니앤 클라이드, 구로자와 아키라, 세익스피어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코폴라는 한번에 폭죽 147개에 달하는 폭죽을 달고 검문소 통과 씬을 촬영해 화제가 됐다. 검문소 통과 씬은 돈 꼴레오네의 첫째 아들 소니가 함정에 빠져 죽게 되는 장면. 소니의 죽음을 촬영하면서 폭약 기술자는 이렇게 많은 폭죽을 달기는 처음이라고 깜짝 놀랐고, 배우는 꼭 그런 말을 지금 해야겠냐며 두려움에 떨며 촬영에 임해야 했다.
3탄- 공포의 말머리 장면
돈 꼴레오네의 양아들 조지를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 해 달라는 부탁을 받지만 야멸차게 거절한 영화제작자. 그러나 다음날 자신의 침대 속에서 가장 사랑하는 애마의 머리를 발견하고 혼비백산 하게 된다. 극장을 비명으로 가득 차게 했던 문제의 말머리는 얼음 속에 보관됐다가 촬영된 실제 말머리였다고 한다.
감독, 각본: 마리오 푸조(원작),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출연: 말론 브란도, 알 파치노, 로버트 듀발, 탈리아 샤이어, 제임스 칸, 다이안 키튼, 존 카잘
촬영: 고든 윌리스
음악: 니노 로타
편집: 마크 루브
자료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