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삼태극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자유소통광장 스크랩 동이족에 대한 중국 기록들
무한의주인공 추천 1 조회 421 14.09.27 18:51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4.09.27 20:55

    첫댓글 공자가 동이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한것은 당시에 식인풍습이 유행 했기에 그래요 즉 밤에 강도가 남의 집에 들어가서 연약한 사람 끌고 가서 식인 하던 풍습 이지요 그것이 싫어서 군자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한것 입니다 당시에 고조선은 식인풍습이 없어네요

  • 14.09.27 22:43

    공자는 부모의 '야합'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야합은 모계사회의 특징... 사자들의 경우를 보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그런 공자가 동이를 부러워한 것은... 동이족의 성생활이 난잡하지 않았던 결과로 해석합니다... 알고보면 공자도 출생의 비밀이 그를 괴롭혔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밤 중에 들판에서 관계를 맺다니... 사실 공자의 아버지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숙량흘?...글쎄요?

    본문 중간... 동이족은 남녀가 마주하지 않았다는 내용도 같은 맥락...동이인들은... 평소에는 따로 살다가... 때가 되면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찾아가 관계를 맺은 후... 날이 밝기 전에 그곳을 떠납니다...이게 부부유별의 덕목이 나온 예가 되고.

  • 14.09.27 23:02

    그렇게 나와 살던... 남자들이 모인 곳이... 서자부로 봅니다...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서자부는... 씨가 다른... 모계사회인만큼 다를수밖에 없는... 성인이 된 씨 다른 형제들끼리 모여... 세력을 이루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피가 다른 여성집단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천륜과 성욕을 해결했을 것입니다... 이게 들판에서... 아무하고나 성관계를 맺는 중원인과 다른 경우가 되겠지요.

    이게 나중에 적자(가족을 지키는 남자... 주로 막내),서자(집을 나가 사는 남자... 막내를 제외한 아들들)를 차별하는 사상의 단초가 되었을 것입니다.

  • 14.09.27 23:03

    전족... 바깥출입을 아예 못하도록...어린 여아에게 꼭 끼는 발싸개를 한 풍습 자체가... 그들의 성생활이 난잡했음을 보여주는 정황증거입니다.

  • 14.09.28 06:55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여자가 시집살이를 한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만... 여자가 시집살이를 한 것은 불과 400여년 전부터입니다... 그 이전에는 남자가 장가(처가살이)를 갔습니다.

    율곡의 생가로 알려진 강릉 오죽헌은 율곡의 외가로 즉 아버지 이원수의 처가였고... 아산 현충사 내 충무공 생가는 그의 처가터입니다.

    무리를 좀 하자면... 조선중기까지도 모계중심사회였음을 주장할 수도 있는 겁니다.

  • 14.09.28 07:36

    @金子 모계중심 사회와 부계중심 사회가 삼국시대에는 혼재 했다고 볼 수 있지요! 그것도 고구려쪽에서는 부계사회가 먼저 정칙되었고 남쪽으로 내려 오면서 모계사회가 오래 존재 했다고 볼 수 있지요! 데릴사위는 내가 어렸을 적에도 있었고요!! 요즈음은 모계 사회를 인정 하기도 하지요! 내 친구 한명은 어머니 성으로 살다가 나이 21살에 자기의 성을 아버지 성으로 바꾸어 지금도 살고 있지요!

  • 14.10.01 10:24

    그냥 좋게 생각합니다........당시 춘추전국시대의 중원의 혼란이..어찌보면 정신적 이상향을 동이에서 찾았겟지요,,,,말만 그렇게 하고 ..행동에 안옮긴것 보면 알수있읍니다...지금 우리가 미국을 동경하듯이 말이지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