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삼수령에서 누구 닮은 잘 생긴 도야지 머리 얹고 고명으로 만원권
빳빳이 세워 콧속에 들이 밀어 천지신명과 산신께 출사표를 올린지 어언 반년이
지났겄다.
동안 기나긴 낙동의 절반을 지났고 이제 올해의 마지막 산행을 하게 됨에 느끼는
감회 또한 남다르겄다.
또한 회장님께선 바야흐로 한해를 가름하는 송년 산행답게 우리 비실이 산악회의
뽄때를 제대로 보여 주시라며 한티재에서 시티재에 이르는 산길 60리의 노정을
명 하셨다.
한티재의 새벽.
같은 60리래도 다른 산길과는 판이하게 다른게 운주산과 봉좌산 삼성산은 거의 직벽에
가까운 고도 300을 올려쳐야 하고 도덕산은 낙동 전구간 중 가장 힘들다는 너덜겅 내리막을
무릅 쓰야 하는 시쳇말로 난코스 중의 난코스다.
그러나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저짝넘들의 구호처럼 횐님들 중 누구도 가타부타
말없이 명에 따른다.
누군들 아니겠는가 마는 동안 세모의 각종 모임에 숫캐 좆자랑 하디끼 뻔질 들락 거리며
밤새 고주망태가 된 몸이 수월히 길을 허락할지가 의문 이였으나 논다니 막창이 열녀
될리 없고 방귀 소리 나는 엉덩이가 비파 소리 날리 없디끼 털어 먹을 밑천도 없는 놈이
과천서 부터 기어갈 까닭이 또한 있을리 없더라.
일출.
영천시 죽장면과 포항시 기계면을 잇는 한티재는 태화산을 훑고 내려온 동짓달 한풍에
소슬하기 그지없고 아직 꺼지지 않은 열나흘 달빛은 산자락에 교교하다.
걸망 메고 땀 한소끔 흘리매 545봉이 반가이 맞아준다.
그런데 천려일실,,
우리 산방의 독도법 일인자인 삿갓 본좌께서 뭐에 홀리셨는지 601봉으로 그대로 진행
하셨다가 알바에 속은걸 뒤늦게 알고는 부리나케 길을 돌려 사추리에 진물이 나도록
길을 조여 따라 와서는 객에게 알바를 방관했다며 막 지다위를 붇는다.
거참 약빠른 고양이 밤눈이 어둡고 강에 사는 도깨비 꾸정물에 속는다카더이만도
우찌 이런 미스테리가 ,,,,
불랫재(불 냇제?)
묘지의 특이한 돌사자.
불랫재를 지나매 본격적인 운주산 오름길이 시작된다.
구름 기둥, 운주산은 아마도 여름이면 늘 정수리에 구름을 이고 있어 운주의 이름을
얻은게 아닐까,,
운주산 너른 품에 사는 향촌 사람들은 그 옛날 일기 예보가 없던 호랑이 담배 운운하던
시절, 노인의 관절염과 이 운주산의 구름으로 날씨를 짐작하지는 않았을까,,
정맥길에서 조금 떨어진 운주산 정상은 넉넉한 헬기장을 갖춘 천혜의 조망처였다.
상도일의 아침.
박회장님과 비실이 회장님.
삿갓 성님.
안국사 갈림길(?)
태화산에선 정면으로 뵈던 보현산 천문대가 이제는 저 멀리 뒤쪽으로 가물가물하고
영천호를 품은 기륭산이 지척이다.
문득 창공을 가르던 기러기 떼가 멀리서 구름을 헤치고 영천호 푸른 물속으로 안아 드니
그 서슬에 깨어진 운주산 물그림자가 물앙금으로 촤르르 밀려난다.
갈길이 바빠 운주산 구름 기둥에, 가난한 흥부가 늘 써붙였다던 입춘방 "소지 황금출 소문
만복래"를 나도 주련으로 걸어 두고 길을 서두른다.
운주산 정상.
연말이니 만치 오늘은 술에 관한 대가들의 일화를 살피면서 쉬어가 보자.
고려 의종때 예부상서를 지낸 김자의는 말 그대로 천하의 대주가였다.
아마도 세조때 홍일동이나 성종때의 손순효와 맞먹었나보다.
그가 강남 안찰사로 부임할때 조선 성종이 손순효에게 내린 명령과 똑같은 명을
김자의에게 내렸다.
"경의 문장과 도덕은 천하에 날렸지만 아무래도 술이 지나친게 흠이오. 모쪼록 이후엔
하루에 석잔 이상 들지 않도록 하시오."
"각골 명심하와 성념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운운,,,"
숭산 회장님과 박회장님.
왕의 명을 받들은 김자의는 일체 술을 마시지 않고 오로지 백성들만 살피기에 골몰
하였다.
어느날 각 고을을 순회 하던 중 김자의는 어느 산중의 조그만 절에서 교분이 자별하던
스님을 만났다.
이런저런 환담을 나누다 김자의가 자리에서 일어서니 스님이 술을 들어 권한다.
김자의가 웃으며,
"왕명이 지엄하여 스님의 정을 받들지 못하겠읍니다."
"소승이 어찌 왕명을 거역하오리까, 단지 석잔은 허락하셨으니 가납해 주소서."
운주산 헬리포트.
보현산 천문대.
이에 김자의가 고개를 끄덕여 허락하니 스님은 불전에 공양할때 쓰이는 쇠바리때로
석잔을 올렸다.
단숨에 석잔을 비운 김자의는 길을 떠났고 사람들은 그의 주량에 혀를 내둘렀다.
왜냐구???
당시 김자의가 마셨던 쇠바리때는 한번에 한말 이상을 담았다 하니 그는 선자리에서
단숨에 서말을 마셨던 셈이고 와중에도 취기가 조금도 없었다 하니 참으로 진정한
두주불사라 아니할수 없겠다.
이리재.
대구 포항간 고속도 덕에 한산해진 이리재는 아무리 생각을 이리채고 저리채 봐도 그 지명
유래의 맥을 짚을 수가 없더라.
주변 마을을 지명과는 무관한듯하고 무슨 특정 동물(늑대=이리)과의 연계는 너무 유아틱
스럽고 아마도 이전부터 사람들이 이리 저리 많이 다녀 이리재로 정해진게 아닐런지...
바람 부는 이리재에는 봉좌산 오를 걱정이 태산의 높이로 쌓여 가더라.
1 부 끝.
2010년 12월 20일 난테 진맹익 청정.
첫댓글 낙동중에서도 어려운 구간을 마치신듯 합니다.
이제 고생끝 행복시작 산행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힘든 산행에 주독은 확실히 제거 되었겠습니다.
수고하셨구요 다음번 산행기가 기대됩니다.
네 ,,이제 경주로 접어 듭니다. 가지산도 얼마 남지 않았구요,, 행복하소서,,
삿갓 본좌님 표정은 허본좌님과 흡사합니다. ㅋㅋㅋ
소나무 앞에서 찍으신 사진중 앞쪽분이 대구 비실이부부라는 리본을 들고 계신것 같은데
지리 골짝에서 볼 수 있는 그 리본의 주인공이란 말씀인가요?
어찌생긴 분인지 궁금했는데 궁금증을 풀어주십니다.
약빠른 고양이 밤눈이 어둡고, 강에 사는 도깨비 꾸정물에 속는다......
참말로 재미난 표현이구만요. 가끔씩 알바도 하셔야 진짜 산꾼이겠지요?
한참을 재미나게 웃다가 갑니다.
네,, 저희 방장님이신 비실이 회장님이십니다. 1갑자를 지나신 분이건만 저보다 훨 잘 걷읍니다.
한해 마무리 잘하시고 내년엔 더욱 즐산 이루소서,,
아우의 산기는 언제 읽어도 연구 대상입니다. ㅋㅋ
반면 돌아서면 잊어 버리니 적어 놓던지 해야지 오늘도 몇 개 배운 것 같은데..
논다니 막창이 열녀 될리 없고 방귀 소리 나는 엉덩이가 비파 소리 날리 없디끼 -- 맞고요. ^^
어허,..바람님 말처럼 " 비실이 부부" 님이 생각하던것 보단 연세가 드셨네요.
저는 젊은 부부인줄 알았는데,.참 대단하십니다.
저도 곱게 나이들어 산을 계속 이어가야 할텐데,..넘 재미있는 산행기 항시 기대됩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