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 자연과 역사 탐방
일시:2019년 9월 23일 월~27일 금
장소:제주도 삼성혈, 자연사박물관, 관덕정, 용담포구, 다끄네물, 남원큰엉해안경승지, 이중섭거리, 이호테우해수욕장, 추사유배지 등
2019년 9월 23일 월요일 김포공항 출발, 제주공항 도착
* 김포공항 출발
아시아나 항공 15:45분 제주행이다. 햇살이 투명하여 공항 창밖의 비행기 풍경이 선명하다. 제주도는 언제 가도 외국여행 같은 기분이다. 태풍이 지나간 후의 하늘이 매우 청명하여서 좋다.
* 제주공항 도착
제주공항에 16:55분에 도착했다. 수없이 온 제주공항인데 또 새롭게 다가오는 풍경이 시선을 이끈다. 아담한 공원에 제주를 상징하는 돌조각상이 있어 더욱 제주의 향기를 자아낸다.
* 제주공항에서 바다추억 펜션 가는 길
제주공항에서 미리 예약한 펜션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 걸어서 가기로 했다. 사장에게 전화하니 손님들이 걸어서 오더라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걸으며 제주 시가지를 자연스럽게 탐방하기로 했다. 공항의 비행기가 머리 위로 슝슝 솟구치는 장면이 장관이다. 저녁 노을 잔잔한 하늘과 제주의 야자수 가로수 길이 매우 아름답다. 용두암 방향으로 걸으며 제주를 더욱 가까이 보듬는다.
2019년 9월 24일 화요일 삼성혈, 민속자연사박물관, 관덕정, 제주목관아, 용담포구 등
* 바다추억 펜션
어제는 늦은 시간에 들어와 잘 보지 못 했는데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펜션을 살펴보니 참 정겨운 풍경이다. 거실 베란다에서는 바다가 보이고 공항 가까이 있어서 비행기가 이륙하여 창공에 솟구쳐 오르는 비경도 보인다. 우리 부부의 숙소는 3층으로 원룸을 예약했는데 투룸을 주셔서 매우 넓다. 우리는 여기서 4박 5일 동안 생활할 것이다. 펜션 앞에는 작은 농토도 있어 고구마와 들깨가 자란다. 도로변에는 아침 식사를 제공해주는 식당도 있다. 도란도란 모두 정겨운 제주도의 풍경이다.
* 삼성혈 상록수림
삼성혈에 왔는데 입구에 들어서니 상로수림이 장관이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수령 150여년 된 곰솔나무 외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울창하다. 하늘을 덮어 온통 푸른 빛으로 가득차 있다. 우리 부부는 결혼 10주년으로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여기 왔었다. 30 년 전 그땐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이런 풍경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제주의 푸른 숲 상큼한 공기를 마시며 걷는 산책길이 참 마음을 편안하고 흐뭇하게 해준다.
* 삼성혈 전시실
상록수림을 따라 걸어가니 전시실이 있다. 삼성혈을 비롯한 제주의 자연, 생활풍습 등을 전시 놓았다. 그리 넓진 않지만 유익한 전시관이다. 영상실에서 15분 정도 제주에 대한 소개의 영상을 보고 나왔다. 정원에 전시한 제주의 현무암도 매우 독특하다.
* 삼성혈 삼성전
전시실에서 나와 숲길을 따라 안으로 깊이 들어가니 삼성전이 있다. 삼성전은 高良夫을나의 위패를 모신 집이다. 이곳에서 매년 4월 10일에 춘제, 10월 10일에 추제를 지낸다. 건물 입구에 향불이 타오른다. 나도 향를 피우며 추모 의례에 참여했다.
* 삼성혈 숭보당
상록수림 가운데 웅장한 숭보당 물이 있다. 이곳 숭보당은 뛰어난 선비들이 모여 면학하던 서원이다 지금 보아도 매우 수려하고 깊음이 서려 있는 전당이다. 마당에는 옛 놀이기구도 놓여 있어 그날을 재현하고 있다.
* 삼성혈 전사청
전사청은 숭보당 곁에 있다. 제향을 받들던 곳이다. 삼성혈을 중심으로 하여 상록수림 안에 지어진 그 옛날의 건물들이 옛 풍습과 조상의 올곧은 삶의 자세를 가르치고 있다.
* 삼성혈
온통 상록수림으로 짙푸른 가슴팍에서 삼성혈을 만났다. 삼성혈은 지상에 팬 세 구멍으로 되어 있는데, 구멍은 품(品) 자 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둘레가 6자이고 깊이는 바다까지 통한다. 나머지 두 구멍은 둘레가 각기 3자인데 오랜 세월로 흔적만 남아 있다. 위쪽 구멍은 고을나, 왼쪽 구멍은 양을나, 오른쪽 구멍은 부을나가 솟아난 곳이라 전한다. 1964년 6월에 사적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제주도 원주민의 발상지로 고(高), 양(良 뒤에 梁으로 고침), 부(夫씨의 시조인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의 세 신인(神人)이 솟아났다는 구멍이다. 세 신인은 수렵생활로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다가 오곡의 씨와 송아지·망아지를 가지고 온 벽랑국(또는 日本國)의 세 공주를 각각 맞이하여 혼인하고 농경생활을 시작하여 삶의 터전을 개척한 인물들이다. 삼성혈은 그 주위가 성역화되어 있다. 그것은 1526년(중종 21) 이수동 목사가 그 주위에 돌 울타리를 쌓고 혈(穴) 북쪽에 홍문과 혈비를 세워 삼성의 후예로 하여금 춘추제를 모시게 하고, 매년 11월 상정일에 도민으로 하여금 혈제를 모시게 한 데서 비롯하였다. 그 뒤 1698년(숙종 24) 유한명 절제사가 혈 동쪽에 삼을나묘(지금의 三聖殿)를 세우게 하고, 1772년(영조 48) 양세현 방어사가 바깥 담장을 쌓아 소나무를 많이 심게 하고 제전을 마련하여 향청으로 하여금 혈제를 지내게 하였다. 1827년(순조 27) 이행교 방어사가 전사청을 창건하고, 1849년(헌종 15) 장인식 방어사가 숭보당을 세워 오늘의 규모가 갖추어졌다. 현재 제례는 향교의 석전과 같이 제복을 갖추어 매년 봄(4월 10일)과 가을(10월 10일)에 삼성전에 삼성의 후손들이 모여 춘추대제를 지낸다. 삼헌관은 고·양·부 3성씨가 윤번제로 한다. 매년 12월 10일에는 삼을나의 탐라개벽을 기려 봉향하는 건시대제가 제주도민제로 열린다. 초헌관은 도지사, 아헌관과 종헌관은 기관장이나 유지 중에서 선임한다. 춘추대제는 삼을나 위패를 모신 삼성전에서 지내고, 건시대제는 삼성혈단에서 지내므로 혈제라고도 한다. 1997년에는 1735년(영조 11년)에 제주목사 김정이 세운 삼사석비를 발굴하였고, 이듬해에 표석을 건립하여 지방문화재 제4호로 등록되었다. 삼성혈은 국가 소유가 아니어서 재단법인에서 관리하고 있다. 삼성혈 주변에는 줄을 쳐 놓아서 들어갈 수가 없다. 대신 전망대를 설치해 놓아서 약간 높은 지대의 그곳 전망대에 올라가서 녀려다 보았다. 신기하게도 구멍이 뚫려 있다. 저 구멍에서 제주의 대표적 세 성씨 고씨, 양씨, 부씨의 선인이 나왔다니 전설이지만 신비롭고 신성한 기운이 감도는 듯하다.
* 제주도 민속자연사 박물관 외경
자연사박물관은 삼성혈 바로 곁에 있다. 건물 외경만으로로도 웅장한 정경이다. 돌하르방이 안내하듯 양편으로 서 있어 제주도임을 드러낸다. 정원에는 물허벅을 멘 제주여인의 동상도 있다.
* 제주 민속자연사 박물관 자연사전시실
제주특별자치도민속자연사박물관은 제주도 고유의 고고·민속 자료와 동물, 광·식물, 해양생물 자료들을 수집하고 조사 연구를 통해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지난 1984년 5월 24일 개관한 이래 실물자료와 모형·마네킹 등을 활용해 입체적으로 전시함으로써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제주문화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로비에 대형어류 및 해양생물 디오라마 전시를 비롯하여 제주도 형성사, 여러가지 암석, 한라산의 식물 수직분포도, 곤충, 포유류 등 제주의 형성과정과 여러 자연생태까지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리고 제주인의 일생, 생업, 의식주 등을 통해 과거 제주인의 생활을 접할 수도 있다.
먼저 관람한 곳은 자연사전시실이다. 자연사 전시실은 크게 지질관, 육상생태관으로 구분하여 제주도의 지질, 동·식물 표본 등 1,500여 점을 입체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지질관에는 제주의 형성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나타내었으며 다양한 화산 분출물들, 용암동굴 생성물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서귀포층 패류화석, 제주 구성 암석 및 백두산과 울릉도 구성암석을 선보이고 있다. 한라산의 형성과정 및 한라산 백록담 주변의 지질학적 경관을 영상과 모형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스마트테이블을 통해 다양한 제주의 오름, 계곡, 동굴 및 곶자왈 등의 자연경관과 지질을 설명하고 있다. 유네스코 3관왕 코너를 통해 세계적인 제주의 경관적 가치를 알리고 있다. 육상 생태관은 제주도의 식물 분포도를 통하여 고도별로 주요 식물을 검색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디오라마 기법을 통하여 해안습지대, 상록수림대, 낙엽수림대, 침엽수림대, 관목림대(백록담 일대) 등 5개 영역으로 구분, 주요 동식물의 생태적 습성과 서식환경을 현장감있게 전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버섯, 곤충(수서곤충), 생태계, 척추동물의 골격 등의 코너를 따로 마련하였다. 어느 하나 소홀함 없이 정성껏, 그리고 실감나게 그 모습들을 생생하게 재현해 놓아서 큰 감동을 주었다.
* 제1 민속 전시실
다음으로 간 곳은 제1 민곳전시실이다. 민속 전시실은 1, 2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제1전시실은 1,2층 중층으로 이루어졌고, 1층은 제주인의 일생, 제주초가, 칠머리당영등굿, 제주전통배를 중심으로 약 2,000여점의 민속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2층은 의,식,주와 관계된 제주사람들의 일상생활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짧은 시간에 옛 제주인의 생활을 알려고 하시는 분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공간으로 제주의 민속이 집약된 공간이다. 제주의 생활 풍습들을 마네킹으로 제작하여 잘 전시해 놓은 공간이다. 제주의 민속 전시물들을 보며 옛 향수 속에서 흐뭇한 시간을 가졌다.
*제2 민속 전시실
제2전시실은 제주의 생업·생산 주제관이다. 제주해녀, 제주의 농업, 사냥, 목축, 제주의 무속신앙, 불미공예, 제주의 말문화가 코너 별로 전시되어 있다. 또한 민속자연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와 고가구도 전시되어 있다. 매우 유익한 학습을 하는 공간이다. 우리 부부는 나중에 손주들과 함께 또 오자고 다짐했다.
* 야외 전시장(중앙정원)
박물관 건물 밖 중앙정원에 야외 전시장이 있다. 휴식할 겸 잠시 나왔더니 많은 유물들이 놓여 있다. 제주도는 돌이 많은 고장으로서 옛부터 돌을 가공한 생활용구와 석구들이 많았다. 나무나 흙에 비해 영구적이며, 재료를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곳에서는 곡식을 도정했던 연자마를 비롯하여 돌방에, 맷돌, 정주석 그 밖에 동자석, 망주석, 비석 등을 전시하고 있다. 화산섬을 일구어낸 제주도의 옛선인들은 들을 슬기롭게 활용하는 지혜가 있었다. 돌은 쉽게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안정감이 있고 나무와는 달리 마모되거나 부식되지 않는 강인성을 지니고 있어 여러형태의 특색있는 용구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이곳에는 곡식을 가공했던 연자매를 중심으로 수용통, 고래, 방애, 절구가 있고, 화로, 도구리등의 생활용구와 동자석, 석등, 망주석 같은 신앙생활용구를 비롯한 1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청명한 제주의 하늘과 상큼한 제주의 공기가 전시물들 사이로 흘며 마음을 더욱 평화롭게 해준다.
* 제주 바다 전시관
중앙정원에서 계단을 걸어 아래로 내려오니 바다 전시관이 있다. 제주도는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하여 다양한 어류의 산란장과 월동장이 되고 있다. 또한 아열대와 한대 생물들이 공존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바다로 제주바다전시관에는 그 바다에 서식하는 어류, 해조류, 패류 등을 전시하고 있다. 처음 전시관에 들어서는 순간, 크고 작은 고래의 머리뼈를 볼 수 있고, 제주 큰돌고래 동영상과 함께 돌고래 골격 3점을 관람객이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단독 전시대를 이용하여 전시 연출하고 있다. 전시관 중심부에는 2004년 제주에서 발견되어 박제로 제작된 13m 크기의 브라이드 고래골격을 전시중이며, 바닥에 리액티브 시스템(Reactive System)을 활용하여 관람객이 고래와 더욱 친밀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대형산갈치와 인간과 바다의 공생, 말미잘의 친구 흰동가리돔 등 제주바다와 그 속에서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바다 생물들의 모습을 박제로 전시하고 있으며, 제주바다에서 볼 수 있는 해조류, 대형어류표본, 연산호, 산갈치와 고래상어, 돌묵상어, 소가오리 등을 수중 디오라마와 설명 패널로 연출하고 있다. 하나 하나 살펴보며 제주의 바다 생물에 대하여 많이 배웠다.
* 기획전 광해 제주에 유배오다
특별 기획전으로 광해 제주에 유배오다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 개관 35주년을 맞아 제주에 유배 온 유일한 조선시대 임금이었던 광해군을 재조명하는 기획전 ‘광해, 제주에 유배오다’를 8월 20일부터 11월 20일까지 진행한다.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폐위되면서 과거 ‘폐주’, ‘폭군’ 등으로 불렸지만, 최근에는 임진왜란 이후 나라 재건을 위해 힘썼던 왕, 실리외교를 펼쳤던 왕으로 재평가 받으며 많은 영화·드라마·소설 등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기획전에는 광해군의 출생에서부터 왕으로의 등극, 인조반정과 강화도 유배, 제주 유배를 다양한 사료를 통해 선보인다. 또한 선조·광해군 재임기간 중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말을 바쳤던 헌마공신 김만일, 광해군을 비판해 제주로 유배 온 동계 정온, 간옹 이익, 그리고 광해군 복위를 모의했다고 유배 온 규창 이건 등 인물들에 대한 전시도 함께 이뤄진다. 그의 아우 영창대군이 비참하게 강화도에서 뜨거운 불기운으로 죽어간 전시물도 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아버지께서 읽으시던 '인목대비' 역사소설 책을 보았다. 당파싸움에서 죄없이 죽어간 인목대비와 선조의 아들 영창대군이 강화도로 유배되어 불을 지펴 태워 죽이는 대목에서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영창이 왜 이리 방이 뜨거워 지냐고 하인에게 물을 때, 하인은 소리없이 흐느끼며 상부의 명령에 장작불을 지피던 그날이 생생하게 씌여진 대목이 떠오르며 지금도 목이 메여온다. 다시는 그런 슬픈 역사가 없기를 빌었다. 광해와 부인이 입었다던 의복이 화려하게 펼쳐 전시되어 있다.그들이 앉았던 옥좌도 있다. 우리 부부도 그 자리에 앉아 그날을 재현해 보았다. 광해군을 나쁜 임금으로만 알았는데 이곳에서 새로운 긍정의 평가를 배우고 간다.
* 관덕정
관덕정은 제주시 삼도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정자다. 보물 제322호다. 관덕정은 1448년(세종 30)은 신숙청이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지은 훈련청 건물로 제주도의 대표적 건물 중 하나다. 이중 기단 위에 세운 단층의 팔작지붕이다. 건물외형이 매우 웅장하다. 1480년(성종 11)에 목사 양찬이 중수한 뒤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으며, 1969년에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관덕(觀德)’이란 문무의 올바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사자소이관성덕야(射者 所以觀盛德也, 활을 쏘는 것은 높고 훌륭한 덕을 보는 것이다.)’에서 따온 말로, 평소 마음을 바르게 하고 훌륭한 덕을 쌓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누정 건물 내부의 포벽에는 건립 당시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7폭의 벽화가 남아 있다. 제주에 현존하는 건물 가운데에 가장 오래된 건물이자, 제주도의 대표적 누정 건축으로 건축사 연구의 소중한 자료이다. 특히 건물 안쪽 대들보와 그 아래 포벽에 그려진 작자를 알 수 없는 벽화는 당시 그려진 그림으로, 훌륭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인정된다. 도로변에 있어서 작년에 제주도에 와서 제주시티투어를 할 때도 잠시 보았던 유적이다. 오늘은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날의 위용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위풍당당한 광경이 고스란이 담겨 있다.
* 제주목 관아
관덕정 바로 곁에 제주목 관아가 있다. 조선시대 제주지방 통치의 중심지였던 제주목 관아(濟州牧 官衙)는 지금의 관덕정을 포함하는 주변일대에 분포해 있었으며, 이미 탐라국시대부터 성주청 등 주요 관아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아시설은 1434년 관부의 화재로 건물이 모두 불 타 없어진 뒤 바로 역사를 시작하여 그 다음해인 1435년에 골격이 이루어졌으며, 조선시대 내내 중.개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제주목 관아는 일제강점기 때 집중적으로 훼철되어 관덕정을 빼고는 그 흔적을 볼 수가 없었다. 제주시에서는 탐라국 이래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던 제주목 관아를 원래의 양식으로 복구하고자, 1991년부터 1998년까지 4차례 발굴조사를 마친 결과, 탐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문화층과 함께 문헌상에 나타난 중심 건물인 홍화각, 연희각, 우연당, 귤림당 등의 건물터와 유구가 확인되고 유물도 출토되었다.1993년 3월 30일에 제주목 관아지 일대가 국가사적 제380호로 지정되었고, 발굴과정에서 확인된 초단.기단석 등을 토대로 하고, 탐라순력도와 탐라방영총람 등 당대의 문헌 및 중앙문화재위원·향토사학가·전문가 등의 고증과 자문을 거쳐 관아지 복원 기본설계를 완료, 2002년 12월에 복원을 완료하였다. 안으로 들어서니 그 옛날의 관아 건물들이 아름다운 자태로 들어서 있다. 두루두루 자세히 살펴보며 제주의 역사 한 도막을 배웠다. 망루에 올라가니 잘 정비된 제주시내의 현대식 건물 속에 오롯하게 들어앉은 기와지붕의 관아가 고운 태로 옛 향수를 자아낸다. 오늘 우리 부부는 제주 시내를 탐방하며 제주의 자연과 역사에 대하여 많은 배운 뜻깊은 체험을 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동문시장에 들러 장보기를 했다. 동문시장은 제주에서 가장 큰 전통재래시장이다. 동문시장도 제주의 관광명소다. 제주 명물 옥돔과 할머니가 손수 말리셨다는 건오징어와 흑돼지고기, 귤 등 많이 샀다. 4박5일 일정 동안 펜션에서 요리해 먹기도 하고, 손주와 아들내외에게 중 선물이기도 하다. 동문시장은 정말 제주의 토속민속 식품을 만나는 전통시장이었다.
* 용담 해변 다끄네물
저녁 무렵 용담 포구의 야경을 보기 위해 해변으로 나갔다. 용담 포구에 가는 길에 다끄네물을 만났다. 해변도로변에 있는 다끄네물은 지하 용천수가 솟아나는 곳이다. 이곳 물은 돌로 막아서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 하나는 먹는 물의 저장고, 다음 하나는 야채 등을 씻는 물의 저장고, 마지막 하나는 목욕이나 빨래하는 물의 저장고다. 물이 귀하던 시절에 이곳 지하 용천수를 함부로 낭비하지 않으려는 제주도민의 지혜가 서려 있다. 또한 물을 아주 과학적으로 사용하던 흔적도 돋보이는 대목이다. 다끄네물을 지나 바다로 조금 나가면 다끄네 포구도 있다. 이곳은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기도 하다. 하늘에는 제주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창공을 가르고 솟구쳐 오른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다끄네물 등이 진풍경이다.
* 용담 포구
다끄네물과 다끄네 포구를 보고 해변도로를 따라 용담 포구로 향했다. 용담동에 있는 포구다. 아담한 포구에 어선 등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다. 매우 아름다운 정경이다.
* 용담포구 야경
어둠이 내리자 용담포구의 야경이 비경이다. 도로변의 건물들 불빛이 바다 속으로 빠져 장관을 이루고 멀리 일몰 낙조가 고운 빛으로 바다를 물들인다. 환상적인 풍경을 보며 가슴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훈훈하다. 밤바다의 낚시꾼들이 모여 고기 잡는 풍경도 정겹다.
2019년 9월 25일 수요일 남원 큰엉 해안경승지, 이중섭 거리
* 남원 큰엉 해안경승지의 한반도 모양의 숲 터널
오늘은 제주 동해안 일주 버스를 타고 동쪽 해변을 투어하기로 했다. 그리고 서귀포 남원 큰엉 해안 경승지와 이중섭 거리를 탐방하여 자세히 볼 예정이다. 먼저 오전에 간 곳은 남원 큰엉 해안경승지다. 보건소 앞에서 하차하여 길을 건너 바닷가로 걸어갔다. 올레 산책길을 만나고 그곳에서 한반도 지도 모양의 숲 터널을 보았다. 바다로 연결 되는 산책길인데 묘하게도 숲을 한반도 지도 모양으로 조성해 놓은 것이다. 기막힌 비경이다.
* 큰엉 올레길 산책로
큰엉은 제주도 방언으로 절벽 등에 뚫린 동굴을 말한다. 제주 서귀포 소재 남원읍 해안에 있는 명소다. 큰엉으로 가기 위해 해변의 올래길 산책로 걸었다. 잘 다듬어 놓은 올레길을 걷는데 산과 바다가 만나며 비경을 선사한다
* 남원 큰엉 해안경승지의 큰엉
남원 큰엉 해안경승지라는 명소의 이름이 길어서 알아보았다. 즉 제주 서귀포에 소재한 남원읍내에서 서쪽으로 1㎞ 떨어진 해안에 있는 바위 절벽과 구멍이 난 바위동굴이 이루는 비경을 뜻한다. 큰엉은 제주도 방언으로 바닷가나 절벽 등에 뚫린 동굴을 뜻한다. 해안절벽 위로는 2㎞에 걸친 아름다운 올레길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산책로를 따라 산길을 한참 걸어간 곳에서 큰엉이라는 글씨를 새겨놓은 큰 바위를 만났다. 남원 큰엉은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것으로 현무암의 검은 용암이 여러번 분출하며 퇴적되어 쌓인 바위 군락이다. 큰엉 바위뿐만 아니라 바다 주변에는 검은 용암 바위 절벽의 기묘한 형상들이 비경을 이룬다. 숨겨진 명소다. 잘 알지 못 했던 곳인데 이번에 찾아오게 되어 참으로 흐뭇하다.
* 큰엉 해안 바위 비경
큰엉의 해안 바위가 이루는 비경이 발길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바다와 만나 쉼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부딪쳐 하얀 포말을 이루는 정경도 쉬이 놓아주지 않는다. 바위에 앉아도 보고, 바위 군락을 걸어도 보고 제주의 남원 큰엉 해안 경승지에서 우리 부부는 참으로 평화로운 시간을 엮었다.
* 인디언 추장 얼굴
큰엉 바위에서 나와 조금 전 걸어왔던 산책길 반대편으로 계속 걸어가니 기묘한 바위가 나온다. 인디언 추장 얼굴 바위다. 인디언 추장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 우렁굴
산길을 계속 걸어가니 우렁굴이 나온다. 우렁굴은 소가 떨어진 구멍이다. 바다 쪽으로 가서 보니 구멍이 음산하게 땅속으로 파여 있다.
* 호두암과 유두암
기묘한 바위들은 계속 나온다. 호랑이 머리를 닮은 호두암과 여인의 젖꼭지를 닮은 유두암이 나란히 붙어 있다. 아주 유사하게 닮은 정경이다. 남원 큰엉 해안경승지는 이것으로 탐방을 마치고 다시 산책길을 따라 걸어나왔다. 올레길 5코스의 한 도막을 걸어본 것이다. 처음에 들어갔던 한반도 숲 터널을 보며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오늘 탐방한 이곳 명소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아주 의미 깊고 뜻깊은 제주의 고운 풍경으로 기억될 것이다. 남편도 매우 좋은 명승지라고 예찬한다. 우리 부부는 해마다 한두 차례씩 제주를 탐방한다. 그래서 이름난 명소는 다 갔고, 이제는 숨겨진 명소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내년에는 여기서 가까운 곳에 있는 숨겨진 명소 쇠소깎에도 가 볼 것이다.
* 이중섭 거리
서귀포 시내에 있는 이중섭 거리를 탐방했다. 이중섭(1916∼1956)은 한참 예술혼을 사르다가 40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화가다. 이곳은 이중섭을 기리기 위해 피난당시 거주했던 초가를 잘 보존하며 그 주변에 그의 이름으로 조성한 거리이다. 정방동 매일시장 입구부터 솔동산까지 360m를 '이중섭 거리'로 지정하여 그의 서귀포 체류 시절을 기념하고 있다. 1995년 11월 이중섭 거주지기념표석이 세워졌고, 이듬해 2월 말 그가 자주 거닐곤 했던 길가는'이중섭 거리'로,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97년 4월 그가 기거했던 집과 부속건물을 복원, 정리하여 이중섭 거주지와 그의 호 대향을 따라서대향전시실로 꾸며 놓고 소개하게 되었다. 이로써 제주 서귀포시의 이중섭 거리는 한국 최초로 화가의 이름이 붙여진 거리가 되었으며, 매년 10월말 그의 사망주기에 맞추어 이중섭 예술제행사를 하고 있다. 서귀포는 이중섭을 비롯한 변시지, 이왈종 등 많은 예술인들의 무대였다. 이중섭은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원산에서 서귀포로 피난을 왔다. 부산으로 갈 때까지 약 1년 동안 가족과 함께 이곳 서귀포에서 살았다. 이중섭 거리는 예술적 감각으로 잘 조성되어 있다. 진입로는 태평로와 이중섭거리 두 곳이다. 오후에 와서 그늘이 드리우는 거리를 길을 따라 걸으며 이중섭의 족적을 만났다. 주변에는 예술가들의 혼이 깃든 작가의 산책도 있다. 이중섭미술관을 출발해서 4.9km의 코스다. 오늘은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이중섭 거리만 걷기로 했다. 생각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담은 거리다. 잠시 1년 정도 머물다간 화가에게 이런 훌륭한 거리를 조선해준 제주도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 이중섭 미술관
미술관의 외관 모양이 매우 독특하다. 게 모양이다. 게는 이중섭의 서귀포 그림에 자주 나오는 소재다. 가난했던 그는 아이들과 바다에 나가 게와 조개를 잡아서 끼니를 때웠다. 그리고는 게들에게 미안해 넋을 달래듯 그림 속에 그려 넣었다. 게를 닮은 미술관은 1층 전시실과 2층 전시실 그리고 옥상 전망대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섭 화가의 작품들은 가나아트센터 대표 이호재씨가 서귀포시에 기증한 것으로 이중섭 원화 작품 8점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근현대화가의 작품 52점 등 모두 60점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1층 왼쪽에는 '상설전시실'이, 오른쪽에는 '기념품 판매점'이 있다. 상설전시실에서는 이중섭의 작품과 편지, 그에 관한 신문 기사 등을 전시한다. 시선을 끄는 것은 은지화다. 은지화는 담뱃갑 은박지에 송곳으로 그린 그림이다. 물감이나 붓을 살 돈이 없었던 이중섭이 자주 사용했던 기법이다. '게와 가족', '아이들', '물고기와 게와 아이들' 같은 작품이 은지화다. 그는 1년 만에 서귀포를 떠나 부산으로 갔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부인과 아이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계속해서 은지화를 그렸다. 자그마한 은박지에 세밀하게 그린 은지화는 그림에 대한 이중섭의 열정과 실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의 은지화 여섯 점이 나란히 걸려있다. 미술 재료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그림이다. 아내 남덕과 주고받은 편지도 걸려있어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전해진다. 그가 생전에 쓰던 팔레트도 놓여있다. 2층은 기획전시실로 다양한 화가들의 작품이 있다. 2층에서 내려오니 1층 전시관 입구 벽면에 황소 그림이 걸려있다. 생동감 넘치는 황소다. 이중섭은 천재 화가로 불린다. '황소'는 교과서에도 실렸다. 소 그림은 통영에서 그린 작품이고 자연과 아이, 가족에 관한 그림은 서귀포에서 그린 작품이다. 짧은 1년여 시간이지만 가족과 함께 가장 행복한 시절을 서귀포에서 보냈다. '서귀포의 환상', '섶섬이 보이는 풍경', '바닷가와 아이들' 등을 그렸다. 이중섭 미술관은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손 편지와 만화 등 그의 일상까지 엿볼 수 있는 전시물이 많다. 작품이 그리 많이 전시되지 않았지만 쉬이 접할 수 없는 그의 유명한 작품을 만난 것은 제주여행의 큰 기쁨이다.
* 이중섭 미술관 전망대
미술관 1, 2층의 전시작품을 모두 관람하고 전망대로 올라갔다. 미술관 옥상에 마련되어 있다. 서귀포의 전경이 한눈에 담긴다. 먼저 이중섭의 '내 사랑 패밀리' 그림에서 소마차가 끄는 수레에 그의 가족과 함께 올라 탄 형상의 기념 사진을 찍었다. 고등학생들이 많이 왔는데 우리 부부의 사진을 정성껏 찍어준다. 참 고마웠다. 전망대에서는 서귀포 바다가 훤히 보인다. 섶섬과 문섬 등 인내 그림도 전시되어 있다. 이중섭이 서귀포에 머물며 '서귀포의 환상', '섶섬이 보이는 풍경', '바닷가와 아이들' 등을 그렸다는데 아마도 저기 보이는 서귀포 풍경이 그의 가슴에 다가온 것 아닐까 싶다. 해가 저무는 서귀포 시가지와 이중섭 공원이 아름답게 보인다.
* 이중섭 거주지
미술관에서 나와 이중섭 거주지라는 팻말을 따라 그가 잠시 살았던 초가집으로 들어갔다. 초가집 한 채가 덩그러니 그날을 재현하듯 외객을 반긴다. 아담한 마당과 구석에 작은 정자가 있다. 모두 그의 숨결이 서린 유적이다. 이중섭의 네 식구는 초가집을 다 사용한 것이 아니고 오른쪽 구석 작은방에서 살았다. 작은 아궁이와 작은 방 한 칸이 전부의 생활공간이다. 방에는 이중섭의 사진이 걸려있다. 이중섭은 6.25전쟁 중이던 피난민 신세로 1951년 약 1년 동안 이곳 서귀포에서 머물렀다. 한평 반 정도의 초가집 방을 얻어 일본인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살았다. 불행한 일생 중에서 그래도 이곳 생활이 안정기로 대표작 대부분이 여기서 완성되었다. 서귀포시에서는 그가 살던 집을 매입하여 복원하고 이중섭 기념관을 지었다. 그리고 그의 족적이 서린 초가집 앞 거리를 '이중섭 거리'로 지정하였다.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청년기에는 일본 동경에서 유학하였다. 그러나 6.25 전쟁으로 모든 것이 망가졌다. 1951년 서귀포로 피난왔다. 1년 후 부산으로 가서 생활고로 가족과의 이별로 더 고통스런 삶을 살았다. 그는 1956년 정신이상 증세와 영양실조로 불우한 생을 마감했다. 초가집을 나서며 한 시대를 힘들게 살다간, 그러나 예술혼을 뜨겁게 불지핀 정열의 화가 이중섭을 가슴에 깊이 새겼다.
* 이중섭 공원
이중섭에 대한 유적은 거리, 미술관, 거주지 그리고 공원까지 조성되어 뜨겁게 조명되고 있다. 겨우 1년 정도 머물던 공간인데 그의 생 전부인양 여기 서귀포에 서려 있다. 미술관 아래로 이중섭 거주지와 이중섭 공원은 맞닿아 있다. 공원에는 그의 동상이 의자에 앉아 있다. 평안한 한때를 보내는 듯하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이중섭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가는 것에 대하여 매우 보람되고 흐뭇하다.
2019년 9월 26일 목요일 이호테우 해변, 추사 김정희 유배지, 대정 성지
* 이호테우 해변 말모양 등대
오늘은 제주도 서쪽을 일주하며 탐방한다. 먼저 간 곳은 이호테우 해변이다. 지명이 외국말 비슷하지만 이호는 이호동이고 테우는 제주도 말로 고기잡는 배를 말한다. 그러므고 '이호동의 고기잡는 배'라는 해변 이름이다. 해변에 들어서니 하얀 색상의 말동상, 빨간 색상의 말동상 형상을 한 등대가 참 예쁘게 외객을 맞이 한다. 등대가 있는 바다 쪽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하늘에서는 비행기가 더욱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이곳은 제주공항에서 가까이 있어서 그렇다. 여기서는 배를 빌려 타고 선상 낚시도 할 수 있다.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도 있다. 뗏목 배도 해변에 있다. 헤수욕장과 시가지가 만나 비경을 이루는 풍경도 곁에 있다. 야자수도 너울거리고, 소나무 숲도 싱그럽고 모두 아름다운 풍경이다.
* 이호테우 해수욕장 비경
이호테우 이호해수욕장은 제주시내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해수욕장이다.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서해안 일주 버스도 지나가고 택시도 요금이 얼마 안 나온다. 편의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또한 백사장의 경사가 완만하여 가족 단위로 많은 피서객들이 찾는 곳이다. 특히 야영하기 좋은 솔숲이 있어 더욱 선호하는 해수욕장이다. 이 해수욕장은 특히 야경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해서 야간에도 방문객들도 많다. 등대에서 나와 솔숲을 걸어 해수욕장으로 이동하며 고운 정경을 보았다. 파도가 하얗게 모래사장에 밀려오고, 곡선의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도시 풍경이 멋진 명화로 뜬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이호테우 해수욕장에 온 것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고, 훈훈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 제주 추사관
서귀포에 있는 추사 김정희 유배지에 왔다. 마을에서 하차하여 중식을 하고 찾아갔다. 입구에 들어서니 추사관이 커다랗게 세워져 있다. 추사 김정희는 조선후기 조선 금석학파를 성립하고, 추사체를 완성한 문신, 실학자, 서화가다. 충남예산 출신으로 본관은 경주다. 자는 원춘, 호는 추사(秋史)·완당(阮堂)·예당(禮堂)·시암(詩庵)·과노(果老)·농장인(農丈人)·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 등이다. 제주추사관은 조선후기 대학자이자 예술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의 삶과 학문 예술세계를 기리기 위해 지난 2010년 5월 건립되었다. 제주추사관의 전신은 1984년 제주지역 예술인들과 제주사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건립된 추사유물전시관이다. 그러나 전시관이 낡은데다, 2007년 10월 추사유배지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되면서 그 격에 걸맞게 재건립되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새롭게 제주추사관을 완공하였다. 제주추사관은 추사기념홀을 비롯해 3개의 전시실과 교육실, 수장고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부국문화재단, 추사동호회 등에서 기증해 주신 예산김정희종가유물일괄, 추사 현판 글씨, 추사 편지 글씨, 추사 지인의 편지 글씨 등을 전시하고 있다. 마침 해설사가 설명을 해주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추사는 경주 김씨다. 나도 경주 김씨다. 그래서 더욱 정감이 가는 분이다. 곳곳을 돌아보며 그 분의 훌륭한 글씨체와 그림을 살펴보았다. 특히 세한도는 정말 깊은 뜻이 담긴 그림으로 명작이었다. 국보 제180호다. 종이 바탕에 그린 수묵화다. 세로 23cm, 가로 61.2cm이다. 조선 말기를 풍미했던 김정희의 문인화 이념의 최고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제자인 역관 이상적의 변함없는 의리를 날씨가 추워진 뒤 제일 늦게 낙엽지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여 1844년 제주도 유배지에서 답례로 그려준 것이다. 그림 끝에 작화 경위를 담은 작가 자신의 발문과 청대 16명사들의 찬시가 적혀 있고, 이어 뒷날 이 그림을 본 김정희의 문하생 김석준의 찬문과 오세창, 이시영의 배관기 등이 함께 붙어 긴 두루마리를 이루고 있다. 옆으로 긴 화면에는 오른쪽에 '세한도'라는 제목과 '우선시상'(우선 이상적에게 이것을 줌)·'완당'이라는 관서를 쓰고, '정희'와 '완당'이라는 도인을 찍었다. 극도로 생략되고 절제된 화면은 농축된 내면세계와 서화일치의 극치를 보여준다. 자신의 굴하지 않는 삶에 대한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나왔다.
* 추사 김정희 유배지 기거했던 집
추사관 뒤에는 유배시절 기거했던 집이 있다.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조선 헌종 6년(1840) 10월 1일부터 헌종 14년(1848) 12월 6일까지 9년간 유배생활을 하였던 곳이다. 북학의 대가이며 학예에 출중한 당대의 선구자였던 추사 김정희가 이곳에 머물며 제주 인문에 대하여 혁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금석문과 서화에 능통 하였고, 서체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추사체를 완성했다. 국보 180호인 세한도는 이곳에서 탄생시켰다. 1948년 제주도 4·3사건 때 불타버린 빈 터에 1984년 강도순 증손의 고증에 따라 복원했다. 초가집이 안거리, 모거리, 밖거리 3개 동으로 이루어 졌는데 그가 머문 집은 오른 쪽 모거리 가옥이다. 안거리는 이 집 주인인 강도순이 거하던 집이고, 밖거리는 김정희가 청년들을 가르치던 집이다. 그날의 정경을 마네킹으로 재현하여 생동감있게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도통시라는 제주의 전통적인 돼지 우리도 있다. 정원에는 농촌 생활의 정경을 잘 꾸며 놓았다. 잠시나마 추사 김정희와 마주하며 그의 숨결을 느껴본 소중한 공간이었다.
* 추사 김정희 작품과 해설 안내판
추사 거주지에서 나오니 넓은 잔디 정원이 있다. 그의 그림이 있고 해설을 붙인 작품 해설 안내판 6개가 크게 세워져 있다.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세한도다. 글씨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능했음을 여기서 확인하게 되어 흐뭇했다.
* 대정 성지
추사 유배지 곁에는 대정 성지가 있다. 넓은 잔디 정원 곁에 성벽이 그대로 남아 길게 뻗어 나간다. 대정 성지는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2호다. 대정현의 치소(治所)를 둘러쌓았던 성터로 1418년(태종 18)에 대정현감 유신에 의해 처음 축조되었다. 성의 둘레는 4,890자, 높이 17자 4치이고, 동·서·남에 각각 문이 있었는데 문 위에는 망루가 있었다. 그러나 중종 때에는 성 안에 우물이 없기 때문에 외적의 침입을 받았을 때 식수의 어려움과 화재에 대한 예방 대책이 없다 하여 다른 곳으로 이전할 것을 조정에 건의한 적이 있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 1599년(선조 32)에는 옹성(성문의 앞을 가리어 빙 둘러친 성문을 방어하는 작은 성)과 포대를 더 쌓기도 하였다. 더욱이 동·서·남의 3문앞에는 옹중석(돌하루방)이 각각 4기씩 세워져 있었으나 지금은 제자리를 떠나 흩어져 있다. 성은 현재 대부분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그 중 북쪽의 성체는 전체적으로 보존이 잘 되어 있다. 무너진 곳도 현재 그 일부가 복원되어 있으며, 제주 3개의 읍성 중 성터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다. 당시의 관청 건물로는 성 안에 객사동헌·어변청·아사·향사당·영안관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추사 김정희 유배지에 와서 덤으로 보는 대정 성지 유적지다. 새로운 역사 유적을 보고 배운 것은 큰 보람이다.
* 추사 김정희 유배지 주변 풍경
추사 김정희 유배지를 모두 돌아보고 나오는데 멀리 서귀포 풍경이 아름답다. 산방산과 송악산이 바다와 만나 비경을 이룬다. 추사는 매일 저 풍경을 보고 여기서 유배생활의 외로움을 달래셨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의 아름다운 정경이다.
2019년 9월 27일 금요일 제주공항 출발, 김포공항 도착
* 제주공항 출발
제주를 떠나는 날이다. 4박 5일이 금새 지나갔다. 오전 9시 50분 아시아나 항공 김포행 비행기로 떠난다. 일찍 일어나 펜션 앞 식당에 가서 한정식 조식을 하고 택시로 공항에 왔다. 언제 오도 사란 가득한 제주공항이다. 그 만큼 제주여행의 매력은 큰 인기라는 것이다.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하여 김포에 11시에 도착했다. 제주 여행 마무리 잘 하고 귀가하였다. 늘 그랬듯이 참으로 뜻깊은 제주 탐방이었다.
* 제주도 지도. 버스노선
제주여행은 우리 부부가 항상 자유투어로 한다. 그래서 수많은 자료와 지도를 찾아 탐구한다. 금년에는 동해안의 명소 2곳과 서해안의 명소 2곳 등을 중점적으로 둘러보았다. 동쪽으로는 남원 큰엉 해안경승지와 이중섭 거리, 서쪽으로는 이호테우 해변과 추사 김정희 유배지다. 그리고 제주 내륙을 관통하는 동쪽편 남조로와 서쪽편 평화로를 질주하여 숙소에 오는 일정이었다. 펜션 부근 제주 시내 북쪽의 용담포구와 다끄네물, 제주 시내 중심지의 삼성혈과 관덕정과 민속자연사박물관, 동문시장 등 제주의 전역을 탐방한 알차고 뜻깊은 여정이었다. 내년에는 또 새로운 명소를 찾아 탐방할 것이다. 언제 와도 여행의 큰 기쁨을 주는 제주도다. 비행기를 타고 온다는 매력에 해외여행 같은 기분도 선사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내 조국의 제주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