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내가 그를 백성에게 증거로 주었고, 또 백성에게 인도자와 명령자로 주었노라. 3)
Be hold, I have given him for a witness to the people, a leader and commander to the people. 3)
위 말씀의 그는 다윗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다윗의 역사는 현재의 암울한 로마의 침공과 통치의 반복에서 빛나는 자존감의 역사입니다.
예수께서 오셨을 때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솔로몬왕 시대를 다시 열어주실 왕으로 생각하였던 것도 이러한 아픔속에서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망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그들의 세상적인 소망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는 소망이 아니라 죽이는 독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세상적인 것에 마음을 두기 때문입니다. 재산이 없는 사람은 도둑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재산이 있어서 도둑을 걱정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재산에 마음이 쏠려 있음입니다. 그러나 재산이 있더라도 그것은 내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재산이 없는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죄를 짓는 자는 죄의 종이고, 재산에 얽매이는 자는 재산의 종노릇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진 근심은 모두 세상의 것에 마음을 두는 것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먼저 평안이 사라지고
그로인하여 경건의 능력도 사라지게 됩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들은 없는 것같이 하며
또 우는 사람들은 울지 않는 것같이 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는 것같이 하며
또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소유하지 않는 것같이 하라.
그리고 이 세상을 이용하는 자들은 다 이용하지 못할 것처럼 하라. 이는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져 감이라.
고린도전서 7장 29절 30절 31절
소유의 진정한 본질은 이용함은 본질의 소유입니다. 이용하지 않는 소유는 소유가 아닙니다. 즉 100억의 재산가도 실제 사용하는 돈은 몇백만원 밖에 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몇백만원을 가진 사람과 본질의 소유는 같은 것입니다.
사람은 앞을 내다볼수 없어서 여유분을 쌓아서 안심하려 하는데 이것은 세상적인 사람의 생각으로 믿음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람의 생각으로 일으킨 여유분에 마음을 두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소유는 사용함에 있으므로 우리가 가진 것이 작아도 다 이용하지 못할 만큼 쓰지도 못하므로 그것에 매달리는 것은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함인 것입니다.
보라, 너는 네가 알지 못하는 한 민족을 부를 것이요,
너를 알지 못하던 민족들이 네게 달려올 것이니 주 너의 하나님 때문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을 위해서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니라. 4)
Behold, thou shalt call a nation that thou knowest not,
and nations that knew not thee shall run unto thee because of the LORD thy God,
and for the Holy One of Israel; for he hath glorified thee. 4)
위 말씀에서의 민족은 이방인인데 유대인들이 알지 못하는 민족입니다. 즉 그들의 근방의 민족이 아닌 우리민족과 같이 멀리 떨어진 민족으로 생각이 됩니다. 여기서의 이방인은 이스라엘에게 고난을 주기위한 이방인들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달려오는 이방인들입니다. 주의 구원이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의 언약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그러한 구원의 역사를 아는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을 영광스럽게 바라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멀리에 있는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파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역사는 이루어져 극동의 대한민국에도 복음이 전해져서
저와 여러분이 복음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선지자 이사야가 말한 그 사람이라. 말하기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이 있어
'너희는 주의 길을 에비하고 그의 길들을 곧게 하라.' 하는도다." 하였더라.
마태복음 3장 3절
위 말씀에서 침례인 요한이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들을 곧게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길이 곧게 됨은 예수님의 오심이 불공평하지 않게 됨을 의미합니다. 즉 침례인 요한이 광야에서 외침은 예수님의 초림이 특정한 사람들만이 알게되는 것이 아니어야 함입니다.
마치 번개가 동편에서 치면 서편에까지 비치는 것같이, 인자의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장 27절
예수님의 오심은 초림과 재림모두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알려질 것입니다. 초림때에 침례인 요한이 광야에서 외쳤다면 지금은 모든 믿음의 성도들이 땅끝까지 모든민족에게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그분의 다시오심을 고르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재림의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이방인들에게 모두 복음이 전파되어서 복음의 기회에 있어서 불공평한 것이 사라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오시는 길이 곧게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재림의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이방인들에게 모두 복음이 전파되어서 복음의 기회에 있어서 불공평한 것이 사라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오시는 길이 곧게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알게됨이 고르고 공평하고 공의로우신 심판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서편으로 치면 모든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게되고 번개가 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여 예수님의 구원을 전하여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믿지는 않아도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도 모든 민족에게 고르고 공평하게 알려질 것입니다.
이 왕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런 후에야 끝이 오리라.
마태복음 24장 14절
예수님의 다시오심은 심판의 때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이 우리의 죄의 탕감을 위한 희생제였다면, 재림의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심입니다. 복음은 죄의 탕감에 대한 소식이며, 그것을 듣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고른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구원이 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소식인 복음을 전파하실 수 있으며, 그에게 쓰임을 받는 것이 우리입니다.
현재 전세계에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진 상황이며, 소수가 남아있더라도 곧 복음이 전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끝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O 그를 찾을 만한 때에 너희는 주를 구하며 그가 가까이 계실 때 그를 부르라. 5)
Seek ye the LORD while he may be found, call ye upon him while he is near: 5)
이사야 55장 3절 4절 5절
하나님을 그에게 구하는 자를 외면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복음은 전달은 되지만 복음을 받아들임은 각자의 이러한 구하는 의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복음의 전파는 통보이지, 대신 구원의 은혜를 받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듣고도 받아들이지 않음은 기회가 고르게 적용되었지만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회가 고르게 적용되었으므로 구원에서 낙오되는 사람은 그 책임이 온전한 그 자신에게 있게 되는 것입니다.